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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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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는 여전히 굳어 있는 노부의 뺨을 콕콕 장난스럽게 찔렀다. 

"뭐야, 감동할 타임 아니었어?"
"... 고맙습니다?"
"오케이."

마치다는 다시 씩 웃더니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다리가 다 낫기 전에는 무리겠지만 츠지무라가 걸어도 된다고 하면 내려와서 여기서 훈련해도 돼."
"그래도 됩니까?"
"어, 여기서 다들 훈련 많이 하니까 상관없어."
"다들 같이 쓰는 곳이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뭐가 그래?"

노부는 마치다의 여상한 말투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 온 마치다가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노부는 엘리베이터 내 거울에 비치는 마치다를 바라보며 물었다. 

"화염의 소환수와 빙결의 소환수가 같이 있으면 속성이 서로 상충하니까 훈련 효율도 좋지 않고 서로 방해가 될 수도 있잖아요."
"무슨 소리야?"
"네?"
"무슨 소리냐고."

노부가 아무 말 없이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거울 속의 마치다만 보고 있자, 마치다는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휠체어를 밀며 내렸다. 어느새 노부의 방이 있는 층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지하실에 내려갈 때처럼 노부를 침대로 데려가서 다시 침대에 앉혀 놓은 마치다는 또 침대에 팔꿈치를 올린 채 턱을 괴고 물었다. 

"너 혹시 빙결의 소환사와 합동훈련을 하거나 같이 토벌전에 나간 적 없어?"
"네. 상성이 안 맞아서 토벌전에도 서로 방해가 된다고 들었는데."
"네 전 약혼자한테?"

전 약혼자한테 속았다는 걸 암시하는 듯한 그 말에 노부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마치다는 착잡한 표정으로 노부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어, 류세이. 어디야?"

야오토메는 거의 매일 같이 보는 얼굴인데도 마치다의 입에서 류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어깨가 툭 튀었다. 고토가 하다가 말았던 말이 뭔지 아직도 모르는데도 어째서인지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이 삐죽삐죽 솟아났다. 마치다는 표정이 더 굳어 버리는 노부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노부의 뺨을 콕콕 찔렀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의 류세이가 이 건물에 있다고 했는지 마치다는 여러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있으면 다 데리고 지하로 내려오라고 말했다.잠시 후 전화를 끊은 마치다는 기껏 침대에 눕혀 둔 노부를 다시 앉히더니 구석에 세워뒀던 휠체어를 다시 끌고 왔다. 

"뭐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보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겠지. 다시 가자."
"지하실에요?"
"어. 우리 애들 합동훈련하는 거 보여줄게. 그러면 네 전 약혼자가 너한테 했던 말들이 얼마나 개소리였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이미 그 사람이 노부를 제거해서 자기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려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노부는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었다. 그 사람에게 남은 신뢰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대체 얼마나 많은 걸 속아왔던 걸까. 그 사람이 노부에게 했던 말들과 보였던 행동 중에 단 한 가지라도 진실이나 진심이 담긴 것이 있기는 했을까. 노부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마치다가 목에 걸어주었던 붉은 보석을 손에 꾹 쥐었다. 마치다가 선물한 은색의 소환사용 장갑 너머로도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보석보다 더 따뜻한 것 같은 손이 노부의 어깨에 닿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마치다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괜찮아지진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확실히 따뜻해졌다. 





지하실로 내려온 후 마치다는 노부가 이미 얼굴을 알고 있는 야오토메와 고토, 미야무라 외에 처음 보는 아몬, 사쿠마, 가루베를 소개해 주었다. 

아몬과 사쿠마 외에는 모두 A급으로 야오토메와 고토가 화염의 소환사, 미야무라가 치유, 가루베 다이키치가 빙결, 아몬이 방어, 사쿠마가 매혹이라고 했다. 미야무라는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내려왔는지 노부 옆에 서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곧 합동훈련을 시작했다. 사쿠마가 먼저 인큐버스를 소환해서 훈련용으로 허상의 몬스터들을 만들어내자 야오토메와 고토, 그리고 가루베 다이키치가 몬스터들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고 아몬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 스킬을 써 주고 있었다. 아몬이 주로 방어해주는 건 아직 어린 고토와 가루베(가루베도 고토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였고 야오토메는 알아서 화염의 방어술을 쓰고 있었지만. 

이들의 합동 훈려을 보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염과 빙결의 상성이 좋지 않아서 함께 싸울 수 없다는 건 전 약혼자의 거짓말이었다. 전 약혼자가 했던 말과 달리 화염의 소환수들과 빙결의 소환수는 전혀 상충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상충하기는커녕 오히려 화염 공격과 빙결 공격을 동시에 가해서 몬스터를 더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게 해 주기까지. 야오토메가 소환한 붉은사자와 고토가 소환한 불냥....아니, 플람마 카투스, 그리고 가루베 다이키치가 소환한 빙결의 유니콘은 자신이 공격해야 할 때와 공격해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소환사들의 지시에 따라 조화롭게 움직였다.

노부는 그동안 늘 치유의 소환사나 방어의 소환사와 함께 토벌전을 나갔고 위험도가 높지 않을 때는 아예 혼자 나갔다. 다른 공격계열 소환사와 함께 나간 건 얼마 전부터 몇 번 전 약혼자와 함께 나갔던 경험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한 번도 토벌전에 노부와 함께 나가주지 않던 그가 몇 달 전부터 노부와 함께 토벌전에 나가기 시작한 건 노부의 공격술과 공격력을 보려고 한 건가. 

노부를 죽일 때 그가 노부를 공격하면 노부가 어떻게 반격할지 보려고...?

노부가 착잡한 심정으로 훈련을 바라보고 있자, 한참 진행되던 훈련이 곧 끝났다. 훈련이 끝나자 야오토메가 고토를 데리고 어떤 점을 잘했는지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고, 마치다는 가루베 다이키치라고 한 앳된 얼굴의 남자를 데리고 또 칭찬과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고토와 엇비슷한 나잇대로 보이는 가루베 다이키치는 아마도 고토가 '다이짱'이라고 말했던 그 사람인 듯 싶었는데 어려 보여도 정말 뛰어났다. 일단 빙결의 유니콘과 계약을 맺고 소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뛰어난 실력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고. 훈련이 끝날 때쯤 들어와서 전격의 소환사 쿠니시타 이치로라고 소개한 사람이 맛있는 걸 만들어놨으니 가자고 하자 고토와 함께 신나게 뛰어가는 걸 보면 아직 어리다 싶긴 했지만. 

"어때?"

옆에서 들린 마치다의 목소리에 노부가 돌아보자, 마치다는 팔짱을 끼고 노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이 나가는 일이 많습니까?"
"그렇지. 타다오미나 다이가 아직 아기긴 해도 둘 다 A급이라 토벌전에 나가야 하니까 그럴 땐 우리가 같이 나가 주지. 코타로는 항상 같이 나가 주고 나나 류세이나 시시오, 이치로가 같이 붙어 주고. 유이치, 료이치로, 타카토 녀석들도 잘 싸우는데 지금 그쪽은 다들 발이 묶인 거나 마찬가지라서."
"왜요?"
"전격이랑 질풍 쪽은 지금 소환수들이 통제가 안 돼."
"전격은... 푸른 늑대가 금기를 어겼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질풍도요? 소환사가 죽었다고 그 정도입니까? 피닉스는 안 그랬었는데."
"그러니까 문제지."
"예?"
"죽은 S급 질풍의 소환사가 금기를 어긴 것 같다고."
"그가 사람을 공격하게 했다는 겁니까? 자기 죽을 때? 그럼 방어를 위한 공격이었을 테니까 괜찮지 않아요?"

마치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라면 괜찮겠지만 금기가 그쪽 금기가 아닌 것 같거든."
"소환수들의 금기는 하나 아닙니까?"
"아니야."

노부가 스승에게 배운 금기는 하나밖에 없었다. 소환수들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하고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 공격이 사람에게 향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소환수를 통제해서 몬스터만 공격하게 해야 한다. 소환수가 다른 소환수나 소환사를 공격하게 하면 그 공격이 한 차례에서 끝나지 않고 멋대로 사람이나 소환수들을 또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금기를 어긴 소환수와 소환사를 모두 없애야 할 수도 있다고 스승은 가르쳤었다.

노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는지 마치다가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공통적인 금기는 그 하나지만, 속성별로 세부적인 금기가 있는 경우가 있어."

그리고 고토, 가루베와 같이 나가지 않고 류세이와 함께 뒷정리 중이던 사쿠마 쿄스케를 가리켰다. 

"매혹도 매혹 스킬을 사람에게 쓰면 안 되는 금기가 있거든."
"아... 질풍에도 그런 금기가 있단 말입니까?"
"응."

질풍은 기본 속성인데 딱히 무슨 금기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마치다는 답답해하는 노부의 표정을 보다가 또 뺨을 콕 찔렀다. 마치다가 하도 뺨을 콕콕 찔러대서 이제 버릇이 될 것 같았다. 

"너 S급 질풍의 소환수가 가진 능력이 뭔지 모르는구나."
"압니다. 악몽을 먹어치울 수 있고, 꿈길을 쫓을 수 있잖아요."
"그래. 그리고?"
"... 그리고 더 있습니까?"
"있지."
"뭡니까?"
"음..."

마치다는 팔짱을 끼고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능력 자체가 금기라서..."
"능력 자체가 금기라고요?"
"응. 사람한테든 몬스터한테든 쓰면 안 되는 금기야."
"..."
"그런데 그 금기를 전대 S급 질풍의 소환사가 깬 것 같아. 그래서 S급 소환수인 맥이 발작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맥은 그 능력이 금기라고 계속 교육을 받아왔을 텐데 소환수가 쓰게 했을 테니까."
"..."
"문제는 질풍의 소환수들이 갈팡질팡하고 혼란에 빠진 게 꽤 됐다는 거야."
"꽤 됐다고요?"
"응. 질풍의 소환수들이 갈팡질팡하고 명령을 제대로 안 듣기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됐는데... 그때는 금기를 썼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었어. 이유를 짐작조차 못했지. 그런데 질풍의 소환사가 죽기 얼마 전에 갑자기 소환수들이 더 혼란에 빠지게 됐단 말이야. 그때쯤 한 번 더 쓴 게 아닐까 싶은데. 이해가 안 돼. 왜 그랬지?"

마치다는 노부에게 설명 중이었다는 것도 잊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능력을 왜 지금 또 쓴 거지? 자기가 곧 죽을 걸 알았나? 어떻게 알았지? 애초에 그 능력을 왜 쓴 거지? 누구한테 쓴 거야? 설마? 아니야. 왜? 

"마치다 상?"

너무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 같아서 노부가 마치다를 부르자, 마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유이치가 맥을 달래서 알아보려고 하는 중인데 S급 소환사가 죽어서 여러 모로 혼란이 가중된 상태라 아직 힘들어."

전 약혼자 같은 미친놈이 또 있었단 말이었다. 대체 무슨 능력을 쓴 거지? 맥은 사실 공격력은 약한 편이었다. 4대 기본속성 S급 소환수들 중에서 제일 약했다. 푸른 늑대나 피닉스, 은빛드래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대신 특수능력이 있었다. 악몽을 먹어치우고, 꿈길을 쫓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밖에 능력이 또 있다고? 

"그래서 어땠어? 빙결이랑 화염이 같이 싸우는 거."
"효율적이고 강해 보였습니다."
"우리 애기들 붙여서 싸워도 꽤 강해 보이지?"
"애기? 아 고토상과..."
"타다오미랑 다이."
"네."
"어른들이 합 맞추는 것도 보고 싶어?"
"네?"
"애기들이랑은 전혀 다르니까 잘 보라고."

마치다는 손을 가볍게 들어올리기만 했는데도 야오토메는 그것만으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깨를 풀면서 다시 싸울 준비를 했고, 서늘한 얼굴을 하고 있던 어딘가 요사스러운 느낌의 미인인 S급 매혹의 소환사 사쿠마 쿄스케는 심드렁한 얼굴로 다시 허상의 몬스터들을 소환해 냈다. 

마치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애기들과는 전혀 달랐다. 류세이와 마치다는 정말 한 몸처럼 움직였고 사쿠마가 몇 번이나 허상의 몬스터들을 소환해내야 할 정도로 강했다. 얼마나 둘이 합을 많이 맞춰왔는지 마치다가 다음에 쓸 스킬들과 드래곤의 움직임을 모두 예측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합을 맞춰주는 야오토메와 붉은 사자를 보고 있자, 불현듯 고토가 하다 만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류세이 형은 맛치 형을 ㅈ...]

류세이 형은 맛치 형을 좋아하니까...

순간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평소처럼 부르퉁한 얼굴인데도 어딘가 신나 보이는 야오토메와 평소보다 더 차갑고 냉철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편안해 보이는 마치다를 보고 있자 체한 것처럼 속이 갑갑해지고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베어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