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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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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마치다는 밤에만 찾아오고 있었고 낮에는 츠지무라, 미야무라, 고토, 야오토메, 아마미야가 번갈아 가며 노부를 도와 주었다. 붉은 보석의 힘으로 각인이 복구돼 가며 노부의 체내외의 훼손을 회복시켜 주는 결계도 빠르게 복원돼 가고 있어서 이제 자잘한 상처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골절된 팔과 다리는 아직 뼈가 붙지 않았고, 검에 찔렸던 복부의 상처도 여전히 회복 중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침상 신세인 노부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전히 노부를 제일 열심히 도와주려 하는 건 고토여서 고토는 종종 류세이의 감시를 피해 노부를 찾아왔다. 그리고 고토는 올 때마다 마치다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마치다에 대해서도 자잘한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됐다. 

"원래 S급들이 쓰는 보석을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에요?"

고토가 어느 날 그렇게 물었던 것도 여전히 컨디션이 바닥을 치고 있는 마치다를 걱정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네. 저도 만들어 본 적은 있는데 열흘 정도의 기간에 이렇게 크고 순도가 높은 보석을 만드는 건... 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치다 상이 만들어 오신 걸 보면 있는 힘을 다 짜냈을 거라..."

고토는 이렇게 힘든 건 줄 모르고 졸랐다며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마치다 상과는 많이 친하신 모양입니다."

고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원래 우리 옆집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잘 알았어요."
"이웃이었습니까?"
"네. 맛치 형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리 엄마가 돌봐주셨는데, 우리가 살던 동네에 몬스터들이 나타났거든요..."
"네..."
"시골이라서 우리 동네에 소환사가 맛치 형밖에 없었어요. 근데 맛치 형도 C급밖에 안 돼서 한 마리밖에 못 잡고 막 크게 다치고 그래서 어른들이 어린애들을 다 숨기면서 맛치 형도 같이 숨겼어요. 그때 어른들이 맛치 형한테 우리를 부탁한다고 해서... 맛치 형이 우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고토는 평소 모습과 달리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형이 우리 데리고 도시로 오면서 소환사로 나라에 등록하고 집도 받아서 우리 다 살게 해 주면서 돌봐 줬어요."
"..."
"우유도 맨날맨날 먹이고."

처진 분위기가 싫었는지 과장되게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키가 크지 않았다면 인간우유가 돼 버리고 말았을 거라는 고토를 보며 노부가 작게 웃자, 고토는 같이 웃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치로 형이랑 코타로 형이랑 타카토 형이랑 쿄스케 형도 전부 맛치 형이 그때 데리고 와 줬어요. 계속 같이 살았고."
"야오토메 상은?"
"류세이 형은 여기 와서 만났어요. 도시에 와서. 츠지무라 박사님이랑 소라 형이랑 다이 짱이랑 아마미야 삼촌이랑 쿠로사와 삼촌도."

노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토는 꽃받침을 하듯 양 손에 턱을 괴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요새 S급 몬스터들도 많이 나와서 토벌도 많이 나가야 되는데 얼굴이 너무 창백해서 진짜 미안해요."
"왜 그렇게 출몰이 잦아졌는지는 안답니까?"

고토는 고개를 저었다. 

"맛치 형이랑 류세이 형이랑 쿠로사와 삼촌이 알아보고 있는데 나한테는 안 가르쳐줘요. 나도 이제 23살이나 됐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문제인데. 하지만 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노부는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하던 마치다를 떠올리며 다른 제안을 했다. 

"치즈케이크 좋아하던데, 사다 주면 좀 낫지 않을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류세이 형이 안 된대요. 달아서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왜요?"
"당뇨병 걸린다고."

너무나 상식적이면서 비상식적인 이야기에 노부는 입을 다물었다. 노부의 전 약혼자가 노부를 죽이려 한 것은 불치병에 걸린 자신의 '연인'을 살리기 위해서였고, 그건 S급이 되면 건강이 전투에 최적화된 최상의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성인병에 걸릴 리가. 노부의 표정에서 어이없음이 드러났는지 고토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츠지무라 박사님이 매일매일 치즈케이크만 먹으면 질리긴 하겠지만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도 류세이 형은 안 된대요."
"심술인가."
"아닐걸요. 류세이 형은 맛치 형을 ㅈ.."

고토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노부를 내려다봤다. 

"산책 갈래요?"
"산책이요?"

고토는 아무래도 말실수를 했고, 그걸 수습하려고 갑자기 산책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았다. 류세이가 마치다를 뭐지? ㅈ...? 그 이야기도 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산책에도 흥미가 동했기 때문에 바로 미끼를 물자 고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옥상에. 여기 풍경 좋아요."
"가도 됩니까?"
"어?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지."

노부가 한 말은 아니었다. 문가에 여전히 창백한 마치다가 와 있었다. 마치다는 휘청휘청 안으로 들어오면서 고토의 머리를 슥슥 휘저었다. 

"협회에서 찾고 있을 거라서 안 돼. 드론을 띄울 수도 있고."
"흠."

고토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또 내쉬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마치다를 바라봤다. 

"류세이 형 몰래 치즈케이크 사 올까요?"
"그래."

마치다가 피식 웃자, 고토는 지갑을 챙기고 귀에 손을 대더니 복도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뭐해?"
"류세이 형 올까 봐."
"내가 류세이보다 세. 갔다 와."
"네, 히힛!"

고토가 뛰어나가고 난 후, 노부는 고토가 앉아 있던 자리에 털썩 앉는 마치다를 바라봤다. 

"그쪽에서 아직 저를 찾고 있습니까?"

마치다는 고개를 끄덕이고 들고 있던 폰을 톡톡 두드리더니 노부에게 폰의 화면을 보여 주었다. 폰에는 오늘 오전에 다시 전송된 지명수배 안내가 있었다. 

"이런 게 매일 전송되는 겁니까, 설마?"
"응."

노부가 한숨을 내쉬자 마치다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타카하시 료헤이가 실종 상태야. 아마 네 전 약혼자가 데리고 있겠지."
"..."
"그 사람을 살리려면 너를 찾아야 할 테니까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널 찾을 때까지."
"그럼 난 어떻게..."
"일단 나아야지. 각인이 복구되면 다른 상처도 빠르게 회복될 테고."
"음."
"지금은 츠지무라나 소라의 회복 스킬을 복부 상처에만 쓰고 있으니까 회복이 느린 거고 각인이 복구되면 각인 효과로 회복도 빨라질 거고 츠지무라랑 소라의 회복 스킬도 골절에 쓸 수 있으니까 금방 다시 걸을 수도 있을 거야."
"다 나으면요?"
"타카하시 료헤이를 찾아야지."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근처에 케이크 전문점이 있는지 고토가 발이 빠른 건지 커다란 치즈케이크 한 판을 들고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후다닥 들어오자 마치다는 반색하며 케이크를 맞았고,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인심좋게 고토에게 한 조각, 노부에게 한 조각을 나눠주고 나머지를 전부 행복하게 먹어치운 마치다는 고토를 내보내고 커피를 마시며 그랬다. 

"어떻게 된 관계인지 알아야지. 타카하시 료헤이가 유부남이었다는 거 보면 네 전 약혼자의 일방적인 감정이거나 타카하시 료헤이가 바람을 피운 건데, 불륜이라고 보기엔 지난 몇 년간 타카하시 료헤이와 네 전 약혼자 사이의 접점이 전혀 없어. 알아보니까 타카하시 료헤이와 반려는 몇 년 동안 이 도시에 없었던데."
"여기에 없었다고요?"
"어. 질풍의 소환사는 도시를 가끔 오간 것 같은데, 타카하시는 계속 지방에 있었던 것 같더라고. 투병 중이란 기록은 있었는데 사실 그동안 어디에 있는지도 등록돼 있지 않았어. 그래서 네 전 약혼자도 쭉 못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노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랑하는 연인, 그 연인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만 죽이면 됐던 전 약혼자. 하지만 노부도 S급 소환사였다. 쉽게 방심해서 공격 기회를 내 줄 리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부가 완전히 마음을 놓고 방심하게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척하는 연기를 몇 년이나 했던 게 이상했는데 연인을 찾을 수 없으니 노부를 사랑하는 척을 몇 년이나 한 건가. 이렇게까지 지독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사실 지금 보니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지만.

노부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봤는지 마치다가 노부의 뺨을 콕콕 찔렀다. 

"잡생각하지 말고 일단 낫는 것부터 생각해."

여전히 다정하고 쌀쌀맞은 사람이었다. 





노부가 생전 처음 본 크기와 순도의 그 붉은 보석의 효과는 정말로 대단해서 복부를 찔린 상처는 츠지무라와 소라의 치유 스킬을 받고 있었는데도 복부의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각인이 복구됐다. 심지어 전격의 소환수들의 왕인 전격의 푸른 늑대가 번개로 지진 오른손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는데도 각인은 완전히 복구됐다. 노부는 여느 때처럼 밤에 찾아온 마치다에게 복구된 각인을 보여주었다. 마치다는 복구된 각인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확실히 A급 소환사들의 각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네."
"빙결의 소환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소환사들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각인이 더욱 섬세해지고 화려해졌다. F급부터 A급까지는 화염의 형태가 그려져 있고, F급은 아주 단순한 형태의 불길 모양이 그려져 있지만 점점 더 불길이 섬세해지다가 A급이 되면 그야말로 예술작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세밀해지고 유려해졌다. 그리고 S급 화염의 소환사는 피닉스와 계약을 맺으며 손바닥에 예술 작품급의 화염 각인이 지워지며 피닉스 모양의 각인이 생겼다. 그리고 이건 모든 속성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빙결의 소환사들은 F급 빙결의 소환사의 경우에는 그저 얼음 덩어리 같은 게 그려져 있지만 등급이 올라가며 점차 얼음이 섬세히지다가 S급이 되면 아마도 드래곤 각인이 새겨지겠지. 

노부는 대답이 없는 마치다에게 다시 물었다. 

"손바닥에 드래곤 각인이 있지 않습니까?"

마치다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없이 손을 들어서 은색의 장갑을 벗었다. 소환사가 장갑을 벗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래서 노부는 몇 년이나 연인 관계였던 전격의 소환사 앞에서 장갑을 벗은 적이 없었고, 그 장갑을 벗은 날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마치다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장갑을 벗더니 노부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역시 손바닥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드래곤이 새겨져 있었다. 노부의 손바닥에 있는 피닉스 각인이 그저 각인일 뿐인데도 열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처럼 그 아름다운 드래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했다. 그렇게 서늘한데도 이상하게 어딘가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서늘함과 다정함이 공존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무방비하게 소환사의 가장 큰 약점이자 목숨과도 같은 각인을 노부의 앞에 무방비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노부는 여전히 서늘하고 다정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마치다의 손바닥, 그리고 그 손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진 각인을 바라보다가 마치다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오무려 손바닥을 가려주었다. 

"내가 각인을 노출했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직접 보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각인을 노출하면 어떡합니까?"
"너도 각인 보여줬잖아."
"난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뭐가 다른데?"

당연히 달랐다. 만약 마치다가 노부를 죽이고 싶었다면 그냥 그 골목에서 구해주지 않고 내버려 두고 오는 걸로 충분했다. 그러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죽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굳이 힘들게 구조해 와서 열심히 치료해 준다고?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해. 게다가 마치다의 눈가는 여전히 시커멓게 죽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다의 각인은 멀쩡하니 드래곤의 결계가 지켜주고 있겠지만 붉은 보석을 만드는 것은 소환사의 본질적인 힘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라 신수의 보호 결계가 있어도 회복이 빠를 수가 없었다. 고토가 열심히 치즈케이크를 사 먹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시체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정도로 정성을 들여서 구해놓고 일부러 각인을 공격해 죽인다고?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전 약혼자 때문에 인간 불신 중증이 된 노부라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다는 다르지 않은가. 노부가 마치다를 위해 뭘 해 준 것 하나 없는데 노부를 어떻게 믿고. 만약에 노부가 마치다의 각인을 공격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절 죽이고 싶었으면 애초에 구하질 않았겠죠."
"흐응."
"게다가, 지금 당신 얼굴이 어떤지 압니까?"

마치다는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 생겼지."
"네, 잘 생겼...아니."

노부가 어이없는 얼굴을 하자 마치다는 손바닥을 펼쳐서 반짝반짝 노부의 얼굴 앞에서 흔들어대며 웃었다. 어이없는 와중에도 그 천진난만한 웃음이 귀여웠다. 결국 노부가 더 말을 못 잇고 한숨을 내쉬자 마치다는 그제야 장갑을 다시 꼈다. 빙결의 소환사답게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장갑이었다. 노부가 심란한 마음으로 그 장갑을 바라보고 있자 마치다는 장갑을 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오른손을 들어서 손바닥을 쫙 펼쳐보이며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난 널 해칠 마음이나 생각, 의도, 계획 등등 그런 게 전혀 없어."
"..."
"그리고 난 네가 날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마치다는 노부의 침대 옆 협탁 제일 아래쪽 서랍을 열더니 언제 넣어놨는지 모를 상자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러니까 너도 좀 믿어라."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