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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0 04:29



케이타는 다관의 개업을 준비하는 데 자기가 가서 괜히 번거롭게만 하는 것이 아닌지, 부담스럽게만 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했지만 막상 개업 준비가 한창인 다관을 둘러보고는 몹시 들뜨고 신나서 눈을 반짝거렸다. 노부가 등왕비가 되면서 외척들의 관직 금지 조항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났던 둘째 형도 다관 일을 함께 하기로 했기 때문에 개업 준비를 함께하고 있었는데 둘째 형은 심각한 얼굴로 이것저것 꼼꼼히 보고 다니는 케이타를 보며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게 있는 건 아니지? 지루하시면 꼭 계속 계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려라. 

그러나 물론 그건 케이타의 표정을 읽지 못하는 둘째 형의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고, 케이타는 정말로 흥미진진한 얼굴로 다관의 장식이나 그림, 화분 등을 살피고 의자나 탁자도 일일이 앉아 보며 꼼꼼히 살폈다. 큰 형수와 둘째 형수, 둘째 형님이 함께 준비한 시식 및 시음 자리에서는 누구보다도 들뜬 얼굴로 그러나 누구보다 신중하게 차의 맛과 다과들의 맛을 확인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노부의 형들은 케이타와 전쟁에 나간 적이 있으니 케이타가 전장을 지휘하는 것도 당연히 많이 봐서 케이타가 말을 많이 하는 걸 보고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케이타가 말을 하는 것도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다과 하나하나의 맛이 어떤 차와 잘 어울리고, 어떤 점이 장점이고 어떤 점은 아쉬운지 일일이 정성스럽게 소감을 말해 주는 것을 들으며 놀랐던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케이타는 개업 준비를 살펴보고 시식 및 시음회를 해 본 것이 재미있었는지 개업하는 날에도 노부의 손을 꼭 잡고 다관에 가서 자신이 추천하거나 칭찬햇던 다과나 차가 잘 팔리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기도 했다. 

개업을 한 날은 얼마나 들떴었는지 궁으로 돌아온 뒤 노부와 침상에서 몇 시간이나 실컷 몸을 섞고 케이타의 눈이 가물가물해지길래 목욕탕에 데리고 갔는데도 뜨거운 물에 몸을 좀 담그고 있자 다시 살아났는지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황제는 노부에게 케이타를 더 이상 전쟁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면서도 케이타가 궁을 나가서 사는 것은 허락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대화제국에 몰락당한 나라들에서 국가 재건을 꿈꾸는 이들이 케이타를 노리기도 하지만, 케이타와 노보루는 절대로 황제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놨음에도 (당연히 이것도 뒷배가 없어서 황위경쟁의 장기말로 휘둘리게 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든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황실의 피를 이었기 때문에 귀족들이 이쪽을 노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현 황제의 자식들인 황자녀들은 전부 부모가 오래 전 화왕국이 침략당했을 때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은 황후 아몬 코타로의 자식들이라 그쪽으로 줄을 대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노보루나 케이타를 이용하려 하는 귀족들이 있다고. 그 귀족들이 케이타를 노리기도 하고 제거하려 하기도 한다고 황제는 말했다. 황제는 그래서 케이타가 궁을 나가 사는 것을 허락해 줄 수 없다고 하면서 대신 등왕궁 옆에 커다란 목욕용 전각을 만들어주기로 했었는데, 케이타가 전쟁에 나가 있는 사이 그 전각이 완성된 참이었다.

케이타는 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욕조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노부를 욕조 옆에 있는 낮은 침상에 눕혔다. 그랬다. 황제는 너희가 이 목욕 전각에서 뭘 할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목욕탕에 낮은 침상까지 넣어 두었다. 그리고 케이타는 목욕용 전각 안에 침상이 있는 게 이상하지도 않은지 자연스럽게 노부를 그 낮은 침상에 눕히고 노부를 올라탔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고 나서는 거의 매일 밤 케이타의 옷을 홀랑 벗기고 온몸을 물고 빨면서 케이타가 쾌감에 지쳐서 흐느적거릴 때까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늘 노부가 주도하는 편이었는데 케이타는 올라타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요령이 없어서 잘 넣을 수 없는 노부의 것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낑낑대며 기어이 제 몸 안에 넣고 입술을 핥으며 노부를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따뜻한 물 안에 있었던 터라 발갛게 달아오른 채 촉촉하게 젖어 있는 피부, 그리고 그 젖은 피부 위로 늘어진 젖은 머리카락과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운지 연신 핥아대는 붉은 입술과 촉촉한 눈가까지 모든 것이. 정말로 모든 것이 노부를 미치게 만들었다. 목욕탕 안의 공기가 축축하기 때문인지 연신 새어나오는 케이타의 신음소리도 평소보다 훨씬 촉촉한 듯했다. 구조 때문인지 습기 때문인지 묘하게 웅웅거리는 듯한 느낌으로 울리는 신음소리가 더 야하게 들렸기 때문에 두 사람이 평소보다 더 흥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목욕 전각 안에서 또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목욕을 제대로 마친 후에 침소로 돌아왔을 때였다. 궁인들이 그새 깨끗하게 정리해 둔 보송하고 깨끗한 침상 위에 케이타를 눕히고 끌어안자 케이타는 피곤해서 발개진 눈을 하고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노부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오늘 다관에서 즐거웠습니까?"
"네. 정말로 기쁘고 좋았습니다."

하긴, 둘째 형수도 케이타가 차와 다과의 맛에 대해서 꼼꼼히 품평을 해 주고, 어울리는 조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들려준 덕분에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다과와 차를 많이 준비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었으니 케이타가 뿌듯해할 만도 했다. 

예전에 노부가 어릴 때 신나게 놀고 들어와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잠을 자지 않자, 노부의 어머니는 자장가를 불러주며 그러셨었다. 너희 큰 형은 밖에서 많이 뛰어논 날이면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서 다들 그런 줄 알았더니 둘째는 많이 뛰어놀았던 날은 흥분해서 더 잠을 못 자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니, 너도 많이 놀린 날은 더 안 자는 걸 보니 둘째를 닮았다고. 너는 평소에 순하고 다정한 거 보면 딱 슌타로인데 이런 부분은 또 타카토를 닮았나 보다하고 웃으셨다. 그래서 노부도 케이타가 잠을 못 들고 계속 들떠 있는 걸 보며 케이타도 노부처럼 신나게 놀았던 날은 더 흥분해서 못 자는 편인가보다 했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닮은 면이 있다는 게 묘하게 설레고 기쁘기도 했다. 그래도 잠을 안 재울 수는 없으니까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하며 등을 토닥이기 시작할 때, 품 안에서 케이타의 목소리가 작게 다시 들려왔다. 

"내가 오늘 뭐 그렇게 주도적으로 일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일을 안 하긴요. 전하께서 차와 다과의 맛이나 조합에 대해서 유용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셔서 다과와 차를 준비하는 데 정말로 큰 도움이 됐다고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다과의 이름이 우아하거나 매력적인 것도 좋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것은 좋지 않다고 한 조언도 무척 도움이 됐답니다. 손님들이 아주 좋아했다더라고요. 전하께도 형수가 인사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케이타는 노부의 품 안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한 건 별로 없는데... 그래도 내 덕분에 좋은 차와 다과를 골라서 내놓을 수 있었다고, 모두 좋아한다고 해서 정말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둘째 형수가 싹싹하고 다정해 보여도 마음에 없는 말은 못하는 성격이라, 전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움직였는데... 피냄새나 비명소리가 나지 않고, 누군가 죽거나 다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서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고맙다는 말을 들어서..."
"..."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들뜬 케이타가 그저 귀엽고 예뻐서 싱글싱글 웃고 있던 노부는 굳어지는 표정을 애써 풀고 티나지 않게 침을 꿀꺽 삼키며 단단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사신. 죽음의 사자. 죽음의 전령. 저승사자. 지옥에서 온 사자.

적국뿐만 아니라 자국에서도 그런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걸 이 사람이 몰랐을 리가 있을까. 이건 가죽팔찌나 육포 등의 간식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와는 전혀 달랐다. 그건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전장에서 이 별명들을 불러대는 것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니까. 전장에서 대치를 하고 있을 때, 적국에서 커다란 나뭇잎이나 종이, 가죽 등을 뿔처럼 만들어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다고 들었다. 

화국의 사신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죽음을 선고하는 것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될 것이다!
저 자는 화국의 사신이 아니라, 화국의 창부일 뿐이다. 오늘 승리하면 저 창부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해 주겠다!
음인 주제에 무슨 지옥에서 온 사자냐! 사창가에서 온 창부겠지!


이런 식으로 대화제국의 사자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병사들의 두려움을 꺾고자 오히려 더 떠들어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케이타 본인도 자신이 지옥의 사자, 사신, 죽음의 전령 등으로 불리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 두려움을 꺼뜨리고자 창부 따위로 부르면서 케이타를 말로 희롱하고 모욕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고. 

우리의 폐하께서 화왕국 창부를 오늘밤 승전 연회에서 장군들이 품을 수 있도록 상품으로 내리고 싶어하시니 저 창부의 옷이 벗겨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상처는 내지 마라.

그렇게 외친 장수도 있었다지. 노부는 케이타가 이 적국 장수의 목을 직접 베었다고 들었다. 적들이 뭐라고 외쳐도 들은 척도 안 하던 케이타는 이 장수도 그저 다른 적장들처럼 무감하게 목을 베었을 뿐이었다고. 이 이야기를 노부에게 들려 주었던 동료관리는 그랬었다.

나 같으면 그 장수의 갑옷을 홀랑 벗겨서 전장에서 굴렸을 텐데. 우리 목석같은 사신 장군님은 모욕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으시니. 

수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모욕을 당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있나.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할 때 외롭고 슬펐을 것이고, 수많은 적과 부하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을 때 수치스럽고 괴로웠을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외로움과 슬픔, 수치와 괴로움을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어야 했는데. 늘 피냄새와 비명소리, 죽음을 몰고 다니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모욕의 대상으로만 살아왔는데, 사람들이 케이타의 조언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도움이 되고자 내민 작은 손길에도 크게 칭찬해주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을까. 제 인생을 챙기지 않고 오직 동생과 형, 나라를 위해서만 살아오면서도 '좋은 일'을 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오늘 내내 노부의 가족들로부터 칭찬과 감사를 들으면서 얼마나 들뜨고 설레고 기뻤을지.

케이타가 살아온 시간을 상상하니 울고 싶었지만, 지금은 설레고 기뻐서 잠도 들지 못할 정도로 행복한 새 삶을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노부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노부는 그날밤 케이타를 품에 안고 토닥이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젠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며칠 후, 황제와 황후는 노부와 케이타, 노보루와 노보루의 호위를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식사가 끝난 후, 황제는 형제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고, 황후와 노부, 노보루의 호위는 다른 방에서 따로 찻상를 받았다. 다과를 즐기는 동안 황후가 요즘 도성에서 노부의 둘째 형수가 운영하는 다관이 인기가 많다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노부가 다음에 차와 다과를 좀 가져다 드리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건 기억이 난다. 노보루의 호위는 노보루와 함께 그 다관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다. 등왕 전하께서 추천하신 다과와 차를 맛 봤는데 계왕 전하가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런 말도 했다. 그리고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꾹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노보루와 케이타가 나오고, 내관이 따라나와 황후를 모시고 들어갔다. 

밖으로 나온 케이타가 굳은 얼굴로 멈춰선 채 멍하게 있어서 노부가 서둘러 다가가자, 케이타는 전쟁통에 엄마를 잃어버리고 만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고 혼란이 가득한 눈으로 노부를 바라봤다. 





#사신마치다사신의반려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