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2037310
view 43623
2024.11.22 12:06
https://hygall.com/611661511





피터는 어릴 때부터 작은 것들이 싫었다.



8살이었나, 9살이었나. 그런건 기억하지 못 하면서도 피터는 파파가 또렷하게 제 힘에 의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정원에 심어진 나무에 부딪히는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도. 나무에 부딪힌 파파는 한없이 가벼운 움직임으로 잔디 위로 떨어졌고, 깨어나지 못 했다. 이후의 기억은 별로 없다.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충격을 받으면 기억이 날아간다던데, 그래서 그랬나. 병원에 도착한 대디가 저를 어르고 달래서 파파의 손을 놓게하기 전까지는 기억이 별로 없었다. 엄연히 말하자면 손...은 아니고 앞발을. 하얗고 몽실몽실한 북극여우 수인은 2주간 입원을 하고 있었고, 퇴원하고나서도 열흘 뒤에야 깁스를 풀 수 있었다. 장장 3주만에 본 파파의 얼굴은 바싹 여위어있었다. 운동을 하지 못 해 근육과 살은 내려있었고(당시엔 근력운동이 뭔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핼쑥해진 얼굴에 파파가 몹시 크게라도 아픈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오죽 시끄럽게 울었으면 아동학대라고 옆집에서 신고가 들어왔을 정도니까. 다행이도 옆집 식구들은 파파와 대디가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고, 때문에 부모님이 아닌 베이비시터가 저를 학대하는줄 오인하고 신고한였으므로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 뒤로 피터는 작은 것들이 싫었다. 같이 놀자고 살짝 머리를 부딪혔을 뿐인데 파파가 야구공마냥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으니까. 파파보다 더 작은 것들은 세게 쥐기라도 하면 부서질것 같았다.








48143930342_a34123d067_o.jpg
48143822351_403c580103_o.jpg
그러니 과장 좀 보태 본인 얼굴만한 계란을 까지도 못 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작은 솜털뭉치를 발견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머리 위로 곰의 귀가 튀어나왔대도 그리 이상할건 없다. 계란 하나도 못 까는 애가 내 애인이라니! 계란 보다 작은 손이라니, 몇 년동안 피터는 이렇게 작은 동물이 제 곁으로 오는걸 허락한 적이 없다. 애초에 다가간 적도 없었고, 그러니 이렇게 작은 생명체는 낯설고, 낯설기보다는 무서웠다. 여태 피터는 파파보다 작은 수인들, 그리고 동물들에게는 먼저 다가간 적이 없다. 특히 색이 하얀색이면 더 그랬다. 10년이 지나도 그랬다.


 여우로 추정되는 생명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우였다. 자신이 아는 여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파파는 북극여우수인이었고,  싹퉁머리 없는 사촌인 브렛은 붉은여우 수인이었으니까 대충은 여우의 종류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잘은 몰라도 아마 여우일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설치류처럼 보이지는 않았고(비록 설치류로 오해받을만한 사이즈긴했지만)  그렇다고 유대류라고 하기엔...좀 아니다. 걔들은 엄청 작게 태어나지 않나? 이렇게 빨리 성장할리가 없다. 피터는 덥썩 눈 앞의 조그만 생명체의 등(등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면)과 목덜미 사이 어디쯤을 집어 들었다. 어디라고 구분할 수 없을만큼 작다는 사실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원래 피터의 입을 막을 수 있는건 톰파파 정도 뿐이었는데 말이다.




"야, 너....그...혹시...여우냐?"




피터는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아오 내 가오. 이미 떨어지다못해 맨틀을 파고들 정도로 바닥에 떨어진 가오를 뒤늦게 챙겨봐야. 그냥 여우수인 싫어하는 사람만 됐지. 아차, 뒤늦게 제 실수를 알아차린 피터는 안 그래도 작은 생명체가 더 쪼그라든걸 발견한다. 계란도 제 힘으로 못 깔만큼 작은 애인이 잔뜩 쪼그라들어 계란 뒤에 얼굴을 숨긴다. 시무룩해진 얼굴이 계란 뒤에 숨겨질 정도로 작은 애가 잔뜩 쪼그라들어 제 눈치를 본다. 끼잉...작게 울며 구석으로 숨어버리는 작은 생명체가 구석으로 숨어버리자 피터는 마음이 다급해진다.



"야, 야. 아니 그..뭘 또 도망을 가. 가긴 어딜 간다고." 



싱크대에는 또 어떻게 올라갔대, 이 작은 몸으로. 계란 하나를 한 번에 다 못 먹어서 주둥이며 수염에 온통 계란 노른자를 묻혀놓고서는. 그래봤자 그 작은 몸으로 도망갈데도 없는데. 싱크대에서 헤엄칠만큼 작은 주제에 또 어딜 가려고. 짧은 다리를 바둥거리며 숨을 곳도 없으면서 싱크대 위를 배회하다가 떨어지기리도 할까봐 걱정이 됐지만 피터는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아직도 오래전의 기억이 피터의 발목을 잡는다. 수인형태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지면 그 어린날처럼 눈 앞의 작은 솜털뭉치가 날아갈 일이 없다는걸 아는데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그 증거다. 제 앞발보다도 작아보이는 얼굴, 제 엄지손톱만한 앞발, 손을 쫙 펼쳐들면 얼추 다 가려질만큼 작은 몸뚱어리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함을, 얘는 알까.




세상 무해한 외관을 한 존재가 피터에게는 가장 무서웠다. 이렇게 작은 생명체에게 손 하나 대지 못 할만큼. 그동안 이렇게 가까이서 작은 무언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웠다. 머리로는 쓰다듬어 보고싶은데, 덜덜 떨리는 손은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멈춰선다. 지금은 사람의 손이고, 만진다고 해서 눈 앞의 이 작은 솜뭉치가 날아갈 일도 없다는걸 아는데, 다 아는데. 겁이 난다. 눈 앞의 이 솜뭉치도 제 힘을 못 이기고 날아가서 구석에 처박히고 어딘가 부러질까봐. 당시의 파파보다도 훨씬 작은, 제 손바닥 위에도 올라갈것 같은 이녀석이 저로 인해 아플까봐.





a6fab3fd882dc9cb038044b8167abcb5.jpg
피터 눈에 보이는 솜뭉치 프란이...너무 작아서 소중한데 꽉 끌어안으면 터질까봐 안아주지도 못 하고 덜덜 떠는거 보고싶다





루스터행맨 루행크오 피터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