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4263095
view 1960
2024.09.10 21:20
충분히 덮겠지 세간에서 말하는 남친셔츠 로망을 최고로 실현할 수 있는 이 둘의 덩치차 너무 좋다



여주가 N109구역에 와서 진운과 한참 어울리다가 심야영화까지 크로우 기지에서 사이좋게 감상하는데 영화가 새벽 1시쯤 끝나면 그대로 진운 소유 차나 비행기 타고 돌아갈 계획이었던걸 둘이 나란히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하룻밤을 꼬박 N109구역에서 보내게 된거 보고싶다 낮밤 바뀐게 원래 생활 리듬인 진운보다 여주가 먼저 눈 떠지는데 지금 바로 출발해도 지각은 확정인 시간대겠지 N109구역은 해가 안 뜨니까 바깥은 계속 어두워서 창문 너머 들어오는 햇살에 눈 떠진 것도 아니고 그냥 순전히 몸이 출근시간을 기억하고 일어나라 인간아 늦었다 하고 깨운거임

옆에 붙어서 여주 어깨 감싸안고 잠든 진운의 따끈따끈한 체온과 공기 중에 은은하게 맴돌고 있는 그윽한 향기에 나른하게 눈 뜬 것도 잠시 그 몽롱하고 기분 좋은 잠기운은 시계 확인하자마자 싹 달아났을듯 방금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공간이었던 침대에서 우당탕탕 뛰쳐나온 여주는 바닥을 거의 구르다시피하면서 일단 욕실로 달려갔음 급하게 씻고 전날 아무데나 던져둔 자기 소지품 황급히 챙기는 여주인데 그 소란에도 진운은 여전히 잠들어있을거 같다 평소엔 이런 소음은 물론이고 옆에 누구 기척만 느껴져도 바로 깨는데 여주랑 같이 잠들면서 극히 안정적이고 편안한 수면에 빠져들어서 그렇겠지 그래도 품안에 꼭 맞춘듯 안고 있던 여주가 사라져서 인상 살짝 찡그리긴 했는데 진운 깨우기 싫었던 여주가 그 바쁜 와중에도 자기 체향이 살짝 남은 베개 챙겨서 진운 품에 꾹꾹 우겨넣어준 덕에 안 깰듯

기적적인 속도로 나갈 준비를 마친 여주는 난감한 얼굴로 벗어둔 자기 옷을 봤음 어제 퇴근하고 바로 진운과 합류한 터라 다른 옷을 챙겨올 생각같은건 하지 못했으니 지금 입은 잠옷(여주 건데 진운이랑 하도 같이 어울리다보니 크로우 기지에 잠옷겸 실내복을 가져다뒀음)을 뻔뻔하게 입고 나갈 생각도 해봤지만 카페에서 수건 한 장 두르고 있어도 아무 관심을 안 주는 임천 시민들이야 그렇다쳐도 현장에서 구르는게 일인 헌터 본부에 이 옷을 입고 나갔다간 업무평가가 와장창 깎일거 같았음 설상가상 벗어둔 외출복에서는 집 안팎에서 간식을 다양하게 먹은 탓에 희미한 음식 냄새도 느껴졌음

어쩔 수 없지 좀 칠칠맞고 지저분해보이겠지만 일단 이대로 출근하고 핑계는 나중에 생각할까? 생각하며 외출복을 집어드는데 앞쪽 버클이 죄다 뜯겨나간게 보여서 순간 일시정지되는 여주였음 그것도 잠시 머리에 열이 빡 오른 여주였음 여주가 입고온 옷에서 유난히 빛나고 반짝이는 버클을 슬쩍 떼간 메피스토는 일찌감치 자기 은신처에 숨어서 여주가 부르는 소리(부른다기보다 너 죽었다고 윽박지르는 소리)를 못 들은척 하고 있었음 이젠 진짜 못 입게 된 옷을 둘둘 말고 화풀이겸 소파 구석에 던져버린 여주는 이제 남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는걸 깨달았음 그 방에 있던 진운 옷장을 열어젖힌 여주는 까맣고 검고 껌껌하고 컴컴하고 중간에 붉은색이 좀 보이긴해도 여전히 시커먼 옷들을 잽싸게 뒤진 다음 제일 무난한 셔츠를 하나 챙겨서 꿰어입었음 이젠 정말 튀어나가야했음



그렇게 여주가 회오리바람같은 준비과정을 거쳐 출근하고 나서야 진운이 깼겠지 수면상태에서 벗어나 눈을 깜빡인 진운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품에 있는걸 더 가까이 끌어안다가 멈칫했음 똑같이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워도 여주와는 다른 물체라는건 금방 알겠지 품안에 멀뚱히 있는 베개를 내려다본 진운은 방안을 슥 둘러보고 전자시계도 한 번 본다음 상황을 파악했음 진운이 쓰는 단말기에 반짝이는 알림을 보면 여주가 진운 차도 야무지게 써서 출근했다는 것쯤은 자명했음 무정하긴, 늘 있는 일도 아닌데 하루쯤은 일 안 가도 되지 않나? 들을 사람은 이미 가버린 방에서 혼자 중얼거린 진운은 느릿하게 기지개를 켜고 바로 일어남 여주도 없는데 침대에서 뭉개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들었음 어차피 일어난거 이쪽도 일같은건 빠르게 해치워버리고 오늘 저녁에 또 여주와 놀 생각이 더 크겠지

여주가 들으면 내가 언제 매일 너랑 놀아준댔냐고 모나지 않게 툴툴거릴 생각을 하며 샤워를 마친 진운이 옷장에 가는데 빈 자리가 금방 보일거임 옷이 너무 많아서 하나쯤 없어져도 모를 수준이었겠지만 진운 눈썰미가 좀 좋아야지. 하나 없어진 셔츠와 역시 없어진 자기 품안의 여주를 생각하니 진운은 갑자기 색다른 기분이 들었음 그리고 그런 자신이 본인도 좀 낯설겠지 이 기분은 뭐지? 여주가 자기 옷 하나 입고 나갔다고 쩨쩨한 기분이 들 리가 없고, 이미 출근하러 가버린 여주에게 새삼스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었음 어차피 다시 보러 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종류의 감정이라기엔 이 기분은 좀 달랐음 부정적인게 아니라 긍정적인 쪽이었지

조금 더 생각하던 진운은 한창 조직 일을 하다가 제 머릿속에 끈질지게 자리잡은 생각과 감정의 정체를 퍼뜩 깨달았음 그건 바로 자기 셔츠를 입고 나간 여주가 지금 '남친셔츠' 차림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그 모습을 꼭 보고싶다는 감정이었음 거창하게 풀어놓을 것 없이 그냥 여주가 자기 옷 입은걸 상상하니까 설렌다는게 진운의 상태 요약이었지 허, 하고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뱉자 진운이 한창 다져주고 있던 거래 상대가 흠칫 몸을 떨었음 사정없이 검은 안개같은 에너지로 몇십명을 던지고 날리고 증발시키더니 갑자기 멈춰서는 알 수 없는 반응을 하는 진운은 남들 눈엔 그저 공포스러울 뿐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머릿속으로 아주 말랑말랑한데다 풋풋하면서 달콤한 향이 풍길듯한 즐거운 상상 중이었음 남친셔츠, 남친셔츠라. 그 생각에 또 즐거워진 진운이 대놓고 웃음을 흘리는 동안 상대측 조직원들은 끝이 안 보이는 공포로 속이 뒤집어지고 있을듯 진운이 알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진운은 그날 남은 하루를 계속 남친셔츠 생각을 하며 보냈음 물론 겉으로는 티를 안 내서 그냥 평소같은 크로우 보스 무시무시한 진운답게 자기 일을 빈틈없이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머리 한구석으로는 지금도 여주가 자기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있겠거니, 식사도 제 옷을 입고 하는 중이겠거니 같은 시답잖은 생각을 쭉 했음 여주가 진운과의 관계를 헌터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건 진운도 이미 알고 있는 바였는데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초반과 다르게 진운이 잡히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꽤 많이 들어가있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진운은 여주가 그러는 모습을 꽤 즐기는 편이었음 근데 그런 헌터 동료들이, 진운과 여주가 가깝다는걸 모르는 동료들이 여주가 입은 옷이 바로 그 크로우 보스 진운거라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진운 옷을 입은 여주를 바라볼거라는 생각을 하자 정말로 유쾌해졌음 아무도 그 옷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텐데 여주 혼자 머릿속이 바쁠거란 생각까지 하자 진운은 정말 1초라도 빨리 여주를 보고싶어지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진운이 오늘 저녁 시간도 나한테 써주지 그래, 같이 거래제안인지 뭔지 모를 메시지를 여주한테 보내고 여주도 그러자고 답문자를 보내겠지 진운이 여주한테 능글맞음 아래 약간의 긴장감(거절에 대한)을 숨긴 채로 만남을 제안할 때마다 YES와 NO 중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는 항상 반반 확률이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여주가 바로 오케이할거란 확신이 있었음 여주를 데리러 가는 동안 리무진 뒷자석에서 콧노래가 끊이지 않는 보스 때문에 서준, 서훈만 연애가 좋긴 좋다는 투의 눈빛교환을 하느라 바빴음 드디어 그 여주가 보이자 진운은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자기 셔츠를 확인하고 입꼬리가 평소보다 훨씬 높이 치솟는걸 느꼈음 눈에 익은 까만 셔츠를 입은 여주는 익숙한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폰을 확인하고 가방을 고쳐 메고 있었음 여주 일상 속에 확실하게 자리잡은 자기 흔적을 보자 진운은 굉장히 만족스러워졌음 



여주 픽업하고 같이 돌아오는 내내 진운이 눈에 띄게 즐거워한다는걸 바로 눈치챈 여주가 의심스럽게 캐물었지만 진운은 일부러 이유를 알려주지 않겠지 여주도 캐묻다가 이건 대답을 쉽게 못 듣겠구나 싶어졌는지 일단 진운이 기분 좋은 상태를 즐기자고 맘 먹었음 그 맘먹었다는게 고작해야 좀 비싼 주전부리 다 사달라고 요구하고 다음에 인형뽑기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인형 다 뽑을 때까지 같이 있어주기 같은 거였지만... 그렇게 기지로 돌아오고 여주는 셔츠를 가리키면서 약간 머쓱하게 늦은 양해와 감사인사를 건넸음

"이거 잘 입었어. 말도 없이 빌려가서 미안, 근데 아침에 정말 급했거든."
"상관없어. 맘껏 꺼내 입어."
"...왠지 너다우면서 너답지 않은 말인데."
"흠? 내가 옷 몇 벌 가지고 너한테 대가를 요구할리 없잖아?"
"그런거 말고, 뭔가 또 있어. 수상쩍은 냄새가 나."


여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운을 탐색했음. 숨긴 츄르를 찾는 고양이같은 눈빛에 진운은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일부러 시선을 피했음. 빙빙 돌려 말하는건 진운도 직성에 안 맞으니 그냥 대놓고 '네가 내 옷 입은 모습이 맘에 든다' 고 말하려고 했는데 여주가 이유를 찾아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겠지. 이런저런 대답을 내놓던 여주는(레코드 원하는 거 샀어? 경매에서 좋은거 쓸어왔어? 알았다,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 자연발화해서 세상에서 사라져줬구나? 아, 아닌데 그럼 너는 네 손으로 처리 못한걸 아쉬워했을거 같은데... 이건 취소) 진운의 시선이 자기가 입은 옷에 닿는걸 눈치채고 손바닥을 탁 쳤음


"너 설마... 내가 네 옷 입은게 좋아?"


직접 말해놓고 굉장히 미심쩍다는 말투였음. 진운은 좀 뜸을 들일까, 하다가 그냥 말해버렸음 이 좋은 기분을 누구한테 꼭 말하고 싶었는데 그 상대가 여주 아님 누구겠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지


"그래."
"...진짜? 진짜 그거때문에 기분이 좋다고?"
"그러면 안되나?"
"안된다기보단 말이 안되는데? 그게 뭐가 좋은데?"


진운은 대답하지 않고 저녁으로 준비하던 샐러드만 뒤적였음 이미 드레싱이 고루 묻었지만 사과며 루꼴라같은걸 집게로 들추면서 대답을 미루는 진운 태도에 여주는 진운이 진심이라는걸 확인하겠지 그래도 여전히 여주 입장에서는 이유가 미스테리였음. 진운 주변을 빙빙 돌면서 옆구리를 찔러보기도 하고 등을 툭툭 치기도 하면서 이유를 말하라고 보채는 여주는 날아가던 메피스토를 붙잡아서 검색 기록까지 뒤지기 시작했음 당연히 그럴싸한게 안 나오니까 아예 인터넷에 고민 상담 쳐보는 심정으로 진운이 숨기는 이유를 알아내보려는 여주인데 우연찮은 단어 조합으로 그 이유란걸 발견하고 말겠지


"남이 내 옷 입었을 때, 남이 내 옷 입으면 기분 좋음... 추천 검색어도 봐야겠어. ...뭐지 이거?"


진운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메피스토 검색기능에 집중하느라 고개를 아래로 숙인 여주 머리가 보였음 손에 잡힌 메피스토가 무척 뚱한 얼굴로 진운에게 작게 까악거렸지만 진운도 여주도 그 울음을 무시했음. 여주가 굉장히 의심스럽고 미심쩍은 얼굴로 고개를 들고 진운과 시선을 마주쳤음


"...남친셔츠?"


진운이 말없이 고개를 돌렸음. 명백히 시선을 피하는 그 행동과 뒷편에서도 다 보이도록 미소가 짙게 피어오른 진운 옆얼굴을 눈치챈 여주가 말도 안된다는듯이 소리쳤음


"진짜? 진짜 이거야? 남친셔츠?"
"틀린 말도 아니잖아?"


뻔뻔하게 나오는 진운은 여주가 등허리를 치고 꼬집으면서 뭔 주책이냐고 할 반응을 기다렸음. 그런데 예상외로 여주 입에서 나온게


"우와..."


감탄사? 진운 눈썹이 살짝 올라갔음.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듣자마자 잘생긴 눈썹이 대번에 추락하겠지


"진짜 아저씨같다."


진운 손에서 삐끗한 집게가 그릇을 긁으며 소음을 냈음. 그 소리에 드디어 여주 손에서 풀려난 메피스토가 요란하게 날개짓하며 도망가는 소리가 났음. 그건 그거고 진운은 자기가 들은 말의 충격에 좀 어질어질했음. 진운 반응을 보고 싶었던 여주는 서슴없이 진운과 부엌 조리대 사이의 공간에 끼어들고 진운의 턱 아래서 눈을 반짝였음


"너 되게 충격받은 표정인데?"


진운을 놀릴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그렇듯 정면으로 달려드는 여주를 귀여워할 새도 없이 진운은 눈을 잠시 감으며 콧날을 손으로 쥐었음. 왜 이리 충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타격이 심했음. 진운이 되물었음


"아저씨 같다고?"
"어."
"...왜?"
"아니, 남친셔츠같은건 한 오십년전에나 유행하던거 아니야? 그런걸로 기분 좋아한다니 취향 진짜 구닥... 아니 고전적이다 싶잖아."
"하..."
"아니, 아니, 오해하지마! 나쁘다는건 아니야."


천연덕스럽게 손을 내저은 여주가 여전히 눈을 감고 충격에서 헤매는 진운의 뺨을 톡톡 두들기며 위로했음. 눈을 슬쩍 뜨고 보자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에, 재밌다는 기분을 전혀 숨기지 않고 우쭐한 고양이처럼 입술끝이 말려올라간 여주 얼굴이 보였음. 그 얼굴을 보자 언제나 그랬듯 기분이 조금 좋아지고 만 진운은 이마에 일부러 힘을 주고 여주를 내려다봤음. 맨 처음엔 이런 표정에 좀 쫄기라도 하더니 이제는 완벽하게 면역이 생겼는지 전혀 기죽지 않은 여주가 종알거렸음


"나쁘다는게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게 구식이다 그거지~"
"욕같은데?"
"욕 아니라니까. 우리 진운이 남친 셔츠같은거 좋아할 수도 있지. 음... 생각해보니 너랑 잘 어울리는 취향이야."
"...구체적으로 나랑 어떻게 잘 어울린다는건데?"
"아니 뭐~ 너 레코드 좋아하잖아. 그것도 클래식하고 세월이 느껴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수집품이잖아? 이것도 세월이 느껴진다 그거지. 너랑 어디가 어떻게 어울리냐면..."


여주가 씩 웃으면서 발돋움 했음. 그래도 여전히 엄청난 키차이에 진운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받침대로 사용한 여주가 재밌어 죽겠다는 목소리로 놀렸음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잇대가 잘 어울리네!"


그 말 하고 까르르 웃음이 터진 여주가 웃다가 넘어지는 일 없게끔 허리를 감싸 안은 진운은 한숨과 웃음이 섞인 숨을 작게 내쉬었음. 졸지에 구닥다리 취향을 좋아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지만 여주가 즐겁다는데 뭐 됐나 싶겠지 내심 이 남친셔츠 취향은 대중적으로 잘 먹힐 코드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나처럼 '남친셔츠' 모습을 보고싶어할거다라는 항변이 입안에 맴돌았지만 진운은 여전히 자기몫까지 웃느라 정신없는 여주를 안아서 먼저 밥부터 먹이기로 하겠지. 웃는거 보니 아마 하루종일, 어쩌면 일주일 내내 이걸로 놀릴거 같은데 그러려면 웃을 에너지를 섭취해야하니까 말이야.



왤케 길어짐... 이 다음엔 여주가 진운 취향 놀리느라 진운 바지 가지고 와서 입은 다음에 자 남친바지야 이것도 좋아? 맘에 들어? 하고 깐족거리는거 보고싶다 당연히 셔츠가 허벅지를 다 덮을 정도의 키차이 덩치차이라 바지는 여주 발가락 끝까지 다 덮고도 한참 기장이 남아서 질질 끌리겠지 어린애가 아빠 옷 훔쳐입은 꼴이 따로 없을듯 사실 예전에 여주가 진운 옆에 서 있다가 다리 길이를 눈으로 재고 자기 혼자 골나서 한껏 노려보다가 복싱 스파링할 때 집요하게 다리를 노린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런 기억따위 하나도 안 나는지 진운 놀리기 바쁠듯

네가 내 셔츠 입어서 기분 좋다는 거 하나 말했다가 하루종일 놀림받게 된 진운인데 더 부조리한 일은 저렇게 밑단이 질질 끌리는(그래서 진운의 개비싼 바지에 먼지가 다 묻었지만 그건 둘 중 누구도 신경 안씀) 바지 입고 진운 앞에 알짱거리면서 온 기지를 바짓단으로 닦고 다니는 바보같은 여주 모습인데도 이상하게 흥분이 된다는거겠지 이건 여주가 알면 놀리는걸 넘어서 좀 꺼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진운이 절대 티 안낼듯 이런 진운 마음도 모르고 내친김에 진운 옷장 뒤져서 완벽하게 재단된 수트나 핏이 완벽한 코트같은거 꺼내와서 남친수트 남친코트 남친자켓 같은거 늘어놓으며 진운 앞에서 패션쇼 여는 여주였는데 여주가 자기 옷 입었다는 사실이 시시각각 더 고자극으로 다가와서 진짜 곤혹스러워진 진운일거 같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하고 싶으니까 그냥 하게 두는데 처음엔 놀리기 위해 입은 옷에 점점 관심이 생기니까 진지하게 셔츠 입어보고 이렇게 입으니까 진짜 오버핏이라 내가 바지 안 입어도 아무도 모르겠는데? 같은 소리하면서 진운 셔츠 입고 거울 앞에서 빙글빙글 돌며 자체패션쇼 중인 여주라 진운 진짜 곤혹스러워지는거 보고싶다 치렁치렁 늘어진 밑단이 여주 허벅지, 심하면 거의 무릎 아래 오금까지 다 덮는데 어깨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나니까 거의 진운 옷에 여주가 잘 감싸서 포장된 급이겠지 침대에 앉아서 여주 하는 짓 보던 진운이 다리 사이가 불편해진걸 숨기려고 조용히 일어나서 욕실 가는데 여주가 쫄랑쫄랑 따라가는 것도 보고싶다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조용해졌다가 자리 피하니까 진운이 진짜 기분 안 좋은가 싶어져서 그런건데 이렇게 맘껏 놀리다가 뒤늦게 자기 눈치보는 여주를 진운도 좋아하고 귀여워하긴 하지만 지금은 정말 곤란하겠지. 별 일 아니고 먼저 씻으려고 그래. 넌 너 하던거 맘껏 하면서 놀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욕실에 들어가려는데 옷 다 입고 욕실 가는게 이상해보였던 여주가 내가 다른 방 갈게, 하는건 또 싫어서 그냥 여기 있으라고 하는 진운일듯. 그 반응에 화난건 아니구나 싶어져서 또 다시 천진난만해진 여주가 씻고 나오면 어제 보던 영화 마저 볼래? 하고 웃겠지. 그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마주 웃으면서 그래, 하는 진운이었음

그러고 마무리되는줄 알았는데 진운 소매 살짝 잡은 여주가 욕실로 반쯤 들어간 진운 보면서 눈 접고 웃으면 좋겠다 아깐 내가 그냥 막 놀렸는데, 지금 네 옷 여러개 입고 있으니까 너처럼 고전적인 사람들이 왜 남친셔츠 좋아하는줄 알거 같아. 다시 한 번 빙그르르 돈 여주가 진운 셔츠자락을 드레스처럼 잡아 쭉 펴보면서 웃었음. 너 아닌 다른 사람 옷이면 이 정도로 입는게 재밌지는 않았을거야. 그러니까 네 취향에 자신을 가져! 씩 웃고는 진운을 놔주고 다시 옷장 구경하러 간 여주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욕실 문을 닫은 진운은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서 바닥에 던져두고 일단 물을 크게 틀었음. 물소리가 욕실에 가득 차고 방밖까지 들리는게 확실해지자 피어오른 수증기 사이로 몸을 숨긴 진운이 벽에 기대서 눈을 감겠지

저 아기고양이를 어떡하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희미하게 웃은 진운은 눈에 띄게 ㅂㄱ해서 배꼽근처까지 선 자기것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숨을 뱉었음. 남의 속도 모르고 즐거워하는 저 고양이가 놀라서 도망치지 않게 하려면 당분간은 '이런' 상태를 들키면 안되겠지... 생각하며 진운은 샤워기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흠뻑 맞으며 손을 움직였음 




여주가 아무생각 없이 하는 행동에 흥분해서 여주한테 안 들키게 처리하려는 진운이 보고싶었을 뿐인데...

진운이 아저씨 소리듣는거 게임에서 진운이랑 기능게임 하다가 여주가 무슨 카드 써서 진운 고양이를 판에서 치우면 나오는 대사에 있더라 '냥이야 저 아저씨 말고 나랑 가자~' 하는데 그 때 진운 반응은 아저씨란 단어에 하나도 타격 안 받고 그냥 여주 귀여워하는 대사였던걸로 기억함ㅋㅋㅋㅋㅋ진운이 워낙 진성수컷이라 아저씨 소리해도 타격없을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망상이니까 좀 충격받는게 보고싶었음 여주가 진운 아저씨 취급하는건 그럴 수도 있을거 같은게 둘 나이차이 꽤 나지 않나ㅋㅋㅋㅋㅋㅋ그거 아니어도 그냥 놀리려고 아저씨 소리 할거 같음 스토리에서도 보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