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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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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렇게 끝이 났던 것 같다.



감기에 걸려 사흘을 꼬박 아프고 난 후 출근한 병원에는 히라가 없었다. 같은 병원이기에 마주칠거라는 예상을 하고 집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했지만, 히라를 볼 수 조차 없었다. 차라리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거라며 좋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6년을 연인으로 지낸 사람의 안부가 걱정되는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순간에 증발한듯 아무도 행방을 몰랐다. 그렇게 지내다 들은 것이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였다.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때 그 병원에서 히라와 지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와 교수실이 다르다는 것, 진료실 층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 모습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문만 무성하던 키요이 소의 옛 연인인 히라 카즈나리의 등장으로 인해 키요이의 주위는 시끄러워졌다. 늘 웃고 다니던 예쁜 키요이에게 늘 그랬듯, 인턴들이 찾아 와서 묻는다. 정신과의 새로운 교수님과 정말 연인사이였냐고. 아무리 누구에게나 친절한 키요이여도 이런 사담까지, 특히나 잊고 싶었던 일까지 끄집어 내고 싶진않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온 키요이의 차가운 표정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그의 앞에서 만큼은 히라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서는 또 다시 소문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예쁘던 키요이의 얼굴에 이름만 나와도 그림자를 만드는 인물.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키요이가 6년을 소개팅도 받지 않고 지낼 만큼 매력을 가진건지. 사람들의 궁금증이 더 커진 것은 히라의 모습도 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키요이가 풍기는 아우라와 딱 정반대로, 동료들과 환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나라의 히라 카즈나리' 로 불렸다. 본인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었고, 일정한 선 안으로는 절대 누군가를 들이지 않았다. 동료는 동료로, 환자는 환자로, 그게 히라의 모토였다. 그런데 왠지 키요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다 사건은 히라의 환영회에서 발생했다.



그 환영회는 키요이도 참석이었다. 당연히 키요이는 가고 싶지 않아 이 핑계 저 핑계 말해보았지만, 병원의 인기남을 빼 줄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누군가의 배려로 키요이와 히라는 다른 테이블을 쓸 수 있었고, 눈을 마주칠 수 조차 없는 자리에 배치되었다. 그러다 다들 점점 술기운이 올라, 또 다시 안줏거리로 좋은 키요이의 과거를 들추기 시작했다. 맨정신으로 듣고 있기 힘들었던 키요이는 무의식적으로 술을 계속 마셨고, 거기에 오랜만에 당직이 아닌 오프였고, 콜이 와도 본인 대신 환자를 봐 줄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술을 조금 더 과하게 마신 것이 화근이 되었다.



점점 취하는 기분이 든 키요이는 정신을 차리려 바깥으로 나갔다. 히라와 헤어진 후 시작한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았지만,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라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불쑥 눈 앞에 라이터를 든 손이 나타났다. 익숙한 손이다. 키요이가 너무 좋아했던 길고 큰 손이다. 근데 얘도 담배를 피웠었나? 몸에 좋지 않은 것은 그 무엇도 안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사귈 때 였으면 라이터는 무슨, 입에 있던 담배부터 빼앗았을 것이다. 옆을 쳐다보니 히라의 옆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불을 붙여준 뒤 본인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술을 깨려고 나왔는데, 더 취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물어보지 못한걸 술 기운에 입 밖으로 내뱉았다. 


나는 계속 기다렸는데.

...

너는 나를 버렸잖아.

...

나를 정말 사랑한거야?

...





사고쳤다, 미친 입방정 키요이 소. 낯선 곳에서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설마 그 자식 집일까 싶어 두리번 거렸지만, 다행히도 다른 동료의 집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뱉은 말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도 찌질했던 물음은 자꾸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히라키요이 맇쿠유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