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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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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천사가 잠든 사이 인간들의 삶을 얼마든지 엉망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마치다는 하지 않았음. 날이 밝자 잠에서 깬 천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행복한 아침을 맞이했겠지.

"너같은 단순한 돌대가리가 인간들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지랄하네. 너만 행복하잖아."

"네...? 아침부터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해요!"

그제야 사랑하는 인간들이 떠올랐음. 우다다다 통유리창 앞으로 달려가 거리를 내려다 봤는데, 생각보다 고요한 거지.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봤던 그 불바다는 꽤 수습이 된 상태였음. 다친 사람들은 길가 구석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의사와 소방관들은 저마다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음.

"나 코코아 한 잔만 줄래요? 뽀얀 거품 올려서!"

"뭐라고?"

"이제 인간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볼까?"

"놀고 자빠졌네..."

마치다는 집 안에 안 보이는 결계를 쳤음. 악마의 능력 외에 다른 능력은 이 집 벽을 통해 나갈 수 없도록. 노부는 그것도 모르고 조용히 눈을 감고 서있었음. 다친 사람들이 하나 둘 낫고, 아이들이 울음을 멈추고, 불씨가 사그라들고, 노숙자에게 따뜻한 빵이 쥐어지는. 하지만 그건 모두노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고 있었음.

"뭐, 뭐야...! 왜 안 먹히지?"

"바보야. 악마 집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이거나 처먹어. 아침부터 이런 거나 마시고. 돼지."

노부는 뽀얀 우유 거품이 올라간 코코아를 받아들었음.

"네가 미친 거냐 내가 미친 거냐. 해 뜨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천사한테 코코아 타주기라니."

마치다는 까만 소파에 앉아 블랙 커피를 호로록 마셨음. 노부는 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길거리를 내려다 봤지. 뜨거운 코코아를 겨우 세 모금만에 다 털어 마시고는 급하게 현관을 나섰음.

"쟤는 왜 문을 통해서 다니는 거야... 지가 사람인 줄 아나."

마치다는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 만으로 노부보다 먼저, 노부가 가려고 한 곳에 도착했을 거임. 다 죽어가는 개 한 마리. 건물이 무너질 때 미처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해 돌에 깔린 몸. 뒤늦게 도착한 노부가 개를 끌어안고 한참 쓰다듬었음.

"불쌍한 것... 내가 살려줄게."

"개는 살려서 뭐하게."

"뭘 하려고 살리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게 그냥 내 일이에요! 악마는 빠지시죠?"

"코코아 잘 얻어먹고 왜 지랄이야. 내가 밤새 네 기록을 좀 뒤져봤는데, 스즈키 성을 쓰는 천사들은 다 높은 벼슬은 못 했더라. 가문 대대로 마음만 약한 바보 천치들인가 봐. 수명 2년 남은 개 살릴 힘 있으면 가서 저 노인이나 돕던지. 저 노인은 그래도 수명이 8년 남았네."

"둘 다 살릴 거예요. 그리고 스즈키 성을 가진 천사들은 바보라서가 아니라 양보를 좋아해서 승진 못하는 거예요!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나 있는지, 지금 이렇게 수다나 떨어주느라 악마 짓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마치다를. 노부는 결국 개를 살려내고 과다출혈로 죽어가던 노인에게도 숨을 붙여줬음. 마치다는 발로 뛰며 인간을 돕고 있는 천사의 곁을 떠나지 않았겠지. 순간이동으로 바람처럼 따라다니며 놀리고 구박하고 핀잔을 줌.

@오늘은 영 실적이 없네. 기절이라도 했어?@

다른 구역 동료에게서 메시지가 왔음. 마치다는 그제야 자기 본분이 떠올랐지. 참나. 내가 뭐 하고 있는 거람. 모든 악마들에게 공유되는 일일실적을 떠올리니 피가 거꾸로 솟았겠지. 항상 1등이었는데 오늘은 개시도 못했으니.

"나도 일하러 간다."

"인간을 내버려 둬요!!!!! 악마!!!!!"

"악마한테 악마라고 하면서 대단한 욕이라도 하는 표정 하지 마. 어차피 안 어울려 그런 표정."

"마, 마치다씨...!!!! 코코아 잘 먹었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마치다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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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