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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30 17:08
ㅈㅇㅁㅇ

 

마치다는 쫓기고 있었다.
 

북부의 깊은 숲속으로 말들이 달렸다. 마치다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다른 가문의 기사들이 맹렬하게 뒤쫓고 있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따돌릴 수 있었겠으나, 마치다의 품에는 아기가 있었다. 아무리 재빠른 기사라 하여도 쉬이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마치다로부터 조금 앞서서 달리고 있는 스즈키가 그의 뒤로 활을 쏘았다. 하지만 가문의 기사들도 보통은 아니었는지, 조금도 주춤하는 기색이 없었다. 북부의 대공가, 스즈키 가를 상대로 보낸 기사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즈키의 활을 시발점으로 상대쪽에서도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치다는 몸을 깊이 숙였다. 북부의 숲은 나무가 빽빽하여 빠른 속도로 달리며 활로 공격하기에 적절치 않았다. 그러나 마냥 방심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집착적으로 그들을 쫓고 있었다.
 

그 순간, 빠르게 날아온 화살이 마치다의 왼쪽 다리에 맞았다. 갑작스러운 힘에 말이 놀랐는지 크게 휘청였다. 마치다는 균형을 잃고 말에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크게 다쳤는지 순간 눈앞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으나, 그 순간에도 마치다는 품 안의 아이를 꼭 끌어안아 보호했다. 아이는 크게 울었으나, 놀란 정도였는지 다행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케이!"

 

스즈키가 황급히 돌아왔다. 마치다는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왼발의 통증이 끔찍했다. 이대로는 이동할 수 없다. 마치다는 그 짧은 사이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스즈키는 반대하겠지만...

 

"케이, 다쳤어? 빨리..."

"대공 전하."

 

마치다가 그를 대공 전하로 부르는 것은 반려가 아닌, 기사로서의 마치다로 스즈키를 대할 때였다. 이 순간에 대공을 보필하는 한 가문의 기사가 선택할 일이란 뻔했다. 스즈키와 마치다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스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케이. 그럴 수는 없어."

"이 방법 뿐입니다. 제가 여기서 시간을 벌겠습니다. 아몬 가의 영지까지라면 불가능한 것은..."

"그럴 수 없다니까!"

"노부, 제발..."

 

스즈키의 투명한 눈동자가 분노로 번뜩였다. 마치다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 상황을 피할 수 없는 무력함, 자신들을 적으로 돌린 이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마치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설움...

 

"제발, 아이는 살려줘, 노부..."

"... ..."

"사랑해. 마지막까지 너를 위해 살게 해줘."

 

나는 네 기사니까.
 

아이는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 사이 울음을 그친 채 마치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누굴 닮아갈지 보고 싶었는데. 마치다는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킨 채 아이를 스즈키에게 안겼다. 스즈키는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가."

"케이, 내가... 돌아올게. 조금만 버텨."

 

스즈키는 진심이었다. 마치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갈게. 금방 돌아갈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스즈키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길로 빠르게 말을 타고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 그들을 따라잡은 기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즈키의 말대로, 마치다의 실력이라면 버텨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다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다는 차라리 그들을 최대한 묶어놓는 것을 목표로 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주군, 그리고 그들의 아이를 위해서.
 

마치다 케이타, 북부의 한 기사단장은 그 날 운명했다.


*

 

"-노보루."

"... ..."

"노보루 -. 정신차려! 주문하겠다니까!"

 

그 순간 정신차린 마치다의 눈앞에는 실로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허름한 가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따뜻한 기온,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저를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노보루! 잠들었어?"

"네? 제가 무슨..."

"에휴... 됐어. 내가 알아서 가져갈게."

 

마치다 앞의 남자는 자신의 앞에 동전을 두고는 가게에서 빵 한 덩이를 들고 사라졌다. 마치다는 제 앞에 놓인 동전을 만져보았다. 이것은 남부의 화폐이다. 그러고 보니 가게 밖으로 나간 남자도 남부 평민의 복식을 하고 있었던 듯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마치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북부의 숲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부상으로 인해 기억이 흐리긴 했으나, 몇몇의 기사를 쓰러트린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뒤에서 급습한 다른 한 기사의 칼에...
 

마치다는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흉은 온데 간데 없었다. 아니, 자신 또한 남부의 복식을 하고 있었다. 기억이 끊긴 시점에 자신은 아마 죽었을 것이다. 아니, 설령 살았다 하더라도 갑작스레 남부의 한 가게로 이동했을 수는 없다. 스즈키가 그 사이 자신을 남부에 숨겨놓았다고 해도 흉 하나 없는 몸은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인데도 미묘하게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 마치다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노보루...?"

 

문득 방금 전의 남자가 자신을 부른 호칭을 돌이켜보았다. 노보루라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마치다는 주변을 아무렇게나 뒤져 제 얼굴을 비춰볼 수 있는 물체를 찾았다. 그는 가게에서 파는 것으로 보이는 큰 그릇에 물을 부어 자신을 비춰보았다. 물 위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다는 정처없이 거리를 돌았다. 자신은 아마 남부의 작은 마을에 있는 모양이었다. 와본 적은 없었으나, 일전에 남부를 방문하며 익혔던 지형과 건물들로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노보루, 하고 인사를 건넸다. 마치다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으나, 그들의 얼굴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의 집이 어딘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보다 지금 마치다의 사로잡는 것은 마지막의 기억이었다. 마지막 전투, 그곳에서 스즈키는 살았을까? 아이는? 지금은 언제일까? 남부의 이런 작은 마을에서 북부의 소식을 대체 어떻게 접한단 말인가? 허둥지둥 뛰어가는 통에 지나가는 몇몇과 부딪쳤으나, 마치다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지금에라도, 북부의 숲으로 뛰어갈 수만 있다면…

 

“조심해!”

 

그 순간 지나가는 수레에 몸을 크게 부딪친 마치다는 길바닥에 내뒹굴었다. 미처 알지 못했으나, 바닥에 주저앉은 순간부터 왼쪽 발목이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노보루! 여기는 공사 중이니까 위험하다고 했잖아.”

 

마음이 급해서 속도가 나지 않은 줄 알았더니, 그제서야 마치다는 자신의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전투 중에 다쳤던 다리가 여전히 아픈 것 같았다. 마치다가 끙끙거리며 일어서질 못하자, 한 남자가 자신을 일으켜 길 안쪽으로 옮겨주었다.

 

“괜찮아? 어디 다쳤어?”

 

그나저나 이 남자, 상당히 친한 기색이었다. 혹시 노보루와 친구인 걸까? 그의 눈치를 보자 그는 무언가 잘못 이해한듯, 괜찮다며 마치다를 힘껏 다독였다. 걱정이 가득한 손길이라 미안할 지경이었다. 정작 노보루라는 남자의 영혼은 어디로 꺼졌는지 알 수 없는데도.

 

“야마토-! 빨리 와서 이거 옮겨!”

“넵, 갑니다! 노보루, 여기서 좀 쉬고 있어!”

 

야마토구나. 그제야 반듯이 그를 올려다보자 야마토는 밝게 웃으며 다시 마치다가 부딪쳤던 수레를 옮기러 갔다.
 

공사 중이랬지. 사람들은 무거운 자재를 옮기며 길 한가운데에 무언가를 세우고 있었다. 나무로 된 구조물 사이로 조립 중인 동상이 보였다.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황제의 옷을 입은…

 

“노보루, 얌전히…!”

 

아마 야마토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그를 말려왔으나, 마치다는 듣지 않았다. 급하게 다가간 동상의 바닥에는 귀족적인 글귀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스즈키 노부유키 황제 즉위 10주년 기념상’

“10주년!”

 

마치다의 목소리가 처참히 갈라져 있었기에 말리러 다가온 야마토도 멈칫하고 말았다. 10주년, 무려 10주년이었다. 마치다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아주 조금 전에 보고 온 것만 같은 그 얼굴을 살폈다. 소년의 앳된 얼굴은 어디가고, 근엄한 황제의 얼굴을 하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즈키가, 황제가… 황제가 되었다고.”

 

고작 북부를 지키지 못해 마치다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방금까지도 제발 스즈키가 살아있기만을,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반려인 스즈키는, 결국 북부가 아닌 전 제국을 손에 넣은 것이다.
 

마치다는 황망한 기분에 동상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10주년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얼마나 많은 전쟁 속에서 스즈키는 살아남았던 것일까. 자신은 왜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식의 환생을 하게 된 것일까.


*

 

길거리 한복판에서 넋을 놓은 마치다를 데리고 야마토는 한 작은 집에 데려갔다. 자신의 앞에 놓인 묽은 스프를 보고서야 마치다는 자신이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보루라는 남자는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마치다가 이렇게 한입에 스프를 전부 해치워버릴 리는 없었다.
 

“일이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야마토는 그 말로 오늘의 사건을 일축하고는 더 먹으라며 빵 반 덩이를 내놓았다. 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마치다는 그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이곳은 야마토와 노보루 둘이 함께 지냈던 것으로 보였다. 자연스레 놓이는 두 명 분의 식사라든지, 생활감이 그러했다. 노보루는 아마 야마토와 친밀한 사이였겠지. 그 사이를 거짓말이라도 하듯 비집고 들어온 모양새 같아 마치다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그제서야 마치다는 지금 상황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마치다는 자신이 미쳐버린 노보루이거나, 노보루라는 청년의 몸에 자신의 영혼이 들어선 것,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동화나 시장의 촌극에서나 들은 이야기였으나, 지금으로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만일 자신이 마치다가 맞다면, 이것은 신이 주신 기회일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에게만 두 번째 생을 쥐어주진 않았을테니. 다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치다는 지금 당장, 스즈키의 곁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의 기사이자 그의 반려로서 당연한 일이었기에.

 

“야마토.”

“응?”

“혹시.. 스즈키 황제폐하를 만나뵐 방법이 없을까?”

 

야마토가 멍하니 마치다를 바라보자, 그제야 마치다는 자신이 노보루로서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북부의 귀족으로 살아왔던 마치다는 자신의 발언이 야마토에게 얼마나 황당하게 들렸을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던 평민이 도대체 황제를 어떻게 보러 간다는 말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폐하를 어떻게 뵈러 가?”

“그건…”

“노보루. 아무래도 많이 피곤한 것 같아.”

 

사이클이라도 다가오는 건가? 야마토는 걱정스레 말하며 마치다의 이마에 손을 올려 열을 짚어주었다. 이건 야마토가 노보루에게 하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치다는 가까워진 손길에 일순 귀끝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집에 함께 살고, 보살핌을 받고,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이클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니. 노보루라는 남자는 사실 야마토의 연인이었던 것인가?


*


 

마치다가 느끼는 혼란과 무색하게도 시간은 곧장 흐르기만 했다. 마치다가 빙의한 노보루의 몸은, 희한하게도 마치다가 전투 중에 다친 왼쪽 발이 불편했다. 야마토는 그것이 마치다가 빙의한 날 수레에서 부딪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마치다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도 그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야마토는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보았다. 덕분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마치다는 야마토에게 부탁해 빌려온 책들과 가게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치다가 기억하는 이후로 제국력은 대략 10년이 흘러 있었다. 스즈키가 즉위한 10주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죽은 이후로 북부는 제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치렀으며, 스즈키는 단번에 제국의 황제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이 된다.
 

마치다가 기억하는 스즈키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보이긴 했다. 마치다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스즈키는 황제에 충성하는 북부의 한 대공이었고, 그 이상의 권력욕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다 가문의 기사도 역시 공격이나 재패가 아닌, 수호를 위한 칼을 들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한 것은 산더미인데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었다.
 

의문인 것은 마치다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노보루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동네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가며 살아가는 듯 했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야마토와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사이였다. 다만 희한하게도 마치다가 정신을 차린 이후로 어떤 접촉도 해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알파와 오메가의 사이이기에 당연히 연인임을 상정하고 있었는데, 야마토의 묘한 거리감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보루와 야마토가 각인된 사이라는 점이었다. 야마토가 아무리 다가오지 않아도 노보루는 오메가로서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고, 불안한 사이클의 조짐도 없었다. 그렇다면 스즈키와의 각인은 완전히 없어진 걸까. 마치다는 못내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노보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마치다는 노보루의 기억이 없었다. 노보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다는 가끔 혼자서 빤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으나, 만약 자신이 노보루의 삶을 뺏은 거라면, 어쩌면 좋을까. 자신은 마치다로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노보루로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또 거울 보고 있어?”

 

야마토가 어느 새 다가와 놀리듯 말했다. 마치다가 고개를 돌리자 야마토는 평소처럼 시원스레 웃어보였다. 저녁 준비할게, 기다려. 일하고 와서 피곤할텐데도 야마토는 망설임 없이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나면 해가 질 때까지 집안일을 했다. 좁은 집은 둘이서 조금만 시간을 들여도 충분했다. 그리고 잘 준비를 하고 나면, 야마토는 노보루의 옆에 앉아 노보루가 잠들 때까지 다친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마치다의 다리는 처음 다쳤을 때만큼 고통스럽진 않았지만, 하지만 야마토가 매일 마사지해주고 나면 평상시 생활을 할 정도로는 회복이 되었다. 다만 야마토의 손길이 닿는 유일한 이 순간에야 마치다는 자신이 노보루가 아닌 마치다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전장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었으니까.

 

“아프진 않아?”

“응… …”

 

어쩌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는 알지 못해도, 야마토가 노보루를 아낀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둘의 삶은 서로를 깊이 의지하고 있었으리라.

마치다는 야마토의 옆을 바라보며, 스즈키를 떠올렸다. 스즈키도 마치다도, 워낙에 튼튼한 몸이었지만 둘다 칼을 잡는 사람들이었기에 빈번하게 상처가 났었다. 그럴 때마다 서로가 다친 것처럼 안타까워하고, 나을 때까지 서로를 보살폈었다. 하인들이나 시녀들을 시킬 수도 있었으나, 특히 스즈키는 마치다의 몸을 정말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자신은 연약한 영애가 아니라고 하여도 스즈키는 단호했다.

 

‘나의 기사이니 네 몸은 손가락 하나하나 모두 내 것처럼 소중히 여길 거야.’

 

야마토 역시 노보루를 그만큼 아껴주고 있는 것일까. 마치다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스즈키는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황제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신은 눈 깜빡할 시간이었으나, 10년이면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이미 스즈키는 자신을 전부 잊었을지도 모른다. 황제라면, 황후를 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을테니 그의 곁에 다른 이를 앉혔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마치다와 스즈키의 각인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의 반려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야마토의 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다는 가만 눈을 감았다. 마치다의 삶은 이미 끝이 났다. 어떤 마법이 일어나 자신이 이 몸에 붙어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다는 죽었다. 그러니 더이상 마치다의 이름을 사용하려는 미련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남부의 시간은 평온히 흘렀다. 온화하고 잘 바뀌지 않는 날씨 덕에 하루하루가 편안했다. 북부에서 살던 시절에 남부의 이 기온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마치다는 가만 가게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한 손님이 들어오자, 마치다는 평소처럼 인사했다. 가게는 간단한 식료품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줄 아는 분들이나 찾으실 신문이나 잡다한 책도 마련되어있어 생각보다 다양한 손님들이 찾았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차림새가 고급진 것이 못해도 작위가 있는 자 같았다. 이런 손님들은 괜히 말을 걸면 더 신경질을 부리는 경향이 있어, 마치다는 가만 고개를 숙인 채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 나가길 기다렸다. 그 사이 마치다는 벌써 가게 일에도 익숙해진 것이다.
 

가게를 내내 돌던 발걸음은 이내 카운터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계산하려 고개를 든 마치다는 이내 우악스런 손아귀에 턱을 붙잡혀 고개가 들렸다.

 

“무,무슨…!”

“… … 이건 또 참… “

 

마치다가 아파하는 소리를 내어도 그 손길은 그치지 않았다. 쉽사리 반항하지도 못하고 눈만 굴리고 있는데, 손길은 잡았을 때처럼 갑자기 떨어졌다. 마치다는 얼얼한 턱을 쥐고 눈만 살짝 떠 자신 앞의 남자를 살폈다. 오만한 얼굴은 전형적인 귀족의 것이었다. 그는 상당히 흥미로운 눈빛으로 마치다를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나?”

“네? 네…”

“결혼은?”

“결, 결혼이요?”

“아직인가보군.”

 

생각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 정도면… 그는 마치다를 품평하듯 몇 차례 말을 했다. 그 말들이 상당히 기분이 나빠져서, 마치다는 결국 입을 열어 한 소리 했다.

 

“아무리 공께서 높으신 분이라고 하나, 저는 하인도 몸종도 아닌데 어찌 이런 소리를 하십니까?”

“흐음… …”

“사실 것이 없다면 나가주시죠. 장사에 방해가 됩니다.”

“그것도 그렇군. 내가 실례를 하였습니다. 귀한 분이 되셔야 하는데 말이죠.”

 

귀족은 웃으며 뒤에 서있던 하인을 시켜 카운터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마치다가 긴장한 기색으로 흘금 가방 안쪽을 보았다. 가방 가득 금화가 차 있었다. 이 가게의 어느 것도 이만한 값어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마치다는 놀라서 뒷걸음질 치며 귀족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훤칠하게도 웃으며 마치다를 바라보았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미야무라 소라라고 합니다. 당신의 몸값은 누구에게 치르면 됩니까?”

 

미야무라 소라. 마치다는 일순 그를 바라보며 몸을 굳혔다. 마치다도 알고 있는 가문의 이름이었다. 스즈키 가문과도, 마치다 가문과도 오랜 인연을 맺어온 가문이었다. 이제 보니 그의 복식 역시 중앙의 귀족의 것이었다.

 

‘스즈키의 곁에서 일하고 있구나…!’

 

그런 그가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을까? 혼란스러운 마치다의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미야무라의 싱그러운 웃음은 없어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설정충돌 못견디고 묵혔다가 다시 ㅅㅈㅈㅇ함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