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68951815
view 2861
2023.10.18 01:26

토가와노즈에 토가노즈 올패컵 올드패션컵케이크






  노즈에는 자신이 입 밖으로 꺼낸 말에 스스로 놀라 눈살을 찌푸렸다. 토가와? 이름을 되뇌었지만 발음이 낯설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키리시마가 어깨 높이까지 쌓아 올린 접시를 위태롭게 내려놓으며 노즈에에게 물었다. 카운터에 몸을 기댄 채 넋 놓고 있던 노즈에는 도와줄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게 키리시마를 거들었다. 평일 점심 시간, 카페에는 주변 직장가에서 단체 여성 손님이 휘몰아친 직후였다. "미안, 미안." 노즈에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 키리시마가 방금 접시를 치워낸 테이블을 닦았다. 정리를 하면서도 시선은 테이블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여직원들의 웃음 소리로 북적거리던 카페는 소강상태를 맞았다. 커다란 통창이 카페 내부에 늦여름의 녹음을 비춰내고 있었다. 접시를 싱크대에 옮겨 놓은 다음, 키리시마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카운터 뒤편 직원용 의자에 털썩 앉았다. 런치 타임 피크 내내 수플레를 굽고 와플을 누르고 파르페를 담아내느라 진이 빠졌던 탓이리라.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직장을 관둔 이후, 오랜 숙원이었던 자기만의 카페를 차린 지 몇 달만에 자리를 잡은 키리시마였다. 때때로 앓는 소리는 냈어도 주어진 일은 당차게 해내는 인물이었다. 비슷한 시기 퇴사를 결정한 노즈에가 키리시마가 사장으로 있는 카페에서 일손을 돕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그녀의 수완 덕분이었다. 집 구석에만 있으면 뭐할 거냐며,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파트 타이머로 일하는 건 어떻겠느냐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줄담배만 피워대다간 사회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거라고 능청스러운 경고를 덧붙이기도 했다. 노즈에는 함께 일을 할 때에도 그래왔듯 힘빠진 웃음으로 대꾸했다. 그렇게 벌써 일주일 째 키리시마의 아기자기한 디저트 카페에서 평일 점심 무렵에 잠깐씩 일을 돕고 있었다.
  노즈에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렵고 놀라운 일이었다. 몇 년째 잘 다니던 직장에 별안간 사직서를 낸 것도, 딸기 팬케이크가 대표 메뉴인 카페의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매 점심 시간마다 찾아와 창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저 남자의 이름을 자신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다른 사람들이 직장으로 다 돌아가고 나서도 묵묵히 팬케이크를 포크로 쪼개먹으며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노즈에. 뭐라고 했냐니까." 키리시마는 노즈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저 남자 이름이 토가와?" 노즈에는 흠칫 놀랐다. "아는 사람이야?" 키리시마의 물음에 노즈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 글쎄는 뭐야." 피로감에 젖은 목소리로 불평하던 키리시마는 더는 캐묻지는 않고 손님이 줄어든 틈을 타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뒤쪽 창고로 향했다. 혼자 카운터 앞에 선 노즈에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담배가 심하게 당겼지만 다 떨어진 참이었다.

  노즈에는 자신이 이름을 떠올려낸, 창가에 앉은 그 남자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몇몇 손님들이 자리를 떠 그 남자가 카페의 유일한 손님이 되었다. 일주일 째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메뉴를 먹는 남자.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첫눈에 반할 만큼 훤칠하고 번듯했으나, 침착하다 못해 쓸쓸한 구석이 있는 젊은 남자였다. 이상한 건 그 남자를 볼 때 노즈에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들이 재생된다는 거였다. 이거, 설마 전생인가? 노즈에는 속엣말로 중얼거리며 픽 웃었다.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미신이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흐리멍텅한 걸로 보아 어느 날 꾼 꿈의 일부이겠거려니 싶었다. 팬케이크를 썰어 먹는 토가와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진짜 기억일 리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생에 처음 보는 사람인 걸. 기껏해야 데자뷰이려나 싶었다.
  창가의 남자, 그러니까 노즈에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바에 따르면 '토가와'라는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 말 없이 팬케이크를 먹는 데만 집중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카운터로 돌아오면 토가와는 어느새 접시를 비운 채 사라져 있었다. 토가와의 주문도 내내 키리시마가 받아왔기에 노즈에와 토가와는 그렇게 지난 일주일 간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오늘도 그렇게 흘러가겠거려니 싶어, 노즈에는 쌓인 설거짓거리를 처리하기 위해 싱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낮게 긁는 목소리가 노즈에의 폐부를 훅 뚫고 지나갔다. "저기. 노즈에 상." 뒤를 돌아보니 카운터 바로 앞에 토가와가 서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를 마주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굳어 있던 노즈에는 자신의 앞치마에 직원용 이름표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고, 머리를 올려 넘긴 토가와. 방금까지 폭신한 팬케이크를 썰어 먹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만큼 인상이 다소 차갑고 딱딱했다. 그러면서도 노즈에를 공손하게 불러세운 뒤 대답을 기다리느라 어색해하는 기색이 느껴지기도 해, 노즈에는 그런 간극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별안간 가깝게 마주선 토가와에게서는 짙푸른 숲과 흙을 닮은 향기가 났다. "나... 말이야?" 노즈에는 저도 모르게 반말로 답을 했다. 마치 그와 어느 한 시절 부하 직원과 상사로 지내기라도 했던 것마냥.
  불쑥 가까워진 그의 이목구비를 제대로 마주보지는 못했다. 토가와가 자신의 이름표를 보고 이름을 부른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즈에는 어떻게 가르쳐준 적도 없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게다가 토가와가 다가오자 점차 선명해져가는 이 기억들은 다 뭐란 말인가. 갑자기 휘몰아치는 감각과 감정에 노즈에는 혼란스러웠다. 토가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은 방 한 구석에서 토가와가 자신을 앳된 몸짓으로 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입술을 벌리며, 토가와가 형편 없이 사랑을 고백하던 그 순간이. 그때야 불쑥 다가와 말을 붙인 토가와의 눈을 제대로 마주보는데, 그의 눈빛은 이미 축축했다. 

  노즈에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관둔 이유는 그곳에 토가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월요일, 노즈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출근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토가와가 없네."라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노즈에의 직장에 토가와라는 사람은 존재한 적 자체가 없었음에도 탕비실에서, 식당에서, 사무실 앞자리에서 토가와라는 이를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노즈에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깊은 내면이 그렇게 시키고 있었다. 토가와가 없는 곳에는 의미가 없다고. 그래서 직장을 관두었다. 그게 다였다. 기억의 베일이 걷혀가고 있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마주앉아 케이크를 나누어먹으며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나. 우리는 연인이었나?

  "어, 그게." 토가와가 몇 차례 헛기침했다. 말아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노즈에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카페 일을 돕고 있는 건가요?" 노즈에는 침착한 척을 하며 되물었다. "이번에는, 이라니. 우리는 오늘 처음 대화하는데." 노즈에의 심장도 터져나갈 듯 떨리고 있었다. 토가와는 자신에게 있어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고작 한 번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는 건가. 접합부가 뚝뚝 끊겨나간 기억의 조각들이 노즈에에게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아. 그랬었죠." 토가와는 민망한 듯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뗐다. "앞치마를 입은 모습도 잘 어울립니다." 노즈에는 몹시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뭐... 나는 상당히 어색한데 말이지." 그제야 토가와도 따라 웃었다. "무례를 저질렀네요. 노즈에 상. 처음 만나는 사이에." "글쎄. 아냐. 나름 괜찮았어. 나쁘지 않았어."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려는 토가와의 모습에 그를 나긋나긋 달래게 되는 것이었다. 기억 속의 토가와는 사무치게 애처로워 보였다. 그게 노즈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우리. 정말 처음 맞아?" 노즈에가 묻자, 토가와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작게 웃었다. "뜬금 없는 소리지만, 노즈에 상." "응, 응." "여자 놀이를 해보지 않으실래요?" 그의 설명이 지지부진해졌다. "그러니까... 디저트를 찾아먹으면서 일종의 안티 에이징을 하는 겁니다." 토가와가 노즈에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처음 느껴보는 체온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토가와는 눈빛만으로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면 뭔가 떠오를지 모르죠." 사실 아까부터 그가 울먹이는 건지, 미소를 짓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재생다운로드fcf2c88f427f3ef83cd60de00e66ab84.gif

토가와노즈에 회귀물 bgsd
둘 중 토가와만이 모든 걸 기억한 채 자꾸만 기억 없는 노즈에를 되찾아오는 거
그런데 회귀가 거듭될수록 노즈에도 토가와에 대한 기억을 차츰 되찾아가는 그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