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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2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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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https://hygall.com/570887274


8 니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서 이러는 거야
3 너 왜 자꾸 나 곤란하게 만들어





친구의 본가는 친구가 자랑스럽게 영업할 정도로 정말로 좋았다. 물론 노부는 온천여관 자체가 처음이었지만 방은 깔끔했고 식사는 맛있었으며, 온천이 굉장히 좋았다. 친구는 그 시기에 예약된 손님이 거의 없다며 가격을 반까지 깎아 주었다. 아저씨는 그렇게까지 싸게 해 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정말로 손님이 없는 시기라 괜찮다며 친구가 적극 권했다. 프로모션 겸이라며 노부가 일하는 레스토랑에도 선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알고 보니 아마미야 상의 레스토랑 자체도 가격대가 있고 비싸지만 훌륭한 식사가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제법 알려진 곳이었던 모양이고, 노부가 아르바이트비를 너무 많이 줘서 걱정하자 아저씨가 "아마미야 녀석 돈 많으니까 괜찮아. 줄 만하니까 주는 거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아마미야 상은 재벌 3세여서 인맥도 화려한 모양이었다. 그걸 노렸나. 어쨌든 노부에겐 고마운 이야기였다. 

첫날 노부와 아저씨는 여관의 공동 노천탕에 같이 들어갔다. 설경을 볼 수 있는 노천탕에서 온천을 하는 시간은 정말로 황홀했다. 전통적인 분위기를 살려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에 폭신하게 쌓인 설경과 그 뒤로 펼쳐진 설산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이 시리게 하는 풍경과 달리 온천의 물은 따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노부의 옆에는 아저씨가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죽을 것 같을 정도로 좋았다. 

여관에서는 점심 식사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은 친구에게 소개받은 식당에서 지역특산물을 이용한 요리들을 사 먹었다. 하나같이 맛있었다. 친구가 노부와 아저씨에게 내 준 별관에는 객실에 딸린 노천탕도 있었고 이곳의 풍경도 근사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객실의 노천탕에 함께 몸을 담그고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사실 노부는 아저씨와 함께 온천에 들어가며 조금 기대도 했다. 노부가 열심히 단련한 몸을 보여주면 아저씨가 노부가 이제 정말로 다 컸다는 걸 인정하고 그 되도않은 죄책감도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실제로 아저씨는 노부가 수건 한 장만 감고 나오자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노부가 분명히 봤다. 아저씨는 분명히 귀까지 새빨개졌었다. 하지만. 

"아저씨 얼굴이 새빨개."

그러나 먼저 탕에 들어가 있던 아저씨는 평소처럼 새침하게 대답했다. 

"온천이니까 그렇지. 물 뜨겁다. 조심해서 들어와라."

실제로 물이 뜨겁긴 했지만 얼굴이 온통 빨개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노부가 아저씨 옆에 딱 붙어 앉자 아저씨는 여전히 빨간 얼굴로 노부의 몸을 꼼꼼히 살폈다. 노부는 신났다. 아저씨가 노부의 탄탄한 가슴과 넓은 어깨, 단단한 팔뚝 등을 유심히 보는 것 같길래 몸을 좀 틀어서 넓은 등과 탱탱한 엉덩이나 탄탄한 허벅지도 잘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건만. 

"다행이다. 흉터가 많이 옅어졌네. 이제 잘 안 보여. 다행이네."

에이...

너무 오랫동안 새아버지놈에게 맞으며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노부의 몸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지만 노부는 그 이후로 아주 많이 자랐고 세월도 제법 흘렀기 때문에 흉터는 많이 옅어졌다. 아저씨는 노부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씻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노부의 몸을 보는지라 흉터가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아저씨를 몸으로 꼬시는 데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아저씨의 빨개진 얼굴도 봤고 (그건 분명 물이 뜨겁기 때문이 아니었다. 확실해!) 꿈같은 3박 4일의 여행을 즐기고 돌아온 뒤였다. 여느 때처럼 아저씨의 퇴근길을 마중나간 노부는 여전히 여행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서 들뜬 상태로 말했다. 

"우리 내년 여름에 또 바다에 놀러갈까요?"

노부가 생전 처음으로 여행을 갔던 건 아저씨와 함께 바다에 갔을 때였다. 중학교 때였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기도 했고 온천을 다녀와서 신나기도 했기 때문에 들떠서 한 말이었다. 

"봐서."
"나중에 저 졸업하고 취직하면 같이 해외여행도 갈까요? 가까운 나라도 괜찮고 휴가 길게 받아서 유럽으로 가도 괜찮고."
"... 언제까지 여행을 나랑 다니려고? 너도 애인 사귀고 애인이랑 놀러다녀."
"난 평생 아저씨하고만 여행 다닐 거예요. 데이트도 아저씨하고만 할 거고. 아저씨말고 다른 애인도 안 사귈 거예요."
"난 네 애인이 아니야."
"내 애인해 주면 되잖아요."

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고로케를 못 먹은 노부가 맘에 걸렸는지 오늘도 여전히 사 온 고로케 봉지를 꼭 쥐고 차갑게 내뱉었다. 

"노부. 니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서 이러는 거야."
"난 대체 언제까지 어린 건데요?"
"넌 아직 어려. 이제 겨우 20살이잖아."

그래, 노부는 그새 열심히 자라서 20살이 된 생일에 아저씨와 처음으로 술을 마셔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성인이 된 노부도 여전히 '넌 어려서'라고 거부했고, 노부의 마음 역시 '철없이 어린 감정'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22살에 11살이던 나를 맡아서 키웠어요. 아저씨는 22살에도 그 정도로 어른이었는데 20살인 나는 아직도 어린애예요?"

아저씨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때 어렸어. 고작 20살, 22살은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야."
"그래서 어린 나이에 날 맡은 걸 후회했어요? 어릴 때 뭘 잘 모를 때 한 결정이라서 후회한 적 있어요?"

아저씨는 걸음을 멈추고 노부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저씨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왜 그런 말을 해."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어리다고만-"
"너 왜 자꾸 나 곤란하게 만들어."

그 목소리는 몇 년 전 노부가 대입 시험을 치렀던 날, 앓아누웠던 그 밤에 내가 너를 오해하게 만들었냐고 물을 때의, 모든 게 다 아저씨의 탓이라고 하던 때의 그 목소리만큼 약하고 작아서. 정말로 꺼질 듯 작은 목소리라서 노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레스토랑에 출근한 노부는 밝게 일하려고 했지만 계속 힘이 빠졌다. 사장님과 형, 누나들도 그런 노부를 알아챘는지 브레이크 타임에 함께 쉬다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다이 형도 연하는 싫어요?"

식사를 마치고 차와 함께 나온 케이크를 조금씩 먹고 있던 다이 형은 깜짝 놀라더니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 배시시 웃었다. 

"어... 싫은 건 아닌데... 난 연상이 좋아."
"아니 왜요! 연하가 얼마나 좋은데!"

노부가 볼을 부풀리며 항의하자 사장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의 친구인 사장님은 아저씨와 노부의 관계, 아저씨가 계속 거부하고 있는 노부의 마음 등등도 알고 있었는지 피식 웃고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노부유키는 몰랐어? 우리 다이키치는 애인이 10살이나 연상이라고. 당연히 연상이 좋겠지."
"진짜요? 진짜로 사귀는 분이랑 10살 차이나요?"
"응."
"어떻게 10살 많은 애인을 꼬셨어요?"
"... 어?"
"난 아무리 꼬셔도 안 넘어오던데. 벌써 9년이나 꼬시는데 안 넘어와요. 완전 철벽."

사장님은 다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다이키치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어. 다이키치가 꼬신 게 아니라 아몬이 꼬신 거니까."
"진짜요?"

다이키치 형은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서 대답없이 웃기만 했다. 

"그 무뚝뚝한 인간이 다이키치 꼬시느라고 공 들이는 거 보고 내가 죽을 때가 됐나 했잖아. 아몬이 그러는 꼴을 보게 되다니."
"그분이 다이키치 형 많이 좋아하는구나."
"많이 좋아하지. 하루에 열 마디, 열 마디가 뭐야 다섯 마디도 안 할 인간이 다이키치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챙기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내 맘이 작은 건가."

노부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사장님은 케이크를 한 조각 덜어 접시에 담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전혀 안 작으니까 걱정 마."
"진짜요?"

노부가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로 묻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마치다 녀석이랑 20년 친구야. 마치다가 얼마나 융통성 없고 깐깐한 녀석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지만."

사장님은 고개를 숙여서 노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덧붙였다. 

"그 녀석이 너한테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도 잘 알지."

노부가 사장님의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장님을 빤히 바라보자, 사장님은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맘이 작아서가 아니라 마치다 녀석 모럴이 너무 강해서 문제일 텐데."

노부가 다시 시무룩해지자 사장님은 웃으며 덧붙였다. 

"좀 더 노력해 보자. 노부유키 군."





노부도 아저씨가 흔들린다는 건 사실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내가 널 오해하게 했냐고 묻던 말이나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하던 말도, 바로 어제 왜 자꾸 날 곤란하게 만드냐는 말 모두... 아저씨가 아저씨의 강한 모럴로는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그래서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노부의 마음이 아저씨를 힘들게만 하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평소에 지하철역까지 전력질주할 때와 달리 터덜터덜 지하철 역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아저씨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지하철 역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낯선 거리에서 엄마를 잃어 버린 아이처럼. 든든하게 지켜주고 소중하게 보듬어줄 사람을 갑자기 잃어 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당황한 아이처럼 혼란과 불안, 절망과 당황이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손에 든 핸드폰으로 노부에게 차마 전화를 하지는 못하는 아저씨를 발견한 노부는 잠깐 발이 멈췄다. 

스즈키 노부유키. 이 미친놈. 아저씨를 왜 저렇게 만들었어. 

그리고 그 순간 발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아저씨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아저씨는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가 달려가는 노부를 발견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의 얼굴에 가득했던 혼란과 불안, 절망과 당황이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지고 안도가 가득 들어차는 순간, 노부는 깨달았다. 

노부의 마음이 9년의 시간 그 어딘가에서 어느새 아저씨의 마음에 닿아 아저씨의 마음 속 철벽을 녹이고 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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