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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00:14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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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 물정 어두운 키요이라도 유동 인구가 많은 마을 보다는 시골 구석에 처박혀 있는 편이 낫다 싶어 연고도 없는 먼 지방으로 향했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가장 싼 방을 잡았으니, 이제 일자리도 잡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몰래 부모님께 연락해볼 심산이었겠지.

만약 그 사이에 도련님이 결혼하신다면.. 축하할 일이고.


하지만 히라 저택에서 도련님만 모시던 키요이에게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음. 곱게 다린 기모노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을 시중드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았지만 생에 처음으로 겪는 중노동에 눈 앞이 아찔해질 정도였음.
더구나 임신한 몸이라 물건 정리나 밤 늦도록 하는 일들은 무리였지. 한달이 지나자 키요이는 편의점주에게 해고 통지를 받았음. 미안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보이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말에 눈앞이 캄캄해진 키요이 닥치는대로 알아보았지만 시골 구석에서 할만한 일은 많지 않았겠지. 거기다 가진 돈은 점점 떨어져가고.

아예 거처를 옮겨 마트나 서빙 등 닥치는대로 해봤지만 초보인 키요이를 두고 보지 못한 성급한 고용주들이 고개를 저었겠지. 게다가 임신한 배를 숨기는 일도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니 절망적인 상황밖에 떠오르지 않았을거임.

키요이가 정말 피하고 싶었던 마지막 수단이.




아기는 히라 도련님의 선물이었음. 키요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 한때나마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 생겨난 결실이라는 증거였기에 키요이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도망쳐나온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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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밤마다 낯선 이의 것을 입에 물 때마다 키요이는 아랫배에 손을 올려 아기에게 백번이고 사죄하는거 보고싶다. 아가야 너무 미안해 하고.
예쁜 얼굴에 고생도 안해본 것 마냥 여린 손목을 가진 키요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어서 유곽처럼 싸구려 기모노를 입는 술집에서 남자를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예 남자를 받는 일까지 한다면 수입은 늘어나겠지만 임신을 한데다 게다가 결정적인건 히라 도련님 외의 남자와 몸을 곂치고 싶지 않았을거임. 남자들이 키요이의 머리를 붙잡을 때마다, 토할것 같이 역겹고 쓴 액을 받아마실 때마다 키요이는 도련님과의 알콩달콩했던 서재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으면.

거기다 특별한 증상이나 입덧이 없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음. 특히 처연하고 예쁜 얼굴과 기모노를 입어도 태가 나는 배 때문에 임신한 몸인걸 알고 그 배덕함 때문에 남자들이 끊이질 않아 키요이는 매일 밤 입을 벌려야했는데 점점 무너지는 마음과 달리 남자들이 쥐어주는 돈은 늘었겠지.

그런데 번들거리는 눈의 이 못된 고용주도 키요이를 탐내서 어느 날 퇴근하려는 키요이 엉덩이를 확 쥐었는데 다행히 분위기가 이상한걸 눈치챈 키요이 무사히 도망쳐 나왔을거임. 고용주가 잡으러 올까봐 온몸이 덜덜 떨려 편의점에 숨어있다가 그 길로 집으로 가 단촐한 소지품만 챙긴 키요이는 첫차 뜨자마자 쫒겨나듯 다른 곳으로 향했겠지. 이번에도 아가야 미안해, 하고. 그러자 뱃속의 아기가 위로하듯이 퉁하고 태동을 보였을거음.



키요이도 이제 한계라 생각했음. 케어를 받지 못해 지친 몸도 그렇고 억지로 남자를 상대하는 일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겠지. 다행히 술집에서 모은 돈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밑바닥까지 떨어진 생활에 아기를 낳아 키우기는건 어렵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곧 날씨도 추워질테고.. 한참을 고민하던 키요이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곤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쓰러진 곳은 어느 노파가 운영하는 작은 찻집 안이었는데 키요이를 딸려있는 방 안에 눕혀 준것 같았음. 히라 저택을 떠난 후 처음 받아보는 친절에 키요이 눈물 글썽이고 있으니 따뜻한 차도 내주었겠지. 앳되고 어린 임산부에 단촐한 짐, 마른 몸을 보고 대강 사정을 짐작한 노파가 더 큰 친절을 베풀어 혹시 갈 곳이 없으면 잠시 이곳에 머물러도 좋다고 하겠지. 찻집 안에 딸려있는 작은 방인데 갈데없는 신세인 키요이도 몇번이고 고개 숙이면서 감사하다고 했을거임.

그렇다고 방 안에만 꼼짝없이 있을 수 없으니 며칠 후에 찻집 일도 조금씩 돕기 시작했는데 친절한 노파의 도움으로 몸도 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음. 다행히 동네 주민들도 점잖은 편이었고.
이제 만삭의 몸이라 미뤄왔던 병원도 가보니 다행히 아기는, 이 귀여운 뱃 속의 아들은 아무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어서 눈물 퐁퐁 흘리는 키요이겠지. 요즘 들어 계속 눈물이 헤퍼져서 도련님이 못 견디게 보고 싶다가도 또 못 견디게 미워질 때가 많았음.

특히 바쁘게 일하다가도 때때로 멍하니 창밖을 보며 한시도 잊은 적 없는 도련님이 잘 살고 계실까, 혹시 결혼은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는 날이 늘어나겠지. 하지만 일부러 핸드폰도 들고 오지 않았고 소식도 멀리하면서 살았으니 지금은 모르는게 약이다 싶었을거임. 그렇지 않으면 보고싶어서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것 같으니까.

감사하게도 주인 노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키요이가 가끔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으면 아기를 봐서라도 아기 아버지와 같이 있는게 좋지 않겠냐고 말하곤 했음. 그럴때마다 키요이는 애매한 웃음으로 말을 얼버무리는거 보고싶다.


그래서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날 중의 하나였음. 부쩍 추워진 날씨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 차를 내가고 조금 친해진 동네 주민들과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나겠네, 하고 환담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

얼마 전 감기 걸린 주인 노파를 먼저 보내고 대신 찻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가게의 나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음.
영업 끝났다고 말해줄 요량으로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돌아보는데 순간 키요이의 심장이 멎을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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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키요이.


하고 분노와 슬픔, 집착으로 일그러진 얼굴인 히라 도련님이 서있었으면 좋겠다...






히라키요이 맇쿠유세이

이 마을에 오기 전 키요이를 내쫒았던 곳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했는지, 그 술집 고용주는 행방불명 상태라는걸 키요이는 절대로 몰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