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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16:09

 

공포 ㅈㅇ

스압 ㅈㅇ

 

키사라기역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5년 전, 쿠로사와 유이치는 오랜 기간 짝사랑 중이었던 상대를 잃었다.

아니, 잃었다고 표현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기에 그는 잃었다는 묘사를 자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어 아다치 키요시는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나날이 흔적이 옅어져만 가고 있었다.

 

 

그가 실종된 첫날, 쿠로사와는 인터넷을 통해 소식이 닿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인역에 갇혀 도움을 호소하던 아다치,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오싹한 내용을 서술한 글의 주인공이 그임을 알아보았을 때 쿠로사와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쿠로사와는 즉시 익명의 상태였던 자신의 정체를 공개해 아다치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인터넷을 통해 텍스트로만 서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한계적인 상황에서 결국 쿠로사와는 향후 몇 년 동안 그를 그리워해야만 미래를 맞이해야만 했으니까.

 

 

 

731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16:27

ID: ■■■a+cki44

 

쿠로사와, 날 찾아 줘서 고마워.

하지만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곧 한계에 다다를 거야.

일단은 역에서 벗어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해. 회사에는 대신 안부를 전해 줘.

 

부탁할게.

 

 

 

여기까지였다. 아다치가 최종적으로 전한 자신의 상태는.

역의 밖으로 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아다치의 행방은 그 이후 묘연해졌고, 사건을 더욱 오리무중으로 몰아넣는 일련의 전개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쿠로사와가 할 수 있는 것은 회사에 아다치의 상황을 알리고 경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외에는 없었다.

아다치는 얼마나 답답하고 혼란스러웠을까? 실종자의 발생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회사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 역에서의 실종이라는 주제에는 어느 정도 꺼리는 기색. 

그마저도 평소 유치한 장난 같은 건 치지 않는 쿠로사와의 이미지가 좋게 작용해 마침내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다치 키요시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는 인터넷에 기재된대로 신주쿠역이 마지막. 수많은 인원 속에서 어렵게 찾아낸 그의 모습은 도저히 다음 날 사라져 버릴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열차에 탑승한 아다치 키요시는 노선 내의 어느 역에서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렇게 아다치의 실종 소식은 정말이지 겨우,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수사가 시작됐지만 쿠로사와가 맞닥뜨린 것은 희망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를 동안 그의 실종이 여전하다는 잔인한 현실뿐.

 

생존도, 귀환의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오직 쿠로사와만이 진실이라 믿고 있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유실된 데이터, 어떤 연유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들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쿠로사와는 황급히 스크린샷 캡처를 통해 완벽한 소실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아다치와 소통하였다는 쿠로사와의 주장을 의아하게 여긴 경찰 측에서는 그를 참고인 신분으로서 길지 않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 그러니까, 아다치 씨는 현재…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역에 홀로 남겨졌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으나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는 건 가능했다는 건가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저와 소통했던 인터넷 사용자가 분명히 아다치일 거라 생각해요. 실질적인 실종 추정 시각, 말투, 자신을 설명하는 정보 등 모든 것이 아다치와 일치했으니까요.“

 

“쿠로사와 씨, 아다치 씨와 소통하셨다는 그 인터넷 글 말입니다만. 말씀대로라면 쿠로사와 씨 이외에도 목격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같은 글을 목격하고, 대화했다는 제보가 없는 이유 또한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고요.”

 

“… 스크린샷을 통해 대화의 일부를 보관해 두었습니다. 아다치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예요. 이것으로 뭔가 어떻게든….”

 

 

쿠로사와 씨, 그것은 질 나쁜 네티즌의 장난일 수도 있어요.

이것은 제시한 스크린샷 이미지에 대한 경찰의 반응이었다. 아다치를 알고 있는 누군가, 또는 그의 실종에 연관되어 있는 용의자나 공범의 소행. 그리고 그것의 목적은 수사에 방해를 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매몰찬 부정.

자신의 주소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인터넷 속 아다치의 말에 의하면 글을 게시한 IP조차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조사를 심화한다면 무언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상태로는 그것조차 불확실.

 

자의에 의해서인지, 타의에 의해서인지 아다치가 현재 갇혀 있는 키사라기역에 대한 게시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꽤 오래도록 갱신되고 있던 글이니만큼 알 수 없는 삭제 조치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네티즌이 등장할 법도 할 텐데, 그것은 마치…. 오직 쿠로사와만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너무나도 선명한 꿈이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만큼.

 

글이 삭제된 이후, 쿠로사와는 곧바로 해당 사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다.

 

 

1 무명 : 20■■/10/06(金) 00:03

ID: ■■■+9648u1

 

키사라기역에 갇혔다는 글 말인데요,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 글 속의 실종자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직원입니다.

어째서 삭제되었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2 무명 : 20■■/10/06(金) 00:31

ID: ■■■98ergh3

 

잠이나 자. 그런 글 구경해 본 적도 없는데?

 

 

 

 

3 무명 : 20■■/10/06(金) 00:55

ID: ■■■+10e707

 

실종 사건은 경찰에 신고하도록!

 

 

 

 

4 무명 : 20■■/10/06(金) 01:27 

ID: ■■■q42r8u1

 

전혀 모르겠는데, 그런 내용.

키사라기가 뭔데?

 

 

 

정말로 꿈과 같은 일이었던 건가? 자신이 본 것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전개에 쿠로사와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혼런이 가중되고 있었다.

음산한 키사라기역의 사진, 아무도 없는 주택가, 그리고 아다치가 남긴 모든 메시지의 내용이 이토록 생생한데 쿠로사와를 제외한 누구의 기억 속에도 없다는 상황을 납득하기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쿠로사와의 사진 앱 속에는 삭제 이전의 상황이 찍혀 있는 캡처본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도 했으니까.

당시의 아다치는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다소 지쳐 보인듯했으나 여러 사용자의 질문에 침착하게 답변해 왔고 쿠로사와의 글에도 문제없이 반응하는 등 별다른 문제 징후는 보이지 않았으나 글이 삭제되기 전, 갑작스러운 이상 행동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캡처된 이미지 속 아다치의 메시지는 아래의 내용이 전부였다.

 

 

 

921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32

ID: ■■■a+cki44

 

사람이 없는 무인역에 도달했다면

빠르게 열차에서 내려 주세요.

열차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다음 역도 없습니다.

 

 

 

 

 

922 무명 : 20■■/10/03(火) 23:34

ID: ■■■58ke101

 

>>921

어이——! 돌아온 거냐!

아직 살아있어? 귀가는?

 

 

 

 

 

923 무명 : 20■■/10/03(火) 23:34

ID: ■■■u1233k7

 

>>921

주인공 등장! 

현재 상황은? 

이상한 소리는 그만둬 ㅋㅋㅋㅋ

 

 

 

 

 

924 무명 : 20■■/10/03(火) 23:35

ID: ■■■+10kr15

 

>>921

이제 안심해! 실종 신고는 접수됐대.

이 녀석, 멘탈 멀쩡해?

 

 

 

 

 

925 무명 : 20■■/10/03(火) 23:36

ID: ■■■q42r8u1

 

또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제 좀 쉬도록 해.

 

 

 

 

 

926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38

ID: ■■■a+cki44

 

자신 이외의 사람을 찾는 행위는 위험합니다.

안전해질 때까지 역 안에 머물ㄹ주세요

 

 

 

 

 

927 무명:20■■/10/03(火) 23:39

ID: ■■■4k66wl

 

???

 

 

 

 

928 무명:20■■/10/03(火) 23:40 

ID: ■■■51kl82t

 

뭐냐, 이거? 저 녀석 왜 저러는 거야?

 

 

 

 

 

926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2

ID: ■■■a+cki44

 

운이 좋으면 경찰이 구해줄거예요

 

 

 

 

927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3

ID: ■■■a+cki44

 

편의점의 음식은 먹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먹을것은@:&않ㅅ—;

점장을 마주치면 숨을 참아요

 

 

 

 

 

928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3

ID: ■■■a+cki44

 

열차의 선로는 탈출구가 아닙니다.

절대로 진입하지 마세요.

 

 

 

 

929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4

ID: ■■■a+cki44

 

에스컬레이터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원래 있었나?

 

 

 

 

 

930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5

ID: ■■■a+cki44

 

이곳에 자신 이외의 사람은 없습니다

한 명의 사람도 없는 것이 무인역의 조건입니다

조심해주세요

 

 

 

 

 

931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5

ID: ■■■a+cki44

 

곧장 지하철 보관함부터 확인할 것.

 

 

 

 

 

932 아다치 키요시:20■■/10/03(火) 23:46

ID: ■■■a+cki44

 

내 생일은 10월 1일이야

 

 

 

 

 

 

 

말 그대로 미친듯이, 아다치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미친듯이 메시지를 올려대고 있었다.

영문 모를 내용으로 이루어진 매시지가 폭주하듯 연달아 갱신되는 동안 그 누구도 감히 끼어들어 흐름을 끊지 못했고, 쿠로사와 또한 모든 생각을 멈춘 채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뿐이었다.

도대체 아다치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순간, 쿠로사와는 본능에 가까운 손길로 침착하게 모든 내용을 캡처해 두기 시작했다. 

 

아다치는 과연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모든 흔적이 지워진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토요카와에서는 아다치의 이름이 금기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었다. 사내 최초의 실종자, 잠재적 사망자, 그럼에도 그의 성실한 면은 좋게 평가되었기에 그를 추억하는 것은 슬픈 일이므로 모든 이들이 가급적 언급을 피했다.

이렇게 5년, 그동안 쿠로사와의 삶은 아무런 낙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 그 자체였다.

어쩌면 아다치의 생존을 믿고 있는 유일한 1인일 수도 있고.

 

 

“아다치, 보고 싶어….”

 

 

쿠로사와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아다치를 따라 자취를 감추고 싶은 마음뿐, 아다치가 제 삶에서 사라진 이상 그에게는 일을 열심히 한다거나 남에게 잘 보인다거나 하는 것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다시 아다치가 제 앞에 나타난다면 그땐 참을 수 없겠지.

제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품에 안고 놓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다치의 공백이 길어지는 동안, 쿠로사와의 루틴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어떤 계산을 염두에 두고 벌인 짓은 아니었으나 회사에서 가깝던 집을 처분하고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곳으로 옮긴 곳.

그곳에서 회사까지 출퇴근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신주쿠역을 거쳐야만 했다. 조금 번거로워지는 것 정도는 그에게 아무 상관이 없었을 터다. 그저 아다치가 일상적으로 지나쳐왔을, 그렇게 영영 사라져 버린 길의 일부를 조금이라도 함께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니.

 

한편으로는 모든 단서가 사라진 키사라기역으로의 위험한 도달과 그를 통해 아다치와의 재회를 바라는 소망이기도 했다.

 

 

 

 

 

 

 

 

35살의 쿠로사와 유이치는 올해도 변함없이 아다치의 생일을 홀로 기억하고, 축하한다.

아다치를 닮아 달콤하고 부드러운 생크림케이크를 구매하기 위해 진열대를 바라보던 쿠로사와는 설탕에 졸여진 체리가 소담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골랐다.

다른 예쁜 케이크도 많지만 아다치는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아다치가 함께 먹어 주지는 않겠지만 멀리서라도 축하하는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너를 기다린다고, 함께하고 싶다고.

비록 자신은 실종 당시의 아다치보다 5살이나 많아졌지만 자신의 기억 속 영원히 30살로 남아 있을 아다치는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쿠로사와는 케이크 박스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열차에 탑승한다. 출발지는 신주쿠역.

어쩐지 평소보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고, 열차도 한산한 덕분에 기묘하게 느껴지는 신주쿠역에서 쿠로사와는 그날도 어김없이 열차에 올라 비어 있는 좌석에 앉았다.

이 시간대에 비어 있는 건 처음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다치는…. 5년 전의 아다치는 오늘 같은 날 어떤 심정으로 열차에서 잠들었을까.

다시 만나면 묻고 싶은 것들만 한가득, 이제는 수없이 느꼈을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을 또 상기시키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쿠로사와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했다.

자신과 같이 잠들어 있는 여러 명의 승객, 열차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얼마나 지나온 건지, 다음 역이 어디인지 표시가 이루어지던 전광판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노이즈뿐.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아도 열차는 특별한 문제 없이 달리고 있었다.

체감상으론 아마 조금 있으면 내려야 할 텐데, 어디까지 왔는지를 모르니 잠시 생각할 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때는 그로부터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급행도 아닌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기만 하는 일은 없으니까.

 

 

‘이런 날에 열차 사고인가. 기관사는 뭘 하는 거야?‘

 

 

문제가 생긴 열차는 단순히 정차할 역을 지나서 멈추는 경우도 있겠지만 크게는 탈선 등으로 이어지면 매우 곤란해지므로 쿠로사와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안내 방송도 없는 상황,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케이크를 끌어안은 채 고민하던 쿠로사와의 걱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끝날 수 있었다.

 

다음 역의 표시도 띄워 주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정차하는 열차, 열차의 문이 열렸을 때 쿠로사와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여져야 했다.

적막한 풍경,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으며 열차 안의 승객들도 변함없이 잠들어 있을뿐이다. 이곳은 어디일까?

 

쿠로사와는 조금 더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그 순간 머릿속에 맴도는 메시지가 없었다면.

 

 

‘사람이 없는 무인역에 도달했다면 빠르게 열차에서 내려 주세요. 열차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다음 역도 없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과는 반대로 점차 차가워지는 머릿속은 최대한 이 상황을 침착하게 바라보길 바라는 듯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평소와 다른 날이니까, 평소와 다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자기 위로와 함깨 조심스럽게 좌석에서 일어난 쿠로사와는 여전히 잠든 상태의 다른 승객들을 힐끗 바라보다 이내 열차에서 하차하는 것을 결정했다.

 

스르륵 - 

쿠로사와가 밖으로 나옴과 동시애 닫히는 열차의 문. 어떤 생각이 들기도 전에 열차는 쿠로사와를 지나쳐 빠르게 멀어져 간다. 

어째서 내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안에 있는 승객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저 열차의 종점은 어디일까.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애써 열차를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무인역, 새카만 밤하늘의 어둑에도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최소한의 빛만 존재하는 그런 곳인 듯했다.

풀벌레 소리조차 없는 정적. 이유 모를 초조함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쿠로사와가 케이크를 단단히 고쳐 쥔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다 해도 목적지는 알 수 없음. 스마트폰을 통해 다시 교통을 검색해도 데이터 로드에 실패했다는 오류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자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곧장 지하철 보관함부터 확인할 것.‘

 





1571577054010.jpg
 

쿠로사와는 키사라기역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히라가나로 조잡하게 적힌 역 간판을 확인하자마자 쿠로사와는 자꾸만 불안감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빠르게 지하철 보관함을 찾아 향하기 시작했다.

5년만에 새롭게 깨달은 사실. 

아다치의 마지막 메시지들은 혹시 모를 키사라기역의 방문객을 위한 경고이자 안내였다. 무엇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과 같이 영문도 모르고 헤맬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며 보낸 그것들은 앞으로 쿠로사와가 따를 지침이 되어 주겠지.

 

그렇지만 쿠로사와는 좀처럼 동요를 잠재우기 힘들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실존하지도 않는 유령 역에서 홀로 있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움을 부를 수밖에 없으니까.

아다치의 생환을 위해, 그를 향한 그리움만으로 키사라기역에 방문하길 원했지만 갑작스레 벌어진 기이한 일에 반색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건 아니었다.

적어도 아다치는 마지막 순간 이곳이 위험한 장소임을 어필하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지하철 보관함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일부러 칸마다 문을 열어 둔 것인지, 아다치가 확인해 보라 지시한 보관함의 칸은 쉽게 추측이 가능했다. 그 칸만 문이 닫혀 있었으니까.

자물쇠가 걸려 있긴 하지만 5년 전의 아다치가 워낙 대놓고 힌트를 던져놨기에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001’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리자 그 안에는 단순한 디자인의 미니 수첩으로 보이는 것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그것을 꺼내든 쿠로사와가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겉으로는 특이한 사항이 없는 정말 평범한 수첩.

아다치는…. 아마 이걸 읽어 보길 유도한 거겠지. 쿠로사와는 조심스럽게 수첩을 열어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치 좋아하는 소설책에 집중히듯, 그렇게 꼿꼿하게 서서 수첩의 내용을 읽어나가던 쿠로사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수첩을 덮고 역 한가운데에 놓여진 벤치에 다가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존재하지 않는 역에서의 행동 안내]

 

이것을 읽는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 이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꼭 읽어 보시고 위험한 일을 예방하세요.

가급적이면 보관함에서 수첩을 꺼낸 순간부터, 그러니까 역 내에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수첩의 내용은 주기적으로 추가 기록 예정입니다.

 

 

 

 

1. 

지금 계신 곳이 어디인가요? 

키사라기역의 내부라면 날이 밝기 전까지는 되도록 안에 계세요. 지금의 당신이 갈 수 있는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밖이라면 당장 역 안으로 돌아가세요. 

지하로 향할 때까지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최대한 조심히 향해야 합니다.

 

이곳은 이방인을 반기지 않습니다.

 

 

 

2.

이곳에 도달한 시간이 밤이라면 허기와 갈증을 최대한 통제하세요. 하룻밤만 참아 주세요.

쓸데없는 체력의 낭비는 당신의 안전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편의점, 자판기 등을 이용하고자 하는 충동이 들 수 있습니다만… 그건 좋지 않습니다.

키사라기역의 내부에도 자판기가 있으니 생수를 마시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지하철 보관함이 있는 지하층에서는 당신에게 해를 끼칠 만한 요소는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잠을 청하거나,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하룻밤을 보내면 됩니다.

 

 

 

3.

선로를 이용해 탈출하려는 생각은 그만두세요.

이곳은 이전 역도, 다음 역도 없습니다.

호기심과 두려움에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선로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무리하게 터널을 이동하는 것만 아니면 위험하지 않으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4.

여기는 무인역입니다.

지상층부터는 간혹 역무원의 복장을 한 노년의 여성이 발견되곤 합니다.

 

역무원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그는 대체로 호의적일 겁니다. 인사와 함께 말을 걸어온다면 정중한 태도로 그의 도움을 거절하세요.

그렇게 한다면 그는 흔쾌히 당신에게서 관심을 거둘 겁니다.

 

단, 그의 표정이 화가 나 있거나 인사를 생략하고 말을 건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침착하게 “역내 화장실이 잠겨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세요. 그가 해결하러 간 사이 빠르게 도망쳐서 밖으로 나오거나, 지하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노년의 여성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특별히 피해를 끼치지는 않으나,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친근하게 대해 주면 가끔 선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노파는 호의적인 존재이기에 친하게 지내도 상관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심해 주세요.

이곳은 무인역입니다.

그들을 괜히 자극하지 마세요.

 

 

 

 

5.

바깥 활동은 아침이 되면.

아— 정확히는 오전 7시 30분이 지난 후에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낮부터는 자유롭게 활동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길에서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대화를 나누거나 눈빛을 주고받는 등의 행위는 삼가해 주세요.

아니, 절대로 금지입니다.

 

만약… 실수로 이 항목을 지키지 못했다면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나 빠르게 파출소에 들어가세요.

 

파출소는 편의점의 옆 건물에 있습니다.

 

 

 

 

6.

허기나 갈증이 심해졌다고 해서 함부로 근처의 음식점이나 편의점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참아 주세요.

 

 

 

 

 

7.

제대로 해가 뜬 뒤 활동을 시작했다면 역에서 나와 일직선으로만 걸어 주세요. 

다른 방향으로 살폈을 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저는 이렇게 하고 무사했기에 그대로 작성합니다.

 

편의점을 지나친 후에 파출소가 보일 겁니다.

이곳은 외지인을 반기지 않지만 경찰은 친절하니 믿어도 좋습니다. 

다만… 도움을 받을 땐 늘 대가를 지불하세요. 주로 음료나 과자, 인스턴트 음식 등을 요구합니다.

가끔 다른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만, 생명에 지장이 있는 수준일 경우엔 해당 사유를 이유로 정중하게 조정을 요청하시면 됩니다.

 

처음 파출소를 방문한다면 편의점이나 자판기애서 그들에게 선물할 음료를 구매하세요. 서너 개 정도면 적당합니다.

하지만 체리맛은 피하세요. 그것을 받은 경찰이 불쾌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조심해 주세요.

 

그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당신이 어떤 용건으로 방문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며, 경찰들은 외지인인 당신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협력해 줄 겁니다.

 

 

 

8.

경찰관과 동행하게 되었다면 그동안은 안전합니다.

특별히 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해 주지는 않아도 됩니다만, 무례한 언행을 보여 비호감을 사지 않도록 하세요.

 

그들은 유일한 협력자이지만 당신을 꼭 도와야 할 의무까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움을 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된 바는 없으나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죠.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마음의 준비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경찰관은 당장 당신을 돌려보내 줄 수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때가 되어야 한다”라는 대답만 할 거예요.

그러니 곤란하게 만들지 마시고, 그의 지시에 따라 생활할 장소와 필요한 수칙을 전달받으면 됩니다.

 

 

 

9.

모든 외부 활동은 아침, 또는 낮에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사항입니다.

 

여러 이유로 이 항목을 지키지 못해 밤까지 외출을 지속하게 될 경우에는….

아마, 대처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밤에 바깥 활동을 하다가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경찰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10.

현재까지는 경찰의 협력을 제외한 탈출 가능성을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작성자인 저 역시도 아직 탈출하지 못했어요.

애초에 탈출하는 방법이 있는지부터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하기에는 무섭기도 하고, 매우 위험하기에 용기가 나지 않는 탓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여긴 상식적인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의지를 잃지 마시고, 되도록이면 이 내용을 따라 주세요. 당신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 추가

4번 항목에 서술된 노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만약… 제가 목숨을 잃게 된다면 보관함에는 꽃 한 송이가 같이 들어 있을 겁니다.

꽃이 없고 수첩만 있다면 아직 생존 중입니다.

 

 

 

 

아다치 키요시 씀

 

 

 

 

 

 

 

 

 

마치아카 쿠로아다 동정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