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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2 21:43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문주가...."
"혼인 상대를...."
"공개적으로 찾으신다구요?"
기한불이 시작한 말을, 운피구와 백강순이 차례대로 이어 완성했다. 그 얼굴이 평소의 원주들답지 않게 당혹으로 새파래져 있었다. 석수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이연화를 바라보다, 방다병을 다그치듯 속삭였다.
"방다병, 네놈이 찾은 화봉초에 정신을 흐리는 부작용이 있느냐?"
"차라리 그랬으면 나았을지도 모르죠...."
방다병이 천둥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연화가 에이, 소리를 내며 한 손을 내저었다.
"진짜로 혼인을 하겠단 뜻이 아니라, 척만 한다는 거야. 그러면 두 개의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저희만으로는 해결해드릴 수 없는 것입니까?"
석수가 당장이라도 별을 따올 듯한 얼굴로 물었다. 이연화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퍽 이성적인 눈으로 빠르게 이야기했다.
하나. 자신이 어쩐지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진 음인이 되어버린 이상,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구혼하려는 자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길게 끌어 귀찮아지느니, 단번에 몰아서 푸닥거리를 치른 다음 혼사에 마음이 없어졌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편이 낫다. 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남윤 잔당 처리라는 문제가 있다. 내 혼사를 미끼로 내건다면 그 목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야심이든 철저한 복수든, 그들 입장에선 물지 않을 수가 없을 터. 또한 어중이떠중이를 후보로 보낼 수도 없을 테니, 그들 중 아직 남은 실력자나 세력가들을 색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런 일석이조를 굳이 진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논지였으나,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 누구도 밝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석수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렇다 하여 굳이 문주를...문주의 일신과 이름을 내걸 필요가 있겠습니까? 잔당 색출이라면 백천원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니-."
"석 원주, 염려하는 바는 알겠으나 나는 되도록 그 과정이 빠르길 원해. 또한 그들이 이쪽에 신경 쓰느라 다른 곳을 공격하지 못하길 바라지. 이번에도 천기산장이 무용한 피해를 입었어. 다른 날도 아닌 당주의 동생이 결혼하는 날 말이야."
이연화가 미간을 약간 좁히고 건넨 말에, 석수는 한숨짓고 싶은 눈치였으나 더 반박하지는 않았다. 기한불은 당초의 당혹한 표정을 빠르게 수습하고는 물었다.
"하면, 백천원에서 일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천기산장은 이미 한 번 사달이 났던 곳이니, 그곳에서 일을 진행한다면 더욱 경계하겠지. 이미 그들이 한번 뚫어본 곳이기도 하고. 백천원은 사고문과 깊은 연이 있으니, 이런 일을 주최하는 데에 더 적합할 것 같아서 말이야. 실제로 추 공자도 이곳을 찾았잖나.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수사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차질이 생기는 걸 원치는 않으니, 필요하면 날 좀 부려먹게. 이만큼 큰 건을 부탁하는데 나도 돌려주는 게 있어야지."
이연화가 천연덕스러운 미소와 함께 맺었다. 백강순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물론, 문주께서 일을 보아주신다면야 업무에 차질이 생길 걸 염려하지는 않겠으나...저, 짝을 물색하신다면 무슨 기준이라든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든가...이런 내용이 방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혼인하실 것도 아닌데, 그런 내용에 뭘 번잡하게 신경을 씁니까? 집안 좋고 헌앙하며 심성이 바르고, 이왕이면 무공도 잘하는 편이면 되지요."
석수가 눈을 번쩍이며 따지듯이 늘어놓았다. 백강순이 난감하게 더듬거렸다.
"으음, 석수. 그건 상당히 혼인할 때를 염두에 둔, 구체적이고 높은 기준인 듯한데...."
"한 문파의 문주로 자격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 이상한 겁니다!"
석수가 백강순을 향해 부르짖었다. 방다병이 양손을 가볍게 들었다.
"석 누님,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할 게 아니잖아요. 그냥 눈속임일 뿐이니까 흥분하지 마세요."
"방다병, 너는 이게 아무렇지도 않으냐? 추영인 같은 웬 어중이떠중이들이 한데 모여 문주를 불순하게 바라보는 꼴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다. 이왕이면 헌앙한 놈들만 오라고 해야지! 사고문주의 혼사인데 그런 기준조차 없으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거다."
석수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 흉흉한 기세에, 방다병이 가시나무에 찔린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이연화는 석수가 불과 반 시진 전의 방다병을 본다면 절대 이렇게 타박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시의 방다병은 계속 소리치다가, 이연화의 소매를 붙들고 빌다가, 종내에는 세상을 반쯤 잃은 사람처럼 침울해졌다. 하늘을 향해 화봉초의 부작용을 원망하는 말을 두어 마디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연화가 에에이, 소리를 내며 석수와 방다병 사이를 손날로 휘휘 저었다.
"됐다, 됐어. 그만들 해. 내용은 내가 곧 써줄 테니 그대로 붙이게. 그 다음엔 후보들에게 신청서부터 받아 진행하자고."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운피구가 가만히 오른손을 들었다. 석수처럼 날카롭게 소리치지는 않았으나, 운피구의 태도도 어쩐지 한 줄기 비장함을 띠고 있었다. 이연화는 이것이 옛 문주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 변한 자신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 사고문주는 방다병을 비롯한 백천원 사람들이 세부사항을 논의하도록 두고, 원내를 돌아다니며 적비성을 찾기 시작했다. 반 시진 전 떽떽거리는 방다병과 함께 이연화가 미쳤다는 요지의 비난을 늘어놓던 남자는, 스승과 제자가 불피백석을 만나기 전 휭하니 모습을 감춰버렸다. 심기가 단단히 상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뿔난 적비성을 찾으러 오래 헤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배정받은 손님 방에 앉아 운기하고 있었다. 심후한 내력이 적비성의 머리카락을 간간이 띄우며 맹렬히 순환했다. 그 미간이 여느 때보다 더욱 좁아 보였다. 이연화가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적비성은 눈을 뜨지도 않고 말했다.
"네 정신나간 발상을 철회할 게 아니라면 나가라."
"하지만 합리적인 발상이긴 하잖아."
이연화가 냉큼 대꾸하자, 적비성이 눈을 번쩍 떴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앞까지 단숨에 다가오자 작은 바람이 일었다. 충분히 피하거나 쳐낼 수 있었음에도, 이연화는 상대가 자신의 멱살을 잡도록 내버려두었다.
"넌 내 말을 대체 어디로 들은 거냐? 만에 하나라도 각인을 강제당하면 후유증이 상당하다. 난 네가 보잘것없는 상대에게 밟히는 위험이나 감수하려고 널 살려둔 게 아니야!"
"그럴 일 없어, 아비. 말마따나 네가 멀쩡하게 살려뒀잖아? 내가 누구한테 쉽게 당할 사람이야?"
"나는 쉽게 당할 사람이라 각려초에게 붙잡혔던 것 같나? 세상 일이 모두 네 뜻대로 흘러갈 거라 믿는다면 오만이다, 이상이. 그 무모한 이상이는 십 년 전 죽었다더니, 여전히 그대로 살아 있었군."
적비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붙었다. 이연화가 살짝 써진 입맛을 다시며 적비성의 손등을 툭툭 때렸다. "일단 좀 놓고 이야기해. 이러다 방소보가 또 와서 너 혼낸다." 적비성은 헛소리를 한다고 강변하듯 입술을 꿈틀했지만, 이내 이연화를 놓아주었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이연화가 한결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난 무모한 마음으로 선택한 게 아니야, 적 맹주.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지. 그들이 또 어딘가에서 내 아군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여기서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는 게 나아. 그리고 여기에 내 벗들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도록 두겠어?"
"흰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해."
적비성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이연화가 음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뭐냐?"
"내 앞에서 냄새 좀 풀어봐."
이연화가 사탕을 요구하듯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에, 적비성은 수 초 동안 굳어 있었다. 정말 그답지 않게도, 남자는 잠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뭐라고?"
"내 앞에서 네 냄새 좀 풀어보라고."
역시 당당히 부탁하자, 적비성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남자는 이연화를 짧게 훑어보며 말했다.
"미쳤나?"
"이게 왜 미친 말이야? 너 예전에 나랑 싸울 때는 잘만 그러더니. 원래 격해지면 냄새가 조금씩 흐르는 게 자연스러운 거잖아. 내 형질이 달라졌다고 내외해, 적 맹주? 나는 절대로 냄새 안 풀 테니까, 네가 한번 풀어보라고."
"대체 왜?"
"왜겠어? 현재 내 상태에서 중요한 정보가 하나 빠져서 그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받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잖아?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와 도를 아는 이들이니, 평소에 체취를 강하게 풀지 않지. 하지만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내 조건을 알아야 미리 무슨 약을 준비할지, 내 혈도를 짚어버릴지, 그냥 코웃음쳐도 될지 정하지 않겠어."
적비성의 얼굴로 점차 이해의 빛이 번졌다. 강호의 음인 고수들은 자신의 여건에 따라, 양인 고수에게 하릴없이 제압당하지 않을 수단을 구비하곤 했다. 하지만 금원맹주의 눈은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에 휩싸여 있었다.
"왜 하필 내게 부탁하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네가 제일 강한 형질을 갖고 있으니까. 상한선을 정하기에 충분하지. 천기산장에서 만난 자객들 정도는 별 문제 없었거든. 너한테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걱정할 부분은 아니겠는데,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잖아. 그리고, 이런 부탁을 또 누구에게 하겠어? 방다병이나 원주들? 난처해서 죽으려고 할걸."
이연화가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자신이 음인이라는 사실에 아직도 화르륵 민망해하고 하나하나 어색해하는 방다병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런 부탁 따위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적비성은 갑작스레 두통을 느낀 듯 눈을 지그시 감고는, 코로 긴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물리적인 통증을 참는 것처럼 낮게 물었다.
"나는 난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난처해?"
이연화가 토라진 친구를 툭 건드리듯 되묻자, 적비성은 재차 한숨을 쉬고는 눈을 떴다.
"네가 먼저 요구한 일이니, 뒷감당은 알아서 해라. 그리고, 대가로 바라는 게 하나 있다."
"뭔데?"
"그놈이 줬던 옥패. 내놔."
"옥패? 무슨...아, 추 공자가 준 거?"
이연화가 품을 뒤져 연꽃 모양의 옥패를 꺼냈다. 추영인이 한사코 받아달라 애원하던 선물이었다. 적비성이 그 옥패를 팩 낚아챘다. "쯧, 안목은 있어서 좋은 옥인 건 알아가지고. 금원맹 살림에 보태 쓰게?" 이연화가 난데없는 재물 강탈에 혀를 차며 건네자, 적비성은 코웃음을 치고는 손을 내저었다. 뿜어져 나온 내력이 방문을 닫았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문주가...."
"혼인 상대를...."
"공개적으로 찾으신다구요?"
기한불이 시작한 말을, 운피구와 백강순이 차례대로 이어 완성했다. 그 얼굴이 평소의 원주들답지 않게 당혹으로 새파래져 있었다. 석수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이연화를 바라보다, 방다병을 다그치듯 속삭였다.
"방다병, 네놈이 찾은 화봉초에 정신을 흐리는 부작용이 있느냐?"
"차라리 그랬으면 나았을지도 모르죠...."
방다병이 천둥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연화가 에이, 소리를 내며 한 손을 내저었다.
"진짜로 혼인을 하겠단 뜻이 아니라, 척만 한다는 거야. 그러면 두 개의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저희만으로는 해결해드릴 수 없는 것입니까?"
석수가 당장이라도 별을 따올 듯한 얼굴로 물었다. 이연화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퍽 이성적인 눈으로 빠르게 이야기했다.
하나. 자신이 어쩐지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진 음인이 되어버린 이상,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구혼하려는 자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길게 끌어 귀찮아지느니, 단번에 몰아서 푸닥거리를 치른 다음 혼사에 마음이 없어졌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편이 낫다. 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남윤 잔당 처리라는 문제가 있다. 내 혼사를 미끼로 내건다면 그 목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야심이든 철저한 복수든, 그들 입장에선 물지 않을 수가 없을 터. 또한 어중이떠중이를 후보로 보낼 수도 없을 테니, 그들 중 아직 남은 실력자나 세력가들을 색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런 일석이조를 굳이 진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논지였으나,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 누구도 밝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석수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렇다 하여 굳이 문주를...문주의 일신과 이름을 내걸 필요가 있겠습니까? 잔당 색출이라면 백천원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니-."
"석 원주, 염려하는 바는 알겠으나 나는 되도록 그 과정이 빠르길 원해. 또한 그들이 이쪽에 신경 쓰느라 다른 곳을 공격하지 못하길 바라지. 이번에도 천기산장이 무용한 피해를 입었어. 다른 날도 아닌 당주의 동생이 결혼하는 날 말이야."
이연화가 미간을 약간 좁히고 건넨 말에, 석수는 한숨짓고 싶은 눈치였으나 더 반박하지는 않았다. 기한불은 당초의 당혹한 표정을 빠르게 수습하고는 물었다.
"하면, 백천원에서 일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천기산장은 이미 한 번 사달이 났던 곳이니, 그곳에서 일을 진행한다면 더욱 경계하겠지. 이미 그들이 한번 뚫어본 곳이기도 하고. 백천원은 사고문과 깊은 연이 있으니, 이런 일을 주최하는 데에 더 적합할 것 같아서 말이야. 실제로 추 공자도 이곳을 찾았잖나.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수사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차질이 생기는 걸 원치는 않으니, 필요하면 날 좀 부려먹게. 이만큼 큰 건을 부탁하는데 나도 돌려주는 게 있어야지."
이연화가 천연덕스러운 미소와 함께 맺었다. 백강순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물론, 문주께서 일을 보아주신다면야 업무에 차질이 생길 걸 염려하지는 않겠으나...저, 짝을 물색하신다면 무슨 기준이라든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든가...이런 내용이 방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혼인하실 것도 아닌데, 그런 내용에 뭘 번잡하게 신경을 씁니까? 집안 좋고 헌앙하며 심성이 바르고, 이왕이면 무공도 잘하는 편이면 되지요."
석수가 눈을 번쩍이며 따지듯이 늘어놓았다. 백강순이 난감하게 더듬거렸다.
"으음, 석수. 그건 상당히 혼인할 때를 염두에 둔, 구체적이고 높은 기준인 듯한데...."
"한 문파의 문주로 자격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 이상한 겁니다!"
석수가 백강순을 향해 부르짖었다. 방다병이 양손을 가볍게 들었다.
"석 누님,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할 게 아니잖아요. 그냥 눈속임일 뿐이니까 흥분하지 마세요."
"방다병, 너는 이게 아무렇지도 않으냐? 추영인 같은 웬 어중이떠중이들이 한데 모여 문주를 불순하게 바라보는 꼴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다. 이왕이면 헌앙한 놈들만 오라고 해야지! 사고문주의 혼사인데 그런 기준조차 없으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거다."
석수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 흉흉한 기세에, 방다병이 가시나무에 찔린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이연화는 석수가 불과 반 시진 전의 방다병을 본다면 절대 이렇게 타박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시의 방다병은 계속 소리치다가, 이연화의 소매를 붙들고 빌다가, 종내에는 세상을 반쯤 잃은 사람처럼 침울해졌다. 하늘을 향해 화봉초의 부작용을 원망하는 말을 두어 마디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연화가 에에이, 소리를 내며 석수와 방다병 사이를 손날로 휘휘 저었다.
"됐다, 됐어. 그만들 해. 내용은 내가 곧 써줄 테니 그대로 붙이게. 그 다음엔 후보들에게 신청서부터 받아 진행하자고."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운피구가 가만히 오른손을 들었다. 석수처럼 날카롭게 소리치지는 않았으나, 운피구의 태도도 어쩐지 한 줄기 비장함을 띠고 있었다. 이연화는 이것이 옛 문주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 변한 자신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 사고문주는 방다병을 비롯한 백천원 사람들이 세부사항을 논의하도록 두고, 원내를 돌아다니며 적비성을 찾기 시작했다. 반 시진 전 떽떽거리는 방다병과 함께 이연화가 미쳤다는 요지의 비난을 늘어놓던 남자는, 스승과 제자가 불피백석을 만나기 전 휭하니 모습을 감춰버렸다. 심기가 단단히 상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뿔난 적비성을 찾으러 오래 헤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배정받은 손님 방에 앉아 운기하고 있었다. 심후한 내력이 적비성의 머리카락을 간간이 띄우며 맹렬히 순환했다. 그 미간이 여느 때보다 더욱 좁아 보였다. 이연화가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적비성은 눈을 뜨지도 않고 말했다.
"네 정신나간 발상을 철회할 게 아니라면 나가라."
"하지만 합리적인 발상이긴 하잖아."
이연화가 냉큼 대꾸하자, 적비성이 눈을 번쩍 떴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앞까지 단숨에 다가오자 작은 바람이 일었다. 충분히 피하거나 쳐낼 수 있었음에도, 이연화는 상대가 자신의 멱살을 잡도록 내버려두었다.
"넌 내 말을 대체 어디로 들은 거냐? 만에 하나라도 각인을 강제당하면 후유증이 상당하다. 난 네가 보잘것없는 상대에게 밟히는 위험이나 감수하려고 널 살려둔 게 아니야!"
"그럴 일 없어, 아비. 말마따나 네가 멀쩡하게 살려뒀잖아? 내가 누구한테 쉽게 당할 사람이야?"
"나는 쉽게 당할 사람이라 각려초에게 붙잡혔던 것 같나? 세상 일이 모두 네 뜻대로 흘러갈 거라 믿는다면 오만이다, 이상이. 그 무모한 이상이는 십 년 전 죽었다더니, 여전히 그대로 살아 있었군."
적비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붙었다. 이연화가 살짝 써진 입맛을 다시며 적비성의 손등을 툭툭 때렸다. "일단 좀 놓고 이야기해. 이러다 방소보가 또 와서 너 혼낸다." 적비성은 헛소리를 한다고 강변하듯 입술을 꿈틀했지만, 이내 이연화를 놓아주었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이연화가 한결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난 무모한 마음으로 선택한 게 아니야, 적 맹주.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지. 그들이 또 어딘가에서 내 아군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여기서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는 게 나아. 그리고 여기에 내 벗들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도록 두겠어?"
"흰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해."
적비성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이연화가 음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뭐냐?"
"내 앞에서 냄새 좀 풀어봐."
이연화가 사탕을 요구하듯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에, 적비성은 수 초 동안 굳어 있었다. 정말 그답지 않게도, 남자는 잠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뭐라고?"
"내 앞에서 네 냄새 좀 풀어보라고."
역시 당당히 부탁하자, 적비성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남자는 이연화를 짧게 훑어보며 말했다.
"미쳤나?"
"이게 왜 미친 말이야? 너 예전에 나랑 싸울 때는 잘만 그러더니. 원래 격해지면 냄새가 조금씩 흐르는 게 자연스러운 거잖아. 내 형질이 달라졌다고 내외해, 적 맹주? 나는 절대로 냄새 안 풀 테니까, 네가 한번 풀어보라고."
"대체 왜?"
"왜겠어? 현재 내 상태에서 중요한 정보가 하나 빠져서 그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받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잖아?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와 도를 아는 이들이니, 평소에 체취를 강하게 풀지 않지. 하지만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내 조건을 알아야 미리 무슨 약을 준비할지, 내 혈도를 짚어버릴지, 그냥 코웃음쳐도 될지 정하지 않겠어."
적비성의 얼굴로 점차 이해의 빛이 번졌다. 강호의 음인 고수들은 자신의 여건에 따라, 양인 고수에게 하릴없이 제압당하지 않을 수단을 구비하곤 했다. 하지만 금원맹주의 눈은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에 휩싸여 있었다.
"왜 하필 내게 부탁하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네가 제일 강한 형질을 갖고 있으니까. 상한선을 정하기에 충분하지. 천기산장에서 만난 자객들 정도는 별 문제 없었거든. 너한테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걱정할 부분은 아니겠는데,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잖아. 그리고, 이런 부탁을 또 누구에게 하겠어? 방다병이나 원주들? 난처해서 죽으려고 할걸."
이연화가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자신이 음인이라는 사실에 아직도 화르륵 민망해하고 하나하나 어색해하는 방다병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런 부탁 따위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적비성은 갑작스레 두통을 느낀 듯 눈을 지그시 감고는, 코로 긴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물리적인 통증을 참는 것처럼 낮게 물었다.
"나는 난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난처해?"
이연화가 토라진 친구를 툭 건드리듯 되묻자, 적비성은 재차 한숨을 쉬고는 눈을 떴다.
"네가 먼저 요구한 일이니, 뒷감당은 알아서 해라. 그리고, 대가로 바라는 게 하나 있다."
"뭔데?"
"그놈이 줬던 옥패. 내놔."
"옥패? 무슨...아, 추 공자가 준 거?"
이연화가 품을 뒤져 연꽃 모양의 옥패를 꺼냈다. 추영인이 한사코 받아달라 애원하던 선물이었다. 적비성이 그 옥패를 팩 낚아챘다. "쯧, 안목은 있어서 좋은 옥인 건 알아가지고. 금원맹 살림에 보태 쓰게?" 이연화가 난데없는 재물 강탈에 혀를 차며 건네자, 적비성은 코웃음을 치고는 손을 내저었다. 뿜어져 나온 내력이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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