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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1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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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이 복구되면서 피닉스의 힘이 다시 노부를 완전히 감쌌고 부러진 뼈는 빠르게 붙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던 복부의 상처도 금방 깔끔해졌다. 마법처럼 한순간에 뼈가 붙지는 않았지만 정말 빠른 속도였다. 그동안에도 야오토메와 고토는 계속 노부를 찾아왔었다. 정확하게는 고토가 노부를 찾아오고 야오토메는 고토를 잡으러 오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지하실에서 야오토메와 고토, 가루베의 합동훈련을 보여준 후에는 방문자가 늘었다. 

"다이짱도 간병하는 거 도와준다고 했어요."

히힛 웃고 있는 고토와 배시시 웃고 있는 가루베가 귀엽긴 했다. 고토의 말에 의하면 가루베는 S급 화염의 소환사나 피닉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둘 다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고토 상은 피닉스나 제 스승님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도 본 적 없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S급 화염의 소환사나 피닉스가 궁금했던 게 아니라 노부가 걱정된 거였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게 가루베보다 이쪽이 더 피닉스를 궁금해했다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두 사람이 워낙 귀여웠고 또 두 사람이 많이 궁금해해서 휠체어를 타고 함께 지하실에 내려가서 피닉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가루베는 처음 보는 피닉스가 낯선지 거리를 두고 서서 꼼꼼히 바라보기만 했지만 고토는 서슴없이 다가가서 끌어안았다. 불냥이가 계속 불안해하면서 널 걱정해서 나도 너무 걱정됐어. 스즈키 삼촌이 나아서 너도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너도 불안했지. 종알종알하는 고토가 마음에 들었는지 피닉스는 고토의 얼굴에 제 얼굴을 부비며 온순하게 굴어주었다. 역시 저놈은 사람을 차별하는 게 틀림없다. 

고토도 귀엽고 가루베도 귀여웠다. 두 사람이 함께 찾아와서 노부의 간병을 해 주거나 두 사람이 합동훈련을 보여주는 것도 모두 좋았다. 그러나 고토가 항상 가루베와 함께 왔기 때문에 고토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때 하려 했던 말이 정말로, 야오토메가 마치다를 좋아한다는 말이었느냐고는. 





상처가 다 낫고 츠지무라가 훈련을 해도 된다고 한 이후에는 내내 마치다와 함께 훈련을 했다. 빙결의 소환수와 함께 몬스터 사냥을 하는 일이 생전 처음인 노부는 야오토메처럼 마치다에게 능숙하게 맞춰줄 수 없어서 애가 탔지만 마치다는 여유롭게 노부와 합을 맞춰주었다. 그러나 전 약혼자가 최근 몇 번 노부와 함께 토벌전에 나가 주었다고 해도 그는 주로 노부가 공격하는 걸 보면서 방어 스킬 정도만 써 주었기 때문에 노부는 사실상 합동공격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과 합동훈련을 해 본 적도 없었고. 그 탓에 합을 맞추는 요령도 없이 몇 번 합을 맞춰보려다가 실수도 많이 했다. 조급해 할 일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합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실수를 할 때마다 마치다가 신경 쓸 게 전혀 없도록 매끄럽게 합을 맞춰주던 야오토메가 계속 눈 앞에 어른거려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느 날 또 실수를 해서 피닉스와 드래곤이 충돌하게 만든 노부가 길게 한숨을 내쉬자 마치다는 피닉스와 드래곤을 달래준 다음 드래곤을 돌려보냈다. 노부가 또 노부의 품에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고 왜 날 부딪치게 만들었냐고 항의하는 것 같은 피닉스에게 사과하고 돌려보낸 후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야오토메 상처럼 매끄럽게 못 맞춰줘서 답답하죠?"

물을 마시던 마치다는 눈썹을 까딱하더니 노부의 옆에 같이 주저앉으며 물통을 내밀었다. 

"류세이? 류세이하고는 워낙 많이 맞춰봤으니 합이 맞는 거지. 그렇게 많이 같이 다녔는데 아직까지 합이 안 맞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만난 지 오래됐습니까?"
"응. 오래됐지."
"언제 만났어요?"

마치다가 무릎에 팔을 올린 채 턱을 괴고 노부를 빤히 바라봐서 노부는 괜히 물통을 열어 물을 마셨다. 물통의 물이 다 비었는데도 마치다가 계속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그제야 고개를 돌리자 마치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해?"
"... 합을 얼마나 맞추면 그 정도로 잘 맞나 해서요."

스스로도 구차하게 느껴지는 대답이라 노부가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자, 마치다는 노부의 뺨을 또 콕 찔러서 시선을 마주치게 하고 대답했다. 

"나 A급 되자마자 토벌전 같이 나가게 돼서 거기서 만났어."
"A급 되자마자요?"
"어, 애들 데리고 수도로 와서 애들 먹여살려야 되니까 훈련을 좀 많이 해서 승급이 빨랐지. 18살에 A급이 됐거든."
"... 15년 동안 알고 지냈겠네요."
"그렇지."

15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잠시 숨쉬는 것도 잊고 마치다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 마치다가 빙긋 웃었다. 

"넌 진짜 상냥한 거야."
"네?"
"류세이랑 처음 만났을 때는 합이 진짜 안 맞아서 둘 다 엄청나게 고생했거든. 그때 난 유니콘이고 류세이는 B급일 때라 붉은전갈이었는데 둘이 계속 부딪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 내 공격을 류세이가 무효화하고 류세이 공격을 내가 무효화하고."
"..."
"처음 합동사냥한 날 둘이 이런 표정으로 '수고하셨습니다'하고 헤어졌다니까."

그러면서 보여주는 표정이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인 데다 경멸과 한심함을 숨기지도 않지만 한 줌 남은 사회성으로 예의는 잊지 않은 표정이라 노부가 피식 웃자, 마치다도 같이 웃었다. 

"그런 거 있잖아. 말은 수고하셨습니다^^하는데 속으로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 새끼야, 이런 거."
"네."
"그러다가 몇 번 더 마주치고는 서로 막말도 하기 시작했지. 전투 센스가 정말 없으시네요^^, 거기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이러면서."

웃으면서 비아냥거리는 야오토메라니 상상도 안 됐다. 딱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마치다는 요새는 안 그러지만 노부가 이곳에 막 왔을 때는 차가운 얼굴로 냉랭하게 웃으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했었으니까 떠올릴 수 있는데. 야오토메가 웃는다니 그 사람이 웃기도 하나 보네 하는 정도? 

"그러다 친해진 겁니까?"
"그렇게 간단하게는 아니었고. 몇 번 그렇게 서로 엿먹이고 비아냥거리고 하다가 둘 다 쌓이고 쌓여서 결국 서로 멱살잡고 개싸움했지."
"...예?"
"그래도 정정당당하게 둘 다 능력 안 쓰고 주먹으로만 치고박고 하면서 싸웠어. 둘 다 얼굴에 멍 하나씩 달고 쌓인 거 털고 맞춰가 보기로 한 거지."

노부가 마치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마치다가 킥킥 웃더니 노부의 뺨을 톡 콕 찔렀다. 

"나랑 싸워서 친해질 생각하지 마라. 너 정말 이 잘생긴 얼굴을 때리고 싶은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래, 나도 널 때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우리 천천히 맞춰가자. 천천히."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답답함은 여전했다. 마치다야 노부보다 각성도 승급도 빨랐고 나이도 많아서 능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토와 가루베가 아몬의 감독 하에 합동훈련을 하는 것도 많이 본 터라 단순히 나이 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명백히 경험의 차이였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다른 소환사들과 협동해 볼 경험이 없었던 것이 아쉽고 화가 났다. 전 약혼자가 언제라도 적절한 상황이 되면 노부를 제거하기 위해서 노부를 고립시키려 하는 것도 모르고 S급은 원래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는 말에 그런 줄 알고 바보같이 믿었던 게 분통이 터져서 자꾸 속이 들끓었다. 그 복잡한 심사를 알아챘는지 마치다가 먼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야. 신경쓰지 마."
"..."
"갚아야 할 게 있다면 은혜든 원수든 갚아야겠지만, 이미 바꿀 수 없는 일에 연연하지 말라고."
"... 그래야죠."
"뭐 과거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만 않으면 되잖아."
"네."

노부는 마치다의 손을 잡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뒀던 물통과 작은 탁자에 올려뒀던 수건 같은 걸 챙기느라고 마치다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을 때였다. 

"....ㅎ치지 않을 테니까."
"네?"

수건과 물통을 들고 돌아서자 마치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녁 뭐 먹을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마치다를 바라봤지만 마치다는 노부가 들고 있던 자기 수건과 물통을 받아들면서 여상하게 물었다. 

"우리 이치로 요리 잘하지?"
"... 네."
"맛있는 거 먹자. 뭐 먹을까."

... 치지 않을 테니까? 해치지는 아닌 것 같았다. 앞에 무슨 받침 소리가 들렸는데...?





마치다가 토벌전에 나가지 않는 날은 항상 같이 훈련을 했지만 두 사람의 합을 맞춰가는 건 각오한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그동안 노부도 병실을 벗어나서 3층의 다른 방을 배정받았다. 지하에 훈련실이 있기 때문인지 여기서 만난 소환사들은 대부분 이 건물에 살고 있어서 기숙사 같은 구조였는데 노부가 배정받은 방은 마치다의 바로 옆방이었다. 슬쩍 야오토메 방은 어딘지 물어보자 마치다는 네가 왜 물어보는지 다 안다는 듯 의미심장한 얼굴로 씩 웃더니 4층이라고 했다. 고토의 방 옆방이라고. 참고로 노부의 방이 마치다의 방 왼쪽, 가루베의 방이 마치다의 방 오른쪽이었다. 

여러 번 합을 맞췄는데도 아직도 합이 잘 안 맞아서 답답하던 어느 날, 노부가 마치다와 훈련을 함께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나야, 들어가도 돼?"

노부는 마치다의 목소리에 들어오라고 하고 수건과 물통을 들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온 건 마치다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노부와 마치다가 훈련을 할 때 항상 옆에서 허상의 몬스터들을 만들어주는 사쿠마 쿄스케가 함께 있었다. 자기가 소환해 내는 S급 매혹의 소환수 인큐버스처럼 어딘가 요사스러운 느낌이 있는 사쿠마는 노부의 앞에 서서 팔짱을 끼더니 노부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었다. 

"뭡니까?"

대답은 사쿠마 대신 마치다에게서 들려왔다. 

"나 오늘 또 토벌전 떴거든."
"그래요?"
"어. 같이 가자. 실전 테스트 겸."
"... 네?"
"너 인상착의가 지금 쫙 퍼져 있잖아. 요즘도 매일 지명수배 스팸이 들어오니까."

마치다가 핸드폰을 흔들어보이며 그렇게 말해서 노부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이자 마치다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쿠마의 어깨에 팔을 툭 걸치더니 씩 웃었다. 

"우리 쿄스케짱이 아무도 널 못 알아보게 환술을 걸어줄 거야. 변신하자, 노부!"

... 어?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