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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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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는 맹세코 오늘 아침이 지금까지 30년간 인생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아침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처음에는 지난 밤의 일이 꿈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정신을 좀 차리자 곧 방 안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향기가 느껴졌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시선을 돌리자 침대 옆 협탁에 놓여 있는 쪽지가 보였다. 
 
나 오늘 아침 생방 있어서 먼저 나간다. 
있다가 회사에서 봐. 늦지 마!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았지만 누가 쓴 건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노부가 지난 밤을 같이 보낸 사람. 밤을 같이 보내서는 안 되는 사람. 그러나 정말로 노부가 같이 밤을 보낸 사람일 테니까. 

극단에서 1년 가까이 준비해서 몇 달이나 했던 공연이 어제 끝났고, 모두가 지쳤지만 신나 있었다. 노부도 잔뜩 들떠 있었고 뒤풀이에서 술이 과했다. 케이가 옆에서 계속 술 그만 마시라고 했었지만 듣지 않았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리고 몇 년 전 노부가 취한 케이를 집에 데려다 줬듯이 어젯밤에는 케이가 노부를 집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노부는 아침 생방 때문에 먼저 일어난 케이가 바닥에서 주워서 의자 위에 올려 놨을 자신의 옷가지들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기억이 날아간 건 아니라서 지난 밤에 집까지 데려다 준 케이를 덮쳤던 건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케이는 저항하지 않았다. 한 번도 오메가와 잔 적이 없는데 지난 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케이가 미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미남, 미인. 무슨 말을 붙이든 어쨌든 정말 아릉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 연극 연습만 하느라고 야구하러 갈 시간도 없다고 자주 투덜거리더니 확실히 햇볕을 못 받기 때문인지 요즘 들어 케이는 유독 하얀 얼굴로 돌아다녔다. 그 하얀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야하고 너무 매혹적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땀에 젖은 다른 사람의 피부가 몸에 닿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을 텐데 촉촉하고 따뜻하게 젖은 케이의 팔 다리가 노부를 강하게 휘감으며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어 안달하며 안겨드는 모습은 있는 줄도 몰랐던 소유욕과 정복욕을 강하게 자극해서 한껏 벌어진 다리 사이에 몸을 묻고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었다. 그냥. 그냥 모든 게 좋았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그걸, 좋았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노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케이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갑자기 직장 동기에게 덮쳐졌으니 케이에게는 큰 횡액이었을 것이다. 오메가들은 문란하다는 편견이 사회에 가득하지만 케이는 항상 사생활을 깨끗하게 유지했고, 노부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도 사생활에 잡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케이는 한 번도 사생활에 대해 나쁜 소문이 나거나 질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케이도 나이가 있으니까 어제가 첫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아무나하고 자고 다니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나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나니까 오히려 멍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회사에서 회의도 있었다. 어제 공연이 끝났으니 공연 뒷정리로 여러 가지 논의할 것들이 있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도 케이를 만나서 분명히 사과를 해야 했고. 노부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케이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만 생각하며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회의실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쥐고 있을 때였다. 창 밖에서 회사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마치다 상 오늘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티가 나나요?"

웃는 케이의 목소리가 확실히 평소보다 들떠 있다는 건 노부도 느낄 수 있었다. 노부는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지난밤에 횡액을 당했으니 케이의 기분도 바닥을 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침 생방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잘했거나 그 사이 몇 시간 만에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사과를 해야 하는 노부의 입장에서는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가슴을 조금 쓸어내리고 일어나자, 마침 케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
"케이."
"안 늦고 왔네. 깨워줄까 했는데 생방이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못 깨웠는데."

노부는 환한 얼굴로 들어오는 케이를 보며 바로 허리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케이, 제가 큰 잘못을 했어요."
"... 어?"

노부가 고개를 들자 환하게 빛나고 있던 케이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웃음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그늘이 대신 채우는 게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보였다. 

"제가 어제 술이 과했습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어..."

케이의 목울대가 크게 한 번 움직이는 게 보이고, 어색하게 굳어 있던 케이의 입꼬리가 삐걱삐걱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그래서 내가 너... 큼."

케이는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한숨을 내쉬고 웃었다. 억지로 웃어 보려고 해도 절대로 웃음이 안 나오는 것처럼 어색하게.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케이의 안면 근육이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엔 웃는 게 정말 예쁜 사람인데. 

"내가 너 그래서 어제 술 적당히 마시랬잖아."

케이는 노부의 팔을 장난스럽게 툭 치면서 웃었지만 노부의 팔을 툭 치는 주먹도, 장난처럼 타박하는 목소리도, 웃음소리도, 웃어보려고 끌어올린 입꼬리도, 웃음기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눈동자도... 모든 게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당연했다. 어젯밤에 10년이나 가족처럼 지냈던 동기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까. 노부가 다시 고개를 숙여서 정중하게 사과하자 케이는 다시 한 번 '하하' 연극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연극은 이미 어제 끝났는데.

"괜찮아. 어제 둘 다 취했고."

케이는 전혀 취하지 않았는데. 엉망진창으로 취했던 노부도 그건 아는데. 

"야, 너, 잘, 큼. 잘하더라."

몇 번이나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말을 이을 수 있다면 그냥 용서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말해도 될 텐데. 

"나 베타랑 잔 거 처음인데, 와, 너 진짜 공주님처럼 다정하게... 큼."

... 

"다정하게 대해 줘서 쫌 설렜다?" 

케이의 눈꼬리가 떨리는 게 웃기 싫은데 웃어야 해서인지 울고 싶은데 울 수 없어서인지. 

"너 여자친구가 좋아하겠다."

여자친구 없는데. 

"사귀는 사람 있다고 했던가?"
"아니요."
"아, 다행이네. 네 여자친구한테 미안할 뻔했는데."
"케이가 왜 미안해요. 내 잘못인데."
"하하. 뭐... 큼. 큼."

케이는 갑자기 렌즈가 너무 빡빡해서 인공눈물을 넣어야겠다며 급히 다시 돌아섰다. 그러나 케이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돌아서는 순간, 눈가가 반짝였는데... 인공눈물을 넣지 않아도 이미 눈물이 반짝였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노부가 어젯밤 저지른 그 용서받을 못한 짓이, 노부와 케이가 침대에서 나누었던 시간이 모두 꿈인 것 같아도 꿈이 아니란 걸 분명히 알았지만. 그래도 그것만은. 그것만은 정말로 꿈인 줄 알았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지난 밤의 일을 되새기면서 괴로워하는 동안 꿈처럼 아련하게 남은 목소리가 있었다. 노부가 취한 데다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격렬한 시간을 보내서 먼저 기절하듯 잠든 다음 의식이 반쯤 가라앉았을 때 들었던 것처럼.

아련하게.

정말 좋아해. 

기쁨이 넘실거리던 목소리로 그 말을 들은 것만은 정말 꿈인 줄 알았는데. 케이가 술에 취한 노부에게 갑자기 험한 일을 당한 후에 기쁘게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메가인 케이와 베타인 노부는 이어질 수 없고, 그걸 케이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건 정말 꿈인 줄 알았는데. 

노부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나... 무슨 짓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