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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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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표정이 왜 그래?”
“당신 같으면 좋은 표정이 나오겠어요?”

그런가? 나오토는 앞에 놓인 술잔을 뱅뱅 돌리며 옆자리에 앉은 나오키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사지육신 멀쩡해가지고 결혼을 못한건지, 안한건지. 너도 너고, 나도 나다. 그러니까 너밖에 없지, 이런 말 할 사람.

“부모님 말씀 없으셔?”
“이제 포기하실 때도 됐죠. 내 나이가 몇인데.”
“어이.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뭘 또 그런 말에 바르르하고 그래요. 나오키가 웃으며 덧붙였다. 

“이게 또 말이 그렇게 되네.”
“장난하지 말고. 응? 진지하게 생각해봐.”
“진지하게 생각할 주제를 던져줘야 진지하지. 사기 결혼 한번 하자는 게 진지해질 수 있는 논제였어요? 문장에 '사기'가 들어가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근데 이렇게 자로 잰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을 줄은 몰랐지. 자유분방한 데가 있지만, 고지식한 면도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지 못할 이야길 꺼낸 건 또 나오키뿐이라.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이들이야 많이 있었다. 이 바닥이 그랬다. 일찌감치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직업의 특수성 때문인지 미혼이 많은 것도 사실. 그중에 하나 고르지 그랬어요? 나오키가 반문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지,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오키랑 몇 년이더라. 나오토는 가만히 손가락을 접으며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금 아찔해진 얼굴로 앞에 놓인 술로 입술을 축여야 했다. 

이게 이유일지도 모르지. 20년이라...정말 까마득한 옛날이잖아. 아무것도 모르던 스무 살 초반에 나오키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세월이 무려 이십 년이란다. 이제 그냥 옆자리에 앉아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게 나오키일지도 모르겠다. 얼굴만, 그냥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는 사이. 

“다시 생각해봐도 너밖에 없어. 이런 거 의논할 사람, 그리고 해 줄 사람.”
“내 의사는 없어요?”
“누가 없대. 잘 생각해보란 거지. 그렇잖아, 부모님들 그동안 일가친척이며 친구들한테 낸 축의금이 얼마겠어. 본전 생각나는 거 당연하지.”
“정말 미안한데 이거 술자리서 나온 얘기죠?”

나오토는 나오키의 질문에 기억을 더듬었다. 요즘엔 어제 점심 메뉴가 뭐였는지도 한참 생각해야 떠오를 지경인데 그런걸 묻다니 실례야. 음-나직하게 앓는 소리는 낸 나오토가 오랜만의 가족 모임을 떠올렸다. 가벼운 식사 자리 정도로 시작된 그 날의 모임은 다들 기분 좋게 취해서 파했던 것 같다. 

“맞네. 술자리에서 가볍게 하신 농담을 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선.”
“틀린 소린 아니잖아!”
“맞는 소리도 아니고.”

입술을 뾰족하게 내민 나오토가 나오키를 설득하길 그만두었다. 분명 그 자리에선 자기도 그랬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게 맞는 말이냐고.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가 뿌린 축의금은 또 얼마며, 그걸 회수할 수 있을 린 만무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축하해준 만큼 다시 돌려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얼토당토않은 결론을 내린 후였다. 침대에 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이다. 

“너도 축의금 엄청 하지 않았어?”
“그거랑 상관있어요?”
“있지. 너도 결혼 안 할거잖아. 결혼 생각 없단 소리도 입에 달고 살고.”
“근데?”
“아깝지 않아? 아니 물론 축하해준건 좋은데. 우리 두 사람 다 평생 일에 파묻혀 사느라 결혼은 안 할테고. 다른 사람들 결혼할 때마다 축의금은 했지만, 우린 영영 받을 일이 없어. 나 일이랑 결혼해요-하고 청첩장 보낼 거야? 아니잖아.”
“지금 당신 말 앞뒤 하나도 안 맞는 거 알죠?”
“뭐가 안 맞아. 나 술 한잔도 안 비웠는데.”
“아, 됐어. 술이나 마셔요.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소릴 하나 했지.”
“나오키!”
“마시래도?”

조르는 사람과 거절하는 사람. 그 사이의 승자는 누가 되는 줄 알아? 바로 조르는 사람이다. 

나오토는 내가 졌어요, 나오토상 마음대로 해-두손 두발 다 들고 질린 얼굴을 하던 나오키를 떠올리며 흐흐 웃었다. 처음엔 저도 이야기를 꺼내 보는 정도로 끝낼 얘깃거리였다. 하지만 몇 번이고 정색하며 거절하는 나오키가 얄밉고 괘씸해 반항심이 일었다. 그래서 더 꿋꿋하게 얼굴을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이야길 꺼내고 또 꺼내며 졸라댄 것이다. 결국 져 줄 거면서. 이번 사안은 그의 말대로 크기가 크기인지라 반신반의하긴 했다. 늘 접어주는 그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엔 아닐 줄 알았거든. 

“여기.”

나오토는 턱을 괴고 음료를 마시다가 발견한 커다란 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창 바쁠 때긴 했다. 나오키도 저도. 근데 갑작스레 만나자는 연락에 반가움보단 바쁜 시기에 왜? 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나오키도 자기도 겨를이 없을 때면 길게는 몇 달, 해를 넘겨 만나는 일도 부지기수라. 그래도 꼭 어제 만났던 사람들처럼 이야기의 물꼬가 터지는 게 신기하긴 했다. 

“안 바빠? 출장 언제라고 했지?”
“응. 바빠요. 살 빠진 거 안 보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일을 벌여놨으니 시작은 해야죠. 당연히 나오토상이 하지 않을 거 같아서.”
“당연히 내가 안 하는 일이 뭔데? 내가 벌여 놓은 일은 뭐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뭐 사고라도 쳤어?”

나오키는 나이답지 않게 천진한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는 나오토를 보고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봐, 이 사람. 조르고, 떼쓰고, 일은 잔뜩 벌여 놓고 나 몰라라 할 줄 알았지. 나오키는 항복을 선언한 자기를 곧장 본가로 끌고 간 나오토의 실행력이 떠올라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미쳤어요? 지금이 몇 신데. 그리고 본가엔 왜? 싱글벙글한 얼굴로 웃으며 운전댈 붙든 나오토가 신호에 걸린동안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쎄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오토상의 부모님과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찾아뵙기엔 너무나 한밤중이었다. 

“그러니까 왜. 설마, 부모님 건강 안 좋으세요?”
“아니, 두 분 다 나보다 건강하셔.”
“이유나 알고 들어가자. 나 진짜 오랜만에 오는 건데 빈손이에요.”
“이유는 무슨 이유. 너 포기라며. 항복이라며. 그러니까 결혼할 사람 인사시키려고 온건데?”

나오키는 잠시 멈춰서 이마를 짚어야 했다. 

“..나오토상.”
“뭐해, 들어가자.”

바늘방석이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그건 물론 나오키 본인에 한한 이야기였지만. 나오토의 부모님은 한밤중 들이닥친 아들과 그 친구에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그렇게 투닥대고 싸우면서도 붙어 다니더니 결국엔 코바야시군이구나-당연하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끝내셨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정에 나오키도 뭐라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 불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일을 찍어 먹는 나오토상 얼굴 태평했었지, 아마?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해놓고 언제까지 미루려고. 상견례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어?”
“어는 무슨 어야. 내가 뜬구름 잡는 소리해요, 지금?”

막연하게 결혼하면 된다-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상견례? 그런 고차원적인 일들이 자기 앞에 들이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나오토는 얼떨떨한 얼굴로 반쯤 남은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오토상 일정을 주면 내가 비는 날 맞춰볼게요. 부모님 중요한 스케줄 있으면 알려주고요.”

대답할 만한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맹한 얼굴의 나오토는 가만히 고개나 끄덕였다. 

“집은 어떻게 할까? 새로 구하자니 처분하기 번거로울 거 같죠?”
“...집?”
“왜 그런 얼굴일까. 그럼 결혼하고 각자 자기 집에서 따로 살려고 했어요? 사기를 치려면 치밀해야지. 그냥 눈속임 정도로 하고 말려고 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갑자기 너무 현실적이라.”
“결혼이 현실이지, 그럼 가상일까. 이 정도 용기도 없이 덤빈 거예요?”
“아니야!”
“내 집으로 합치는 쪽으로 해요. 당신 사무실도 가깝고...”
“내 짐만 포장이사 트럭으로 몇 대일걸?”
“누가 다 옮기래. 적당히 필요한 것만 옮기면 되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오토는 얼른 손을 들어 점원을 불러 차가운 음료를 두 잔 주문했다. 나오키가 앉은지 한참이었는데, 그의 앞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쏙 빠진 채였다. 

“내 집으로 옮기면 안 돼?”
“침대 새로 사려고?”
“침대? 침대를 왜 새로 사. 내 침대 얼마나 비싸게 준거라고.”
“이왕이면 큰 쪽이 낫잖아. 나오토상 침대보단 내게 크니까.”

하긴 제 침대는 더블사이즈인데 나오키 뭐라고 했더라. 라지? 아니지. 그레이트 킹이랬던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사이즈라 외국에서 주문했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 누워보기도 했지. 세상에, 여기 열댓 명은 잘 수 있겠어. 좌우로 뒹구르며 감탄했더니 나오토상정도 사이즈면 그렇겠네요-받아치는 바람에 한참 실랑이했었고.

“응. 너희 집이 낫겠다.”

사기 결혼. 축의금을 위한 결혼. 이혼을 생각하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서 나오키와 한 침대 쓰는 걸 왜 당연하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워낙 막역한 사이기도 했고, 친구보단 형제. 가족 같은 사이라?

“식은 언제가 좋아요. 추운 거 싫어하잖아. 실내라도 봄이 낫죠?”
“어?”
“호텔? 야외? 신혼여행은 어떡할래요?”
“신혼여행? 그런 것도 가야 해?”
“말했잖아요. 눈속임하지 말자고. 결혼식까지 올린 마당에 신혼여행은 당연하지. 둘 다 바쁜 거 핑계로 국내로 갑시다.”
“어...어. 그러자.”
“하객은 몇 명 정도 예상해요? 뷔페가 좋아요? 아, 이건 어른들과 상의하는 것도 좋겠네요.”

나오토는 처음 가게에 들어설 때의 낯빛과는 잔뜩 달라진 해쓱한 얼굴로 나오키의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만. 너 왜 그렇게 잘 알아? 왜 이렇게 익숙한데? 한번 다녀온 거 아냐?”

나오토는 결혼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로 되는 줄은 모르고 있었기에 나오키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세부 사항에 눈을 갸름하게 뜨고 그를 쏘아봐야만 했다. 

“다녀오긴 뭘 다녀와. 내가 결혼한 형제가 몇인데.”

아, 맞아. 그랬지-그제야 나오키네가 대가족이었다는걸, 나오키 형제들의 결혼식에 자기도 참석했었다는 걸 떠올렸다. 숨도 쉬지 않고 선택지를 앞에 놓아주는 나오키에 혼이 쏙 빠져버렸다. 잠깐 얼굴이나 보고 들어가려던 게 무색해졌다. 

“잠깐만. 나 배고파. 이거 다 오늘 정해야 해?”
“나오토상도 나도 앞으로 한동안 보기 어렵잖아요. 빠를수록 좋지.”
“그럼 뭣 좀 먹으면서 하면 안 돼?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아.”

불과 몇 분 되지 않는 시간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나오토에 나오키가 소매를 밀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적어도 이 사람 밥 먹일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자리 옮길래요? 식당으로 갈까?”
“나 차 안 가지고 왔어.”
“걸어요. 근처에 괜찮은 가게 있어.”

물병을 받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나오키는 떨어뜨리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 주며 창백한 낯의 나오토를 살폈다. 

“괜찮아요?”
“두 번은 못 하겠다, 진짜. 토할 것 같아.”
“뭐라도 먹으라니까.”
“그러다 식 중에 정말 토할지도 몰라.”

그날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간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나오토는 그저 나오키가 주는 선택지에서 이거 아니면 저거 고르는 정도였다. 결혼이라는 게 왜 인생의 대소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날들이었다. 9할은 나오키가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은 못 할 짓이라는 걸 매 순간 깨달았다. 해야 할 일은 수도 없었고, 인사할 일도 많아졌다. 청첩장을 주느라 저녁 약속이 줄을 이었고, 나오키에게 우는소리를 했다. 나 예복 안 맞겠어. 무슨 밤마다 식사에 술자리야. 그때마다 허리춤을 붙드는 커다란 손의 온기가. 살은 무슨 살, 식 앞두고 왜 이렇게 자꾸 빠지는데? 걱정하는 목소리가 좋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축하 인사와 웃는 얼굴들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 옆에서 자기를 단단히 붙든 나오키가 아니었다면 벌써 고꾸라져도 고꾸라졌을 거다.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조차 흐릿했다. 

“나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누가 왔는지도 모르겠고. 우리 엄마, 아빠는 오긴 왔지?”

조수석의 좌석을 최대치로 뒤로 밀어 앉은 나오토가 고개를 나오키 쪽으로 떨어뜨리며 물었다. 

“고생했어요. 가는 동안 눈 좀 붙여요.”
“나 혼자 했나, 뭐. 너도 힘들었잖아. 아, 속이 별로야. 숨도 안 쉬어지는 것 같고.”
“이렇게 해봐요. 너무 조이나 보다.”

나오키는 서둘러 자리를 피해 나오느라 편안한 차림도 하지 못한 나오토의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좀 나아요?”
“...응.”
“뭐라도 먹고 출발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속 비어있으면 더 울렁거릴 텐데.”
“아니. 정말 미안한데 눈 좀 붙일게. 그럼 괜찮을 거 같아. 내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랬나. 옷 몸살 나나 봐. 머리도 아프고 그래. 미안.”
“그래요, 자요. 도착하면 깨울테니까.”
“미안. 운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걸 그랬지.”
“둘만 편히 가자며. 괜찮으니까 눈 좀 붙여요.”
“응, 고마워. 나오키.”

혼곤한 정신은 금방 힘을 잃었다. 잠이 들었다가 잠시 깨는 때면 부드럽게 배려하는 나오키의 운전실력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
“이렇게 마셔도 괜찮아요? 좀 전까지 다 죽어가던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였다.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을 바짝 뜬 나오토가 기분 좋은 소릴 내며 기지개를 켰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불편하다고 노래를 하던 옷을 훌렁훌렁 벗더니 편안한 차림을 해 가지곤 한다는 말이 배고파, 밥이랑 술 마시자-여서 웃음이 터졌다. 

“천천히 마셔요. 빈속이잖아.”
“나오키 너야말로 천천히 마셔. 여기 우리 둘뿐이거든? 술버릇 나오면 곤란해.”

오래 알고 지냈다. 술버릇도 당연하게 꿰고 있는 사이란 거다. 제 술버릇은 나오키가 말해주어 알고 있었다. 말이 좀 많아지고, 아무 데서나 폭 고꾸라져 잠이 든다며 고치라는 잔소리까지. 그렇게 이야기하면 자기도 할 말은 있어서. 나오키의 술버릇은 꽤 독특했다. 술이 제법 된 나오키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 맞추길 즐겨 하는 고약한 습관이 있었다. 술자리는 둘이 제일 많았고, 다른 이들과 동석한 자리서도 나오키의 옆자리는 저였던지라. 술에 취해 입맞춤을 당하는 대상은 주로 나오토가 되곤 했다. 

급히 마시지 말라는 말과, 더 마시지 말라는 소리에도 눈앞에 닥쳤던 일을 해치웠다는 도취감 때문인지. 나오토도 나오키도 술잔을 비우는 손길이 가벼웠다. 

“너, 이씨. 하지 말래도.”

위에서부터 덮쳐지는 커다란 이의 가슴팍을 밀어내면서도 킥킥 웃음이 쏟아졌다. 술이 됐다는 이야긴데 나오토는 좋은 기분에 주량을 넘긴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저는 입맞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 상대가 누구 건 별로 상관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의 신체에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촉감을 가진 부위가 또 있을까. 눌렸다가 떨어지는 압박감도 좋았다. 그래서 술이 오른 나오키의 주정이 시작되었는데도 웃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마아.”

촉촉 새가 쪼듯이 입맞춤을 내리던 나오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을 때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받아주니까 끝이 없어. 손목을 붙들어 끌어내리려는데 집요하게 입술을 붙여온다. 억지로 벌리려는 입술에 나오토가 미간을 모았다. 

“혀 넣지 ㅁ...”

마지막 말끝은 벌어진 입술을 파고드는 두툼한 혀에 잡아먹혔다. 커다란 키만큼이나 기다란 혀가 입 속을 그득 채우더니 뱀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꽉 들어차는 양감. 내벽을 문지르며 움직이는 혀가 꼭 성행위를 연상시켰다. 그 바람에 입맞춤을 그만두게 하려 잡았던 나오키의 손목을 꽉 붙들어야 했다. 찌르르-배꼽 아래가 간질거렸다. 

이렇게 진한 입맞춤이 얼마 만이더라. 나오토는 나오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느라 꽉 붙든 손목에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몇 번이고 겹쳤던 살덩이 사이로 달뜬 숨소리가 섞였을 때 천천히 나오키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 온기가, 자기를 원하는 욕구가 아쉬웠다. 떨어지지 말라며 붙들고 싶은 마음을 간신이 억누르고 척척하게 젖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나오키의 눈빛이 새삼스러웠다. 이런 눈의 나오키를 본 적이 있었던가. 늘 여유롭고 자신감에 차 있던 그의 눈이 오늘은 다른 결이었다. 

“방으로 올라갈래요?”

아직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오키는 자기 손목을 붙들고 있는 나오토의 손등을 느릿하게 문지르며 물었다. 나오토는 꿀꺽 찼던 숨을 삼키며 대답을 망설였다. 이런 키스 뒤에 이런 질문은 반칙이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싶었지만, 과연 그래도 되는가-한 조각 남아있는 이성이 자기를 붙드는 것 같았다. 나오토의 망설임을 알아챈 모양일까. 나오키는 좀 더 진득하게 나오토의 손을 문질렀고, 나오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술 취해 사고를 치기엔 너무 많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머리야.”

뻑뻑한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며 신음했다. 한동안 회복되지 않는 시야에 들어온 나오키의 커다란 손에 온몸이 긴장했다. 숙취 대신 어젯밤 나오키의 품에 안겨 쏟아냈던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나오키, 나오키-

절절 애가 끓는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던 게 과연 제 목소린가 싶었다. 아프다면서도 다리를 들어 단단한 허벅지를 죄었다. 빼지마- 따위의 문장이 나오키와 저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거였나. 어젯밤 나오키와 나누었던 정사의 기억에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참느라 혀를 꽉 깨물었다. 

순간 뒤척이는 나오키의 움직임에 숨을 죽였다. 깨어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당장 뒤에서부터 자기를 당겨 안고 있는 나오키의 맨살조차 낯설어 죽을 지경이었고, 얼굴을 맞대고 할 말도 없었으니까. 바짝 몸을 밀착한 나오키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다. 나오토는 숨을 죽이고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접촉 대신 간지러운 숨결이 느껴졌다.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나보다. 나오토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이 자식 순 꾼이잖아. 

축의금 회수의 목적을 가지고 사기 결혼.-나오토는 사기라는 단어가 영 거슬리기 시작했다.-그래, 위장결혼 정도로 해두자. 그러니까 축의금 회수의 목적을 가지고 위장결혼을 한지,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혼인신고서는 작성하지 않을 거였고, 적당한 시기에 이혼하기로 합의했었는데. 

나오토는 커다랗고 따뜻한 나오키의 품에 안겨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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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가 바보도 아니고 마음도 없는데 저런 수에 넘어갔을 리 없다ㅋㅋㅋㅋㅋㅋㅋ처음부터 마음있었던 오키였지만 결혼의 ㄱ자도 생각없는 오토에 어떻게 해야하나 곁에 머무른 세월만 이십여년이겠지. 그러다가 나오토가 던진 미끼에 못 이긴척 넘어가준거고. 오토는 그것도 모르고 끙끙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 나오키한테 감겨서 혼인신고서 도장찍으러 가면서도 어리둥절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