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https://hygall.com/611819933
아무것도 모름ㅈㅇ
해안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올라 타야한다며, 괜찮겠냐는 아카시우스의 걱정어린 말에 허니는 괜찮다고 대꾸하면서도 왜 자꾸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싶겠다. 근데 막상 배에 올라타려는 순간 허니는 두 발이 꽁꽁 묶인 것 처럼 움직일 수가 없는거임.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아래에 항해 하기 딱 좋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허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음.
허니가 배에 올라탔던 순간은 모든 사람들의 핏물이 씻겨나가 붉어진 바다 위에서 불타오르는 제국과 시체들을 짓밟고 배 위에 올라탔었을 때였으니깐. 거친 파도 소리 따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고통 어린 신음과 울부짖음이 가득했던 때였음. 그게 트라우마가 된 건지 다시 배에 올라타려고 하니 그때 생각이 저절로 나는거지. 허니 옆에 서 있던 시종이 왜 그러냐며 물었음. 허니는 제 상태를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는거지.
그래서 그녀가 머뭇거리자 뒤에서 아카시우스가 허니의 손을 붙잡아주겠지. 엄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제 손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허니는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겠지. 그래서 천천히 아카시우스의 발걸음을 따라 계단을 밟고 배 위로 올라탔음. 그리고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곧장 휴식실로 향하겠지. 아카시우스는 허니의 주변에 맴돌며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었음.
허니는 멍하니 그를 보다가 묻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말입니까."
"제가...이럴 거라는 것을요."
"아..."
시종이 아카시우스가 부탁한 어깨 숄을 가져와 허니의 어깨에 걸쳐주며 브로치로 꼼꼼히 옷 매무새를 정리해주겠지. 그는 그 시종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 묵묵히 쳐다보며 포도주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고 짐정리를 하기위해 시종이 사라지자 희미한 미소를 걸치며 말했음.
"나도 종종 부인이 겪은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당신도...겁에 질린다는 말입니까?"
"인간인데, 당연한 말씀을."
"겁 따윈 없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요."
"난 아둔한 인간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느껴야 용기가 생긴다는 걸 부인도 아시잖습니까."
"...그런가요? 난 잘 모르겠는데."
"티모시를 지키기 위해 목에 칼까지 들이댔으면서."
아카시우스가 포도주를 따라 허니에게 건네주었음. 겁이 없으면 두려움도 느끼지 못해 멍청해지죠. 지금의 로마처럼 말입니다. 그가 쓴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고 허니는 그가 건넨 잔을 받아 두 손으로 움켜쥐었음. 병사 한 명이 조심스레 들어와 항해 일정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다며 아카시우스를 찾았고 그는 자리를 비웠음. 허니는 제가 앉아있는 긴 의자에 옆으로 몸을 눕히며 눈을 감았음.
바다가 일렁이며 배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지. 그리고 이 방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곳에서 로마로 끌려갔을 때의 티모시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음. 둘 다 벽 끝에 등을 대고 앉아도 서로의 발이 겹쳐질 정도로 좁은 방이었음. 둘은 경비원들이 게으름을 부리며 잠에 빠졌을 늦은 새벽에만 간신히 대화를 나눴음. 주로 입을 여는 사람은 허니였겠지.
티모시는 한순간에 제 부모와 나라를 잃은 충격에서 허덕이고 있었으니깐. 그리고 그는 허니를 볼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렸음.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 티모시가 쉬어버린 목소리로 들릴듯 말듯 속삭이며 허니에게 말했음.
"내가 평범했다면...네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을거야."
티모시가 칼날에 베인 허니의 목덜미 부근에 손을 뻗다가 주먹을 쥐며 제 몸 옆에 갖다 붙이겠지. 그의 말을 들은 허니는 그의 손을 붙잡고 말했음.
"그랬더라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테지. 아마 우리 둘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라, 허니."
티모시가 손을 뒤집어 허니의 손을 꼭 붙잡다 못해 깍지를 끼웠음. 그리고 다른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실소를 내뱉겠지. 로마인과 정략혼이라니, 말도 안되는... 그가 입술을 짓씹었고 허니는 다급히 그 애의 이름을 달래듯 불렀음. 그리고 자신을 보라고 애원하듯 부탁했음. 허니는 티모시의 두 손을 꼭 붙잡고 그에게 몸을 조금 더 가까이 붙인 뒤 말했음.
"널 살리는게 나의 사명이야. 난 이러기 위해 태어난 아이고."
"세상에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할 운명 따윈 존재하지 않아. 그건 우리 어머니가 네게 한 저주와 다름없는,"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을 운명은 없지. 하지만 넌..."
기어코 허니의 눈에도 눈물이 툭 떨어졌음.
"넌 나의 주군이잖아."
티모시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결국 그는 고개를 떨구며 세운 제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었음. 경비원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허니는 다급해졌지.
"내 사명은 변함없어. 넌 나의 주군이고,난 널 살리기 위해 모든 할 거야."
허니가 그 좁은 쪽방에서 느꼈던 온기를 다시금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음. 허니의 시종이었지. 그녀는 허니가 낮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는지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이 방 안으로 옮겨놨던 허니의 짐을 어디론가 옮기려고 하는 듯 했음. 그래서 허니가 어디에 옮기려는 거냐고 묻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훽 돌아보겠지. 그리고 떠듬거리며 말하겠다.
장군님이 배 안 쪽으로 부인의 짐을 옮기라고 하셨다고. 파도의 영향이 덜 가는 곳이고 장군님이 배 안에서 할 일이 많으셔서 같은 침실을 사용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면서. 자신을 배려해주는 아카시우스의 행동에 허니는 제 입술을 꾹 깨물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음.
"...혼자 옮기기에는 무거워 보이는데요."
"예? 저 혼자서도 충분히,"
"같이 듭시다. 안내하세요."
"네?! 아니 어찌 그런 말씀을...안 됩니다! 혹여 다른이가 보게 된다면 부인도 그렇고 제게도,"
"장...아니. 내 남편이 뭐라하지 않으면 장땡 아닙니까?"
"하지만,"
"내...남편이 내게 뭐라 할 일은 없을테니...문제 없네요."
허니는 제 입안에 맴돈 '남편'이라는 단어에 낯간지러워 괜히 제 짐 하나를 들고 시종을 쳐다보자 그녀는 더더욱 놀라며 허니를 말리려고 하겠지.
"하지만!... 부인은 몸도 편찮으시고..."
"일단 이 방에서 나가면 되겠군요."
허니가 앞장 서 나가자 그녀가 황급히 뒤를 쫓아 나왔겠지. 시종은 허니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가며 그녀를 힐끗 쳐다보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음.
"죄송합니다, 부인."
"뭐가 말입니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 미안한게 한두개여야지. 허니는 그냥 해본 말이었고 딱히 신경 쓰지 않은 터라 시종에게 묻겠지. 이름이 뭐냐고. 시종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왜 궁금하냐는 듯이 허니를 올려다봤음. 허니도 멀뚱히 그 시종을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제 이름을 말하겠지. 올리비아 라고. 허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비아가 안내하는 방으로 말없이 걸어갔음.
/
허니는 아카시우스의 쿠데타 계획을 듣고 흠칫 놀랐음. 그리고 그의 계획에 자신이 껴 있다는 것도. 정확히는 그의 계획이 성공하고 난 후 벌어질 일에 대한 것이지만. 그가 본인 입으로 말했음. 자신이 멸한 당신의 제국을 다시 손에 쥐어주겠다고. 허니는 그의 말을 곱씹어봤음. 지금 당장 자신을 향한 그의 선의와 배려는 전부 미래에 있을 일들을 위함인건가. 아카시우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인데 왠지 허니는 그가 자신에게 행하는 모든 행동들에 이유가 있다는 것에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이 느껴지겠지.
이런 생각도 들겠다. 그가 로마의 황제가 된다면 주변국들이 모두 그와 동맹을 맺고싶어서 안달이 날텐데 왜 굳이 자신에게 선의를 보여 H국과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걸까. 그때 쯤이면 H국의 국가력은 이제 다시 걸음마를 배운 갓난아기에 불과할텐데. 그리고 그의 계획에 아주 커다란 헛점이 존재했음. 로마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하여 허니를 H국의 황제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
아카시우스가 바라는 그때가 되면 허니는 국민들 앞에서 본인이 황실의 핏줄이라는 걸 증명해야하지만, 그럴 수 없음. 허니는 황실의 핏줄이 아니니깐.
파도가 크게 넘실거렸고, 마른 하늘에 벼락이 대뜸 내려쳤음. 곧이어 퍼지는 우렁찬 천둥소리에 허니는 흠칫 놀라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겠지. 그리고 얼마 안가 무언가가 바닥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음.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병 하나가 깨졌음. 시종이 속이 메스껍다는 허니를 위해 가져온 여러 허브가 혼합되어 담겨있던 향유였음. 진한 향이 삽시간 방 안을 가득 메웠고 안그래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을 설치고 있던 허니였는데 저도 모르게 베개를 끌어안고 밖으로 뛰쳐나오겠지.
허니가 갈 곳은 한 곳 밖에 없었음.
노크를 하기 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손을 구부려 문을 똑똑 두들겼음. 안에서는 들어오라는 그의 목소리가 잔잔히 들려오겠지. 그는 등잔불에 의지한 채 지도를 바라보며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음. 당연히 시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랫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자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그의 눈은 순수해 보일 정도로 커다랗게 확장되겠지. 여긴 어쩐 일이냐는듯한 그의 표정에 허니는 머쓱해졌음.
"이 시간까지 안자고...방에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향유가 담긴 병이 깨져서...진한 허브향에 머리가 아파와서 그만..."
"아, 시종에게 다른 방을 안내하라고 하죠."
너무나도 간단하고도 간결하게 해결방안을 안겨주는 그의 태도에 허니는 조금 얼떨떨했음. 저택에서 싫다고 말했는데도 그렇게 얼싸안고 보듬고 곁에 맴돌던 사람이 맞나 싶은거지. 지도를 내려보고 무언가를 써내려가던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음. 방 안이 어두워서 잘 못봤는데 허니 등 뒤로 하얀 베개가 눈에 띄자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허니가 등을 먼저 돌렸음.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시종에게 말하는 것은 제가 하지요."
허니가 문고리를 붙잡고 나가려는데 배가 좀 전처럼 크게 넘실거렸음. 아까는 침대에서 누워있었고 그곳은 파도의 영향이 덜 받는데라 괜찮았지만 지금은 서 있는 상태였고 그 방보다는 이 곳이 파도 영향이 큰 방이라 허니의 몸이 크게 흔들리다가 뒤로 픽 넘어지겠지. 우당탕 소리가 방 안에 퍼졌고 허니는 베개를 끌어안은 상태로 딱딱한 바닥이 아닌 그것보단 푹신한 장군의 몸이 제 등 뒤에 닿겠지.
소리가 요란했는지 문 밖으로 괜찮냐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고 장군은 괜찮다고 대꾸하며 허니를 살폈음.
"부인, 괜찮습니까?"
완전히 그의 품 안에 안겨있는 꼴이 된 허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음.
"밤부터 기상이 악화된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군요."
"아..."
"파도도 좀 더 격렬해질테니..."
아카시우스는 허니의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그녀를 일으켜세웠고 제 쪽으로 그녀의 몸을 돌리겠다.
"부인이 원하면 제 침대에서 주무시는게 좋겠군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다칠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장군은...안 주무시나요?"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그가 얄궂게 미소를 짓자 허니는 입술만 삐죽 내밀고는 그의 책상 옆에 놓인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음. 그녀가 침대에 눕는 걸 보고 난 후에 아카시우스는 제 책상에 걸어가 업무를 다시 보겠지. 그리고 얼마안가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음.
평소 비소리를 좋아하는 허니라 그 소리를 들으면 금세 잠 잘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음. 제 방에서 했던 생각들이 또다시 머릿속을 헤집어놓겠지. 만약 여기서 허니가 아카시우스에게 사실대로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가 날 용서해줄까? 날 살려줄까? 티모시를...살려줄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야.
그는 다정한 사람이니깐... 어쩌면 이해해줄지도 몰라. 허니가 이불 끄트머리를 붙잡자 아카시우스가 허니에게 말을 걸겠지. 아직도 안 자고 있냐며. 잠 자는 곳에 예민한거냐며. 그의 말에 허니는 가볍게 말했음. 원래 잠을 잘 못 잔다고. 그가 언제부터 그랬냐며 묻자 허니는 로마에서 오고난 후부터 이렇다는 말을 하고 나서 후회하겠지.
그에게 죄책감을 주려던 말은 아니었으니깐. 허니가 뒤늦게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아카시우스는 허니 곁에 서 있었음.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물었음.
"어떻게 하면 부인이 편히 잠들 수 있을까요."
"...저도 그건..."
"손이라도 잡아 드릴까요? 부인이 잠들 때까지 말입니다."
허니가 머뭇거리자 아카시우스가 말했음. 제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때 악몽을 꾸고 나면 항상 손을 잡아줬다는 말을 해주었겠지.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허니 옆에 누워 그녀의 손을 붙잡았음. 그러면서 제 어릴때 이야기를 해주겠지. 아버지와 반딧불이를 붙잡았던 순간, 동네 친구들과 공차기 놀이를 하다가 발목이 돌아간 순간, 어머니의 요리를 도와줬던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말이야.
허니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작게 미소를 지을 때도 있었고, 죽은 제 부모를 그리워하며 코 끝이 시큰거렸다가 그가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티모시를 떠올리겠지. 머릿속에서 티모시가 자신을 향해 눈물을 떨궜던 그 순간이 떠오르자 허니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음.
"내가 만약에 남자였더라면...공주가 아닌 왕자였더라면 장군은 날 살렸을까요?"
"그런 말씀은 갑자기 왜 하십니까?"
"...밤에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떠오르기 마련이잖아요. 잠이 부족하면 더더욱."
허니의 엉뚱한 말에 아카시우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음.
"황제가 허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황제 입장은 안 궁금합니다. 당신이요. 전 당신 입장이 궁금해요."
"흠...정말 이상한 질문이군요. 당신이 공주가 아니라 왕자라..."
허니는 심장이 쿵쿵 뛰었음. 그가 내뱉는 말이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도 되는 것인지 확정하게 될 테니깐. 이번에도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음.
"죽이지 않을 것 같군요."
허니는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기쁘게 움켜쥘 뻔 했음.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그의 말에 그녀의 손에 힘이 서서히 풀리겠지.
"하지만 당신이 아닌 다른이가 왕자라면 죽이겠습니다."
"...왜요?"
"그는 당신이 아니니깐."
"......."
"당신이 아닌 사람은 날 죽이고싶어하는 마음으로 가득할테니깐."
난 아카시우스가 허니의 손등을 쓰담았고, 허니는 고개를 살짝 들어 반박하듯 말했음. 나도 당신을 죽이고 싶다고. 죽일 수 있다면. 그 말에 아카시우스는 픽 웃고 말겠지. 허니는 기어코 몸을 일으켜 그의 눈을 마주하며 진심이라고 말하자 아카시우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음. 그게 허니의 자존심을 긁겠지. 왜 이 남자는 내가 본인을 미워하지 않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해 하는거야?
아카시우스는 허니의 표정을 읽었는지 조금 더 몸을 편히 침대 위에 눕히며 말하겠다.
"만약 그대가 날 정녕 죽여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건 마지못해 하는 거겠죠."
"당신은 내 나라를 멸망시켰어요."
"압니다. 제가 증오스러우시겠죠. 미치도록 혐오스러울테고."
"........"
"그렇다면 부인은 제가 당신에게 돌아간 순간에 눈물이 아닌 칼을 들고 반겨야했습니다."
"좀 더 확실한 때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 다른이들은 다 자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자들은 우리 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구요."
아카시우스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허니의 손을 제 목 부근에 가져다 댔음. 그리고 허니에게 친히 알려주겠지. 이 움푹 패인 부분을 꾹 누르며 숨통이 막혀 질실사를 하게 될 거라면서. 제 엄지 손가락이 그의 목 안으로 쑥 들어가자 허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뒤로 뺐음. 그녀의 행동에 아카시우스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허니를 바라보겠지. 그리고 자신의 말이 옳다는 듯 눈썹을 들썩이다 말하겠다.
"내가 티모시를 살려 놓는다면 부인이 내 숨통을 틀어막게 할 일은 없겠죠."
"그건,"
"부인께서는 정이 많으십니다. 제 조국보다 그 아이의 안위를 더 생각하는걸 보니."
"......."
"그 정으로 절 쉬이 미워할 수도 없으시니...어찌보면 마음이 여린 것 같기도 하군요."
"절 욕하시는 겁니까?"
"그럴리가."
그는 허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녀의 어깨 쪽에 손을 뻗었음. 왜 대뜸 내 어깨를 붙잡는 걸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그녀의 옷을 끌어올려주는 거겠지. 옷이 흘러내린 줄도 몰랐던 허니는 뒤늦게 옷 매무새를 정리했음. 그런 허니의 모습에 아카시우스가 말하겠지.
"부인은 아실지 모르겠지만...전 아주 많이 참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의 말에 허니의 행동이 멈춰졌음.
"부인은 아름답습니다. 과할만큼."
허니가 천천히 아카시우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이미 허니를 등진 채 침대 위에 누워 잘 준비를 하고 있었음. 부인과 수다를 떨다보니 피곤해졌다며.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하고 자는게 좋겠다면서. 허니는 마른 침을 삼키며 너른 그의 등판을 바라보며 옆으로 누웠음. 허니는 두 팔로 제 허리를 끌어안고 웅크리듯 잠을 자려고 노력해봤지만 딱히 소용이 없었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카시우스의 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겠지. 이보세요, 장군. 허니의 낮은 목소리에 장군은 대꾸없이 몸만 허니 쪽으로 빙글 돌아 누웠음. 진작에 적응된 어둠 속에서 둘은 서로의 얼굴만 또렷한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허니가 말없이 제 얼굴 옆으로 손바닥을 내보이자 장군도 말없이 그 위로 제 손을 포개어 올렸음.
"보세요. 부인은 날 싫어하지 않습니다."
아카시우스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음.
"...그렇다고 그대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허니가 작은 반항을 하듯 대꾸하자 아카시우스는 붙잡은 손을 제 가슴팍으로 끌어당겼고 허니 몸도 살짝 끌려가겠지. 미소를 머금으며 눈을 곤히 감고있는 그를 보니 허니는 왠지 울고싶어졌음. 왜냐하면 정말로 그의 말이 사실이 되었으니깐. 허니는 그가 전혀 밉지 않았음. 그가 처음으로 제 부탁을 들어준 순간부터 지금까지 허니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음. 미워할 수도 없었지. 하지만 그를 좋아하게 될 마음 따윈 없었음.
이 파멸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겠음. 이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허니는 반역자가 되는 건데. 허니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아카시우스의 숨소리를 따라 쉬며 잠을 자려고 노력했음. 그리고 허니는 정말로 잠에 빠져들었겠지.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말이야.
허니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아카시우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 여전히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로 말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부인."
담백한 아침인사와 함께 흐트러진 제 머리칼을 넘겨주는 그 손길. 허니는 그 손길 때문에 눈물 한 방울을 뚝 흘렸음. 그러자 그의 얼굴 위로 미소는 사라지고 표정은 심각해지겠지. 그가 머리칼을 넘기던 손을 거두려고 했지만 허니가 그 손을 붙잡았음. 그녀의 뺨 위로 그의 온기가 머물겠지.
"악몽을 꾼 것 같아요."
"...꿈일 뿐입니다, 부인."
"알아요. 그냥...그냥 잠깐만 이렇게 있어요."
아카시우스는 조금 더, 천천히 허니 곁으로 다가갔고 섬세한 도자기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허니를 제 품 안에 끌어안고 토닥였음. 허니는 그의 품 안에 안겨 눈물 몇 방울을 조금 더 흘렸겠지. 허니는 인정해야만 했음. 자신은 반역자가 되었다는 것을. 이 다정한 파멸자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눈물로 회개하듯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음.
페드로너붕붕
약티모시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