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건은 없고 누구의 음모나 개입도 없이 벽차지독도 없음
그럼 그냥 이상이가 상콤하게 적비성을 이기고 끝났겠지?
그러면 빡친 적비성이 그대로 폐관해버리고 미친듯이 수련하는게 당연한 수순일 거임
적비성이 지는 바람에 금원맹의 기세가 다소 수그러들면서 표면적으로는 조용한 시간이 흘러감

그리고 이상이에게 재도전하러 오는 적비성인데 한 세번쯤 더 졌으면 좋겠다 ㅎㅎ 
그러다가 나중에는 너무 피나게 수련한 적비성이 결국 주화입마에 빠지는 바람에 경맥이 다 끊기면서 비풍백양 8단계 뚫고 폭풍같이 이상이 찾아가는거지






적비성이 개쎄진 것도 있지만
사실 이상이는 무예를 갈고 닦는 것보다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일에 관심이 더 많아서 그동안 실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않았음.
끝내 비풍백양 8단계 뚫은 적비성이 이상이를 꺾었을 때 이상이는 그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거임 원래 적비성처럼 승부 자체에 연연했던 것도 아니라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보단 이 승부가 세력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더 걱정이 되는거임
"적맹주, 네가 나를 이겼다고 사고문 전체와 연결짓지는 마라!"
이상이의 말을 들은 적비성이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었음.
마침내 제 앞에 무릎을 꿇은 이상이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그리도 상쾌할 수 없겠지
그리고 적비성의 미소를 오해한 이상이가 날카롭게 외쳤음
"네맘대로 세상을 어지럽히려 들겠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막을 거다!"
"방금 내 손에 쓰러진 주제에, 그럴 능력은 있고?"
"너...!!!"
"분하다면 힘을 키워서 도전해라. 얼마든지 받아주지."
그 말을 끝으로 적비성이 훌쩍 날아가버리자, 이상이는 충격을 받은 동시에 다소 얼떨떨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그리고 적비성은 정말로 이상이가 찾아오길 기다릴거임
근데 뭐 이상이가 폐관을 한다는 소문도 없고, 햇수가 3년이 지나가도록 오지도 않겠지
적비성은 금원맹이 난동을 부리면 이상이가 바빠져서 수련할 시간도 없을까봐 제가 이겼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도 않은 채로 기다려 주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사실 적비성은 천하제일이 되어 기뻤던 것도 아주 잠시였고,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불행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음
이제는 더 오를 산도 없고, 자나깨나 이상이와 피튀기게 싸우던 순간의 기억과 감각만 생생해져가겠지
하지만 내가 이겼는데, 어째서?
강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일은 이때까지 숱하게 겪어왔는데, 어째서 이상이만은 무참하게 꺾어놓아도 잊을 수가 없는지 모름.




어느날, 불만스러운 가슴을 안고 배회하던 적비성은 그만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거두절미하고 휙하니 달려갔겠지
"적맹주...?!"
오밤중에 갑자기 나타나 다짜고짜 도를 휘두르며 공격해 오는 적비성을 보고 놀란 이상이가 검을 뽑으며 대치했음
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옷이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고속으로 날고 뛰며 순식간에 수십합을 부딪혔음. 
쩡, 하고 쇠끼리 튕기는 소리가 강하게 공기를 찢어버리며 적비성이 훌쩍 물러났음.
오랫동안 참고 누르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마음껏 검을 휘두르자 미칠 듯한 흥분이 끓어올랐음. 그런데 한편으론 이상이의 검이 전과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자 흥분이 분노로 변하면서, 거칠긴 해도 좀체 화를 내는 일은 없는 적비성이 소리를 지르게 만듬
"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화가 난 적비성이 이마에 핏대를 올리며 노호하자, 그제사 발끈한 이상이가 말을 받았음.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슨 짓이냐! 금원맹의 선전포고인가?!"
"그딴 건 상관없다! 나를 이기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상이! 그런데 몇 년 동안이나 허송세월만 보낸 거냐!"
그의 말을 들은 이상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비틀며 말했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널 이기고 싶다고 했던가?"
그의 말을 들은 적비성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음. 순간, 그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사실, 즉 이상이의 마음이 저랑 다름을 처음으로 깨달았음. 마치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음.
그리고 그 사실을 숙고해보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거부감을 일으키며 칼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음.
"그런 쓸모 없는 목숨이라면 지금 당장 죽어버려라!"
쩌렁쩌렁하는 고함 소리를 뒤로 하고 맹렬하게 검풍을 일으키며 찌르는 공격을 이상이는 간신히 쳐내면서 옆으로 피했음.
다시 시작된 싸움은 이전의 결투들과 사뭇 달랐음.
적비성은 이미 이상이가 자신보다 약함을 알고 있었고, 거듭되는 싸움에서 이상이의 강점, 약점, 심지어 버릇까지도 낱낱이 알고 있었음. 그런 사람이 단순한 결투가 아니라 살심을 일으키며 공격해 들어오자 이상이는 온 힘을 다해도 판도가 기울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지.
반 발짝을 도망칠 여유도 없고, 하나를 쳐내면 곧바로 다음이 더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공격이 점점 숨통을 죄어왔음.
무지막지한 쇳소리가 종횡무진으로 튀며 밤의 들판은 더 조용해졌겠지.
그 가운데, 마침내 금속을 긁는 듯 귀가 따가운 소리와 함께 날아오른 소사검이 근처에 있던 고목의 몇 장쯤 되는 높이에 가서 박혔음.
이상이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자 검을 놓친 손이 경련을 일으켰고, 동시에 크게 베인 팔에서 뜨뜻한 피가 뿜어져나왔음.
커다란 도를 비스듬하게 늘어뜨린 적비성이 죽음의 사자처럼 고요하고 신속하게 다가왔음.
허리를 회전시키며, 단숨에 목을 날려버리기 위해 손아귀에 힘을 모으던 적비성의 눈에 무릎을 꿇은 이상이의 모습이 들어왔음.
마지막 순간에도 이상이는 또렷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쓸데없는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
적비성은 도를 머리 뒤로 치켜든 채 움직이지 못했음.
그리 밝지 않은 밤이었기에 희거나 혹은 붉은 선명한 빛깔은 무엇도 보이지 않았지만, 색감이 없는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나며 일순 사람의 마음을 어딘지 모를 심연 안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음.
기쁘다거나, 맛있다거나, 아름답다거나, 그러한 긍정적인 감정들을 별로 느껴본 적 없는 남자의 가슴 속에 인간이 어떤 아름다운 것을 대할때 울리는 것과 흡사한 진동이 일어났음.
그 감정을 구체적으로 파헤쳐볼 주변머리는 없는 머릿속에,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음.
죽이면, 다시는 이 자를 볼 수 없다.
나는 정말로 이상이를 죽이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기고 싶은 건가??
...아니, 하지만... 이미 몇 년 전에 이겼지 않은가?
적비성은 난생 처음으로 괴상한 갈등에 빠져 얼어붙은 채였음.
그리고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 힘껏 앞으로 튀어나온 이상이가 손을 뻗었음.
사력을 다해 내지른 수도에서 뻗어나온 칼날같은 검기가 적비성의 가슴을 후벼팠고, 그의 몸에서 솟은 피가 이상이의 얼굴 위로 뿌려졌음.
이상이는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일어나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섰음. 이마에서는 진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퍼졌음.
그는 어째서 적비성이 한순간 망설였는지 몰랐고, 자신의 행동이 비겁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음.
다만, 마음 한 구석에서 적비성을 죽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있었기에 손이 비껴가서 심장 가까운 곳을 아슬아슬하게 관통했겠지. 
이상이는 이제쯤 적비성이라는 인물을 조금 알 것 같았음. 좀처럼 믿기지는 않는 사실이지만, 사파의 마두인 이 남자에게 딱히 세상을 엎고 싶은 야심은 없고, 그 덕분에 금원맹이 오합지졸로 자잘한 분란만 일으키는 거라는 걸.
다년간 사고문을 다스리며 세상과 인간을 배운 이상이는, 금원맹을 무너뜨려 봐야 또다시 비슷한 악당들이 생겨날 것을 알게 됐음.
어쩌면 적비성 같은 인간이 맹주로 있는 금원맹을 그대로 놔두는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어이가 없게도 최근의 이상이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됐지. 그간 더러운 꼴을 많이 보고 났더니 차라리 순수하게 칼을 들고 덤비는 적비성이 고맙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거임.
칼부림 외엔 대화도 제대로 못해본 사이였지만, 어쩐지 정도 조금 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이번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적비성이 이상이를 노려보았고, 이상이는 간신히 선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음.
요행히 기선을 제압하긴 했지만, 그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어. 
잠시 후 입을 연 이상이가 자포자기한 듯 기운 없는 질문을 던졌음.
"너는, 기어이 나를 죽이는 게 소원인가?"
이상이가 물었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도 자기 맘을 알 수 없게 된 적비성은 묵묵부답으로 노려보기만 했음.
"적맹주. 정말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때, 똑바로 자신을 향하는 이상이의 시선을 보고, 적비성은 언뜻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음.
울분으로 가득 차서 약한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몸부림쳤었지만, 사실은 이상이를 목표로 두고 수련을 거듭할 때야말로 보람차고 행복한 상태였다는 것을.
"......실력을 갈고 닦아라."
그렇게 말하며 더욱 음울하게 가라앉아버린 눈이 집착적으로 이상이를 쏘아보았음.
"더 강해져서, 다시 나와 싸워!"
대답 대신 쿨룩, 하고 이상이가 기침을 하자 피가 울컥 쏟아지며 비린내가 입 안을 가득 채웠음. 그리고 잠시 헐떡이던 이상이가 이내 한숨을 쉬었음.
"정말 못말리겠군..."
더 이상은 서 있을 힘이 없다고 느낀 그가 몇 걸음 옆으로 가서 바위 위에 걸터앉았음.
"좋아. 네 말대로 하지."
이상이의 말이, 언뜻 어둠만 가득해 보이던 적비성의 눈 속에 작은 불꽃을 튕긴 것 같았지만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지.
"그럼 3년 후에 다시 싸우자."
"3년은 너무 길다! 1년으로 해!"
그러자 이상이가 또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음.
"적맹주, 현실적으로 생각해. 네가 보기에 지금의 내가 너를 1년만에 따라잡을 것 같나?"
적비성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혈을 짚어 출혈을 막았음. 그리고 묵직하게 도를 바닥에 박으며 일어나서 고집스럽게 쐐기를 박았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적비성은 이상이가 말을 더 얹을 여지도 주지 않고 훌쩍 날아올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음.
쯧, 하고 혀를 찬 이상이가 기침이 도지는 바람에 허리를 숙이고 괴롭게 캑캑대며 몇 차례 피를 토했음.
하지만 사실은 심장 근처를 관통당한 적비성의 상처가 더 심했음.
"융통성 없기는... 잠시 휴식쯤은 취하게 해줬을 텐데. 어차피 항상 제 집처럼 드나드는 주제에."
이상이는 고개를 저으며 도리가 없겠다고 생각했음.
하긴 그의 말대로, 요 몇년간 자신이 수련을 도외시한 건 사실이었음.
금원맹만 조용히 있어 준다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한동안은 수련에 매진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



그렇게 약속도 받고 돌아왔지만, 돌아온 적비성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져서 수련도 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게 됨.
이상이의 말대로, 그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1년만에 자신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음. 하지만 대체 또 얼마나 기다리란 말인가?
그런데 마음 속에 일어난 이 불충족된 불길은 이상이가 저를 이기면 사그라드는 건가? 다시 그를 따라잡아야 할 상황이 되면?
거기에 대해 '그렇다'는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도무지 거북한 심기를 잠재울 수 없는 적비성은 견딜 수가 없겠지.
그리고 바로 그 때 각려초가 수작을 부려서 적비성에게 각인하려고 시도했으면 좋겠다.
사실은 각려초도 양인인데, 각인은 양인만 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보통은 양인이 음인을 종속시키려고 하는 거지만, 양인이 양인에게 하는 것도 가능하긴 한거임. 그러니 찐광공인 각려초가 사술을 써서 적비성을 제걸로 만들려는 시도를 안할리 없는거임
암튼 각려초는 시도했다 실패하고
그때쯤 적비성은 이유가 뭐든 간에 이상이를 손에 쥐고 있지 못하면 이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까지는 깨달은 상태였겠지.
워낙 감정적인 부분에는 무지해서 그게 바로 애정이라는 사실까진 연결시키지 못하고...
아무튼 각인만 하면 너는 내 거였다는 각려초의 절규를 듣고 눈이 뜨인 적비성은, 이상이에게 각인한다면 그가 평생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며 수련도 잘 할 거고, 그와 비무도 맘껏 할 수 있을 테니까. 더이상 영문모를 괴로움에 시달릴 일은 없다는 결론을 내림.






그래도 내뱉은 약속은 지키는 적비성의 성격상 1년 후에 이상이를 찾아가는데.
이상이가 애쓴 흔적은 보였지만 역시 적비성을 이기지는 못함

이상이는 이미 자기가 질 것을 예상하고 죽음을 대비하여 사고문의 갖가지 일을 다 처리해두었고 차분하게 맞이했음.
어쩌다 적비성의 투지를 일으키는 대상이 됐는지 참 재수가 없다 싶었지만 아무튼 할 수 있는데까지는 다 했고, 어쩐지 제가 없어져도 적비성이 세상을 어지럽힐것 같진 않다는 묘한 부분에서 안도감을 얻고 비무에 응하겠지.
그리고는 역시 져버리고 나서
이번에도 적비성의 무자비한 공격에 검은 멀리멀리 날아가버리고. 빈손이 된 이상이가 한숨을 쉬었음. 
"기대에 못 미쳐서 미안하지만, 아무튼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불평은 하지 마라."
"......"
"어서 죽여."
적비성은 잠시 동안 말없이 당당하게 선 이상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음.
피를 말리는 듯한 한판 승부 뒤였지만 흥분한 기색은 없고 검은 눈동자 안에 이상한 광채만 번뜩이며, 그는 이제 자신이 그동안 이상이를 얼마나 그리웠했는지를 자각할 수 있었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와 싸우고 싶고, 죽을 때까지 못 볼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음.
하지만 적비성은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은 상대를-차라리 죽여버릴지언정- 괴롭히는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 사람임. 그래서 우선 확인하겠지.
"교완만과 헤어졌다고 들었다."
이상이가 더럭 이마를 찌푸렸음.
깨끗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아픈데를 찌르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이야?
심지어는 적비성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예상되는 이름도 전연 아니었음.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가?"
"사실인 모양이군. 그럼 다시 연심을 품은 사람도 없는 건가?"
이상이는 너무 어이가 없다 못해 피식 웃음이 나왔음.
곧 죽을 텐데, 이런 대화가 무슨 소용인지.
"뭐랄까, 덕분에 나는 사랑놀음이나 하도록 생겨먹은 인간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거든. 그러니 앞으로는..."
문득 이상이의 목소리가 공허해지며, 언뜻 그 자리에 아픔이 배어드는 느낌이 들었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도록, 다시는 그런 관계를 맺지 않을 생각이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세상에 찌들면서 언뜻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깨달았음인지. 그런 통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아픈 데를 후벼파서 자포자기한 느낌이 들었던건지.
그만 쉬고 싶다는, 그답지 않게 약한 감정이 잠깐 피어올랐음.
아무튼 곧 죽을 테니까, 정말로 끝인 거지.
감상적인 감정에 흐려지는 이상이의 말끝을 잡아채듯, 건조한 목소리가 대답했음.
"그거 다행이군."
순간 적비성이 범처럼 달려들자 무인된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한 이상이가 손을 들어올리려고 했지만 상처가 깊은 바람에 움직이지 못했음.
와락 닥치는 기세에 헝겊인형처럼 뒤로 휘어졌던 몸이 검은 그림자에 휩싸였고, 이문주가 생전 처음으로 생생하게 토해내는 비명이 대기 가득 울려퍼졌음.
순식간에 어깨의 옷깃을 찢어내고 파고든 이빨의 통증이 골수까지 파고드는 것 같아서, 이상이는 허공을 향해 치뜬 눈 앞이 번개처럼 번쩍이며 입이 벌어졌음.
아니, 통증이 맞는 걸까. 무얼까. 알 수 없이 몸 속을 종횡무진으로 번지는 감각에 서 있을 수도 없어서 강한 품에 끌어안겨올려진 채 파득파득 떨기만 했겠지.
차츰차츰, 크고 하얀 별들이 점멸하며 원래의 어둑한 시야가 돌아오며,
피에 젖은 입으로 웃고 있는 적비성이 보였음.
"그 나약함을, 모조리 뜯어고쳐 주지. 이상이."







뭘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음
암튼 각인당해버렸다는 사실을 적비성이 말도 없이 돌아간 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 알게 된 이상이가 결국 적비성이 바랬던대로 금원맹으로 쳐들어와 따지는데
너는 무술 천재로 태어났으니 평생을 무술에 바치는게 옳다는 철벽논리에 얼척이 없어짐
"걱정 마라. 네가 수련에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는 일만 제외하면. 아무 것도 강요할 생각 없으니."
"그런 게 아니라! .....음양이란 건 원래가...!"
어쩌구 저쩌구 횡설수설하며 사실은 이상이도 음양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는데(왜냐면 아직 너무 어리니까) 괴상한 논리에 오히려 머리가 안돌아가서 반박할 말을 막 짜내야함
"적비성, 각인을 끊지 않으면 자손도 남길 수 없게 될텐데. 그래도 좋아?"
"그딴 일은 관심 없다."
"그리고, 앞으로 누구와도... ...내 말 알지?"
"이상한 표정으로 말을 끌지 마라. 그러지 않아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런 일엔 관심 없다."
어떻게 사내가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하고 복장이 터지는 이상이일거임. 그러다가
"......너 설마, 경험이 없는 게..."
"그게 어떻다는 거지?"
살짝 노선을 틀어, 비열한 인신공격까지 감행하는 열세에 몰린 이상이인데 역시나 적비성은 요지부동일거임 
"너나 나나 양기로 충만한 무술인인데. 쓸데없는 행위는 양기를 소모시킬 뿐이고, 그런 생산성 없는 일을 내가 할리 없지 않나."
이상이는 또 한숨을 쉬며 미간을 문질렀음. 요즘 왠지 100년은 더 산 것처럼 한숨이 늘었음. 그리고 사실 이상이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도 왜 적비성에게 화가 나지 않는 건지. 그것도 참 이상했음. 돌이켜보면 적비성에게 졌다고 해서 순순히 죽어주려고 했던 것부터 이상하긴 했음. 이 남자의 기준이 남들과 좀 많이 다른데다, 굉장히 저돌적이라 저도 모르게 말려든 걸까. 
하지만 말려드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는 그렇다 치자. 그럼 나는?"
"앞으로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공격적으로 따지자마자 시원하게 받아치는 적비성에 이상이는 어이가 없었음. 그리고 찬물을 맞은 듯 번뜩하고 떠올랐음.
그럼 그때... 물어봤던 게 그걸 확인하려고였어?!
새삼 적비성의 이상한 면모를 또하나 확인하게 된 이상이는 후회가 막급하여 맘속으로 뻥뻥 발길질을 했음. 이 인간의 이상한 성격으로 보면, 다시 정인이 생겼다던가, 아니면 이성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듯 초탈한 발언만 안했어도 이 사태까지는 안왔을 것 같았음.
그때 무수한 번뇌에 시달리며 곧 쓰러질 것 같은 이상이에 대면 오히려 보살처럼 차분해진 적비성이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말했음.
"너는 이제까지처럼 사고문을 다스리면 된다. 설사 금원맹과 사고문이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해도, 각인이 영향을 미치게 하진 않겠다고 맹세하마. 그럼 문제 없지 않나?"
"너랑 말 안할래..."
"돌아가는 건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걸 끊을 방법을 찾아낼 거야."
"쓸데없이 시간 허비하지 마라. 월등히 높은 내력을 가진 자가 새긴 각인은 풀지 못한다. 정말로 풀고 싶다면 나를 이기는 수밖에 없으니, 수련이나 해."
적비성이 그렇게 말하며 엷게 웃었음.
이상이는 각인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지.
사실 양인끼리의 각인은 양음인의 각인보다 더 지독한거임. 양음인의 각인은 굉장히 어려워도 무효로 만들 방법은 존재하는데, 양인끼리의 각인은 절대 풀 수가 없어. 다만 가능한 일은 역각인을 시도해서 우위만 바꿀 수 있을 뿐임.
즉 이상이가 적비성 우위의 상태가 맘에 안든다면 더 강해져서 역각인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음.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적비성도 다시 이상이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련하면 되는 거니까.
드디어 만사가 해결된 셈이었음. 

아무튼, 이상이도 말로만 투덜대지, 정말 싫은 건 아닌 모양이니.
누가 봐도 상관이 없는지 금원맹의 정문을 박차고 요란하게 나가버리는 이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적비성의 입가에서는 방자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음.











두서없음 ㅁㅇ
아무튼 결국에는 떡치는 거였는데...
이상이가 진짜 혀깨물고 열심히 내공 쌓는 바람에 뜻밖에도 질것 같아지니까 각인한 상태라 그런지 갑자기 수컷의 소유욕이 폭발한 적비성이 덮쳐버린 그런거...
그리고는 양기를 쓸데없이 소모시키는 생산성 없는 일을 매일매일 겁나게 했을거임
 




 
2024.05.15 22:15
ㅇㅇ
모바일
와 이거 너무..완벽한 비성연화 아니냐고 적비성 진짜 무공쳐돌이 이상이쳐돌이인데 자기 마음 모르고 삽질하다가 냉큼 각인하는 거 너무 좋아서 숨 안쉬어짐 근데 그 각인의 목적이ㅋㅋㅋㅋ 무공인거 시발 너무 웃기고 미친것같아 적맹주님 그저 강한 이상이를 덕질하는 거 아니시냐고요 양기폭발 두 사내가 매일매일 쓸데없이 양기소모해댄다니 막줄이 진짜 너무 궁금합니다 자세하게 압나더...!!!!
[Code: 11e4]
2024.05.15 22:25
ㅇㅇ
모바일
숨도 안쉬고 읽어내려오다보니 생산성 없는 일에 대해서 숨쉬면서 보고싶읍니다 센세
[Code: 29c2]
2024.05.16 00:42
ㅇㅇ
모바일
너무 재밌어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시 읽을거야 센세.. ㅜㅜ
[Code: 5b2c]
2024.05.16 02:08
ㅇㅇ
모바일
와 이게 찐 비성상이다 존맛...뒷 이야기는 어나더로 줄거지? 센세제발...
[Code: 7177]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