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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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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에다의 입술은 메구로가 열어내는대로 순순히 벌어졌다. 오고가는 숨결은 뜨거웠고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둘만 남은 방 안에는 입술이 섞이는 야릇한 소리만 울려퍼졌다. 첫키스도 아닌데.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출때보다, 아니 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훨씬 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점점 호흡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미치에다가 저도 모르게 몸을 조금씩 뒤로 빼는것을 느낀 메구로가 대번에 미치에다의 허리를 껴안아 끌어당겨왔다. 체향인지 페로몬인지 알 수없지만 머리속이 아찔하게 물들 정도로 달콤한 향기에 다정한 가면을 쓰고 억누르고있던 알파의 오감과 제 오메가를 향한 정복욕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치에다는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 메구로의 입술이 느껴져 눈을 크게 떴다.

"읏...."

미치에다는 제 목덜미에 이를 세우는 메구로에 놀라 저도 모르게 울먹이는 소리를 내었다. 서...선배...

"렌....."

그제야 메구로가 고개를 들어올려 미치에다를 마주보았다.

"미, 미안...미안해,정말 미안해 슌."

내가....내가 무슨 짓을...

그때였다.

"태자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크소리에 화들짝 놀란 미치에다는 빠르게 메구로의 품안에서 벗어났다. 메구로는 그런 미치에다를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요.

"아, 태자비마마도 계신줄은 몰랐습니다."

미치에다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저,저는! 그냥...선배 상태 보러 온거에요! 그...무사한거 봤으니 이만 가볼게요!"

미치에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메구로는 그제야 저를 찾아온 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메구로는 피식 웃었다. 아직도 포기 못하겠다 이건가?

"하긴, 쉽게 포기할 인간들이였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벌이지도 않았겠죠."

동태 잘 살펴요, 슌에게는 손끝 하나 댈 수 없게. 메구로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태자비마마...? 괜찮으신가요?"

동궁을 도망치듯 벗어나 빈궁전으로 뛰어들어온 미치에다는

"마마, 얼굴이 굉장히 빨가신데..."
"열 나시는것같으면 의원을 불러올까요?"

저를 걱정하는 빈궁전의 궁인들을 물리고 방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저와 키스한 뒤, 혼란스러워보였던 메구로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주제 넘지말기로 했잖아, 미치에다 슌스케. 이 결혼생활은, 진짜가 아니야. 그 사람은 너무 달콤하고, 이 곳은 너무 따뜻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다정하지만, 이 모든건 언젠가는 깨야만 하는, 꿈이야.

미치에다의 눈이 스르륵 감겨갔다. 그리고, 미치에다는 꿈을 꿨다. 가지말라고 우는 저를 달래기 위해 꼭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몇번이고 약속해놓고, 단 한번도 다시 나타나지않았던 이의 꿈을.

"슌은?"
"태자비마마라면...한시간 전에 등교하셨습니다만..."

빈궁전 소속 나인의 대답에 메구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늘 미치에다는 오후 수업밖에 없었다. 사색이 된 채로 도망치듯 동궁에서 빠져나간 그 날부터 예상은 했지만 최근, 미치에다는 눈에 띄게 저를 피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각인...할뻔했지, 그 날. 메구로는 아직도 이성이 반 쯤 날아갔던 상태에서 제 입술 끝에 닿았던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리고...두려움에 젖은 채, 저를 부르던 떨리는 목소리와 눈동자 역시.

그렇게 다짐했는데, 천천히 다가가기로. 겁 먹지 않게, 온전히 안심하며 스스로 제게 오게끔 기다리기로 했는데, 눈물을 그렁거리며 제게 안겨온 사랑스러운 온기를, 향을, 존재를 절대 놓치고싶지않다는 우성알파의 본능이 앞서버렸다. 최악이다, 메구로 렌. 어딘가 속이 복잡해보이는 태자의 눈치를 살피던 빈궁전의 나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태자전하.

"태자비마마께서 돌아오시면 태자전하께서 찾으신다고 고해올릴까요."

메구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지 마.

"대신... 슌이 돌아오면 이걸 전해줘."
"직접 전해주지 않으십니까? 태자비마마께서 분명 기뻐하실텐데요."

메구로는 대답 대신 쓰게 웃었다. 지금의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

"메구로한테 연락왔어. 너랑 같이 있냐고."

오오하시의 말에 미치에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임승차에 고통받는 중인 영혼 구제해주느라 늦게까지 나랑 같이 있을거라고 했어."

오오하시의 대답에 미치에다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핫슨."

부부싸움?하는 오오하시의 물음에 미치에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거 아냐."

렌은...내 분수에 넘치는 사람이라는거 알고 있는데, 그 옆에 있으면서 점점 욕심을 부려버려서...그래서... 속으로 삼키는 미치에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본 오오하시는 더 묻지 않았다.

"뭐...니들 부부의 사정이니까 나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뭐가 됐든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밋치.

왔어?슌-

렌..? 눈을 느리게 깜빡이던 미치에다는

"태자비마마...?"

저를 다시 부르는 궁인의 목소리에 그제야 제 앞에 있는 이를 확인하고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무슨 기대를 한거야, 렌을 먼저 피해다닌건 내쪽인데.

"태자전하께서 태자비마마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미치에다?"
"...메구로 선배?"

선배가 어떻게 여기에...라고 하기엔, 학교 근처 서점이니 마주치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딱 제가 아르바이트할때 올게 뭐란 말인가. 그것도 기말고사 성적 나온 날 말이다. 누구는 또 차석인데, 염장 지르는것도 아니고.

"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너 맞았네. 여기서 일 해?"
"아...네."
"방학에도 아르바이트하고, 대단하네 미치에다는."
"...책 사러 오셨나봐요."

말하고도 미치에다는 스스로도 아차싶었다. 바보인가, 당연히 서점에 책 사러왔겠지. 메구로가 비웃어도 할 말이 없겠다싶을 정도로 한심했다. 정작 메구로는 별 생각없는듯했지만 말이다.

"아아 응, 계절학기 책 사러."
"정치 경제 관련 책들은 저쪽에 있어요."
"고마워, 미치에다."

계절학기까지 듣는다니, 역시 전체수석은 다르네. 미치에다가 다시 책장 정리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책 몇권을 골라서 들고온 메구로가 미치에다를 불렀다. 미치에다.

"괜찮으면 소설 추천 좀 해줄래?"
"네?"

실은 계절학기 시간표 잘못 신청해서 우주공강 나왔거든...정정도 안된대.... 하며 시무룩해지는 얼굴에 미치에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선배가 실수할때도 있긴하구나.

"추천해드렸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하시려고요."
"뭐...기독교 수업보단 재미있지않을까?"
"기독교요??"

우리 학교에 종교 관련 과목도 있었나..?교양인가?? 어리둥절해하는 미치에다에 주변을 살핀 메구로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속삭였다. 비밀인데....

"무역론 교수님 별명이야. 기쎈 대머리 독수리. 줄여서 기독교."

크흡-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린 미치에다는 입을 틀어막아야했다. 애써 웃음을 삼켜내는데 성공한 미치에다는 책장 속으로 사라졌다가 잠시 뒤, 책 한권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이거, 제가 좋아하는 소설 시리즈에요. 킬링타임용으로 괜찮아요. 뭐...작가님이 신권 내는 텀이 엄청엄청 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요."
"재밌어보인다, 고마워. 잘 읽을게."

ㅁ..마.....태자비마마..?

"아...네."
"괜찮으십니까? 아까부터 조금...멍하신것같은데."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미치에다는 빈궁전 나인의 손에 들려있는 신간 소설책을 보며 마음이 꼬인 실타래처럼 엉켜들어가기 시작했다.

"왜..."

왜...왜 이거를 기억하고 있는거에요. 어쩐지, 울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