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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00:48
안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나 위무선 사이에두고 같이 놀았지
사춘기 때 크게 싸운 뒤로는
십대 때부터는 학당에서 아는 척도 안 하고 서로 무시하면서 지내온 애들인데

재정 기울어가는 황실의 둘째 아들인 남망기가
황제보다 재물 많은 무역계 큰손 운몽강씨 강만음한테
팔려 가듯이 장가들면
둘은 결혼 준비하면서도 어른들 앞에서야 예의상 빈말만 하고
둘만 있으면 한마디도 안 했을 게 뻔함.

혼례 당일에도 붉은 혼례복 맞춰 입고 맞절 하면서도, 서로 눈이 마주쳐도 무표정에 침묵으로 일관했을 거 같다.

남망기는 원체 말이 없고 분위기 푸는 거 못 하는 성격이라 그냥 암말 안 한건데
강만음은 남망기가 자기랑 결혼하는 거 자존심 상해한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꿍해있을 거 같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은 아니거든? 하면서.

남망기도 둘째 황자라 황위엔 관심 없고(형장이 너무 갓벽한 황태자라 오히려 든든하고 좋았을 듯)
강만음도 누이가 소종주 자리에 앉아서 상회 운영에도 관여 많이 하고 있어서 좀 부담 없는 포지션이었으면 좋겠다.

남망기는 종친들이 정치적 계산으로 정해준 혼사 그냥 받아들인 거고, 강만음은 너무 독립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황가에 시집가면 독립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거 땜에 받아들였을 듯. 원래는 결혼 맘 없었을 거 같다.

둘이 황궁에서 결혼식 올리고 꽃가마 타고 신혼집으로 향하는데, 그 가마 안에서 남망기가 처음으로 말 꺼냈을 거 같다.


“..이마.”
“뭐?”
“꽃잎 붙었어.”

강만음이 괜히 쪽팔려서 이마 만지작대면서 꽃잎 떼려는데 잘 안 떼지겠지. 거대한 가채 붙여서 머리장식 해둔 거 사이에 끼어 있었을 거다. 허둥지둥 대면서 강만음이 지도 모르게 짜증내니까 남망기가 한 마디 더 했겠다.

“아 씨, 뭐야 짜증나게.”
“.. 머리를 풀어야 할 거 같은데.”
“그걸 누가 모르냐? 혼자서는 안 풀리니까 그렇지. 이거 원래 누가 내려줘야 하는 거야.”

강만음이 별 생각 없이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강만음의 말을 들은 남망기의 귀가 빨개지더니 시선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겠지. 한 박자 늦게 강만음도 얼굴 붉히고 큼큼 하고 헛기침하고 말 거 같다.

황궁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두 사람의 신혼집에 도착해서는 운몽강씨 본가에서 나온 시중들도 돌려보내고 둘만 집에 남는데, 둘다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를 거 같다.





강만음이 애써 남망기 무시하고 안방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머리도 내리려는데, 죽어도 혼자서는 못 풀게 돼있어서 진짜 남망기한테 부탁해야하나 아찔해 하겠다. 그때 남망기가 노크하고 강만음이 잠깐 고민하다가 들어오라고 하면 남망기 어느새 붉은 혼례복은 벗어던지고 다시 본래의 하얀 옷으로 환복했겠지.

혼자 머리 내리려고 진땀 빼고 있는 강만음 잠깐 보다가 쭈뼛댔다가 결심한듯 다가오겠다.

“그.. ”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안 거는 것도 아닌 말을 하고는 조심스레 강만음 머리 장식 풀어주는데 강만음은 답답했던 머리 풀려서 개운함에 살짝 웃을 거 같다.

“이제 살겠네.”
“…”
“야 나 옷도 좀 풀어줘.”

그러면 남망기가 시선은 옆으로 돌린 채로 강만음 옷 고름도 풀어주겠다. 강만음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 돼서 살짝 숨 가빠질듯.


“강만음..”
“어.”
“난 이제 잘 시간이 돼서.”
“어.”
“… 밤인사 하러 온 거였어.”


남망기가 그러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가면 강만음 그 말에 대답할 타이밍 놓쳐서 약간 얼빠진 채로 조금 더 침대에 앉아있다가 씻으러 가겠지.


둘다 늦게까지 잠 못 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