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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2:08
공포영화, 게임, 좀비, 고어, 귀신, 괴물 등등 호러물에 대한 에세이임 할로윈 분위기 내려고 읽는 중인데 흥미로워서 가져옴
전형적인 여자 귀신의 모습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우리는 대체 누구를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 『처녀귀신: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귀신의 전형이 처녀귀신이라는 것은 곧 '처녀'야말로 한국사회의 약자, 억압받은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 여자 귀신을 원귀로 상상했다는 것은 현실의 여성들도 풀어 내지 못한 한과 응어리를 귀신이 되어서도 간직한 채 살았음을 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은 오직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랑과 같이 한국 귀신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처녀귀신은 어린 여성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약자이자 억압받는 역할을 도맡아왔음을 보여준다. 죽어서도 관직에 오르거나 집을 지키고 가정을 수호하는 남자 귀신들과는 달리, 처녀귀신들은 권력을 가진 자의 앞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원한이 풀리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복수에 나선 처녀귀신은 권력을 가진 사대부 남성의 능력을 강조하고 그들의 사회적 진출을 돕는 도구로 남는다. 직접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도 권위를 가진 남성에게 해원을 부탁한 것은 그들이 그 당시의 유교 질서를 내면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처녀귀신은 그 당시 여성들이 두려워 떨며 지키고자 했던 '정절'에 대한 누명을 쓰곤 한다. 그들은 죽어 귀신이 된 후에도 현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남성들에게 복수를 위임하고, 누명을 벗겨달라고 부탁한다. 가해자를 처벌한 남성 관리들은 귀신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줌으로써 그들을 현실에서 완전히 추방하며, 불안정한 현실을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인정받는다.
여성의 한과 억압을 보여주는 아랑 설화는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와 여러 콘텐츠로 변용되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지금까지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아랑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비의 한’에서부터 〈아랑사또전〉까지의 변화는 우리가 어떻게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떠 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랑 설화는 잊히고 사라져야 할 민담이 아니라 기억되고 변용 되어서 우리 곁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야기다.
귀신을 목격한 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귀신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잔혹하다. 그것은 귀신의 음성이 사후 세계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귀신이란 결국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이 만들어낸 가학적 증거물이라는 확인에서 비롯된다. 귀신에 대한 공포는 결국은 모순 투성이의 잔인한 현실을 확인하는 데서 비롯된다.
귀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곧 현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귀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곧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씁쓸함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귀신은 거울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차마 주목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의 일부분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여자가 죽어 귀신이 되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건 예상했어도 결국 그 스토리가 남자의 능력인정으로 이어지는 결말이었다는 거까지는 생각 못해봤어서 놀랐음
그래도 최근엔 귀신소재로 약자들간의 연대를 다루는 콘텐츠들도 나온다고 하더라
비묺 소@름이 돋@는다
전형적인 여자 귀신의 모습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우리는 대체 누구를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 『처녀귀신: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귀신의 전형이 처녀귀신이라는 것은 곧 '처녀'야말로 한국사회의 약자, 억압받은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 여자 귀신을 원귀로 상상했다는 것은 현실의 여성들도 풀어 내지 못한 한과 응어리를 귀신이 되어서도 간직한 채 살았음을 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은 오직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랑과 같이 한국 귀신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처녀귀신은 어린 여성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약자이자 억압받는 역할을 도맡아왔음을 보여준다. 죽어서도 관직에 오르거나 집을 지키고 가정을 수호하는 남자 귀신들과는 달리, 처녀귀신들은 권력을 가진 자의 앞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원한이 풀리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복수에 나선 처녀귀신은 권력을 가진 사대부 남성의 능력을 강조하고 그들의 사회적 진출을 돕는 도구로 남는다. 직접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도 권위를 가진 남성에게 해원을 부탁한 것은 그들이 그 당시의 유교 질서를 내면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처녀귀신은 그 당시 여성들이 두려워 떨며 지키고자 했던 '정절'에 대한 누명을 쓰곤 한다. 그들은 죽어 귀신이 된 후에도 현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남성들에게 복수를 위임하고, 누명을 벗겨달라고 부탁한다. 가해자를 처벌한 남성 관리들은 귀신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줌으로써 그들을 현실에서 완전히 추방하며, 불안정한 현실을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인정받는다.
여성의 한과 억압을 보여주는 아랑 설화는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와 여러 콘텐츠로 변용되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지금까지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아랑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비의 한’에서부터 〈아랑사또전〉까지의 변화는 우리가 어떻게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떠 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랑 설화는 잊히고 사라져야 할 민담이 아니라 기억되고 변용 되어서 우리 곁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야기다.
귀신을 목격한 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귀신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잔혹하다. 그것은 귀신의 음성이 사후 세계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귀신이란 결국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이 만들어낸 가학적 증거물이라는 확인에서 비롯된다. 귀신에 대한 공포는 결국은 모순 투성이의 잔인한 현실을 확인하는 데서 비롯된다.
귀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곧 현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귀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곧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씁쓸함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귀신은 거울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차마 주목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의 일부분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여자가 죽어 귀신이 되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건 예상했어도 결국 그 스토리가 남자의 능력인정으로 이어지는 결말이었다는 거까지는 생각 못해봤어서 놀랐음
그래도 최근엔 귀신소재로 약자들간의 연대를 다루는 콘텐츠들도 나온다고 하더라
비묺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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