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9360644
view 2718
2023.08.17 02:30
재생다운로드IMG_6432.gif

https://hygall.com/559006529

https://hygall.com/559156563





사각사각 칠판에 분필이 부딪히는 소리, 살짝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 점심을 먹고 난 후의 나른함에 꾸벅꾸벅
졸다가 교탁을 치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쳐다보면, 지금부터 쪽지시험을 볼 테니 준비하라는 타니구치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필통을 뒤적거리는데 아무리 봐도 지우개가 안 보인다. 어쩌지.

“앗군, 나 지우개 좀 빌려줘”

“안돼, 나도 하나밖에 없다고”

“반으로 자르면 되잖아, 응?”

“싫은걸, 애초에 안 가져온 네 잘못이잖아”

원래도 얄미웠지만 저번부터 진짜 얄밉게구네 이 녀석. 하필 지우개를 안 가져온 날 테스트는 뭐람. 요샌 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고.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는 앗군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있는데 옆에 앉은 하시모토씨가 말을 걸어왔다.

“아오키군, 이거 쓸래? 난 하나 더 있어”

하시모토씨이, 말꼬리를 늘리며 말하자 작게 웃고는 지우개를 내 손에 꼭 쥐어준다. 역시 이런 천사 같은 하시모토씨는 앗군에게 백배, 아니 천배는 더 아까워! 받은 지우개를 괜히 둘러보는데 지우개 안쪽에 뭔가 쓰여있다.

[ 이다군 ♡ ]

에? 이다군? 이다선생님? 아아, 앞부분이 꽤 사용감이 있네. 아이다의 ‘이다’ 구나. 이게 그 여자애들 사이에서 한다는 그건가 사랑의 주술? 헤에, 하시모토씨도 하는구나 이런거. 사랑받고 있네 앗군. 부러운자식.

“하시모토씨, 잘 썼어! 덕분에 살았어”

“응!….저기, 있잖아. 아오키군 혹시 봤어?”

“아, 미안! 봐버렸어”

“아냐, 사과하지 않아도 돼. 대신 비밀로 해줄래?”

물론, 당연하지. 걱정하지마!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그제야 안심한 듯 웃는다. 아 맞다. 나 이따가 보충수업. 혹시 모르지만 필요할 거 같은데.

“저기, 하시모토씨! 미안한데 나 지우개 좀 더 써도 될까? 저번 테스트 때문에 이다쌤한테 보충수업 듣게 되서”

“아, 그랬구나. 괜찮아. 내일 돌려줘도 돼!”

고마워, 다음에 음료라도 쏠게! 하시모토씨를 배웅해 주고, 화학준비실로 뛰어갔다. 문앞에서 머리와 교복을 가다듬고, 노크를 했다.

“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두리번거리며 어색하게 들어가자 눈을 꾹꾹 누르며 기지개를 켜는 이다선생님이 보인다.
오늘은 셔츠에 가운차림. 앗군말대로 나쁘지않은거 같기도 하고. 너무 정면은 떨리니까 조금 대각선에 앉으니 정면도 아닌 바로 옆자리 의자를 꺼내곤 눈짓한다. 네? 정면도 아니고 옆자리요?

“일단, 풀 수 있는 만큼만 풀어보고 같이 보자”

쭈뼛쭈뼛 앉자마자 바로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아니, 너무 가까운데 지금? 살짝 고개를 돌리면 바로 코앞에 있는 얼굴에 심장이 터질 듯 뛴다. 이 사람 거리감 뭐야 진짜?
네에, 간신히 대답을 하고 어떻게든 집중하려고 문제지를 봤다. 잠깐, 뭔데 이거 배운 거 맞아? 일단, 다음 문제…아 패스. 다음 문제…아 이것도 패스. 나, 짝사랑이고 뭐고 진짜 위험한데?
슬쩍 옆에 앉은 이다 선생님을 보면 다행히 무슨 책인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열중해서 읽고 있다.
아, 이게 답이 맞나. 아닌가? 틀리면 어떡하지 너무 창피한데. 나름 썼던 답을 지우는데 너무 세게 쥐었는지 겉 포장지가 찢어져버렸다. 내가 어수선하게 움직이자 이다 선생님이 이내 참견하러 다가왔다.

“음 그 부분은 이렇게 푸는 것보다, 잠깐 지우개 좀”

[ 이다군 ♡ ]

“응?”

“네?”

아! 이건, 그러니까 오늘 안가져와서 급하게 빌린 거예요!! 눈동자를 마구 굴리며 급하게 변명했다. 아니 더 수상한가 지금 내 행동? 그러자 옆에서 푸핫, 웃음을 참다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음. 그렇구나, 난 아오키 안그래도 귀여운데 되게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생각했어.”

“진짜로, 제꺼 아니거든요!”

재밌어 죽겠다는 그 표정에 조금 심통이나 투덜대자 알았어, 알았어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꾸 귀엽다, 귀엽다 하지 말라니까요. 머리도 쓰다듬지 말고!
나는 아직도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는데 다시 집중하자며,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간다.
긴 손가락으로 내가 늘 쓰는 샤프를 손에 쥐고, 중간중간 눈을 맞추며 이해했냐고 물어오는 짝사랑 상대에 심장이 입으로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집중했다. 장하다, 나 자신! 대견해 아오키 소타!

“생각보다 잘 따라오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으아, 머리가 터질 거 같아”

“아오키, 컵케이크 좋아해?”

하트무늬 포장지에 이다선생님께♡라고 적혀있는 컵케이크를 얼떨결에 받았다.
아까, 실습하고 남은 거라고 받았어. 난 단건 영 서툴러서. 아오키는 좋아하잖아 단거? 웃으면서 자리를 정리하는 선생님을 멍하니 보다가, 작게 끄덕였다. 내가 단거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그래서 조금 들뜬 기분이 돼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있잖아, 선생님. 만약,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에요. 누가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고백하면 역시 곤란할까?”

“그건 학생이 고백한다면 말이지?”

“응…”

“그렇네, 아무래도 곤란하지.”

한순간에 들떴던 마음이 땅에 처박히는 기분. 그게 당연한 거 알면서도 왜, 나는. 순식간에 기분이 가라앉은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날처럼 내 눈을 보며 물어온다.

“아오키? 무슨 일 있어?”

대답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아 고개만 저었다. 다른 선생님이라면 꾸짖을 법한 행동이었지만, 그냥 작게 한숨을 쉬고는 머리를 툭 두드리면서 없으면 됐어하고 일어서는 선생님.

“고민 같은 거, 언제든 말해. 아오키는 내 귀여운 제자니까”

그러니까 그게 싫다고요. 아무 소용도 없는 귀여운 제자가요.
선생님은 모르는 내 두 번째 실연.


-


교사라는 진로를 선택하고 나서, 드디어 모교인 고등학교에 발령받아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특히 아픈 손가락은 있다는 선배들의 말.
나는 딱히 해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 소중한 제자들이니까. 특별히 누군가 더 예쁘거나 하지 않을 거라고.
선배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있었다. 유난히 예쁜 손가락이. 무슨 남자애가 저렇게 귀엽게 생겼지.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는 마메타로가 예쁜 짓을 할 때보다 더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눈으로 좇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쑥스러워 다른 아이들에게는 잘만 하던 인사도 못할 정도로, 속으로만 귀여워하고 있었다.

“앗!”

자주 같이 다니는 애랑 어쩐 일로 체육관에 왔나 싶더니, 굴러다니던 배구공을 밟고 넘어진 아오키가 보였다.
누군가 다칠 수 있으니 쓰고 나서 제대로 정리하라니까. 배구부원들을 살짝 흘겨보고 다가갔다.
다가가니 금세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발목이 참 얇네.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 나에게 놀랐다.
이다 코스케 정신 차려. 꽤 심하게 접질렸는지 일어나기도 힘들어 보여, 업히라고 하니. 주저하는 기색에 서운한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불편한가 내가.

“…그럼, 부탁드립니다”

내 등에 업힌 아오키가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얘 왜 이렇게 가벼워? 밥은 제대로 먹나. 많이 아픈지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줘 꼬옥 나를 안는 따듯한 체온에 온 신경이 거기로 다 집중되는 느낌.

“많이 아프지? 조금만 참아”

이 상황에 난 업혀있는 귀여운 생명체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보건실에 데려와 상태를 보니,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아 안심했다.
하얀 발목을 잡고 붕대를 감는데, 괜히 떨려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갑자기 떨어지는 눈물에 놀라서 쳐다보면 그런 날 보고 급하게 눈물을 닦는다.
그 얼굴이 너무 처연하고 또 예뻐서, 그런 내가 위험하단 생각에 급하게 입고 있던 져지를 벗어 씌어줬다.

“울고 싶으면, 그냥 울면 돼”

내 말에, 점점 흐느낌 소리가 커지더니 울고 있다. 이런 애를 앞에 두고 선생이라는 내가 별 생각을 다했다는 죄책감에
아무말 없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고개를 들고 눈과 코가 빨개진 채로 날 쳐다보길래,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서 어른답게 잘 달래줘야겠다는 처음 다짐과 달리, 짖궂은 마음이 들어 웃으면서 조금 놀렸다.

“아오키. 지금 얼굴 엄청난데?”

이 아이는 아무래도 나에게 너무 아프고 예쁜 손가락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쩌겠어?




이다아오키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