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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00:09
"마치다 케이타 씨! 마치다 케이타 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사실만 있는 층에 도착하자마자 불도저처럼 빠르게 이사실로 직진하는 마치다의 팔을 이사실 앞을 지키는 비서 몇몇이 열심히 붙잡았지만, 아무리 오메가라고 할지라도 엄연한 성인 남성인 마치다를 오메가 여성 몇 명이 붙잡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성인 남성이라면 더더욱. 항상 노부의 옆을 지키는, 노부보다도 덩치가 큰 알파 비서실장이 지금 자리에 없다는 게 마치다에게는 다행이었다. 그 사람까지 있었더라면 분명 그 사람에게 손쉽게 제압당해 이사실 문을 함부로 열지 못했을 테니까.
쾅. 고민도 없이 문을 연 마치다조차 놀랄 정도의 엄청난 굉음이었다. 족히 서너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책상에 앉아 앞에 선 사람의 보고를 받고 있던 노부와, 노부의 앞에서 공손한 자세로 노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머리 희끗한 나이 든 임원 한 명이 모든 행동을 멈춘 채 거칠게 문을 열어젖힌 마치다를 바라봤고, 마치다를 말리던 비서들 역시 마치다 뒤에 굳은 채 서서 노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다마저도 움직임이 없던 이사실의 고요함을 깬 건 노부였다.
"잠시 후에 다시 얘기하죠. 나가보세요."
노부는 자신의 앞에 서있던 임원을 향해 서류를 넘기며 가볍게 한마디 던졌고, 임원이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과 동시에 문가에 서있는 비서들에게도 나가보라는 고갯짓을 했다. 비서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이번엔 여전히 문쪽에 서있던 마치다에게 노부가 들어와 앉으라는 재스쳐를 보이며 노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케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분명 차가 담겨있을 머그잔을 들고 넓은 이사실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겨 상석에 앉는 노부를 빤히 바라보던 마치다는 노부의 옆에 앉는 대신 뚜벅뚜벅 걸어가 노부의 옆에 섰다. 오랜만에 보는 노부와 마주 앉아 천천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온 게 아니었다.
"뭐야."
"뭐가요."
"뭐가요?"
자리에 앉지도 않고 노부 옆에 서서 노부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치다를 한번 올려다본 후, 다시 앞을 쳐다보며 차를 마시는 노부의 행동에 기가 찼다. 분명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면서 뻔뻔하게 뭐가요, 라고 하는 모습에도 기가 찼다.
"결혼 발표. 뭐냐고."
노부의 잔에 담겨있는 건 차가 맞았다. 은은한 자스민 향이 마치다에게도 느껴졌다. 노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던 노부는 어려서부터 따뜻한 차들을 유독 좋아했다. 마치다가 커피를 마실 때면 커피보단 차가 몸에 좋다며 조용히 옆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놓아주던 노부 덕분에 마치다도 20대 후반 즈음부터는 커피보다는 차를 더 찾게 됐다.
"우리."
"......"
"우리 정략결혼 예정되어 있던 거. 케이도 모르지 않았잖아요."
조금 낮아진 진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부가 이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나 마치다는 지금 그런 뜻까지 헤아려줄 정신이 없었다.
"정략결혼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딴 식으로 통보하는 건 아니지."
"......"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해? 내가 너한테 이렇게 팔려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야겠어?"
"......"
"연애를 하자는 것도, 프로포즈를 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적어도 결혼 발표하겠다고 결혼 상대인 나한테는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려면 내가 아니라 집에 가서 케이 부모님께 따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오늘 아침에 우리 집안에서 마치다 가에는 결혼 발표하겠다고 얘기했다고 알고 있으니까."
다리를 꼬고 앉아 가만히 마치다의 말을 듣고만 있다 태연하게 차를 마시며 대답하는 노부의 모습에 결국 마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내 말 무슨 뜻인지 몰라? 네가 나한테 직접 얘기를 했어야지! 내가 지금 얼마나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운지, 하, 내가 진짜..."
정말 팔려가는 기분이었다. 오메가였지만 한평생을 재벌가 3세로 늘 사람들의 우러러봄 속에 부족함 없이 주체적으로 원하는 건 마음껏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저도 모르는 결혼 발표가 수치스러웠고 절망스러웠다. 그 누구도 아닌 노부가 제게 이럴 줄 몰랐다.
정재계를 모두 틀어쥐고 있을 정도의 재벌가인 스즈키 가는 세계에서도 위상이 남다른 대기업 스즈키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마치다 가 역시 어마 무시한 재벌가이자 마치다 그룹 또한 세계적인 기업이었으나 스즈키 가에는 미치지 못했다. 스즈키 노부유키는 그런 대단한 스즈키 가의 3세로 앞으로 형과 함께 스즈키 그룹을 이끌어나가게 될 후계자였고, 마치다 역시 마치다 가의 3세로 마치다 그룹을 이끌어가야 할 후계자였다. 차이점이라면 노부는 알파였고 마치다는 오메가였다는 것. 돈독했던 두 집안의 조부모님들 덕분에 노부와 마치다는 알파와 오메가로 태어남과 동시에 서로의 결혼 상대로 낙점됐고, 그렇게 30년을 보냈다. 올해로 딱 서른둘이 된 마치다는 이게 불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는 정략결혼만이 정답이었고, 지금껏 노부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오늘, 마치다에겐 그 어떠한 얘기도 없이 스즈키 가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에서 스즈키 노부유키와 마치다 가의 장남인 마치다 케이타가 한 달 뒤 결혼한다는 내용의 일방적인 결혼 통보는 마치다가 앞뒤 재지 않고, 모든 업무를 미뤄둔 채 운전기사까지 닦달해가며 바로 스즈키 그룹 이사실을 쳐들어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케이한테 먼저 얘기를 했으면, 케이가 먼저 알았으면."
잠시 말을 멈춘 노부가 들고 있던 머그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드디어 마치다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뭐가 달라져요?"
"뭐?"
"그랬으면 수치스럽지도 않고 절망스럽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결혼은 해야 하고 케이한테 알려줬어도 똑같은 통보인데 케이가 알았으면 뭐가 바뀌는데요. 바뀌는 건 없어요."
노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분명 방금까지 보여준 태평했던, 아무 감정 없어 보였던 얼굴이 아니었다. 알았으면 뭐가 바뀌냐고 되묻는 노부의 얼굴엔 지침과 피폐함만이 가득했다.
노부의 뺨이라도 시원하게 내리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왔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건, 방금 보인 노부의 표정 때문이었다. 알았으면 뭐가 바뀌냐고 되묻는 노부의 표정이 너무 피폐하고 지쳐있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지쳐 있고 피폐한 모습이어야 하는 건 정략결혼 상대에게 결혼하자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언론을 통해 급작스럽게 결혼을 통보받은 마치다였지, 노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치다는 도무지 노부의 표정이 왜 저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노부의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은 따질 수도 없었다. 자신보다도 더 힘들어 보이는, 노부와 한평생을 알고 지냈어도 난생처음 본 그 표정 때문에.
도대체 네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데. 그러고 보니 오늘 오랜만에 본 노부의 얼굴은 마치다가 이사실에 처음 쳐들어왔을 때부터 마치 며칠 잠을 설친 것처럼 푸석했다.
오늘 아침 대대적으로 보고된 스즈키 가의 결혼 발표 기자회견을 보고, 노부의 이사실을 뒤집어엎겠다는 심정으로 왔던 마치다는 처음 보는 노부의 표정에 전의를 상실했다. 이성적으로는 노부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마치다가 화가 난건 오로지 감정적인 이유였다. 차마 노부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정적인 이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다시 차를 마시고 있는 노부를 내려다보다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등을 돌렸다. 쳐들어올 때와는 다른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이사실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들리는 노부의 목소리에 마치다가 멈춰 섰다.
"케이."
"...왜."
"내가 미워요?"
잠시 그대로 서있다 아무 대답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는 마치다의 뒷모습을 흘끗 본 노부는 문이 닫히자마자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몸을 소파에 깊숙이 기대며 푸석한 얼굴을 큰 손으로 쓸다 결국 눈을 가렸다.
밉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나 때문에 막혔을 테니까.
아직 아침 10시였다. 하루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노부는 온 기력을 다 소비한 듯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잠들고 싶었지만 쌓여있는 일들이 많았다. 스즈키 가 3세라는 자리는 이런 자리였다.
한 달 전인 4월 3일 모닝글 내용 설정 참고함. 모닝글 써준 부케비에게 허락받음. 설정 참고할 수 있게 허락해 줘서 다시 한번 너무 고맙조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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