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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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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가 당황해서 허둥지둥하고 있자, 마치다는 피에 젖지 않은 다른 손으로 노부의 뺨을 콕 찔렀다. 

"일단 피닉스 데리고 지금 여기 꼭대기층에 다른 몬스터가 없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이 층에만 결계를 쳐 놓자."

노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몬스터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처리하는 것 정도야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다친 마치다를 여기 혼자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친 사람을 데리고 다닐 수도 없으니 일단은 함께 있어야 했다. 노부가 얼른 일어나서 피닉스와 함께 꼭대기층에 몬스터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결계를 치고 오자, 케이가 그새 창백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노부는 호흡이 거칠어진 마치다를 다시 품에 안고 상처를 덮고 있는 마치다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

"치유의 소환사를 불러야 해요. 협회에 연락할까요?"
"안 돼."

마치다는 허둥거리는 노부의 손등을 토닥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협회에서 치유의 소환사가 나오면 사고 발생 경위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고, 우리 신분도 다시 철저히 검사할 거야. 네가 들켜."
"..."
"그리고 우리한텐 츠지무라 박사와 소라가 있잖아. 왜 협회 소속 치유의 소환사를 불러."
"아..."

그러고보니 노부는 항상 혼자 다녔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당하면 늘 협회에 연락해서 치유의 소환사를 불러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S급 치유의 소환사와 A급 치유의 소환사한테 직통으로 연락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고토상과 가루베상을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끝나고 오라고 해야지."
"..."
"아기들 놀랄 테니까 몰래 보내라고 해야겠어. 잠깐만."

마치다는 숙소에 남아 있는 사쿠마에게 연락해서 부상당했으니 츠지무라 박사와 소라가 돌아오는대로 제게 보내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이치로가 같이 갔으면 좀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류세이가 데리고 갔으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
"이치로는 애들한테 최대한 많이 가르쳐 주려고 하는 편인데 류세이는 최대한 안전하게 빨리 끝내려고 하는 편이라."
"... 다행이네요."

두 사람의 대화는 잠깐 끊겼다. 마치다가 부상당한 것에 놀란 은빛드래곤이 옆에서 마치다의 머리에 제 머리를 비비며 계속 낑낑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다가 한참 동안 드래곤을 쓰다듬으며 달래줘야 했던 탓이었다. 

"다쳐서 놀랐지. 미안해.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내가 방심했어. 다신 정신 팔고 있지 않을게. 금방 나을 거야. 괜찮아. 미안해."

드래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지 안 돌아가려고 했지만 마치다가 계속 드래곤을 소환한 상태면 드래곤의 힘이 감싸고 있다고 해도 부상회복에 가야 할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마치다는 안 돌아가려는 드래곤을 다독여서 소환을 해제했다. 마치다가 웃고 있던 건 그때까지였다. 드래곤과 피닉스가 소환해제되자마자 마치다는 마치다는 온통 식은땀 범벅인 얼굴을 하고는 노부의 품에 기댄 채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츠지무라 박사랑 소라가 오면 바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치료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 네."
"노부."
"네."
"나 다른 생각 좀 하게 네 이야기 좀 해 봐."

마치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고통이 끔직한지 상처를 누르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온통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노부는 그 얼굴의 땀을 닦아주면서 바로 얼마 전에 고토, 가루베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늘처럼 다른 토벌전에 나간 사람이 많아서 선택지가 별로 없을 때마다 '쿠니시타는 내 거'라고 주장하는 쿄스케를 하도 여러 번 봐서 고토와 가루베에게 쿄스케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을 때. 

[쿄스케 형은 착한데요. 음.]

고토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루베가 냉큼 끼어들었다. 

[착한데 다른 사람들이랑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누가 말 걸면 이렇게 쳐다봐요.]

그러면서 딴에는 차가운 표정을 짓고 슥 쳐다보는 게 웃겨서 노부가 피식 웃자 고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도 쳐다봐 주면 낫지. 아예 못 들은 척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서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한 건 그래도 맛치 형이 말을 하면 절대로 못 들은 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쿄스케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도 부모와도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고 동네 친구들과도 겉돌았기 때문에 마치다가 고아가 된 동네의 동생들을 다 데리고 수도로 올 때 쿄스케를 꺼리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가루베는 마치다가 데리고 온 아이가 아니라 수도에서 만났기 때문에 그 사정에 대해선 모르고 고토는 그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잘 몰랐던 듯하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모양. 그런데도 고토를 품에 안고 있던 마치다가 무조건 다 같이 간다고 쿄스케의 손을 잡아끌어서 데리고 온 탓인지 마치다만은 잘 따른다고. 

[쿠니시타 상하고도 가까운 사이같던데요?]

노부가 그렇게 묻자 엄연히 성인이지만 아직 어린 티를 다 벗지 못한 둘은 부끄럽다는 듯 으이이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몸을 배배 꼬았다. 

[왜 그래요?]
[이치로 형하고 같이 있을 땐 맨날 끌어안고 있단 말이에요. 부끄러워.]

그러면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던 꼬맹이들이 귀여웠던 게 떠올라서였다. 

"쿠니시타 상과 사쿠마 상이 사귀는 사이입니까?"

마치다의 얼굴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며 묻자 마치다는 힘없이 웃었다. 

"네 이야기를 하라니까 그 녀석들 이야기는 왜 해?"

핀잔을 주긴 했지만 대답을 피할 생각은 없는지 마치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쿄스케가 이치로를 정말 좋아하지. 이치로도 쿄스케를 보물처럼 대해주고. 귀여운 것들. 그런데..."
"네?"
"정말로 그 둘의 이야기가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닐 테고..."

마치다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지 초점이 흐릿해지는 눈으로 노부의 품으로 더 파고 들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피... 묻혀서 미안해."

지금은 쿄스케 모습이긴 하지만 모습만 바꿔 보일 뿐 피나 땀 같은 게 흐르거나 묻으면 그건 노부의 실제 몸이나 진짜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묻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게 지금 무슨 문제란 말인가. 

"상관없어요."

노부가 마치다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마치다를 품에 더 당겨안자 마치다가 한숨을 쉬며 다시 작게 물었다. 

"진짜 쿄스케네 이야기가 궁금했던 건 아닐 테고,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게 뭐야?"
"... 야오토메 상이 마치다 상... 아니, 케이를 좋아해요?

케이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어서 흐릿해진 눈으로 노부를 바라봤다. 

"너는?"
"네?"
"너는 날 좋아해?"

두 사람의 시선이 진득하게 얽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통증 때문에 흐릿해지는 것 같았던 케이의 눈이 또렷하게 반짝거리며 노부를 향해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시선이 얽혔을 때가 언제였지. 아... 각인이 복구되고 처음으로 피닉스를 다시 소환했던 날, 그들이, 노부의 전 약혼자와 그 세력이 노부를 죽이기 위해 찾아올 거란 말을 들었던 날인가. 그때도 이렇게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에서 서로 시선을 마주했었다. 그렇게 한참 케이의 눈을 바라보던 노부가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품에 안고 있던 케이를 조금 더 당겨서 끌어안자 케이는 피에 젖은 손으로 노부의 목을 끌어안으며 다른 손으로 노부의 뺨을 감싸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 너무 키스하고 싶은데 진짜 화난다."
"...왜요?"

입술이 너무 가까워서 '왜요' 짧은 한 마디를 하는 동안 입술이 스쳤다. 그저 잠깐 스쳤을 뿐인데도 통증 때문인지 까칠해진 입술의 감각이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난 너랑 키스를 하고 싶은 거지 쿄스케랑 키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

그제야 현재 자기가 사쿠마 쿄스케의 몸을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린 노부는 손을 들어서 케이의 눈을 덮었다. 손바닥에 닿은 케이의 속눈썹이 팔락거리며 간질거리는 느낌이 전해지자 온몸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노부는 케이의 눈을 덮은 채로 고개를 숙여 까칠해진 입술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걱정 말아요. 지금 케이가 키스하는 사람은 케이가 노부라고 부르는 바로 나니까."

케이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더니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래, 노부."

그리고 상처 때문에 오르는 열과 고통 때문에 까칠해졌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달콤한 입술이 닿았다.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