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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4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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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콤해서 영원히 떼고 싶지 않았던 케이의 입술에서 입술을 뗀 건 몬스터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쳐 두었던 결계 안으로 누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몬스터가 뚫을 수 없는 결계였고 지금 여기로 들어올 사람이 누군지는 뻔했다. 케이도 그걸 느꼈는지 노부와 닿아 있던 입술 사이로 작게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는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속삭였다. 

"눈 뜨기 싫다."

노부가 웃으며 여전히 케이의 눈을 덮고 있던 손을 떼고 감긴 눈꺼풀 위에 입을 맞추자 케이가 웃으며 투덜거렸다. 

"뭐라도 말 좀 해 봐. 네 목소리를 들어야겠어."
"무사히 돌아가면 내 얼굴일 때 또 키스할게요."

케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웃었다. 

"약속했어."
"네."

그리고 곧 여러 명이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사색이 된 미야무라와 굳은 표정의 츠지무라, 그리고 왜 따라왔는지 모를 야오토메가 뛰어들어왔다. 케이의 말대로 츠지무라와 미야무라는 상처를 살펴보더니 이동할 수 있도록 상처의 표면만 급하게 소독한 뒤 가지고 온 붕대로 응급처치를 하고 진통제 주사를 놔 준 후에 바로 옮길 준비를 했다. 츠지무라와 미야무라는 한두 해 손발을 맞춰본 게 아닌지 착착 빠르게 치료를 했고, 이동할 준비가 끝나자 미야무라가 울먹이는 얼굴로 케이를 부축했다. 

건물로 돌아온 뒤에는 의사면허도 있다는 츠지무라가 긴급 수술을 해서 상처를 봉합했고 두 사람이 다시 치유스킬을 쓰는 동안 노부는 사쿠마를 만나 환술을 풀고 서둘러 샤워를 하며 피를 지워냈다. 그 후 곧바로 한때는 노부가 사용했던 곳인 병실로 달려가자 케이는 진통제 덕분인지 츠지무라와 미야무라의 치유스킬 덕분인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좀 어때요?"

다가가서 옆자리에 앉으며 케이의 손을 잡자, 케이가 고개를 돌려 노부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키스하러 왔어?"
"네?"

케이는 상처 때문에 샤워를 하지는 못했을 텐데 미야무라나 츠지무라 아니면 야오토메가 깨끗하게 닦아줬는지 피범벅이 됐던 손도 말끔해져 있었다. 케이는 여느때처럼 하얗고 깔끔해진 손으로 노부의 뺨을 콕 찔렀다. 

"약속했잖아."

노부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케이는 폐건물 안에 있을 때처럼 노부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케이의 상처는 여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지만 능력이 뛰어난 치유의 소환사 둘이 매달려서 치료한 만큼 열 때문에 따끈했던 얼굴도 제 체온을 되찾았고 피로 끈끈하던 손도 보송보송해진 채로 노부를 끌어안고 있어서 두 번째 키스는 첫 번째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황홀했다. 

"그 키스를 이 얼굴로 했어야 했는데."

케이는 첫키스가 사쿠마의 얼굴이었던 게 못내 아쉬운지 노부의 뺨을 콕콕 찌르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아쉬워요?"
"당연하지. 첫 키스인데."
"그럼 오늘 이 키스를 첫 키스로 해요."
"그게 뭐야."

케이는 깔깔 웃었지만 마음에 든다며 꼭 일기에 오늘 병실에서 자기와 첫키스를 했다고 적으라고 했다. 그렇게 둘이 속닥거리고 있을 때 노크도 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쩐지 마치다 상이 다쳤다고 해서 이상하다 했더니."

노부가 케이의 손을 잡은 채 돌아보자 야오토메가 케이의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문가에 서 있었다. 

"뭐가 이상해? 토벌전 나가면 다칠 수도 있지."
"우리가 아직 미숙하던 시절에, 우리 둘이 손발이 하나도 안 맞아서 매일매일이 난장판일 때도 한 번도 안 다쳤던 사람이요?"
"능숙하다고 안 다치는 건 아니지."
"내가 마치다 상을 몰라요? 몬스터 토벌하고 오라고 했더니 가서 무슨 짓을 하다가 다친 겁니까? 둘이 딴 짓했죠? "
"아닌데?"

케이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휙 고개를 돌리자 야오토메는 노부가 펼쳐놓은 식탁 위에 트레이를 올리더니 팔짱을 끼고 케이를 내려다봤다. 

"그래서 오늘 이전에 토벌전 나가서 다친 적 있었어요?"
"... 없어."

케이가 꿍얼거리듯이 대답하자 야오토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쯧 혀를 찼고 케이는 눈을 매섭게 뜨더니 톡 쏘아붙였다.

"그냥 긁힌 것뿐이야."
"네, 배를 아주 길게 긁혔죠. 길게."

다행히 몬스터의 발톱이 박힌 건 아니고 상처가 심각할 정도로 깊지는 않았다. 그러나 긁혔다고 표현하기에는 꽤 깊게 베였고 상처 부위가 큰 것도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딴짓을 하다가 다친 것도 사실이었고. 할 말이 없는 건 노부도 마찬가지라서 케이가 소리없이 입술을 삐죽이는 걸 보면서 침대 상부를 일으켜서 앉혀준 다음 밥 먹는 걸 도와주려고 했을 때였다. 

"협회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나 봅니다."

케이가 손을 다친 건 아니지만 노부가 다쳤을 때 케이가 밥을 먹여줬던 것처럼 밥 먹는 걸 도와주려고 생산구이의 뼈를 막 발라내려 할 때였다. 야오토메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춘 건 된장국을 한 모금 마시려고 국그릇을 들던 케이도 마찬가지였다. 

"협회?"
"네, 부상 경위를 들으러 직접 여기로 온답니다."
"하!"

케이는 기가 차다는 듯 국그릇을 내려놓고 야오토메가 협회 사람이라도 되는 양 노려봤다.

"우리 애들 다쳤을 때는 한 번도 부상 경위 듣겠다고 직접 온 적이 없으면서 갑자기?"
"핑계는 나름 준비했던데요. 기본 속성 S급 소환사들 넷 중에 하나는 부상, 하나는 실종, 하나는 사망이라서 지금 활동이 가능한 사람이 마치다 상밖에 없는데 부상을 당했다니 전력 손실이 크다고요."
"웃기고 있네. 경위를 들으면 내가 나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S급 소환사가 다쳤을 정도면 얼마나 강한 몬스터였는지도 알아야겠답니다."
"그냥 이 건물 안에 들어와서 노부가 있는지 직접 뒤져보고 싶은 거잖아."
"사실 그렇죠."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케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빛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순식간에 냉랭해진 눈빛에는 그러나 불안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부가 혼자 숨어 있는 건 안 돼. 숨어 있어도 핑계를 대서 뒤지고 다닐 놈들한테 들킬 수 있어. 혼자 있다 걸리면 위험해."
"그럼 누구로 바꿔놓으려고요."
"이 병실에 같이 있으려면 츠지무라나 소라가 좋은데 둘 다 안 되지."
"안 되죠."

협회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심장이 쿵쿵거리고 있던 노부가 왜 두 사람은 안 되는지 몰라서 눈만 깜박거리고 있자 케이가 노부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협회에서 나올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내 냉랭하던 눈빛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다정해졌다. 

"둘 다 협회 사람들하고는 말 섞기도 싫어해서 뭐라고 물어도 무시하면 되니까 둘 중 하나로 환술을 거는 게 편하고, 치유의 소환사란 이유로 내 옆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좋긴 한데. 네가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 있으면 그 사람은 다른 곳에 숨어 있어야 하잖아. 츠지무라가 협회 사람들이 나오는데 소라 혼자 두질 않을 거야."
"협회 사람들을 싫어하나 봅니다?"
"아주 싫어하지. 협회 얼간이들이 돌아다니는데 소라를 혼자 두는 건 나도 원치 않고."

케이는 손가락으로 식탁을 탁탁 두드리다가 야오토메를 바라봤다. 

"전격 쪽은 협회장 세력이랑 크게 척을 진 상태라 너무 많이 시비가 붙어서 얼굴 보면 또 시비 걸 테니까 안 되고, 시시오 지금 있어?"
"네, 돌아왔어요."
"데리고 와 줄래? 쿄스케도."

야오토메는 일단 밥을 먹고 있으라며 나갔지만 케이는 입맛이 떨어졌는지 팔짱을 끼고 있다가 여전히 젓가락을 들고만 있는 노부를 바라봤다. 

"밥 먹어. 협회 놈들 오면 밥 먹으러 가기 힘들 텐데."
"케이가 먹어야죠. 내가 누워 있을 때 다쳤을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한 건 케이였잖아요."
"그럼 별로 밥 생각도 없는데 반반씩 먹을까?"

심란한 이야기를 들어서 밥맛도 뚝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케이가 능숙하게 생선을 발라서 입에 넣어주니 생선살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숨어 있던 위치가 들통날 수도 있고 다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인데도 케이와 노닥거리며 서로 밥을 먹여준다고 기분이 풀어지는 자신의 단순함이 어이없을 지경인데도 밥은 맛있기만 했다. 

야오토메와 사쿠마, 카나자와가 찾아온 건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트레이를 방 밖에 내놓은 뒤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케이는 토벌전을 함께 나간 것으로 돼 있는 사쿠마에게 폐시가지와 몬스터들이 나타났던 폐건물의 구조 및 상황, 몬스터들의 종류와 움직임을 설명해서 기억시키고 카나자와를 아몬, 가루베와 함께 가루베의 방에 가 있게 했다. 미야무라와 가루베는 협회와 아주 안 좋은 일로 엮인 적이 있어서 미야무라와 가루베는 협회 쪽에서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이 건물 내부를 다 뒤진다고 해도 가루베의 방은 샅샅이 뒤지지 못할 거라나. 미야무라와 가루베가 과거에 어떤 일로 안 좋게 엮였었는지는 개인 사정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츠지무라와 미야무라, 야오토메와 사쿠마, 그리고 노부와 케이가 병실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협회가 방문을 예고한 시간이 다가오면서 초조해서 무심코 케이의 손을 잡자 케이도 노부의 손을 잡아주며 씩 웃었다. 

"어차피 어떤 핑계를 대든 한 번은 이 건물 안에 들어오려고 할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입고 있던 옷은 처음부터 다 망가져 있어서 이미 다 소각했고, 너 바지만 걸친 채 맨몸으로 나와서 소지품도 없었잖아. 걸릴 만한 단서는 전혀 없으니까 긴장하지 마."
"협회 쪽에서 여기를 뒤질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당연하지. 협회 힘이 잘 안 닿는 지방 외곽 마을도 아니고 수도에서 사람이 쉽게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수도 내를 샅샅이 뒤졌을 테니까 결국 우리한테 올 거라고 생각했지. 요즘 우리 건물 주위로 드론이 얼마나 뜨는지 몰랐어?"
"그렇다고 해도 왜 여기로?"

케이는 피식 웃으며 또 노부의 뺨을 콕콕 찔렀다. 이제 케이가 노부의 뺨을 찌르는 건 버릇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는지 콕콕이 아니라 쿡쿡쿡처럼 느껴졌다. 묘하게 아픈?

나 잘못한 게 있나?

"눈치가 없는 건 너밖에 없었다는 말."
"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지만 왠지 시선이 야오토메 쪽으로 갔다. 그러나 야오토메는 케이의 말을 듣고는 있는지 통화 중이었다. 밥은 다 먹었어? 지금 마치다 상 병실에 온다고? 안 돼. 협회에서 나올 거라니까. 가루베 방에? 안 돼. 쿠로사와 상 방에 가 있어. 아니면 아마미야 방에 가 있든가. 절대로 혼자 있지 마. 쿠로사와 상이나 아마미야 방에 가서 나한테 바로 전화해. 알았어. 협회 놈들 꺼지면 바로 부를게. 그래, 알았다고.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고토 같은데. 평소처럼 심드렁한 말투였는데도 묘하게 걱정이 가득하고 다정한 느낌이었다. 야오토메가 케이를 좋아한다는 게 고토의 착각이었나? 아니면 내가 고토의 말을 잘못 해석했던 건가? 

머리를 굴리고 있자 다시 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눈치 없네."
"...?"
"협회장은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나쁜놈이지만 너처럼 눈치가 절망적인 건 아니라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네가 사라졌을 때 당연히 나부터 의심했을 거야. 내가 붉은보석을 만드는 동안에도 토벌전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고."
"처음부터?"
"그래, 처음부터."
"그건, 그 말은... 그때도... 예전에도..."

몇 년 전 그때도 날 좋아했던 거냐고 묻기에는 방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야오토메는 통화에 집중한 것 같지만 미야무라는 케이가 다친 걸 봤을 때부터 계속 울먹울먹 상태였고 케이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사쿠마도 심드렁한 척하고 있지만 케이를 계속 흘긋거리는 게 케이가 걱정돼서 케이한테 온 신경이 집중된 것 같고. 

"말했잖아. 다시는 놓치지 않을 거라고."

[....ㅎ치지 않을 테니까.]

그게 그 말이었군. 노부가 쥐고 있던 케이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자 케이는 그보다 더 센 힘으로 노부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젠 다시는 바보같이 놓치지 않아."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