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날조주의 캐붕주의
ㅅㅍ인 것 같아서 제목 수정함!


그날 파르마의 기분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최악이었을 것 같다. 사실은 그 전날밤부터 어쩌면 그 전주부터 최악이었을 수도 있겠지 탄이 정기적으로 티코그를 수확하러 오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음 그래도 이번 주기는 운이 좋은 편인게 이 글러먹은 변신중독증에 걸린 디제이디의 리더는 정기적으로 정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대뜸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었음 예정보다 코그가 더 빨리 소모됐으니까 준비해놓으라고...그 때마다 열이 뻗치다 못해 뒷통수가 지끈거릴 정도였지만 절대적 을인 파르마가 할 수 있는건 없었음. 급한대로 얼마 못 모은 코그라도 내놓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 주기는 적어도 이런 갑작스러운 연락은 없었으니 운이 좋은 편일 것임

여기까지 생각을 마쳤을 때 파르마의 기분은 더 비참해졌음. 운이 좋기는 개뿔, 지금 자신의 상황은 엿같기가 그지 없는데 개중에서도 그나마 위안거리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자기 스스로가 혐오스럽고 그래서 더 비참해졌을 것 같다

파르마는 무섭게 굳은 얼굴로 준비해놓은 티코그 수십개를 정리해서 보관 케이스에 넣었고 밤이 찾아와 어둠이 완전히 델피를 뒤덮기를 기다렸음 칠흑 같은 어둠이 감싼 시설 밖 외딴 쉘터에서 파르마는 홀로 앉아 케이스 안에 있는 티코그를 준비하기 위해 자기가 목숨을 빼앗었던 환자들의 얼굴들이 떠오르는걸 애써 무시하고 있었음 어쩔 수 없어. 덕분에 더 많은 환자들이 살 수 있었으니까...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회피할거지?

환자들의 절반을 죽여야 거래를 계속할 수 있을 때조차도 나머지 절반을 살렸다는 걸 위안으로 삼을건가? 탄이 요구하는 수량이 더 늘어난다면? 이미 당초에 요구했었던 수량의 배는 더 늘어났는데 여기서 더 많은 양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저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탱크의 구동음에 멈췄을듯 몇 번이고 들었던 소리지만 새삼스럽게도 몸은 긴장감에 굳고 있었음. 역겹게도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음. 남의 목숨을 팔아 연명하는 목숨인 주제에 아직도 자신은 죽기를 무서워하고 있었음.

문 밖에서 구동음이 멈추고 변신하는 소음이 들리더니 덜컥 문이 열렸음 머리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인 거대한 메크가 쉘터로 들어왔음. 파르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음 탄이 그런걸 신경 쓸 위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탄한테 인사를 하지 않는건 파르마의 마지막 남은 오기였음 

"요청했던 만큼의 수량을 준비했습니다."

파르마가 말과 함께 건낸 케이스를 받아든 탄은 안쪽을 열어 확인했음 깔끔하게 절개된 티코그들이 가지런히 들어있었음

"좋아. 네 협조적인 태도 덕분에 우리의 거래는 당분간 더 지속될 수 있겠군."

파르마는 말없이 애매하게 눈을 내리깔았음 공손해보이고자 한 행동은 아니었고 '협조적' 이라는 단어에 안그래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탄의 얼굴(사실은 가면이지만)까지 시각 센서에 담고 있다간 정말 폭발할 것만 같아서 눈을 피한 것에 가까웠겠지

"알지 모르겠지만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은 꽤 많다. 하지만 넌 아니지. 넌 델피의 안전과 티코그를 거래하기로 나와 약속했고 지금까지 그 말을 아주 훌륭히 잘 지키고 있으니까."

개새끼. 파르마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음 탄은 늘 이런 식이었음. 다른 모든 길목을 다 막아버리고 유일하게 하나 남겨둔 가시밭길로 자신을 몰아넣었으면서 네 발로 들어갔으니 네 선택이라고 말하는 저 태도...아침부터 지끈거렸던 머리가 다시 또 격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음. 조금만 더 참자. 디제이디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을리도 없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탄은 티코그를 갖고 유유히 떠날 것이었음

아무말도 하지 않는 파르마를 뒤로 하고 탄은 문 밖으로 향했음 파르마의 시선은 쭉 바닥을 향한 채였음 바닥을 쳐다보면서 이 끔찍한 디제이디의 리더가 제발 자신을 내버려두고 떠나길 기다렸지만.....어째선지 탄은 그 자리에 계속 멈춰서 있었음

의아하게 고개를 들려는 순간 탄이 파르마에게 다가왔음 

"방금 전의 트랜스폼을 마지막으로 코그가 다 소모된 모양이다. 메사틴의 기지까지 이동하려면 여기서 이식을 바로 받아야겠는데. 할 수 있겠나?"

이번 주기는 운이 좋기는 개뿔 진짜 정말로 최악인게 분명했음. 할 수 있겠냐, 라니. 그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목소리가 오버랩됐음. 티코그를 주기적으로 공급할 수 있겠냐고 물었던 그 말은 실상 의문문이 아니라 명령문과 다름 없었고 이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음. 

"...티코그 이식 시술은 비교적 간단하니 바로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하지."

디제이디의 리더에게 부탁을 받는 오토봇 군의관이라. 출세했군. 파르마는 코그가 담겨있는 케이스를 열어 끔찍한 기분으로 그 중 하나를 꺼냈음. 시술을 위해 잠시 바닥에 누워달라는 파르마의 말을 탄은 순순히 따랐음. 손을 시술을 위한 모양으로 변형한 순간 파르마의 머릿속을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음 티코그 이식이 아무리 간단한 시술이래도 내장부품을 갈아끼우는 시술이었음 이를 위해서는 피시술자가 휴면 상태인게 일반적이었음. 혹시 어쩌면 지금.....

"그럼 시술을 위해 휴면 상태를 유도..."

"아니. 이 상태로 진행해라."

덤덤한척 시술 준비에 집중하는 모습을 꾸며내던 파르마는 귀를 의심하며 자기도 모르게 탄의 얼굴을 쳐다봤음 가면 사이로 붉은색 옵틱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음. 

"하지만 온라인 상태에서 시술을 진행하면 고통이 상당할 수도 있습니다."

파르마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고자 노력했음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일지도 몰랐음 디제이디 리더의 잠든 목을 노려 정말 죽여버리게 된다면 다른 디제이디들이 쳐들어올거라는 사실은 명백했지만, 어쩌면. 어떻게든 최대한 시간을 벌어서 오토봇에 지원을 요청하고 지금이야 말로 델피를 진짜로 보호할 수 있을지도 몰랐음

"오, 메딕의 의견은 귀중하지. 하지만 이대로 진행해도록 해. 상관없으니까."

탄의 말에 기회는 허무할 정도로 사라져버렸음. 파르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시술을 시작했겠지. 시뻘건 옵틱이 가면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다는듯이 비웃고 있는걸 봐버렸으니까...

체스트 플레이트를 절개하고 다 소모되어버린 티코그를 꺼내는 파르마의 손가락 끝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는걸 탄이 봤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음 하지만 파르마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음 바로 지난 달, 오토봇 한 명의 목숨과 맞바꿔서 간신히 건냈던 티코그가 싸구려 소모품처럼 마구 갈려져 있는 걸 다시 자기 손으로 꺼내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과 바꿔온 새 티코그를 제손으로 넣는 일련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역겨움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파르마는 충분히 힘들었음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리가 없을텐데 탄은 평온했음 평온하다 못해 파르마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었겠지. 티코그 시술을 할 때 개방하는 부위는 손상을 줘봤자 즉사시킬 수가 없었음 탄을 즉사시키지 못한다면 그 다음이 바로 파르마의 차례일 것이고 그 다음이 델피 전역일 것이었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파르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최대한 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시술을 마쳤음 

시간이 지나 시술이 끝나고 탄은 몸을 일으켰음 다시 쉘터 밖을 나서는 탄을 따라나서며 파르마는 제발 이제는 진짜 정말로 탄이 꺼지기를 빌고 있었음 자기 손으로 죽인 아군의 티코그를 자기 손으로 갈아끼운 것만으로도 이미 정신력은 바닥을 치는 중이었고 너무 오랫동안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시술을 해서 그런건지 첫 환자를 집도했을 때보다도 손이 더 저릿거렸음 

"아, 그래도-"

이번에는 또 뭔데 젠장. 욕이 넥케이블까지 올라온걸 삼키며 파르마는 탄을 올려다보았음 

"방금 전의 호의는 고맙군. 디셉티콘에서는 이 정도 시술에 공들여서 마취를 쓰진 않으니까. 이렇게 환자를 배려해주다니 역시 책임감 있는 메딕이야."

가면을 쓴 얼굴이 살짝 옆으로 기울여지더니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음. 그러더니 정말 역겹게도...파르마의 얼굴 가까이 가면이 다가왔음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커다랗고 날카로운 손 안으로 자신의 손이 쥐여들어갔음

"하지만 너무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렇게 손을 떨어서야 보는 이쪽이 다 걱정되던데."

실력이 좋고 책임감까지 있는 메딕은 정말 고마운 존재지. 군의관이 할 일이 많다는건 알고 있지만 몸 상태에도 신경을 써야하지 않겠나? 탄의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귓가에서 짐짓 다정한척 속삭이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지만 파르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채로 굳어 있었음. 탄에게 붙잡혀 있는 건 한쪽 손뿐이었는데 온몸을 옴짝달짝할 수가 없었음. 그가 능력을 쓴건지 아니면 자신이 지레 겁에 질려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음. 파르마는 제발 전자이길 빌었지만, 제대로 판단을 할 수는 없었음 가까이에서 비릿하고 탁한 에너존의 냄새만이 느껴졌음 절대 자연적인 냄새가 아닌 강제 배출된, 체내의 에너존에게서 나는 냄새가, 죽음과 가까운 냄새만이 확실하게 느껴졌음 

"다음번에도 잘 부탁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탄은 잡고 있던 파르마의 손을 놓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음 그리고 쉘터에는 홀로 남아 멍하니 눈밭을 응시하는 파르마만이 남겨졌음


트포 탄파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