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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3 18:34


약펄럭패치 누렁순원 cow나기 비슷한 거로




上.


ㅅㅈㅈㅇㅁㅇ
ㅇㅌㅈㅇ ㄴㅈㅈㅇ ㅅㅅㅊㅈㅇ










1.

벤은 어른들 사이에 귀에서 귀를 타고 오가는 이야기를 용케 엿듣고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온통 아줌마, 아저씨. 벤만 봤다고 하면 쩌어기 민 영감네 막냉이 아니냐 하면서 주름진 손으로 벤의 말랑한 볼이며 가느다란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인 동네에 내 또래의 친구가 이사 온다고 한다. 몸도 안 좋은데 왜 자꾸 뽈뽈 밖으로 나와싸서 부모님 애간장을 녹이구 그러누! 고마 후딱 들어가거라 하는 걱정 어린 잔소리에 평소 같았으면 친구도 없는데 혼자 노는 거까지 뭐라 하고 그래! 할머니 미워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냈을 텐데 그날따라 벤은 그런 애정 담긴 입 댐도 마치 어른 같은 의젓함으로 생글생글 웃어넘길 수 있었다. 고작 그런 것들로는 기분 좋은 벤을 기죽일 수 없었다.






2.

벤은 가느다란 다리를 오두막 난간 사이로 내밀어 달랑거렸다. 내일이면 혼자 논밭을 뛰어다니고, 나무 사다리로 2층 오두막에 혼자 오르는 것도 다 끝이었다. 저기 도시에서 이사 온다는 애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상관없었지만, 뒷산에 올라갈 때 같이 따라올 정도의 체력은 있었으면 했다. 뭣하다면 벤은 자기 손을 빌려줄 의향도 충분히 있었다.

벤의 비밀 기지인 오두막 구석엔 낡아서 모서리가 헤진, 중간 볼륨 몇 권이 사라진 만화책하며 달력에서 찢어낸 빛이 바랜 풍경 사진들이 다람쥐 굴에 모아놓은 도토리처럼 이곳저곳에 쌓여있었다. 삐뚜름하게 기운 낡은 선반 맨 아래엔 잔뜩 녹이 슬어 뚜껑을 열려면 바닥에다 한번 쿵 들이받아야 하는 주석 통이 있었는데 그 안엔 벤이 산으로 들로 다니며 모은 벤 만의 보물들이 담겨 있었다.






3.

파이브. 도시에서 온 아이의 이름은 파이브 하그리브스라고 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눈이 휘둥그레 뜨일 정도의 멋진 집이 다섯이네 아버지 집이라고 했다. 벤이 까맣게 반짝이는 자동차를 구경하다 발견한 이상한 점은 파이브는 항상 혼자라는 것이다. 파이브와 같은 차에서 내린 운전하는 아저씨와 조수석에서 나온 안경을 쓴 무서워 보이는 할아버지. 그리고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는 싣고 온 짐을 하나둘 집 안으로 옮기는 멋진 형과 예쁜 누나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파이브의 옆에서 말을 걸어주거나 손을 잡아주지는 않는 것 같았다.

벤은 저택의 반대편, 길도 없는 언덕을 아래에서부터 몰래 기어 올라와 울타리에 발을 걸고 올라서서는 그런 모습을 몰래 지켜 보고 있었다. 왠지 어른들한테 들킬 것 같아 그토록 기다렸던 파이브를 향해 크게 팔도 흔들지 못했다. 벤은 바지 허리춤에서 오두막에서 챙겨온 종이비행기를 꺼냈다. 빳빳한 종이로 특히 날개를 신경 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저기 혼자서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는 파이브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벤은 한 손으로는 난간을 꼭 부여잡곤 반대편 손으로 파이브를 향해 비행기를 날렸다. 비행기 앞코가 공기를 타고 하늘로 솟았다가 이내 급격히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아, 안돼애. 벤은 제발 제발 속으로 수십번을 외치며 비행기가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지 않길 빌었다. 다행히 누군가 그런 벤의 소원을 들어준 것인지 바닥에 일찍 추락한 종이비행기는 남은 추진력으로 흙 위를 미끄러져 가더니 파이브가 신은 구두의 앞코에 콩하고 박고선 움직임을 멈추었다.






4.

파이브는 제 신발에 부딪힌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렸다가 하얀 종이비행기를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비행기를 집어 든 파이브는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마당 끝 검은 울타리 너머로 붕붕 팔을 흔들어 대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파이브를 향해 어찌나 밝게 웃고 있는지. 순간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파이브는 저 말고 모두가 분주한 저택 앞뜰을 벗어나 비행기의 주인이 확실한 소년에게로 향했다.

파이브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늘에 선 얼굴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는데 햇빛이 쏟아지는 계절에도 얼굴은 창백해서 두 뺨에는 아주 희미한 홍조가 보일 듯 말듯 걸려 있었다. 가느다란 팔다리가 거미처럼 울타리를 옭아매고 있었는데 자신만을 쳐다보는, 신이 난 게 분명한 까만 눈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거 네 거야?"

"응! 너 파이브 맞지? 나랑 친구 할래? 비행기는 너한테 선물로 주려고 가지고 왔어. 나는 벤이야, 벤 민."




파이브는 벤의 당돌한 친구 요청에 자기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본가를 떠나 혼자서 이곳에 지내기로 한 후로 3개월 만에 처음 지어보는 웃음이었다.






5.

벤은 파이브가 웃자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그냥 벤의 바람인지 뭔지는 몰랐지만, 파이브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벤은 나중에 파이브와 좀 더 친해지면 자신의 보물 상자를 파이브에게 제일 먼저 보여줄 예정이었다.

녹색 돌은 어디에서 주웠는지, 강가에 신비한 색의 돌이 많은 곳에 데려가 주고 싶었다.
반짝거리는 군번줄은 어디서 났는지, 도로변에 위치한 논두렁에는 미꾸라지뿐만 아니라 별의별 물건을 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벤의 이름이 적힌 병원에서 쓰던 이름표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골에서 지내면서 이제 다 나았으니까, 튼튼하니까 파이브랑 아주 오랫동안 친구 하고 싶다고 말해줄 생각이었다.






6.

파이브와 벤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시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물론 시끄럽게 목청을 올리는 건 벤이었고 파이브는 그런 벤의 옆을 지킬 뿐이었지만 말이다. 평균 연령이 아주 높은 이런 농촌에 까르르하고 자지러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지나가는 어른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게 했다. 그중 일부는 노파심에 벤에게 다치지 않게 조심하거라 하고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벤은 파이브도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나 이제 튼튼해 하고 반대 방향으로 후다닥 뛰어가기 일쑤였다. 파이브는 따뜻한 염려를 보인 동네 어른에게 벤을 대신해 꾸벅 인사하고는 먼저 길 끝으로 사라진 벤의 뒤를 급하게 쫓았다.






7.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둘은 벤의 비밀기지이자 이제는 파이브까지 해서 둘의 공동 기지인 오두막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오두막 뒤로 파랗게 펼쳐진 보리밭이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쏴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게 마치 녹색 물결이 치는 바다 같아 벤은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벤, 괜찮아?"

"응? 어어, 응 괜찮아."




자신을 부르는 파이브 쪽으로 벤이 시선을 돌리자 또 하나의 녹음이 파이브의 눈 속에 드리워져 있었다. 보리밭은 요란하게 몸을 떨어댔는데 파이브의 눈은 고요하게 벤의 얼굴만을 담아 반사하고 있었다.






8.

파이브가 신은 비싸 보이는 구두는 진흙으로 엉망이었고 벤이 입고 있던 얇기만 한 셔츠는 흠뻑 젖어 햇빛을 받아도 혈색을 쉽게 찾지 못하는 허여멀건 살갗을 그대로 드러냈다. 파이브가 자신이 입고 있던 꽤 두툼한 겉옷을 벗어 벤의 젖은 몸 위로 둘러 줬다. 벤은 그제야 제가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 어떡해... 감기 걸리면 엄마한테 혼날 거야.

바락바락 우기며 씩씩한척 하던 벤도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도시에서의 모든 생활을 진작에 접고 어린 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건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벤의 요양을 위해서였다는걸. 또래 친구는커녕 병원에서 모든 유년기를 보내느라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를 사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무리해서 시골로 내려온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벤의 건강을 회복시킬 거라곤 벤의 부모님 또한 기대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완전히 나을 수 없는 병이었기 때문에 벤은 항상 조심해야 했다.






9.

"소매에 팔 껴봐, 그렇지. 이거 잘 입고 있어."

"파이브, 그럼 너는..?"

"대신 나는 네 신발 신고 갈게. 옷 입고 나한테 업혀 있어. 그럼 내가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줄 테니까."

"응응... 파이브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집에 가서 푹 쉬고 아프지만 마. 난 그거면 됐어."

"응 그럴게. 안 아플 게."






10.

파이브는 긴 다리를 재개 놀려 벤의 집까지 빠르게 뛰어갔다. 등에 매달린 벤은 너무나 가벼워서 혹시 비바람에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파이브는 몇 번이나 벤을 고쳐 업으며 벤이 잘 업혀 있는지를 확인하곤 했다. 목덜미로 내뱉는 벤의 뜨거운 숨이 점차 가빠지자 파이브의 심장이 요동 치기 시작했다.

벤의 집 앞에 도착해서 파이브는 다짜고짜 벤의 부모님을 큰 소리로 불렀다.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는 악다구니에 벤의 부모님이 허겁지겁 현관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언덕배기에 사는 귀한 도련님이 서 있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그 뒤에 업힌 아들의 모습에 얼른 파이브의 등에서 벤을 옮겨 받았다. 하얗기만 할 줄 알았는데 빨갛게 열이 오른 벤의 얼굴에 파이브의 애가 닳았다. 벤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열에 달떠 혼몽한 와중에도 벤이 파이브의 이름을 불렀다.






11.

"파이브.."

"..응, 벤 나 여기 있어."

"있잖아, 내일 내가 반딧불이 볼 수 있는 호숫가에 데려다줄게. 같이 가자 알았지?"

"그래, 내일 꼭 가자."

"그리고.. 내일 만날거긴 한데.... 뽀뽀 한 번만 해주면 안돼? 우리 완전 친한 친구잖아... 그치..?"




파이브는 주저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자신을 향해 뻗은 벤의 손을 그대로 잡고서 자기보다 한참이나 작은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손바닥은 비에 젖어 차갑고 축축했지만 그래도 벤 특유의 체취가 묻어나왔다.




"내일 보자. 기다릴게, 벤."

"응. 나도 기다릴게.."




벤은 그대로 어른들의 품에 안겨 집 안으로 들어갔다. 파이브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닫힌 현관문 너머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벤의 신발에 억지로 발을 욱여넣은 탓인지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듯 발끝이 아렸다.






12.

다음날 벤은 반딧불이를 보러 가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벤은 일주일 넘게 꼬박 집에서 앓고 있었다. 파이브는 벤이 아픈 게, 마치 자신의 탓인 듯 해 차마 벤의 병문안을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깨끗하게 세탁해 놓은 벤의 운동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다 파이브는 운동화를 품 안에 챙긴 채 밖으로 나왔다. 파이브의 시야에 둘이 시간을 보내던 오두막이 들어왔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맑게 갠 하늘 밑으로는 너른 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파이브는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올랐다. 오두막은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단 하나 벤을 제외하고는.

품에 넣어왔던 운동화를 무게중심이 안 맞아 기울어진 낡은 선반에 올려놓으려던 파이브는 선반 맨 아래 칸에 뭔가 비죽 삐져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낯익은 물건의 끄트머리를 당기자 그날 벤에게 입혀줬던 파이브의 겉옷이 잡혀 나왔다. 파이브는 그대로 선반 앞에 주저앉아 겉옷을 꺼내다 그 옆에 있던 틴케이스를 발견했다. 벤이 베슬대며 자신의 보물상자라고 줄곧 말하던 게 생각이 나 파이브도 살짝 미소를 띠었다가 상자의 뚜껑이 살짝 열려있는 걸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뚜껑을 열어젖혔다.






13.

모서리가 깎이고 닳아 둥글납작하게 바뀐 녹색의 유리 조각하며 슬슬 귀퉁이에 녹이 생기기 시작한 빛이 바랜 군번줄, 그리고 병원 침대에 붙어있을 법한 택이 있었는데 환자명엔 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파이브가 벤의 이름을 손끝으로 쓸어보다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택 밑에 붙어있던 뭔가가 팔랑이며 파이브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14.

파이브에게.

파이브, 나 벤이야.
반딧불이 보러 가자던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나도 오랜만에 아파 본 거라 너한테 연락할 방법을 못 찾아서 미리 말도 못 했네.
부모님이 그러는데 나 다시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한대. 나는 괜찮다고 여기 계속 있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울면서 병원에 안 가면 안 된다는 거야.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엄마가 우니까 나도 모르게 같이 따라 울어버렸어. 아, 그래서 내가 다 나으면 다시 여기 내려올 수 있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그냥 나를 꼭 끌어안더니 다시 울어버리는 거 있지. 그래서 내려올 수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자세히 이야기를 못 들었어.

그래도 나 파이브랑 약속했으니까 병원에 얼른 갔다 와서 우리 둘이 반딧불 보러 가는 거야. 보름달 뜨는 밤에 가면 달이 하늘에도 하나 호수에도 하나 해서 두 개나 볼 수 있어. 엄청 예쁘니까 파이브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네 옷이랑 이 편지는 아빠한테 부탁해서 가져다 놨는데 네가 잘 찾았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내 신발은 내가 올 때까지 대신 잘 가지고 있어 줘.

아 맞다. 있지, 음... 파이브 너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입술에다가 뽀뽀하는 거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말인데 다음에 만나면 내가 네 입술에 뽀뽀해도 될까? 뭐 싫음 말고.... 나 잘 다녀올게.

우리 다음에 꼭 만나자.











下.


15.

벤을 좀 따라다녔다고 이제 막 시골 생활에 적응한 파이브가 이곳 지리에 빠싹해지는 건 아니었다. 파이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찾은 지도를 꺼내 들고는 벤이 보여주겠다는 반딧불이 호숫가가 어딘지 한참을 찾았다.


지도를 잡고 마을 어른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곳엔 벤의 말처럼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에도 하나, 호수에도 하나 걸려 있었고 환하게 불을 내는 반딧불이 어두운 숲에 별이 되어 주고 있었다. 달과 별을 보여주겠다던 벤은 파이브의 머리에도 가슴 속에도 있었는데 그 작달막한 손을 잡고 이끌어 주고 싶은, 여기 있는 그 무엇보다도 환하게 빛날 벤은 온데간데없어서 파이브는 가슴이 먹먹했다.






16.

벤은 결국 시골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마을 앞 커다란 성황 나무 앞에 삼삼오오 모인 어른들은 눈물을 찍어내며 일찍 세상을 뒤로한 작은 아이를 마음속 깊이 애도했다. 벤의 집은 상복은 입은 사람들로 문전성시였으며 그 곡소리가 사흘 밤낮을 끊이지 않고 마을 곳곳에 울려 펴졌다.

그렇게 조그만 몸으로 얼마나 큰 존재감을 자랑했던지. 초여름을 맞아 초록의 잎사귀는 고운 빛에 생기가 감돌았고 조금씩 후덥지근해지는 바람이 열매를 영글게 자라도록 쓰다듬었지만, 마을에는 어째 공허한 기운만 감돌았다.

파란 보리밭이 금빛으로 물들던 그해 여름을 끝으로 파이브의 짧은 시골 생활도 마무리되었다.






17.

파이브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도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애초에 가업 같은 건 밖에서 낳아 데려온 자식인 파이브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보는 눈이 무서워 저 멀리 시골로 쫓아 보낸 아들에게 이제와서 매달리는 꼴이란. 파이브는 처음으로 제 아버지가 기억 속의 모습보다 훨씬 작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아버지, 아니 이 남자는 인간으로서도 본받을 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내놓은 자식은 그에 걸맞은 일이나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파이브는 본가를 나왔다.

파이브의 집은 이곳이 아니었다.
자동차는 보기도 힘든, 야트막한 산과 흐르는 개울이 주변을 둘러싼 그곳이 파이브의 집이었다.






18.

파이브는 사진작가로서 꽤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자연 고유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 순수 사진으로 특히 논과 밭이 펼쳐진 시골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사진엔 그 시절의 향수와 추억이 담겨 있다는 비평가들의 호평이 따라붙었다. 그런 그의 대표작으로는 보름달이 뜬 밤 호숫가 주변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찍은 반딧불 연작을 꼽을 수 있었다.

사진을 사겠다는 사람이 돈다발을 들고 줄을 섰지만, 파이브는 누구에게도 반딧불 연작을 팔지 않았다. 그 문제로 시달린 탓인지 작품 활동을 그만두기 10여 년 전부터는 전시회에서도 그 연작을 걸지 않았고 그 누구도 그 사진들을 볼 수 없었다.






19.

"저... 저기 아저씨.."

"아이고 우리 도련님이 어찌 여까지 왔능가..."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 아그들이 이렇게 사과하고 그러는 거 아니여.. 그놈의 손은... 우리 벤이는 그냥 나길 그렇게 태어난 거여. 새파랄 때, 머리 굵기 전에 돌아오거라 하고 하늘에서 부른거니께 니가 괜스리 사과하덜 말어..!"




뭐라고 달래도 고개를 떨어뜨린 파이브가 얼굴을 들질 못하자 벤의 아버지는 그런 파이브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덜덜 떨리는 몸이 안쓰러워 숨도 못 쉴 만큼 품에 안고 있다 결국 벤의 아버지 또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정한 놈, 저하고 싶은 데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더니 어떻게 애미애비 품 밖으로까지 도망을 나갔어....


파이브는 벤의 아버지에게 벤의 관 안에 같이 넣어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고 간청했다. 거절의 말이 돌아오지 않을까 했던 것과는 달리 벤의 아버지는 파이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알았다고 했다.






20.

파이브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저 멀리 사라지는 상여꾼 패를 바라봤다. 위아래로 입은 흰색의 바지저고리에서 하얀 벤의 얼굴이 떠올랐다. 벤의 까르륵대는 웃음소리 대신 상두꾼이 부르는 구슬픈 만가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상여 뒤를 따르며 오열하던 벤의 어머니가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해 길 위로 쓰려졌고 같은 마을 아주머니들이 눈물을 훔치며 아이를 가슴에 묻은 여인을 위로했다.






21.

"얘야. 우리 벤이랑 놀아줘서 참 고맙구나."

"..."

"너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집에만 들어오면 파이브 느 얘기밖에 안 하는 것이, 한 번은 지는 파이브랑 나중에 혼인할 거라고 하잖냐."

"...."

"혼인이 지만 좋다꼬 뭐 대뜸 할 수 있는 건 줄 아는 가배하고 한 소리 했더니 뽀뽀하면 무조건 혼인해야 하는 거잖아 그람서 꽥 소리를 질러뿌더니 갑자기 지혼자 찔찔 눈물을 짜내는데 그게 어찌나 우습던지.. 허허.."

"저도 좋아해요..

"..그러냐."

"흑.. 저도 벤이 많이 좋아요.."

"그랬나.. 마, 듣는 내가 다 고맙다이. 벤이 너랑 있으면 참 많이 웃었다. 이제 너도 많이 웃거라, 벤이 너 웃는 게 참 곱상하이 잘 생겼다 그라더라."






22.

파이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물려받은 유산을 정리해 짧게나마 벤과 시간을 보냈던 시골로 돌아왔다. 더 이상의 작가 활동은 없을 거라며 은퇴까지 마친 후에 돌아온, 꿈에만 그리던 진짜 내 집으로 돌아온 파이브였다.

마을엔 수십 년 전 잠깐 머물다 떠난 파이브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아주 어린 나이에 저 멀리 하늘로 훨훨 날아간 벤을 기억하는 사람도 몇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이 들어왔다 떠나길 반복하는 동안에도 마을의 풍경만은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라 파이브는 눈만 감아도 벤과 함께 놀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23.

이제는 파이브의 것이 된 서재 안에서 파이브는 보름달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밖을 응시했다. 고풍스러운 가구나 벽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오래돼서 펼치면 바스러질 것 같은 누렇게 바랜 코믹북과 물에 젖어 쭈그러진, 찍은 장소도 알 수 없는 달력의 풍경 사진이 서재 한쪽에 장식되어 있었다. 소파에 앉은 파이브는 개의치도 않고 녹이 묻어나오는 양철로 된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벽난로에 피워놓은 주황색 불이 서늘한 공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늘 잠드는 게 힘이 드는 파이브였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이대로 잠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4.

파이브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재에서 잠깐 졸았던 것 같았는데. 고개를 돌리던 파이브의 시선 끝에 노란 불빛이 점멸하며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게 보였다.




"아..!"




파이브는 이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다. 초행인 사람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수풀 사이에 밟힌 자국이 있는 잔디 길을 파이브가 따라 걸었다. 길 끝에 있는 허리 높이의 덤불을 헤치자 조명처럼 보름달이 쏟아지는 맑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옛날 벤과 함께 오기로 약속한 곳이자 파이브의 반딧불 연작의 실제 장소였다.






25.

파이브는 제 머리 주변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재빨리 몸을 돌렸다.




"파이브!!"

"벤..?"




맨 처음 벤을 만났던 그때처럼 벤이 팔을 크게 흔들며 파이브를 불렀다. 파이브는 이게 꿈인 줄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생생해서 믿기지 않았다. 벤은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여전히 작았고 눈꼬리가 크게 휘어지며 파이브를 따라 웃게 만들던 그때의 웃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파이브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기만 하자 벤이 사뿐사뿐 잔디를 밟으며 뛰어오더니 파이브의 품에 안겼다. 가슴에 닿은 얼굴이며 허리에 두른 팔까지 가느다란 벤의 몸은 아주 따뜻해서 파이브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26.

"파이브,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어?"

"아버지 서재에 있던 지도 가지고. 그리고 동네 어른들한테 한참 물어봤어."

"파이브는 나 없이 길도 잘 못 찾는구나, 헤헤"

"응.. 벤, 네가 없어서 나 계속 길을 잃어버렸어."

"헉... 정말..? 어, 저기 미안해 파이브."




사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눈썹을 길게 늘어뜨리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벤의 모습에 파이브는 그만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 파이브에 벤이 안절부절못하는게 선했지만, 파이브는 눈물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저기.. 파이브야 내가 미안해. 같이 반딧불이 보러 가자고 했는데.... 흐윽.. 내가 못 가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애."




기어코 벤도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성황 나무에 올라갔다 혼쭐이 나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날처럼 손등으로 눈을 비벼대는 벤의 모습에 파이브는 젖은 얼굴을 정리하며 눈가에 붉은 생채기를 만드는 벤의 손목을 가볍게 그러쥐고는 제 쪽으로 벤을 당겨 안았다.






27.

호숫가 근처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둘은 물가 위를 나는 반딧불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올려다봤다. 파이브는 벤이 거짓말을 했구나 싶었다. 둥근 달은 하늘에도 물 위에도, 그리고 벤의 눈동자 속에도 들어 있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파이브가 벤을 향해 있던 얼굴을 다시 앞으로 돌리려던 찰나 벤이 아! 하며 깨달은 듯 소리를 질렀다. 그 덕에 파이브는 고개를 그대로 벤에게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있지, 아빠가 파이브 네가 주는 편지라면서 내 손에 쥐여줬단 말이야. 근데 그동안은 이상하게 읽을 수가 없어서 계속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 같이 볼래?"




벤이 반바지 주머니에서 몇 번 접은 쪽지를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펼쳤다. 잔뜩 구김이 간 종이 위에는 작은 종이비행기 그림과 함께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28.

좋아해, 벤.






29.

그날엔 보기 드문 은하수가 시골밤 하늘 위로 드리웠다. 자신을 풀밭에 깔아 눕혀놓고는 서툴게 입술을 부딪쳐 오는 벤 덕에 파이브는 쏟아질 듯 반짝이는 은하수를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빛이 나는 까만 벤의 눈동자 때문에 파이브는 어쩔 수 없이, 이번엔 자신이 벤의 입술 위로 깃털 같은 입맞춤을 내렸다. 이제 우리 혼인하는 거야? 귓가에 속살대는 벤의 작은 목소리가 파이브의 가슴을 한없이 부풀게 했다.






30.

다음날 파이브의 시신을 발견한 건 매일 아침 출근하는 가정부였다. 사인은 심장에 생긴 문제로 인한 돌연 심장사로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미리 써둔 유언에 따라 파이브의 유산은 그가 지내던 마을의 발전 기금으로 쓰이게 되었고 시신은 화장하여 저택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적 드문 호수에 뿌리기로 했다.














+오타비문 좀 고쳤는데 그래도 엉망이조
6월에 우산학원 시즌3 나오는거 실화냐 ㄷㄱㄷㄱ 크아아아 브벤비 라이즈
2022.05.23 18: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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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센세.... 저 제목만 읽고도 진짜 달려왔어요... 센세... 고마워....
[Code: c67d]
2022.05.23 18: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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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 ۝༎ຶ`༽༼;´༎ຶ ۝༎ຶ`༽༼;´༎ຶ ۝༎ຶ`༽༼;´༎ຶ ۝༎ຶ`༽༼;´༎ຶ ۝༎ຶ`༽༼;´༎ຶ ۝༎ຶ`༽༼;´༎ຶ ۝༎ຶ`༽༼;´༎ຶ ۝༎ຶ`༽내가 정말 사랑해 진짜 눈물나
[Code: 4c4a]
2022.05.23 19: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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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건 문학이잖아요
[Code: f939]
2022.05.23 20: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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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저 울다가....탈수올거같아요....너무 슬픈데 다시 만나서...좋아해 벤이라는 그 쪽지는 파이브를 다시 만날때까지 읽을수가 없었다는게.......센세 내 눈물로 해수면1m상승할거같아...반딧불이...반딧불이호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a29]
2022.05.24 06: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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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에에에에에 진짜 평생 읽을 명작을 내려준 내 센세는 천재야
[Code: 7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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