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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23:17



함정이다.
 

이단은 빈 서랍을 보고 피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월리, 파일은 없어."

-?

"파일이 없어."

 

 

젠장할! 경비가 두 명이다.

이단은 투사장치가 오작동하는 것을 보곤 급히 몸을 돌렸다. 벤지가 뻣뻣하게 질린 얼굴로 뒤따랐다. 둘은 눈빛을 교환하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버튼 누를까?

 

월리가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단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반드시 '수호천사'가 나타나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IMF가 통계를 내본 바로는, 도움요청기는 눌렀을 때 90퍼센트의 확률로 진동하며 요청이 수락되었음을 알렸다. 나머지 10퍼센트의 이유나 기준은 알 수 없다. 

한번 '수호천사'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해당 미션이 마무리될 때까지 다른 미션에 대해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이단은 세계 각국에서 언제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르는 IMF 요원들을 생각했다. 이번이 첫 제대로 된 현장 임무인 벤지도.

 

이 정도쯤이야 자신은 숱하게 겪었다.

 

 

"아니, 일단 기다려봐. 벤지는 괜찮아?" 이단이 계단을 날듯이 뛰어내려가며 물었다.

-네 걱정이나 해. 너 일부러 오른쪽으로 간 거지? 그쪽이 더 까다로운 거 알면서...!

 

 

그렇다고 벤지를 이쪽으로 보낼 수는 없잖아.

 

이단은 끝없이 지하로 이어진 길을 따라 뛰었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달리다가 지상으로 나오고, 경비병들 사이까지 무사히 빠져나오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는 태연하게 가짜 콧수염을 떼어내고 군복을 뒤집어 입었다. 순식간에 군 장교의 모습이 지워졌다. 안경을 쓰고 투어 팜플렛을 들자 러시아 장교는 온데간데 없고 후줄근한 여행객만이 길을 거닐고 있었다. 이 정도면 무난하다.




 

빈손으로 본부로 복귀하려던 차, 이단의 눈에 누군가가 띄었다. 궁전 안에서 자신을 스쳐지나갔던, 서류 가방을 든 남자.

 

본능적으로 수상쩍은 냄새를 감지한 이단은 곧바로 그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저 남자와 코발트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직감이 머릿속에 경고음처럼 작게 울려댔다. 저놈이야, 저놈이야, 저놈이야.

시간만 주어졌다면, 언제나와 같이 이단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크렘린 궁전이 무너지기 시작하지만 않았더라면.

 


 

-......

 

 

월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단은 그가 '그 버튼'을 눌렀음을 알아차렸다. 그건 본능적인 거였다. 주변 공기가 날카롭게 곤두서면서도 정작 스스로에게는 보호막 하나가 씌워진 것 같은 기묘한 안정감.

익숙해지면 거기에 죽을 때까지 중독될 것 같아서, 이단은 자신을 감싸는 기운에 녹아내리면서도 한편으론 몸서리를 쳤다.


 

그 안정감에 정신이 팔린 탓일까. 이단은 답지 않게 몇 초가 흘러서야 후속 폭발들을 알아차리곤 조금 뒤늦게 궁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단은 이미 자신이 늦었음을 알았다.


 

지하 가스관 폭발이 점점 가까워지고. 그가 달리는 속도보다 빠르게,

 

30미터.

 

10미터.

 

5미터.

 

그리고ㅡ




 

 

 

 

 

 

[.]


 

충격의 여파로 튕겨나가며, 이단은 귓가에서 어떤 여자의 탄식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



 

 

 

이단은 병원에서 다시 눈을 떴다. 머리가 웅웅 울렸고 시야가 흐릿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무의미한 소음으로 귓바퀴에 튕겨져나갔다. 모든 게 어지러웠다. 그는 느릿하게 자신이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어렴풋이 떠올려보았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군.

 

어지럽기만 한 게 다행이다그는 작게 숨을 토해내며 손에 연결된 링거 줄을 따라 느릿느릿 시선을 옮겼다. . . . 다리. 다행히 다 제대로 달려있는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이다.

 

수호천사가 굽어살피기라도 했나 보지, 그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쓰러지면서 이어피스가 떨어졌는지 쿼터마스터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양손에 쇠고랑을 차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는 웃을 수 없었다. 오른손과 왼손이 모두 침대의 철제 프레임에 각각 수갑으로 매여 있었다.

이단은 조금 당황한 채로 눈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러시아 요원이 다가와 위협을 할 때는 약간의 황당함까지 느꼈다. 그 요원은 크렘린 궁 폭파 지시를 내려달라는 음성이 담긴 녹음기를 손에 쥐고 흔들며 그에게 으르렁댔다. 그 지시를 요청하는 대상이 이단 헌트임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모양새였는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이단은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벅였다.

 

이번 미션에서 그가 걸쳤던, 러시아 장교복과 일반 점퍼를 오가는 리버시블 자켓을 침상 위에 던지면서, 요원은 그를 '팀 리더'라고 부르며 이죽였다.


 

글쎄, 팀 리더는 맞는데 그 팀이 그 팀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눈치를 보아하니 자신의 자켓에서 저 녹음기가 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크렘린 궁 폭파 주범이라고 생각하나보지.

누군지는 몰라도 제대로 함정을 팠다. 이단은 속으로 끙,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머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것이, 뇌진탕이 분명했다.

 

 

 

 

 

그는 러시아 요원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 빠르게 수갑을 풀고 창문 밖으로 몸을 피했지만, 이내 갈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건물은 너무 높았고, 난간을 잡고 파쿠르로 내려가기에도 마땅찮았다. 그나마 몸을 던질 곳이라곤 저 아래 쌓인 쓰레기봉투들 정도밖에 없었는데, 쿠션 역할을 하기엔 아무래도 조악했다. 내가 왜 창문으로 도망쳤을까. 이단은 자신의 상태가 아직 정상이 아님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러시아 요원이 느긋하게 담뱃불을 붙이며 말했다.

 

"아까만 해도 좋은 생각 같았는데." 이단이 동조했다.



 

그는 독 안에 든 쥐였다. 러시아 요원은 약한 웃음기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았다.

 

떨어져서 팔다리 한두 개쯤 부러진 채로 체포되느니 멀쩡하게 제 발로 잡히는 게 그나마 나으리라. 이단은 내키지 않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천천히 요원을 향해 창틀을 따라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

 

 



 
 

[차 위로 떨어져.]

 

전깃줄을 타고 내려가 트럭 위로 안착하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환상처럼 스치고, 눈 한 번 깜박할 새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귓가에 누군가의 속삭임이 잔상처럼 맴돌았다. 

 

 

링거에 마약성 약물이 있었나?

 

이단은 어리둥절한 채로 우뚝 멈춰섰다.

그 정보가 시각적으로 처리되었는지 청각적으로 처리되었는지조차 이단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만 청각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는데, 왜냐하면 환상은 너무 빠르게 사라졌고, 여성의 음성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그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어쩌면 '들은' 게 아니라, 차 위로 떨어지라는 글자를 '' 것 같기도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단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운전석은 비어있었다.

하지만 트럭은 움직였다.

 

무언가가 그를 재촉하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수호천사인가? 그가 기절해있는 동안 내내 함께했다고? 이단은 눈을 조금 찡그렸다. IMF의 기록상 수호천사가 한 번에 이토록 긴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던가?

 

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수호천사는 현장요원의 안위를 수호한다. 이단이 안전한 곳으로 향하지 못했으므로, ‘수호천사의 기준으로 미션은 아직 종결되지 않은 것이다.

한 번 눈치를 채고 나자 아까는 왜 몰랐는지 모를 정도로 명확했다. 수호를 받는 중의 요원만이 느낄 수 있는 팽팽한 공기. 한껏 예민해진 채로 확장된 감각. 안정된 기분. 누군가가 유심히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이단과 러시아 요원이 눈을 마주쳤다. 설마. 그 요원이 긴가민가하는 듯했다.

 
 

설마가 사람 잡지.

이단은 뒤죽박죽인 머리로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훈련받은 대로 행동했다. 손은 자동적으로 벨트를 풀고 있었고, 정신을 차린 순간 이단은 이미 전깃줄을 이용하여 트럭 위에 무사히 안착한 뒤였다. 금방 굴러떨어지긴 했지만.

 

저기 위에서, 러시아 요원은 한쪽 손에 담배를 든 채로 기가 차다는 듯이 그를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자기가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해할 만했다. 이단은 멍하니 그를 마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빨리 몸을 피해야 했다.



 

 

이런, 운전석을 한번 살펴보고 싶었는데.


 

이단은 약간의 아까움을 느끼며 숙련된 솜씨로 달아났다. 빨랫줄에서 슬쩍 옷을 훔쳐 입고 후드를 눌러쓴 채 어느 정도 멀어지자, 언제나 그래왔듯이 축복의 기운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것만큼 그가 현재 안전지대에 들어섰다는 반증도 없었다.

이단은 수호천사의 눈길이 거둬짐으로써 찾아오는 허한 기분을 떨쳐내려 고개를 털었다. 도움만을 주기 위해 나타나는, 정체도 모르는 이 존재에게 어쩔 수 없이 중독되면서도, 그가 자신을 의존적으로 바꾸어놓을 것만 같아 반감이 들었다.

 

 

이단은 마른 세수를 하곤 전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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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20 82DE 요원 구조 바란다.”

 

접선장소 A113.
























너붕붕 없는 너붕붕무순.. 다들 알겠지만 미임파4 배경이조


이단너붕붕?
탐찌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