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65289442
view 2935
2023.09.23 21:29
https://hygall.com/565009434
15
*양인 음인 차별없는 세계관
(정욕 편 2.5)
16
"덫을 놓는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특조처가 모이자마자 가장 먼저 의견을 낸 인물은 여태까지 충실한 보조자 역할을 하면서 수사에 협조만 할 줄을 알았지 별 다른 행동이 없었던 션 교수였다. 보통 부탁을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수사에 협조적인 인물은 드물었으므로 모두가 션웨이를 쳐다보았다.
- 덫이요?
"예."
매니큐어를 바르던 추홍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션웨이의 시선이 모두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고군분투했던 윈란의 손등에 닿았다. 거즈를 붙인 상처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잠깐 말을 하던 션웨이의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듯이 살벌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순식간에 표정을 지운 그는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윈란이 보았던 서늘한 얼굴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온화한 분위기가 연구실을 잠식해 나갔다. 션웨이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흘 뒤면 학과에서 고전문학 강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평론 과제를 제가 단체 메신저로 전송하여 수기로 희곡평을 작성하라 이르겠습니다."
- 션 교수님이 직접 나서시겠다고요?
"제가 미끼가 되는 방법이 가장 편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다 타 버리기는 했지만 필체가 남아 있으니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 그, 그래도 교수님께서 위험해지실 수도 있으실, 텐데...
"특조처의 인원들 중 누군가가 저 대신 수업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강의는 사흘 후이고, 그 사이에 여러분들 중 강의 내용을 완벽하게 외워서 학생들에게 가르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미리 강의 녹음을 해 놓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질문 시간이 걸립니다."
- 확실히 그만한 계획이 없기는 합니다. 션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좋은 머리는 아니거든요. 처장은 머리는 좋지만 성격이 문제고.
그래도 가장 정의감이라는 것이 박혀있는 인물이었던 궈창청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대의 의사를 내비쳤지만 추수즈는 션웨이의 계획에 동의했다. 린징이나 추홍도 그렇게 반대하는 의사는 없는 것 같았고, 부처장인 다칭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 션 교수가 시원시원하고 좋구만. 누구랑은 다르게 일 처리를 잘 한다니까.
그러나 윈란의 표정은 싸하게 굳어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내던지는 션웨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윈란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볼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표정이 얼마나 무섭게 굳어졌는지를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표정부터 열렬하게 반대의 의사를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건너무 위험합니다. 대놓고 강의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인질과 다를 바가 없는데, 샤오웨-."
그 순간 자오윈란은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챘다. 걱정이 앞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그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 윈란은 상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목격했다. 온화하던 교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냉골마냥 천천히 서늘해졌다. 고지식한 교수는 공과 사를 명백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자오윈란 역시 그러했지만 이번 일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가 영 힘들었다. 귀에 싸늘한 션 교수의 목소리가 닿자, 윈란은 어느 부정한 감정을 느끼고 작게 몸을 떨었다. 순간 저렇게 말을 하는 션웨이의 눈 앞에서 직접 제 손등을 그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자오 처장."
"...네."
"지금 우리는 공적인 일에서 함께 협조하기 위해 의논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적인 호칭은 굳이 이 대화 주제에서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닌 다른 특조처 분들께 사과를 드려야 하는 게 맞을 듯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션웨이의 얼굴은 누구보다 차갑고 딱딱해 보여서 자오윈란은 그 말이 맞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분명히 맞다. 그의 말투는 정중했고, 흠결 하나 없었으니 자오윈란이 무어라 할 구석이 없다. 하지만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속 안에 부아의 이름을 한 불꽃이 확 치밀었다.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행동을 천하의 자오윈란이 가만 둘 리 없었다.
정식으로 제대로 된 일정을 짜고 실행하게 되자 특조처 일행은 더 이상 룽청대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모두가 돌아가기 위해 션웨이에게 인사를 할 때, 그는 제대로 대접했던 것이 없다며 이전에 선배 교수에게서 받았던 일본산 고급 녹차 세트를 내왔다. 다칭의 몫에는 역시나 같은 교수에게서 선물받았던 훈연된 가쓰오부시가 주어졌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자오윈란만이 입맛이 없다고 녹차 마시기를 사양했다.
추홍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읽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매우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자오윈란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마침내 연구실을 나가 버렸다. 션 교수의 시선이 나간 자오윈란을 훑었다. 자오윈란이 없는 지금, 추홍은 지금 이 순간이 션 교수를 떠볼 좋은 기회였다. 차의 향을 즐기던 그녀가 책상 위에서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션웨이를 불렀다.
- 션 교수님.
"말씀하시죠."
- 이번 작전은 우리 대장을 생각해서 나서시려는 건가요?
추홍은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션웨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히 옭아매려 노력해서 질문했다. 추홍은 눈앞의 아름다운 남자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무언가를 곱씹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마침내 션웨이가 입술을 떼자 추홍은 한껏 집중했다. 저 물뱀같은 남자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글쎄요.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맞다고도 할 수 없겠죠. 공적인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아니라고만 말할 수도 없을 것 같군요."
션웨이는 그 말을 하며 부드럽게 웃었는데, 쌍꺼풀이 아름답게 진 눈꼬리가 은근히 가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추홍은 소름이 끼쳤다. 비록 아주 잠깐이었지만 뱀족인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맹독같은 눈빛이 자신을 스쳐갔다. 음습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순수한 광기의 그것.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광기를 우연히 목도한 그녀는 순간 굳어버린 자신의 안면근육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뱀이라고 생각했는데, 잠룡이었다. 수면 아래 잠든 물뱀을 가장한 채 잠들어 있는 용과 같은 느낌. 그녀는 여자의 직감으로 알았다. 이 교수라는 작자는 처장을 사랑하고 있다. 추홍은 직감적으로 이번 사건의 도촬 피해자인 이 아름다운 남자가 자신의 연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자신이 한참 아래라는 사실 역시 직시하고야 말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잘 벼려진 칼이며 총이고 흉탄이었다. 그녀는 그를 이길 만한 자신이 없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 답변 고맙습니다. 한 잔 더 마셔도 될까요?
"그럼요."
- 호의에 너무 감사해요. 교수님. 차 향이 너무 좋네요.
션웨이가 포트에서 다시 물을 끓여 녹차를 내려주자 추홍은 겁에 질린 자기 자신을 숨기려 찻잔을 받아드는 손에 힘을 주었다. 미인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디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상냥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천만에요." 그는 웃고 있었다. 추홍도 억지로 웃었다. 소름이 끼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을 하던 찰나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평소보다 더욱 쌀쌀맞은 자오윈란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생긴 얼굴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좋지 않은 기분을 대놓고 표현하고 있었다.
(정욕 편 3)
17
그는 고급 녹차향에 취해 있는 특조처 인원들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추수즈와 린징이 그런 그를 비난하며 아양을 떨었지만 못생긴 두 남자의 얼굴은 전혀 자오윈란을 동요하게 하지 못했다.
"꾸물대지 말고 일어나. 가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준비하고 결계나 준비해."
- 이 차를 즐기고 싶다고. 얼마나 향이 좋은지 알아? 좀 더 마시고 가면 안 되나? 얼마나 맛있는데! 대장, 아직 사흘이나 남았잖아.
- 아미타불. 시주님이 주신 은덕을 어떻게 거절하겠나이까. 제발 이 한 잔의 즐거움만을 누리게 해 주시죠.
"뒤지기 싫으면 준비해라. 진혼등 채찍으로 후려맞고 싶어서 그래?"
- 추 형, 린징 형. 같이 일어나요. 얼른 결계를 준비해야죠. 처장님 말씀대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잖아요.
- 인간. 이 몸은 만 오천 살이라서 이가 안 좋단 말이다. 섬나라 어포는 하늘하늘한 게 썩 입에 잘 맞는데 방해하기야?
- 음마가 평범한 게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미리 준비를 하는 게 더 좋기도 하고...
추수즈에게 결계 교육을 받은 뒤 어떤 투철한 정신이라도 느낀 듯한 궈창청이 자오윈란을 따라 일어서자 왠일에서인지 농땡이를 부릴 것 같은 추홍이 따라 일어섰다. 션웨이의 섬뜩한 면모를 목격한 그녀로서는 필사적으로 피하기 위해서 일어선 것이었지만 모두가 그녀를 보고 배신자라는 눈빛을 보내자 추홍은 어색하게 변명했다.
- 가긴 가야 할 거 아냐.
- 우리들 다시 돌아가서 부적으로 뭐라도 해 봐요. 그, 그래요. 부적으로 음마한테 편지를 쓰는 건요?
- ......인간, 이미 편지는 불타고 잠들었어. 필체는 이미 다들 알아봤다고. 그런데도 그 소리가 나와?
- 그래도 음마에게 편지를 보내서 원한을 좀 풀고 평범하게 성불하라고 하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야. 이 멍청한 인간아!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이 녀석은 평범한 혼이 아니야. 편지에 힘의 일부를 숨겨둘 정도면 악령 이상이란 말이다. 일 년을 이 곳에서 썩었는데 너라는 인간은 머리가 그 정도로밖에 돌아가지 않는 거냐!
- 잘못, 잘못했습니다! 부처장님! 죄송...!
"잠깐만."
- 네, 네?
"...부적으로 편지를 쓴다. 생각해 보면 저 생각이 아주 틀려먹은 건 아니야."
논점을 완전히 빗나가기는 했지만. 사력을 다한 궈창청의 임기응변은 그의 특조처 인생에서 가장 쓸 만한 것이었다. 물론 좀 비어 있기는 했지만. 평소에 좀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무능하지만 않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저 멍청이에게 납득과 이해가 될 지 한숨을 쉬고 있는데, 션 교수가 유일하게 자오윈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을 덧붙여 주었다. 궈창청이 멍청하게 그에게 되물었다.
"트릭을 놓는 거군요."
- 네...?
"부적으로 편지를 만든다는 의견을 좀 더 정교하게 짜 보면 부적을 통해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역으로 속이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 아무리 동생이 영매라고 하지만 션 교수는 평범한 인간인데 어떻게 그것을 알지?
"제 동생 야존의 주된 수법입니다.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얻어낸 정보들이 많다고 제게 자주 자랑을 해 왔던 적이 많았거든요."
- 아...
다칭의 날카로운 질문에 션웨이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자오윈란은 아니꼬운 눈으로 션웨이와 궈창청을 바라보았다. 이놈은 평소에 부적 만들 때 빼고는 쓸모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가끔은 쓸모가 있다. 그는 아직까지도 시시때때로 겁에 질릴 때마다 전력을 다해 같은 편까지 죽이려 드는 궈창청의 무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선물했지만 자신마저 바싹 구워질 뻔한 그 전기 충격기. 겁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먹고 사는 궈창청의 전기 충격기는 24시간 모피털처럼 겁을 몸에 두르고 사는 그에게 둘도 없이 좋은 무기였지만 컨트롤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놈은 사이트 안에 아직 있어. 부적이나 결계는 형태만으로도 그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지. 즉,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사이트에도 판만 잘 짜면 설치가 가능하다는 말이야."
- 대단한 일이네요... 제 보잘것없는 식견을 그 정도로 해석하실 수 있으시다니 교수님도 처장님도 정말 대단하세요.
"알면 됐어."
션웨이와 자오윈란은 본인 기준으로 아주 짧고 간략하게 멍청한 궈창청을 이해시키는 데에 성공시켰다. 궈창청의 입이 벌어지고 그의 표정이 경외심에 물들었다. 보통이었다면 자오윈란은 션웨이에게 아주 곱게 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상대가 션웨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랬을 거였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귀신의 존재를 무섭고 소름끼쳐 한다. 당연히 퇴마와 관련된 일에도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는 게 당연하다. 이 정도로 수사에 협조해 주는 사람도 드물 텐데 자기 자신을 기꺼이 계획의 일부로 포함시키고 의견까지 내 주는 사람을 달갑지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녀석이 알아듣게 설명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교수님. 다만 특조처의 일이기도 하고, 이제 룽청대에 있을 필요가 없기에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특조처의 일일 텐데요."
"저희야말로 피해를 끼쳐 죄송할 뿐입니다. 늘 적극적인 수사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사흘 후에 뵙지요."
"살펴 가시죠."
그러나 이번에는 자오윈란이 션웨이를 밀어냈다. 싸늘하게 션웨이를 노려본 자오윈란은 아까의 션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등을 돌려 버렸다.
특조처 인원들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화가 나 보이는 처장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하나같이 가겠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션웨이는 이내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마침내 천천히 윈란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배웅했다.
자오윈란은 그 모습을 보면서 션웨이가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자기 자신을 분노하게 하고, 이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고, 그러면서도 가장 안도감을 느끼게 하고. 이 정도로 자오윈란이라는 인물 자체를 통째로 흔들어 버린 사람은 션웨이가 유일했다.
"집에는 알아서들 꺼져. 간다."
그래서 더 아팠고, 그래서 더 원망스러웠다. 연구실을 나가며 자오윈란은 다시 한 번 책상 위에 놓인 편지 바구니와 눈이 마주쳤다. 무수한 편지들을 노려본 저 편지들을 하나 하나 불태우고 모조리 잿가루로 만들어도 속이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차가운 두 눈이 분노에 형형해졌다.
집에 도착한 자오윈란은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세상에서 가장 기세등등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였지만 지금에 한해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매우 울적해진 느낌이었다. 깊은 절망감에 몸을 침대에 파묻자 다칭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독설을 날렸다.
- 피죽도 못 먹은 꼴로 나다니더니, 꼴 좀 봐라.
"야, 돼지. 난 여태까지 내가 한 번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 진혼령주 놈아. 네가 불행하면 나는 진작 시체겠다.
"그런 적 없었는데. 그런데 션웨이를 보면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돼."
나 스스로 내가 한 번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왜 션웨이를 얻지 못한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지?
그날 윈란은 룽청대를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차마 션웨이를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이미 그가 책상 서랍에 놓은 러브레터들 따위는 깡그리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윈란은 션웨이를 생각했다. 자신을 향해 몸을 날리던 션웨이, 깨어나 괜찮다 말하며 억지로 미소짓던 션웨이.
- 연애상담이로군. 진혼령주. 뭐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갖고 싶은데 가질 수가 없어. 자꾸 손에서 빠져나가. 다 줄 것 같으면서도 안 주잖아.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냐? 새끼. 자기 실속은 다 챙기고..."
그리고 자신의 손을 뿌리치며 등을 돌리던 션웨이까지. 윈란은 이제 션웨이를 향한 감정이 무조건적인 성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관심은 몸이 아닌 션웨이라는 남자 자체에게 있었다. 그건 확실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쉬울 줄 알았는데, 션웨이는 알아갈 수록 어렵기만 하다.
아무리 뻗어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간절하게 가지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션웨이를 온전히 좋아해야 한다고 한다. 윈란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한 채로 션웨이를 간절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를 가지고 싶은데 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조바심이 난다. 화가 치미는데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을 주저없이 막아서던 모습을 생각하면 심장이 간질거리다가도 편지가 담긴 바구니를 생각하면 열불이 났다. 도대체, 도대체 자각하려 하면 다시 숨어버리는 이 감정을 본인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전부 션웨이 때문이다. 션웨이 때문인데, 그런데...
- 라오자오. 이기적인 건 네 쪽 아니야?
"뭐?"
- 혼자 망상이란 망상은 다 하잖아. 발칙한 녀석 같으니.
"좀 닥쳐. 고양이 새끼야."
다칭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윈란은 마치 임신한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날카로운 눈이 다칭을 흘기자 만년 묵은 영물은 우습다는 듯이 갸르릉 울었다. 확실히 음탕한 생각을 많이 한 건 맞지만 션웨이는 떡조차 안 주는 사람이라고. 윈란은 새삼 계속해서 그에게 발정하는 암컷처럼 반응하고 있는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성욕이 많고 음탕한 건 맞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션웨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섰던가?
- 독점욕이나 소유욕 아니야? 날마다 잠자리 상대가 바뀌는 주제에 그런 감정을 갖게 됐다니 의외네.
독점욕? 소유욕? 다칭은 그 감정을 내뱉고는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윈란은 여태껏 자신의 감정이 욕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오윈란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한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션웨이를 만난 이후로 션웨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선 적이 있어? 답은 돌아왔다. 아니. 한 번도 없었어. 오히려 살아가며 여태 느꼈던 성욕들보다, 션웨이를 눈으로 보고 만지고 들었을 때 느꼈던 게 훨씬 크지.
아, 자오윈란은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션웨이를 원하는구나. 그래서 그를 온전히 가지고 싶어하는구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생전 처음으로 안달을 내는구나.
그럼 그 사랑이라는 거, 내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윈란은 비로소 자각했다. 자신은 션웨이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아니, 어쩌면 독점하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거,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난공불락일 것 같은 관계가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손을 뿌리친 션웨이를 떠올리던 순간, 자오윈란은 다시 한 번 비참해졌다. 션웨이는 자신을 끌어안았던 주제에 끝내 손을 놓고 자신에게서 도망쳤다. 그걸 생각하면 그를 용서하고 싶지가 않았다. 갑작스럽게 미친 듯이 미워지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그날 자오윈란은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애증에 미쳐 제 방 침대에서 데굴데굴 몸을 굴렸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간질거리고, 화가 나는 건 처음이었다. 윈란은 션웨이에게 제대로 복수하고 싶어졌다. 션웨이도 자신만큼이나 아팠으면 했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신보다 션웨이가 더 아프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갈 곳을 잊고서 붙은 불꽃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었다.
한편, 모두를 보내고 난 뒤 션웨이는 지친 듯이 연구실 소파에 걸터 앉았다. 그는 방금 자신이 잠깐 수마 속에 빠졌던 때를 회상하다가 몸을 떨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하고 잔인한 광경이었다. 음마가 펼쳐진 세계에서, 눈앞의 자신은 피에 젖은 윈란을 끌어안고 있었다. 윈란은 힘없이 제 품 안에 늘어져 있었는데, 죽어가는 듯이 미미하게 숨이 꺼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션웨이는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윈란을 흔들었지만, 윈란은 션웨이에게 반응하지 못했다.
- 그는 죽어간다. 네가 죽인 거다.
그때, 녹슨 쇳소리가 판을 긁어내리는 듯한 목소리 하나가 울려퍼졌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 같은 목소리가 션웨이에게 말했다.
- 나는 정욕을 먹고 사는 자, 이것이 너의 정욕이자 욕망이다.
이 끔찍한 것이 자신의 욕망이라니. 션웨이는 망연히 제 품에 안긴 윈란을 바라보았다. 윈란은 아직까지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는 음마의 덫 안에서 자신이 살아온 32년의 생애에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유일한 독점욕, 소유욕, 그리고 광기 그 자체를 목도했다. 그게 자오윈란이었다.
- 소유하고 싶으면 먹어 치워라.
그를 그대로 짓눌러. 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곧 션웨이는 곧 온 힘을 다해 다시 그 사랑을 끌어안았다. 으스러지게 그를 끌어안은 션웨이가 요마에게 일갈했다.
"절대로 안 돼."
- 그를 내어주면 내가 죽이게 해 주지. 시체를 먹어치우면 넌 그를 얻을 수 있어.
"난 휘둘리지 않아. 너 따위에게 절대 그를 내어줄 수 없다."
- 그를 얻을 수 있는데 얻지 않겠다고?
알고 있다. 그를 미치도록 열망하고 욕망한다. 전부 그를 위한 것들이지만 동시에 그가 받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미 어느 경지를 넘어선 애정이었다. 들끓는 욕망의 수마는 본인조차도 알고 있었다. 위험한 자신의 감정은 이미 정상적인 범주를 한참 넘은 지 오래라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션웨이의 마음은 절실하게 진심을 외쳤다.
"필요 없다."
"넌 틀렸어. 내 삼혼칠백과 육신이 억만 조각으로 갈갈이 찢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구할 거다. 아란은 내 목숨보다 소중하니까."
그게 진심이다. 그 말을 하는 션웨이는 마치 자신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다른 인물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직후, 요마가 째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공간 안을 잠식했다. 무언가가 불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것도 없던 세상이 온통 칠흑같은 흑색의 세계로 잠식되었다. 천장이 쩌적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요마가 컥 하며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리자 션웨이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요마의 목을 졸랐다.
- 허억, 반쪽 짜리 진혼령주 따위가 기어이...!
분노로 번들거리는 두 눈을 한 션웨이는 윈란이 어떠한 행위를 저질렀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목이 졸리던 음마의 형체가 이윽고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봉인되지 못한 것이다. 음마의 목을 조르고 있던 션웨이의 정신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음마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션웨이의 귀를 울렸다.
- 천룡, 이번에는 네 정신력과 진혼령주가 이긴 듯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 방금 본 것은 분명한 너의 욕망이다. 넌 그를 소유하기 위해 애쓸 거야. 말라가는 그를 필사적으로 먹어치우고 네 애정이 그를 좀먹을 테지. 네 소유는 곧 그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네 욕망이고!
그 지독한 일갈을 끝으로 션웨이는 눈을 떴다. 그는 음마를 통해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목격한 것이다. 부득 이를 간 션웨이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의 환각 속에서 요마는 말했다. 이 애정을 그에게 온전히 내비치면 그가 말라 죽을 것이라고. 션웨이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지상 그 누구보다 혐오스러운 존재였지만 그 말은 맞는 소리였다. 그의 시선이 이미 까맣게 물든 익명의 러브레터로 가 닿았다. 정욕을 먹고 사는 음마이기에 성인 사이트에 나타난 것이고, 이 편지 안에 깃들어 자신에게 나타났으리라. 그는 결심했다. 반드시, 어떻게 해서라도 윈란에게서 멀어지겠다고.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그 말은 하나의 자기암시였다. 무사히 일어난 션웨이는 자신을 걱정하는 윈란에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직감했다. 반드시 자오윈란을 떠나야 한다는 사명이 곁을 맴돌았다. 요마의 술수라 해도 윈란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감정은 자신의 더러운 욕망들 중 하나를 내비치는 셈이었다. 그러니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아무리 욕심이 나고,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그를 좀먹게 된다면 자연히 떠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샤오웨이?]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제 손을 쥐었던 자오윈란의 그 체온은, 제기랄. 션웨이는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잘 다듬어진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억누르고 또 억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가 없었다. 속내에서 끝없이 번뇌가 생겼다. 사랑이 집착으로 번지고 시꺼먼 욕망으로 번지는 상황을 션웨이는 막지 못했다. 그에게 신이 내리는 번뇌가 이리도 고통스러웠다.
션웨이는 그날 야존에게 문자로 통보한 뒤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체온에 닿았던 윈란의 살결이 생각나 본인의 연구실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교수 전용 휴게실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당연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가 다시 한 번 까맣게 물든 편지에 시선을 두었다.
그래. 자신의 사랑은 이처럼 병들어 있었다. 떠나야 했다. 그를 위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네가 산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덫을 놓기 위한 강의가 시작되기 사흘 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젠장.
룽청대에 낼 휴직서 혹은 사직서의 내용을 생각하던 션웨이는 불현듯 자기 자신의 처지가 우스워져 결국에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순간에도 번뇌는 지속되고 있었다.
-
룡백 웨이란 진혼
15
*양인 음인 차별없는 세계관
(정욕 편 2.5)
16
"덫을 놓는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특조처가 모이자마자 가장 먼저 의견을 낸 인물은 여태까지 충실한 보조자 역할을 하면서 수사에 협조만 할 줄을 알았지 별 다른 행동이 없었던 션 교수였다. 보통 부탁을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수사에 협조적인 인물은 드물었으므로 모두가 션웨이를 쳐다보았다.
- 덫이요?
"예."
매니큐어를 바르던 추홍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션웨이의 시선이 모두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고군분투했던 윈란의 손등에 닿았다. 거즈를 붙인 상처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잠깐 말을 하던 션웨이의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듯이 살벌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순식간에 표정을 지운 그는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윈란이 보았던 서늘한 얼굴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온화한 분위기가 연구실을 잠식해 나갔다. 션웨이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흘 뒤면 학과에서 고전문학 강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평론 과제를 제가 단체 메신저로 전송하여 수기로 희곡평을 작성하라 이르겠습니다."
- 션 교수님이 직접 나서시겠다고요?
"제가 미끼가 되는 방법이 가장 편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다 타 버리기는 했지만 필체가 남아 있으니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 그, 그래도 교수님께서 위험해지실 수도 있으실, 텐데...
"특조처의 인원들 중 누군가가 저 대신 수업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강의는 사흘 후이고, 그 사이에 여러분들 중 강의 내용을 완벽하게 외워서 학생들에게 가르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미리 강의 녹음을 해 놓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질문 시간이 걸립니다."
- 확실히 그만한 계획이 없기는 합니다. 션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좋은 머리는 아니거든요. 처장은 머리는 좋지만 성격이 문제고.
그래도 가장 정의감이라는 것이 박혀있는 인물이었던 궈창청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대의 의사를 내비쳤지만 추수즈는 션웨이의 계획에 동의했다. 린징이나 추홍도 그렇게 반대하는 의사는 없는 것 같았고, 부처장인 다칭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 션 교수가 시원시원하고 좋구만. 누구랑은 다르게 일 처리를 잘 한다니까.
그러나 윈란의 표정은 싸하게 굳어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내던지는 션웨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윈란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볼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표정이 얼마나 무섭게 굳어졌는지를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표정부터 열렬하게 반대의 의사를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건너무 위험합니다. 대놓고 강의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인질과 다를 바가 없는데, 샤오웨-."
그 순간 자오윈란은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챘다. 걱정이 앞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그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 윈란은 상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목격했다. 온화하던 교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냉골마냥 천천히 서늘해졌다. 고지식한 교수는 공과 사를 명백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자오윈란 역시 그러했지만 이번 일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가 영 힘들었다. 귀에 싸늘한 션 교수의 목소리가 닿자, 윈란은 어느 부정한 감정을 느끼고 작게 몸을 떨었다. 순간 저렇게 말을 하는 션웨이의 눈 앞에서 직접 제 손등을 그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자오 처장."
"...네."
"지금 우리는 공적인 일에서 함께 협조하기 위해 의논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적인 호칭은 굳이 이 대화 주제에서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닌 다른 특조처 분들께 사과를 드려야 하는 게 맞을 듯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션웨이의 얼굴은 누구보다 차갑고 딱딱해 보여서 자오윈란은 그 말이 맞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분명히 맞다. 그의 말투는 정중했고, 흠결 하나 없었으니 자오윈란이 무어라 할 구석이 없다. 하지만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속 안에 부아의 이름을 한 불꽃이 확 치밀었다.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행동을 천하의 자오윈란이 가만 둘 리 없었다.
정식으로 제대로 된 일정을 짜고 실행하게 되자 특조처 일행은 더 이상 룽청대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모두가 돌아가기 위해 션웨이에게 인사를 할 때, 그는 제대로 대접했던 것이 없다며 이전에 선배 교수에게서 받았던 일본산 고급 녹차 세트를 내왔다. 다칭의 몫에는 역시나 같은 교수에게서 선물받았던 훈연된 가쓰오부시가 주어졌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자오윈란만이 입맛이 없다고 녹차 마시기를 사양했다.
추홍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읽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매우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자오윈란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마침내 연구실을 나가 버렸다. 션 교수의 시선이 나간 자오윈란을 훑었다. 자오윈란이 없는 지금, 추홍은 지금 이 순간이 션 교수를 떠볼 좋은 기회였다. 차의 향을 즐기던 그녀가 책상 위에서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션웨이를 불렀다.
- 션 교수님.
"말씀하시죠."
- 이번 작전은 우리 대장을 생각해서 나서시려는 건가요?
추홍은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션웨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히 옭아매려 노력해서 질문했다. 추홍은 눈앞의 아름다운 남자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무언가를 곱씹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마침내 션웨이가 입술을 떼자 추홍은 한껏 집중했다. 저 물뱀같은 남자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글쎄요.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맞다고도 할 수 없겠죠. 공적인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아니라고만 말할 수도 없을 것 같군요."
션웨이는 그 말을 하며 부드럽게 웃었는데, 쌍꺼풀이 아름답게 진 눈꼬리가 은근히 가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추홍은 소름이 끼쳤다. 비록 아주 잠깐이었지만 뱀족인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맹독같은 눈빛이 자신을 스쳐갔다. 음습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순수한 광기의 그것.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광기를 우연히 목도한 그녀는 순간 굳어버린 자신의 안면근육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뱀이라고 생각했는데, 잠룡이었다. 수면 아래 잠든 물뱀을 가장한 채 잠들어 있는 용과 같은 느낌. 그녀는 여자의 직감으로 알았다. 이 교수라는 작자는 처장을 사랑하고 있다. 추홍은 직감적으로 이번 사건의 도촬 피해자인 이 아름다운 남자가 자신의 연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자신이 한참 아래라는 사실 역시 직시하고야 말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잘 벼려진 칼이며 총이고 흉탄이었다. 그녀는 그를 이길 만한 자신이 없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 답변 고맙습니다. 한 잔 더 마셔도 될까요?
"그럼요."
- 호의에 너무 감사해요. 교수님. 차 향이 너무 좋네요.
션웨이가 포트에서 다시 물을 끓여 녹차를 내려주자 추홍은 겁에 질린 자기 자신을 숨기려 찻잔을 받아드는 손에 힘을 주었다. 미인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디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상냥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천만에요." 그는 웃고 있었다. 추홍도 억지로 웃었다. 소름이 끼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을 하던 찰나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평소보다 더욱 쌀쌀맞은 자오윈란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생긴 얼굴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좋지 않은 기분을 대놓고 표현하고 있었다.
(정욕 편 3)
17
그는 고급 녹차향에 취해 있는 특조처 인원들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추수즈와 린징이 그런 그를 비난하며 아양을 떨었지만 못생긴 두 남자의 얼굴은 전혀 자오윈란을 동요하게 하지 못했다.
"꾸물대지 말고 일어나. 가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준비하고 결계나 준비해."
- 이 차를 즐기고 싶다고. 얼마나 향이 좋은지 알아? 좀 더 마시고 가면 안 되나? 얼마나 맛있는데! 대장, 아직 사흘이나 남았잖아.
- 아미타불. 시주님이 주신 은덕을 어떻게 거절하겠나이까. 제발 이 한 잔의 즐거움만을 누리게 해 주시죠.
"뒤지기 싫으면 준비해라. 진혼등 채찍으로 후려맞고 싶어서 그래?"
- 추 형, 린징 형. 같이 일어나요. 얼른 결계를 준비해야죠. 처장님 말씀대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잖아요.
- 인간. 이 몸은 만 오천 살이라서 이가 안 좋단 말이다. 섬나라 어포는 하늘하늘한 게 썩 입에 잘 맞는데 방해하기야?
- 음마가 평범한 게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미리 준비를 하는 게 더 좋기도 하고...
추수즈에게 결계 교육을 받은 뒤 어떤 투철한 정신이라도 느낀 듯한 궈창청이 자오윈란을 따라 일어서자 왠일에서인지 농땡이를 부릴 것 같은 추홍이 따라 일어섰다. 션웨이의 섬뜩한 면모를 목격한 그녀로서는 필사적으로 피하기 위해서 일어선 것이었지만 모두가 그녀를 보고 배신자라는 눈빛을 보내자 추홍은 어색하게 변명했다.
- 가긴 가야 할 거 아냐.
- 우리들 다시 돌아가서 부적으로 뭐라도 해 봐요. 그, 그래요. 부적으로 음마한테 편지를 쓰는 건요?
- ......인간, 이미 편지는 불타고 잠들었어. 필체는 이미 다들 알아봤다고. 그런데도 그 소리가 나와?
- 그래도 음마에게 편지를 보내서 원한을 좀 풀고 평범하게 성불하라고 하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야. 이 멍청한 인간아!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이 녀석은 평범한 혼이 아니야. 편지에 힘의 일부를 숨겨둘 정도면 악령 이상이란 말이다. 일 년을 이 곳에서 썩었는데 너라는 인간은 머리가 그 정도로밖에 돌아가지 않는 거냐!
- 잘못, 잘못했습니다! 부처장님! 죄송...!
"잠깐만."
- 네, 네?
"...부적으로 편지를 쓴다. 생각해 보면 저 생각이 아주 틀려먹은 건 아니야."
논점을 완전히 빗나가기는 했지만. 사력을 다한 궈창청의 임기응변은 그의 특조처 인생에서 가장 쓸 만한 것이었다. 물론 좀 비어 있기는 했지만. 평소에 좀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무능하지만 않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저 멍청이에게 납득과 이해가 될 지 한숨을 쉬고 있는데, 션 교수가 유일하게 자오윈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을 덧붙여 주었다. 궈창청이 멍청하게 그에게 되물었다.
"트릭을 놓는 거군요."
- 네...?
"부적으로 편지를 만든다는 의견을 좀 더 정교하게 짜 보면 부적을 통해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역으로 속이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 아무리 동생이 영매라고 하지만 션 교수는 평범한 인간인데 어떻게 그것을 알지?
"제 동생 야존의 주된 수법입니다.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얻어낸 정보들이 많다고 제게 자주 자랑을 해 왔던 적이 많았거든요."
- 아...
다칭의 날카로운 질문에 션웨이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자오윈란은 아니꼬운 눈으로 션웨이와 궈창청을 바라보았다. 이놈은 평소에 부적 만들 때 빼고는 쓸모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가끔은 쓸모가 있다. 그는 아직까지도 시시때때로 겁에 질릴 때마다 전력을 다해 같은 편까지 죽이려 드는 궈창청의 무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선물했지만 자신마저 바싹 구워질 뻔한 그 전기 충격기. 겁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먹고 사는 궈창청의 전기 충격기는 24시간 모피털처럼 겁을 몸에 두르고 사는 그에게 둘도 없이 좋은 무기였지만 컨트롤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놈은 사이트 안에 아직 있어. 부적이나 결계는 형태만으로도 그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지. 즉,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사이트에도 판만 잘 짜면 설치가 가능하다는 말이야."
- 대단한 일이네요... 제 보잘것없는 식견을 그 정도로 해석하실 수 있으시다니 교수님도 처장님도 정말 대단하세요.
"알면 됐어."
션웨이와 자오윈란은 본인 기준으로 아주 짧고 간략하게 멍청한 궈창청을 이해시키는 데에 성공시켰다. 궈창청의 입이 벌어지고 그의 표정이 경외심에 물들었다. 보통이었다면 자오윈란은 션웨이에게 아주 곱게 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상대가 션웨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랬을 거였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귀신의 존재를 무섭고 소름끼쳐 한다. 당연히 퇴마와 관련된 일에도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는 게 당연하다. 이 정도로 수사에 협조해 주는 사람도 드물 텐데 자기 자신을 기꺼이 계획의 일부로 포함시키고 의견까지 내 주는 사람을 달갑지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녀석이 알아듣게 설명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교수님. 다만 특조처의 일이기도 하고, 이제 룽청대에 있을 필요가 없기에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특조처의 일일 텐데요."
"저희야말로 피해를 끼쳐 죄송할 뿐입니다. 늘 적극적인 수사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사흘 후에 뵙지요."
"살펴 가시죠."
그러나 이번에는 자오윈란이 션웨이를 밀어냈다. 싸늘하게 션웨이를 노려본 자오윈란은 아까의 션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등을 돌려 버렸다.
특조처 인원들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화가 나 보이는 처장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하나같이 가겠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션웨이는 이내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마침내 천천히 윈란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배웅했다.
자오윈란은 그 모습을 보면서 션웨이가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자기 자신을 분노하게 하고, 이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고, 그러면서도 가장 안도감을 느끼게 하고. 이 정도로 자오윈란이라는 인물 자체를 통째로 흔들어 버린 사람은 션웨이가 유일했다.
"집에는 알아서들 꺼져. 간다."
그래서 더 아팠고, 그래서 더 원망스러웠다. 연구실을 나가며 자오윈란은 다시 한 번 책상 위에 놓인 편지 바구니와 눈이 마주쳤다. 무수한 편지들을 노려본 저 편지들을 하나 하나 불태우고 모조리 잿가루로 만들어도 속이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차가운 두 눈이 분노에 형형해졌다.
집에 도착한 자오윈란은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세상에서 가장 기세등등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였지만 지금에 한해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매우 울적해진 느낌이었다. 깊은 절망감에 몸을 침대에 파묻자 다칭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독설을 날렸다.
- 피죽도 못 먹은 꼴로 나다니더니, 꼴 좀 봐라.
"야, 돼지. 난 여태까지 내가 한 번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 진혼령주 놈아. 네가 불행하면 나는 진작 시체겠다.
"그런 적 없었는데. 그런데 션웨이를 보면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돼."
나 스스로 내가 한 번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왜 션웨이를 얻지 못한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지?
그날 윈란은 룽청대를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차마 션웨이를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이미 그가 책상 서랍에 놓은 러브레터들 따위는 깡그리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윈란은 션웨이를 생각했다. 자신을 향해 몸을 날리던 션웨이, 깨어나 괜찮다 말하며 억지로 미소짓던 션웨이.
- 연애상담이로군. 진혼령주. 뭐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갖고 싶은데 가질 수가 없어. 자꾸 손에서 빠져나가. 다 줄 것 같으면서도 안 주잖아.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냐? 새끼. 자기 실속은 다 챙기고..."
그리고 자신의 손을 뿌리치며 등을 돌리던 션웨이까지. 윈란은 이제 션웨이를 향한 감정이 무조건적인 성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관심은 몸이 아닌 션웨이라는 남자 자체에게 있었다. 그건 확실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쉬울 줄 알았는데, 션웨이는 알아갈 수록 어렵기만 하다.
아무리 뻗어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간절하게 가지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션웨이를 온전히 좋아해야 한다고 한다. 윈란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한 채로 션웨이를 간절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를 가지고 싶은데 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조바심이 난다. 화가 치미는데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을 주저없이 막아서던 모습을 생각하면 심장이 간질거리다가도 편지가 담긴 바구니를 생각하면 열불이 났다. 도대체, 도대체 자각하려 하면 다시 숨어버리는 이 감정을 본인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전부 션웨이 때문이다. 션웨이 때문인데, 그런데...
- 라오자오. 이기적인 건 네 쪽 아니야?
"뭐?"
- 혼자 망상이란 망상은 다 하잖아. 발칙한 녀석 같으니.
"좀 닥쳐. 고양이 새끼야."
다칭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윈란은 마치 임신한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날카로운 눈이 다칭을 흘기자 만년 묵은 영물은 우습다는 듯이 갸르릉 울었다. 확실히 음탕한 생각을 많이 한 건 맞지만 션웨이는 떡조차 안 주는 사람이라고. 윈란은 새삼 계속해서 그에게 발정하는 암컷처럼 반응하고 있는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성욕이 많고 음탕한 건 맞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션웨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섰던가?
- 독점욕이나 소유욕 아니야? 날마다 잠자리 상대가 바뀌는 주제에 그런 감정을 갖게 됐다니 의외네.
독점욕? 소유욕? 다칭은 그 감정을 내뱉고는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윈란은 여태껏 자신의 감정이 욕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오윈란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한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션웨이를 만난 이후로 션웨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선 적이 있어? 답은 돌아왔다. 아니. 한 번도 없었어. 오히려 살아가며 여태 느꼈던 성욕들보다, 션웨이를 눈으로 보고 만지고 들었을 때 느꼈던 게 훨씬 크지.
아, 자오윈란은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션웨이를 원하는구나. 그래서 그를 온전히 가지고 싶어하는구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생전 처음으로 안달을 내는구나.
그럼 그 사랑이라는 거, 내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윈란은 비로소 자각했다. 자신은 션웨이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아니, 어쩌면 독점하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거,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난공불락일 것 같은 관계가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손을 뿌리친 션웨이를 떠올리던 순간, 자오윈란은 다시 한 번 비참해졌다. 션웨이는 자신을 끌어안았던 주제에 끝내 손을 놓고 자신에게서 도망쳤다. 그걸 생각하면 그를 용서하고 싶지가 않았다. 갑작스럽게 미친 듯이 미워지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그날 자오윈란은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애증에 미쳐 제 방 침대에서 데굴데굴 몸을 굴렸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간질거리고, 화가 나는 건 처음이었다. 윈란은 션웨이에게 제대로 복수하고 싶어졌다. 션웨이도 자신만큼이나 아팠으면 했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신보다 션웨이가 더 아프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갈 곳을 잊고서 붙은 불꽃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었다.
한편, 모두를 보내고 난 뒤 션웨이는 지친 듯이 연구실 소파에 걸터 앉았다. 그는 방금 자신이 잠깐 수마 속에 빠졌던 때를 회상하다가 몸을 떨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하고 잔인한 광경이었다. 음마가 펼쳐진 세계에서, 눈앞의 자신은 피에 젖은 윈란을 끌어안고 있었다. 윈란은 힘없이 제 품 안에 늘어져 있었는데, 죽어가는 듯이 미미하게 숨이 꺼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션웨이는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윈란을 흔들었지만, 윈란은 션웨이에게 반응하지 못했다.
- 그는 죽어간다. 네가 죽인 거다.
그때, 녹슨 쇳소리가 판을 긁어내리는 듯한 목소리 하나가 울려퍼졌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 같은 목소리가 션웨이에게 말했다.
- 나는 정욕을 먹고 사는 자, 이것이 너의 정욕이자 욕망이다.
이 끔찍한 것이 자신의 욕망이라니. 션웨이는 망연히 제 품에 안긴 윈란을 바라보았다. 윈란은 아직까지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는 음마의 덫 안에서 자신이 살아온 32년의 생애에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유일한 독점욕, 소유욕, 그리고 광기 그 자체를 목도했다. 그게 자오윈란이었다.
- 소유하고 싶으면 먹어 치워라.
그를 그대로 짓눌러. 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곧 션웨이는 곧 온 힘을 다해 다시 그 사랑을 끌어안았다. 으스러지게 그를 끌어안은 션웨이가 요마에게 일갈했다.
"절대로 안 돼."
- 그를 내어주면 내가 죽이게 해 주지. 시체를 먹어치우면 넌 그를 얻을 수 있어.
"난 휘둘리지 않아. 너 따위에게 절대 그를 내어줄 수 없다."
- 그를 얻을 수 있는데 얻지 않겠다고?
알고 있다. 그를 미치도록 열망하고 욕망한다. 전부 그를 위한 것들이지만 동시에 그가 받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미 어느 경지를 넘어선 애정이었다. 들끓는 욕망의 수마는 본인조차도 알고 있었다. 위험한 자신의 감정은 이미 정상적인 범주를 한참 넘은 지 오래라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션웨이의 마음은 절실하게 진심을 외쳤다.
"필요 없다."
"넌 틀렸어. 내 삼혼칠백과 육신이 억만 조각으로 갈갈이 찢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구할 거다. 아란은 내 목숨보다 소중하니까."
그게 진심이다. 그 말을 하는 션웨이는 마치 자신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다른 인물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직후, 요마가 째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공간 안을 잠식했다. 무언가가 불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것도 없던 세상이 온통 칠흑같은 흑색의 세계로 잠식되었다. 천장이 쩌적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요마가 컥 하며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리자 션웨이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요마의 목을 졸랐다.
- 허억, 반쪽 짜리 진혼령주 따위가 기어이...!
분노로 번들거리는 두 눈을 한 션웨이는 윈란이 어떠한 행위를 저질렀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목이 졸리던 음마의 형체가 이윽고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봉인되지 못한 것이다. 음마의 목을 조르고 있던 션웨이의 정신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음마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션웨이의 귀를 울렸다.
- 천룡, 이번에는 네 정신력과 진혼령주가 이긴 듯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 방금 본 것은 분명한 너의 욕망이다. 넌 그를 소유하기 위해 애쓸 거야. 말라가는 그를 필사적으로 먹어치우고 네 애정이 그를 좀먹을 테지. 네 소유는 곧 그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네 욕망이고!
그 지독한 일갈을 끝으로 션웨이는 눈을 떴다. 그는 음마를 통해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목격한 것이다. 부득 이를 간 션웨이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의 환각 속에서 요마는 말했다. 이 애정을 그에게 온전히 내비치면 그가 말라 죽을 것이라고. 션웨이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지상 그 누구보다 혐오스러운 존재였지만 그 말은 맞는 소리였다. 그의 시선이 이미 까맣게 물든 익명의 러브레터로 가 닿았다. 정욕을 먹고 사는 음마이기에 성인 사이트에 나타난 것이고, 이 편지 안에 깃들어 자신에게 나타났으리라. 그는 결심했다. 반드시, 어떻게 해서라도 윈란에게서 멀어지겠다고.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그 말은 하나의 자기암시였다. 무사히 일어난 션웨이는 자신을 걱정하는 윈란에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직감했다. 반드시 자오윈란을 떠나야 한다는 사명이 곁을 맴돌았다. 요마의 술수라 해도 윈란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감정은 자신의 더러운 욕망들 중 하나를 내비치는 셈이었다. 그러니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아무리 욕심이 나고,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그를 좀먹게 된다면 자연히 떠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샤오웨이?]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제 손을 쥐었던 자오윈란의 그 체온은, 제기랄. 션웨이는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잘 다듬어진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억누르고 또 억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가 없었다. 속내에서 끝없이 번뇌가 생겼다. 사랑이 집착으로 번지고 시꺼먼 욕망으로 번지는 상황을 션웨이는 막지 못했다. 그에게 신이 내리는 번뇌가 이리도 고통스러웠다.
션웨이는 그날 야존에게 문자로 통보한 뒤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체온에 닿았던 윈란의 살결이 생각나 본인의 연구실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교수 전용 휴게실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당연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가 다시 한 번 까맣게 물든 편지에 시선을 두었다.
그래. 자신의 사랑은 이처럼 병들어 있었다. 떠나야 했다. 그를 위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네가 산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덫을 놓기 위한 강의가 시작되기 사흘 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젠장.
룽청대에 낼 휴직서 혹은 사직서의 내용을 생각하던 션웨이는 불현듯 자기 자신의 처지가 우스워져 결국에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순간에도 번뇌는 지속되고 있었다.
-
룡백 웨이란 진혼
https://hygall.com/565289442
[Code: 8de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