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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8 04:36


마치다 케이타는 어떤 전쟁을 나가든 이기고 돌아왔지만 늘 화려한 개선식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전쟁이 너무 잦았기 때문에 일일이 개선식을 하면 백성들이 이 나라가 계속 전쟁 중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는데 황제는 이런 인식이 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늘 승전하는 나라와 늘 전쟁 중인 나라라는 건 인상이 다르다나. 노부가 이 말을 황제에게 들었을 때는 이미 황제에게 이제 케이타를 전쟁에 보내지 않을 거란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황제가 개소리를 하는 것 같아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로 한 상태여서 담담하게 그렇군 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러나 이번에는 케이타가 마지막 전쟁에서 승전하고 온 만큼 황제가 개선식을 화려하게 열겠다고 했고 도성의 입구에서부터 황궁의 입구까지 거리 전체를 휘황찬란하게 꾸몄다. 부처를 막론하고 모든 관공서에 속한 이들이 거리로 나와서 개선군이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거리를 깨끗이 치우고, 색색의 끈을 매달거나 예쁜 모양의 등을 걸기 시작했다. 당연히 도성 사람들도 모두 들떠서 승전 기념 먹거리를 만든다든지 승전 기념 장신구를 만들어 판다든지하며 갑작스러운 축제를 여는 기분으로 개선군을 기다렸다.

노부는 거리를 꾸미는 일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등왕궁을 특별히 꾸미지도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 개선군의 장군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등왕궁을 깨끗하게 치우고, 침상에는 햇볕에 정성스럽게 말린 새 이불을 깔아놨다. 큰 형에게는 묵은 피로를 풀어주는 데 좋다는 약초를 잔뜩 받아서 욕조 옆에 미리 준비해 놓았다. 케이타는 서신에서 다쳤다거나 하는 말은 전혀 안 했지만 아프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혹시 다쳤을지도 몰라서 창이나 검, 활에 다쳤을 때 치료할 수 있는 긴급 치료술을 배우고 소독약도 받아 두었다. 케이타가 전쟁에 나가 있는 사이, 큰 형수의 부족에서 무사히 건락을 보내왔기 때문에 건락을 받아다가 등왕궁의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쌓아두기도 했다. 덕분에 케이타를 기다리는 매일매일이 바빴는데도 시간은 이상할 정도로 안 갔다. 그렇게 하루가 1년같은 며칠을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케이타가 부대를 이끌고 도성에 들어왔다. 

개선식은 지나치게 길었다. 황실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황실의 극단이 춤 공연을 펼쳤다. 병부상서가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나와서 등왕과 장졸들의 승전을 축하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긴 글을 읽어주기도 했다. 장졸들은 뿌듯해하고 백성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했지만 노부는 그저 괴롭고 외로웠다. 그 길고 길었던 개선식 끝에 케이타가 휘하 장수들을 데리고 황제를 알현하러 간 이후, 노부는 등왕궁으로 돌아와서 내내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황제는 오늘 개선 연회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모두 피곤할 테니 3일 후에 개선 연회를 크게 열 거라고. 그러니 케이타도 곧 돌아올 거라 노부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을 때도 늘 신기할 정도로 소리없이 움직이는 이의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투구를 옆에 끼고 맨 얼굴을 드러낸 케이타가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노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전하."

노부는 내내 등왕궁을 서성거리면서 케이타가 돌아오기만 하면 당장 끌어안고 그 무뚝뚝한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고 무겁고 걸리적거리는 갑옷부터 벗긴 다음에 약초를 잔뜩 넣은 욕조에 곱게 담가주리라 생각했었다. 다친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 보면서 엄청나게 마른 데다가 온몸이 근육질인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야한 몸도 실컷 감상하고, 큰 형수한테 받아온 건락도 잔뜩 넣은 차를 타서 찻잔을 들려주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다 털어놓을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사람이 무뚝뚝하고 딱딱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또 묘하게 딱 어울리는 붉은 홍조를 올린 채 빠르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 그만 심장도 멈추고 발걸음도 멈추는 기분이었다. 노부가 그저 멈춰선 채 케이타를 보고만 있자, 빠르게 다가오던 케이타도 천천히 걸음을 멈추더니 가만히 노부를 바라봤다. 

"전하."

노부가 어째서인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다시 한 번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반려를 부르자, 케이타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투구를 툭 옆의 탁자에 던지듯 내려놨다. 케이타는 검이 그의 인생을 잡아먹은 것처럼 말했지만 10년을 검 수련에 매진했고, 15년을 전장에서 굴렀던 사람이라 검이나 갑옷, 투구를 늘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다뤘다. 그런 사람이 투구를 다시 쓸 일 없을 것처럼 휙 던지듯 내려놓는 걸 보며 노부는 잠깐, 아주 잠깐 케이타도 황제에게 그가 다녀온 이번 전쟁이 마지막 전쟁이란 걸 들었을까 생각했다. 아주 잠깐. 

왜 잠깐뿐이었냐 하면 투구를 내던진 케이타가 추운 지역에 전쟁하러 간다고 황제가 직접 하사했다는 늑대털 외투의 끈을 풀고 끊어내듯이 잡아당기더니 그 귀한 외투도 바닥에 내던지고는 노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는데 머릿속에 생각이랄 게 남아 있을 리가. 노부가 저도 모르게 팔을 뻗으며 한 발 다가가자 그새 노부의 앞까지 뛰어온 케이타가 노부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며 노부를 꽉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다거나 잘 있었냐거나 그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수련을 하고 단련을 하고, 뛰어다니는 게 일인 사람인 만큼 고작 몇 걸음 달려왔다고 숨이 찰 리 없는데 노부의 품에서 할딱거리고 있는 걸 보니 이 사람이 그동안 노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었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만, 성급하게 입을 맞추며 탄탄하고 마른 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부터 벗겨내기 시작했다. 

고소하고 향긋한 건락차를 준비했는데. 
달콤하고 짭짤한 다과도 잔뜩 받아놨는데. 
따뜻한 목욕물에서 개운한 향을 내며 몸의 피로를 풀어줄 약초도 잔뜩 준비했는데. 
이불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줄을 걸고 정성스럽게 말려놨는데. 
그 모든 준비가 허망하게도 그저 입술을 겹치며 케이타의 옷을 벗기고 끌어안는 데 몰두해 버리고 말았다. 

노부도 길고 힘들었을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케이타에게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케이타와 혼례를 치를 때 황제가 보내준 예물에서 어머니가 직접 골라준 비단으로 새 옷도 해 입었는데. 그 옷이 케이타의 손으로 마구 벗겨지는 것에 신경을 쓸 틈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곱게 차려 입었던 비단옷과 개선식을 위해 반짝반짝하게 닦아서 광을 냈을 갑옷을 마구잡이로 벗고 벗기며 얽혀서 침상 위로 쓰러졌다. 케이타가 침상 위로 털썩 눕는 순간 이불에서 풀썩 터져 나오는 향을 맡으며 노부가 이 사람의 포근한 잠자리를 위해서 이 이불을 햇볕에 공들여 말리고 잠이 잘 오게 하는 향을 이불에 쬐며 이불에 향이 배게 했던 시간들이 잠시 떠오르긴 했다. 그러나 노부가 어느새 속의까지 다 벗겨버린 탓에 흉터 가득한 맨팔을 내밀어 노부를 끌어안는 사람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는 순간, 노부가 준비했던 그 많은 것들. 이불을 말리고 약재를 말리고, 건락과 다과와 차를 준비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안마를 배우며 들였던 공들은 다 잊혀졌다. 

지금은 그저 무사히 다시 노부의 품으로 돌아온 이 사람을 안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노부도 그렇지만 케이타도 잠자리 경험이 노부와의 첫날밤 단 한 번, 그뿐이었는데도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닿고 싶은 마음과 상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본능은 몸을 알아서 움직여주는 법인 모양이었다. 노부와 케이타는 별다른 요령 없이 그저 입술을 겹치고 몸을 겹치고 서로의 피부를 쓸어내리고 서로를 꽉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연결된 채로 조금 더 깊게 연결되길 바라며 허리를, 다리를, 손과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나 가파른 절정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케이타가 뱃속이 꽉 찬 느낌이라고 나른하게 중얼거릴 정도로 케이타의 안에 가득 파정을 한 후, 길고 긴 밤이 흐르고 난 후에야 노부는 드디어 케이타를 약재를 가득 풀어 둔 따뜻한 목욕통에 안고 들어갈 수 있었다. 노부가 이제야 케이타가 다친 곳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려고 했지만 노부가 워낙 물고 빨아댔던 탓에 햇볕을 못 봐 하얀 케이타의 몸이 온통 얼룩덜룩하고 푸르고붉어진 덕분에 상처가 있어도 확인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뭘 그리 보십니까?"

급기야 케이타가 노부의 품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볼 때까지 한참을 살펴보던 노부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전장에서 어디 다친 곳이 있을까 걱정스러워서 봤는데 제가 너무 거칠게 군 터라 제가 깨물고 빨아댄 자국밖에 안 보입니다."

그러자 작게 웃은 케이타는 노부를 폭 끌어안고 넓은 욕조에서 긴 다리를 쭉 뻗으며 작게 속삭였다.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케이는 왼팔을 들어 보였다. 전쟁터에서 비가 온다고 우산을 펼쳐 비를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나 땀, 빗물에 젖을 일이 많은 가죽팔찌의 특성상 젖어도 변형이 없도록 가공을 해서 팔기도 했지만 노부가 특별히 부탁을 하고 돈을 더 주고 구입한 가죽팔찌인 덕분에 케이타의 왼손에 걸린 가죽팔찌는 노부가 채워줬던 그때처럼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무사귀환하라고 팔찌까지 채워주지 않았습니까? 그대가 어리숙한 나를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그대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리숙하기는 누가 어리숙합니까. 나의 전하는 아주 명민하시고 용감하신데."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고맙다며 웃은 케이타는 다시 노부를 폭 끌어안고 느긋하게 기댄 채 눈을 끔벅거렸다. 첫날에도 그러더니 아무래도 색사 경험이 없어서 격렬한 정사 뒤라 피로로 잠이 오는 듯했다. 그래서 노부는 케이타가 편히 잠들도록 물속에서 케이타를 토닥거리기만 했다. 노부도 지나치게 큰 쾌감에 계속 시달린 터라 노곤하니 잠이 오기도 했고. 그러나 케이타는 몇 달만에 노부와 함께 잠자리에 들게 된 터라 잠자기 싫은지 씻고 나와서 침의까지 다 입고도 눈만 깜박거리고 있을 뿐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도 아니고. 그러나 정말로 케이타가 어렸을 때는 안 자고 싶다고 칭얼거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안 자겠다고 우기지도 않고 그저 고집스럽게 눈만 끔벅거리고 버티는 게 귀엽고 애틋하긴 해서 노부는 차의 양을 줄이고 건락을 많이 넣은 뜨거운 건락차를 케이타의 손에 들려주고 케이를 뒤에서 폭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을 쫓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소곤소곤 전했다.

"전하와 폐하 덕분에 둘째 형수님이 곧 다관을 열려고 합니다."

케이타는 노부의 품에 몸을 기대앉은 채 따뜻한 건락차를 홀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형수님이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다관을 열 거라고 계속 전하를 기다렸습니다. 다관을 여는 날 다관에 가 주시겠습니까?"
"날 기다렸다고? 정말입니까?"
"전하 덕분에 다관을 열 수 있게 됐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럼 가야지. 그대도 같이 가 주시겠습니까?"

노부의 형수고, 노부의 가족인데 노부의 가족이 청한 것이니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한데도 허락을 구하듯이 조심스럽게 묻는 케이타와 잠깐 마주보고 있던 노부는 찻잔을 꼭 쥐고 있는 케이타의 손등에 가만히 입술을 누르며 케이타와 눈을 마주치고 속삭였다. 

"전하가 가는 곳이 제가 갈 곳입니다. 어디든 전하와 함께 가겠습니다."
"... 나와 그대는 부부니까?"

손등에 입을 맞출 때 보니 찻잔이 이미 비었기에 노부는 찻잔을 빼서 내려놓고 케이타를 번쩍 들어안고 침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상에 케이타를 내려놓은 후 품에 꼭 안고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올려 덮으며 작게 속삭였다. 

"네, 전하와 저는 부부니까. 우리는 항상 함께일 것입니다."

긴장하고 있던 얼굴에 안심한 미소가 작게 번져나가는 걸 보며 노부는 따뜻한 이마와 매끈한 뺨, 말랑한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다관이 문을 열 때도 함께 가고."
"음."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도 함께 가고."
"물안개?"
"네. 물안개가 아주 신비하게 피어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한 번밖에 못 봤지만. 정말 근사한 광경이었습니다."
"도성입니까?"
"도성은 아니고, 제 아버지의 고향입니다. 여기서 말을 타고 가면 느긋하게 가도 5일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니, 나중에 폐하께 윤허를 얻어 같이 나들이를 갔으면 좋겠습니다."

케이타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모으는 걸 보니 황제가 아직 케이타에게는 더 이상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해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그 황제는. 현 황제가 얼마나 일을 잘 하고, 백성들에게 얼마나 존경과 선망을 받는지 알지만 정작 그 동생에게는 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괜히 속으로 투덜거렸다. 물론 그 동생을 살려줬지만. 살려준 그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지만. 이왕 해 줄 거 더 잘해주지. 

하지만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라. 그리고 더 이상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그 무게 때문에라도 황제가 직접 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터라. 노부는 작게 속삭여주기만 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되든 제가 항상 전하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 말에, 노부의 반려는, 노부가 너무나 사랑하게 돼 버린 케이타는 정말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 그대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항상 그대의 곁에서 무엇이든 함께할 것입니다."

한 달간 마음을 나누고 설레며 기다린 혼례를 치르고 고작 5일만에 전쟁에 반려를 빼앗겼던 터라, 다시 돌아온 반려를 품에 안고 눈을 감으니 정말 기분좋게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노부가 막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편안한 밤 되십시오."

그 말과 함께 입술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이 조심스럽게 촉 와 닿았다. 





#사신마치다사신의반려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