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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20:13
노부는 고민이 하나 있었어.

생활에 대한 건 전혀 아니었어. 생활은 노부가 여태껏 누려본 것 중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으니까. 처음으로 케이타와 대화한 날, 케이타는 노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어. 처음엔 케이타가 공원 바닥에 저를 버리고 가지 않을까 솔직히 불안하고 걱정됐던 노부도 곧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깥 냄새에 정신이 팔렸지. 멈춰서서 희한한 잎을 가진 식물의 냄새를 킁킁 맡기도 하고, 흙바닥을 앞발로 파 보기도 했어. 그 모습을 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케이타는 목줄을 세게 움켜쥐고 앞으로 뛰쳐나갔어.

“달리기 시합, 시작!”

케이타는 외치며 뛰었어.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합은 노부의 승이었지. 보폭이 크니까 케이타가 서너 번 걸음을 옮길 동안 노부는 한 번만 뛰어도 됐어. 케이타가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는 동안 노부도 신나서 따라 뛰며 컹컹 짖었지만 노부가 조금이라도 지치기 전에 케이타는 제자리에 멈춰서서 무릎을 짚고 한참이나 숨을 골라야 했고. 노부는 헉헉대는 케이타 옆에서 잠자코 기다렸어.

“더는, 못, 뛰겠, 어요, 어휴!”

케이타가 숨 차 하면서 내뱉었어. 노부는 온 길을 돌아보곤 슬쩍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지. 채 500미터도 뛰어오지 않았으니까. 몰래 웃는다고 웃은 건데 케이타 눈이 커지더니 노부를 아프지 않게 찰싹 때렸어.

“지금 웃어요? 와, 진짜 너무하다. 놀리지 마요, 회사원 체력이 다 그렇지!”

억울하다는 듯 말하며 걷는 케이타의 뒤를 따르며 노부는 내내 웃었어. 케이타는 산책이 끝나고 옷도 사 줬지. 옷가게 점원이 까무러치려 해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꽤나 불안했지만, 케이타가 곧 나와서 웃으면서 옷이 든 종이가방을 흔들어 보여줬을 때는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어. 집에 와서 옷을 입어 봤을 때는 잘 어울린다며 케이타가 손뼉을 짝짝짝 쳐 줬지. 물론 그 다음에는,

“이리 와서 앉아 봐요.”

조금 무서웠지만.

“왜 자꾸 밥을 안 먹는 거예요?”

케이타의 추궁에 노부는 먹을 자격이 없어서 먹으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어. 들을수록 케이타의 표정이 찡그려졌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내가 주는 밥은 다 먹어도 되는 밥이에요. 먹을 자격 있는 밥이에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 노부는 혼란스러움에 눈을 크게 뜨고 케이타를 보았어. 케이타는 그런 노부와 눈이 마주치자 말했어.

“...그래도 먹을 자격 없게 느껴지는 거죠?”

“네.”

“그러면, 가사일을 좀 도와줄래요? 설거지라든지 빨래라든지. 그러면 밥 먹을 자격은 확실히 생기잖아요.”

노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 지금까지 가사일은 한 적 없지만 주인님이, 아니 케이타가 원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어. 제게도 쓸모가 생긴다는 게 기뻤던 노부는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어. 그러자 케이타는 손사래를 쳤어.

“내가 고마워야죠! 노부가 나 도와주는 건데.”

속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부는 별 말을 않았어. 그러자 케이타는 노부에게 집 비밀번호와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가르쳐 주었지. 집에만 있기 심심하면 언제든 나갔다 오라고 하면서.

덕분에 노부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풍족했어. 노부가 인간인 척 섞여 살아보려고 했던 적이 있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케이타는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내라며 아예 노부 손에 카드를 들려줬어. 그래서 노부는 집에 있을 때는 서점에서 사온 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거나, 서툴게나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지. 그러다 답답해지면 옷을 껴입고 밖에 나가서 아파트 단지 안을 빙 돌아보기도 하고, 큰길가로 나가 가게 구경을 하기도 했어. 늘 케이지에 갇혀서 하루 두 번 생리 현상 처리를 위해 짧게 나갔다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없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생활이었어. 느긋하고 편안한 삶에도 노부는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지. 그래, 생활이 문제가 아니었어. 고민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어. 문제는 그게 아니라,

케이타는 그냥 늑대였을 때의 제가 더 좋은 것 같아서.

아직 인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 케이타는 곧잘 늑대씨 늑대씨 하면서 저를 챙겼어. 웃으며 재잘재잘 제게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주기도 하고, 제게 다가와 쓱쓱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인간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 그게 갑자기 뚝 멈췄어. 인간화한 이후로는 거의 가까이 오지도 않아. 늑대 모습일 때가 좋았나, 내가 사람이기도 하다는 게 싫은가, 사실 수인이 아니라 동물을 원하나…고민이 많아졌지. 어떻게 생각해도 제 인간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싫어진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노부는 지금이라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케이타가 저를 볼 수 있을 때는 되도록 늑대 모습으로 지냈어. 물론, 쓰다듬어 주는 게 좋았어서 그런 건 아냐. 그건 절대 아니고, 그냥.

아냐, 사실 그게 맞아. 그래, 솔직히 쓰다듬어 주는 게 너무 좋아. 안아주고 예쁘다 해 주는 게 너무 좋아. 그런데 더는 해 주지 않아서 속상해. 저를 아끼지 않게 된 것 같아서 속상해. 이렇게 지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더 바라면 안 된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봐, 지금도 케이타가 올 때가 다 되었으니 얼른 옷을 벗어 개어두고 늑대로 변해서 기다리고 있잖아. 집에 들어온 케이타가 인간 모습의 저를 보고 놀라지 않도록. 하지만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는걸.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노부는 그렇게 생각하며 엎드려 현관을 쳐다봤어. 저 멀리 복도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희미한 소리를 들은 노부의 귀가 쫑긋 움직였어. 곧 발걸음 소리가 들렸는데 어째 굉장히 불규칙적이야. 어디 아픈가, 노부는 걱정하며 현관 가까이 다가갔어. 곧 띠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어.

“우리이, 늑대씨이!”

아, 취했구나. 훅 끼쳐오는 술냄새에 노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어. 케이타가 무서운 게 아니라, 술 취한 전 주인의 기억이 떠올라서. 하지만 이건 케이타였어. 제게 무슨 짓을 해도 제 주인일 거라 다짐한 사람이었지. 그래서 노부는 케이타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내던지고 제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데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마주봤어. 그런데 걷어차거나 심하게 때리는 등 험하게 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케이타는 노부 앞에 털썩 주저앉더니 양 손을 뻗어 노부의 커다란 늑대 얼굴을 덥석 쥐었어.

“아우으으, 왜 이렇게 귀여워어어?”

앓는 소리를 내며 빤히 들여다보는 케이타의 손에 노부의 얼굴이 찌부가 되었어. 노부는 당황해서 케이타와 눈을 마주쳤어. 케이타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지.

“이렇게 큰데 귀여워어…너무 예뻐, 히히…”

케이타는 노부의 털을 마구 헝클어뜨렸어. 꼬리가 막 흔들리는 것도 모르고 노부는 그저 좋아서 눈을 사르르 감았어.

“어떻게 눈, 코, 입이 다 이렇게 예뻐어? 털은 또 마악, 북실거려…자꾸 쓰다듬고 시퍼지잖아…”

노부를 마구 쓰다듬던 케이타는 갑자기 아! 하더니 손을 뗐어.

“근데 안되지이, 이렇게 쓰다듬으면 안된대! 실례되는 거라구우, 인턴쌤이 그랬어, 응.”

케이타는 정말 서글프다는 듯 중얼거렸어. 노부는 그 인턴쌤이 누군지 몰라도 완전히 틀렸다고, 제발 쓰다듬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 하지만 케이타는 우울하게 노부를 한 번 보더니 스르르 엎드렸어. 그러곤 그대로 색색 잠이 들어 버렸지. 노부는 당황해서 케이타를 앞발로 툭툭 건드렸어.

“으응…쓰담…안 돼…”

케이타는 뭐라뭐라 중얼거리더니 몸을 돌려 옆으로 웅크리고 누웠어. 노부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방 안으로 들어가 옷을 입고 나왔어. 전에도 이렇게 잠든 케이타를 안아올려 침대에 데려다 준 적이 있었지. 방엔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저와 달리 푹신한 데서 자는 게 익숙한 케이타는 이렇게 잠들고 나면 내일 아침에 온 몸이 쑤실 거야. 제 방 이불을 한번도 쓰지 않았으니 거기 케이타를 올려둘까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성적인 접근처럼 느껴질 것 같았지. 그래서 노부는 이번에도 케이타를 방 침대에 올려주기로 했어. 전에도 안아올리든 뭐하든 깨지 않아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부가 안아올려 추스르자마자 케이타가 눈을 반짝 뜨는 바람에 노부는 당황했어.

“헤헤, 노부다.”

케이타는 헤벌쭉 웃으며 노부를 올려다봤어. 노부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가 놓았어.

“네…죄송합니다.”

“뭐가아?”

“사람 모습이라서요.”

노부는 낮게 중얼거렸어. 부디 케이타가 내일 이런 모습의 저를 봤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길 바라면서. 하지만 케이타는 다시 헤벌쭉 웃었지.

“으응, 아니야, 죄송 안해.”

“네?”

조금 혼란스러운 노부가 반응할 새도 없이 케이타는 손을 뻗어 노부의 볼을 토닥였어.

“나는 좋아. 잘생겨써어.”

아주 흡족하단 듯 케이타는 그렇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잠이 들어 버렸어. 노부는 눈을 크게 떴지만 품 안에서 케이타는 이미 새근새근 자고 있었지. 무슨 정신에 케이타를 침대에 데려다주고 코트를 벗겨 줬는지도 모르겠어. 케이타 방을 얼른 나와서 제 방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륵 주저앉은 노부는 가슴에 손을 올렸지. 가슴이 엄청나게 쿵쾅거리고 얼굴에 열이 올랐어. 아, 이거는, 이거는. 큰일 났어. 노부는 직감했어.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을 누르고 절망이 피어올랐어. 노부는 아랫입술을 꽉 물었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좋아하면 안 되는데.




케이타는 익숙한 두통에 으으으, 신음하며 눈을 떴어. 또 커튼이 열려 있어 강렬한 햇빛에 머리까지 찔리는 것 같았지. 이렇게 자꾸 취하면 안 되는데. 눈을 꿈뻑이며 빛에 적응하려고 하고 있자 어제 제가 노부에게 부린 추태가 다 생각났어. 뭐? 귀여워, 잘생겼어? 죽자, 마치다 케이타. 그냥 죽자. 케이타는 혀를 깨물고 싶은 기분을 누르며 비척비척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어. 물을 따라 마시는데 코트 주머니에서 우웅, 우웅, 핸드폰이 울렸어. 눈을 찌푸리고 또 비척비척 걸어가 전화를 받으려는데 받기 직전에 끊겼어. 휴일 아침부터 업무 전화인가, 싶어 한숨을 쉬고 번호를 보는데 어딘지 익숙했어. 이게 무슨 번호더라, 생각하던 케이타의 눈이 일시에 크게 뜨였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케이타는 전화를 다시 걸었어.

“여보세요, 보호소죠?”

-마치다 케이타 님 맞나요?

“네, 맞는데요,”

-임보 중이신 수인의 입양을 희망하는 분이 나타나셔서 연락 드립니다.

케이타는 가슴이 내려앉았어. 케이타는 흘끗 노부 쪽을 보았어. 어떻게 보내. 이제야 익숙해졌는데 어떻게 이 집에 노부가 없는 생활로 돌아가라고 할 수 있어. 술 취해 들어와서는 마구 쓰다듬고 껴안을 정도로 아끼는데. 내 수인, 내 늑대인데.

-여보세요?

“언제 입양되나요?”

케이타는 힘없이 물었어. 그래, 잊고 있었어. 저는 진짜 가족도, 진짜 주인도 아니었어. 그냥 임보자일 뿐이었지.

-임보자님만 가능하시면 입양 희망자께서는 최대한 빨리 입양 원하십니다.

“최대한 빨리가 언제죠?”

-오늘 저녁 혹시 가능하실까요?

아, 아, 케이타는 숨이 턱 막혔어. 이렇게 빨리 이별을 해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케이타는 노부를 흘끗 보았어. 노부의 커다란 늑대 얼굴은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었지. 인간보다 훨씬 청각이 예민하니까 통화 내용을 다 들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정말 보내기 싫어. 노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 얼른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케이타는 정말 노부를 보내기 싫었어. 조금만 더 데리고 있고 싶었어.

-여보세요?

“아, 네, 여보세요.”

-임보자님, 갑작스럽게 보내게 되어 많이 놀라셨을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좋은 입양자는 앞으로 나타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입양자님의 신원은 확실하고, 대형 육식종 수인과 함께 산 경험이 많은데다 재정적 뒷받침도 충분히 가능한 분이기 때문에 저희도 까다로운 심사 끝에 바로 입양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아…네.”

케이타는 풀이 죽었어. 저는 대형 육식종 수인과 함께 산 경험이 있지도 않고, 재정적 뒷받침에 대해서는…케이타는 적게 버는 편은 아니었어도, 노부가 원하는 걸 모두 해줄 만큼 돈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보내는 게 맞아. 케이타는 마음을 굳게 먹었어.

“그럼 오늘 저녁에 뵙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죠?”



하필이면 그 공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산책을 나갔던 그 공원으로 노부를 데리고 오래. 케이타는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았어. 노부 앞에 무릎을 꿇고 상황을 차근차근 알려주는데 목소리가 자꾸 떨렸어. 노부는 케이타를 빤히 보다가 케이타가 그러니까 이제 나랑은 이별, 더 좋은 주인 만나는 거예요, 알았죠? 하고 말하자 고개를 세차게 저었어.

“가기 싫어요?”

끄덕끄덕.

“그래도 가야지…더 좋은 주인 만날 거예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노부는 케이타를 물끄러미 보았어. 케이타는 자꾸만 메어오는 목에 마른침을 삼켰어. 노부는 한참이나 케이타를 쳐다보다가 결국 포기한 듯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앞발에 고개를 얹었지. 케이타는 그런 노부의 곁에 가서 기대어 앉았어. 노부가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들었어.

“실례인 건 알지만, 오늘만 봐 줘요. 이제…끝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케이타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어. 노부는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케이타에게 기대 왔어. 저녁 때까지 노부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은 채, 케이타는 의미없이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 야속하게도 시간은 갔고, 노부를 데리고 공원으로 갈 시간이 됐다는 알람이 울렸어.

“노부…이제 가야 해요.”

케이타가 우울하게 말했어. 노부는 체념한 듯 서랍장 위에서 목줄을 물고 왔어. 목줄을 채우고 나가서 차에 타는 내내, 그리고 차에 타서 공원을 향해 가는 내내 노부도, 케이타도 조용했어. 공원 근처에 주차하고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노부의 발걸음이 지난번과 달리 느리고 무거웠어. 공원 한가운데 공터에 멈춰서자 오래지 않아 공터 반대편에서 키가 작은 중년 남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지. 저 사람이구나. 케이타는 직감했어.

“안녕하세요, 입양하러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노부의 임보자입니다.”

케이타는 인사하며 남자와 악수했어. 남자는 케이타가 놀랄 정도로 세게 힘을 주어 케이타의 손을 쥐어짰지. 케이타는 이 사람에 대한 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하지만 그건 아마도 이 사람이 노부를 데려가기 때문일 거라고, 노부를 뺏어간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시작부터 이미 마음속에서 시기와 질투가 들끓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케이타는 생각했어. 남자는 무릎을 꿇고 노부를 이곳저곳 살폈어. 그러고는 흡족한 듯 손을 내밀었지. 케이타는 마지못해서 노부의 목줄을 넘겼어. 두꺼운 가죽 줄을 세게 잡으며 남자는 이빨이 다 드러나게 씩 웃었어.

케이타는 제자리에 서서 남자가 노부를 데리고 점점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어. 노부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지. 노부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케이타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어. 남자와 노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 케이타는 터덜터덜 걸어 차로 돌아갔어. 차 문을 닫고 시동을 켜기도 전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지. 케이타는 운전할 수 있기 전 한참을 울어야 했어.

노부를 보내고 일 주일이 지났어. 케이타는 그동안 눈에 띌 정도로 살이 내리고 눈가가 퀭해졌어. 밥을 먹으려고 해도 노부가 밤이면 퇴근한 케이타를 위해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게 떠올랐고, 잠을 자려고 하면 옆방에서 곤히 자고 있어야 할 노부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게 떠오르는 바람에 케이타는 겨우겨우 맡은 일만 기계처럼 끝내는 좀비 같은 상태였어. 하루종일 우울한 표정에 한숨을 달고 다녔지. 이럴 줄 알았으면 노부 사진이라도 더 많이 찍어 놓을걸. 노부와 함께 보내며 충동적으로 찍은 몇 장, 거기다 노부를 보내기 직전에 급하게 찍은 몇 장의 사진이 다였어. 마지막 사진들 속에서는 노부의 표정도 좋지 않았지만 케이타는 그 사진들이나마 닳고 닳도록 들여다봤어. 케이타가 너무 괴로워하자 보다 못한 인턴이 슬며시 다른 수인을 임보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케이타는 고개를 저었어. 안 돼. 다른 수인을 데려온다고 한들 그건 노부가 아닌걸. 노부의 빈 자리는 채울 수 없는걸. 이걸 설명하면 꼴사납게 회사에서 울어 버릴 것만 같아서 케이타는 그저 힘없이 웃으며 고맙다고만 했어.

그럼에도 케이타는 보호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어. 한 번 수인에 대해 관심이 생기자 전부 노부 같아서, 노부가 겪는 일 같아서 자꾸 눈길이 갔어. 거기다가 기사도 그랬어. 수인, 수인 인권, 이런 단어가 제목에 있으면 저절로 클릭하게 돼. 대부분 좋은 뉴스는 아니라 읽으면 기분이 안 좋아질 거란 걸 잘 알면서도 그랬어. 지금도 케이타는, ‘수인 성 착취, 법으로도 제재하지 못하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했어. 퇴근 직전에 이런 글을 읽으면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집에 가게 되겠지만, 그래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클릭하자마자 케이타는 뻣뻣하게 굳었어. 기사가 나오기 전 뜬 사진 속의 남자는 분명히, 분명히 노부를 데려간 그 입양자였어. 눈을 가리는 모자이크를 했지만 이빨이 다 드러나는 그 미소를 케이타가 모를 리가 없었어. 설마, 설마. 케이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내렸어.

수인 성 착취, 법으로도 제재하지 못하다!

요즘 뜨거운 감자인 수인 인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까지 온 걸까요?

최근 시에서 운영하는 수인 보호소 여럿에서 중종 알파 수인들을 골라 짧은 기간 내에 여럿을 입양한 입양자를 수인 인권 보호 단체에서 몰래 조사한 결과,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입양자가 수인들을 입양하여 식사와 물 등 기본적인 생존권을 걸고 성적인 요구를 했다는 건데요, 현행법상 수인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인간 대상으로 성 착취를 막는 법은 수인에게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수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 아니며, 수인의 현저한 반항과 저항이 있었을 경우에 이를 무시하고 성관계를 가진 경우에만 수인 대상 성폭행으로 법적 인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경우엔 물과 음식 등이 걸려 있어 수인들의 직접적인 저항이 없었고, 모두가 중종 알파 수인인데 비해 입양자는 그들보다 약한 오메가 인간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수인들이 유리하다는 이유로 성폭행 판결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공공연한 성 착취가 일어난 것이 분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당한 수인들의 신변 확보도, 압류도 어려워 수인 인권 단체의 원성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입양자를 조사한 수인 인권 단체의 방법이 사적 제재에 가깝다는 의견 역시 있어, 검찰 역시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조사를 한 수인 인권 단체는 큰 소송에 휘말리게 될 전망입니다. 기사 상단 사진의 주인공인 문제의 입양자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수인은 곰 수인 하나, 호랑이 수인 둘, 늑대 수인 하나이며, 모두 알파 남성입니다. 이들을 입양보낸 보호소 측은 빗발치는 연락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늑대 수인. 노부. 케이타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어. 내가 보낸 거야. 내가 노부를 지옥으로 내몬 거야. 어떻게든 돌아오게 해야 해. 어떻게든 노부를 구해 줘야 해.

케이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퇴근하려면 아직 10분 정도 더 있어야 했지만 아랑곳 않고 케이타는 외투를 입었어. 짐도 챙기지 않고 케이타는 성큼성큼 회사를 나갔어. 어떻게든 노부를 데려올 방법을 찾아야 해.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