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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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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삶에 순조롭게 적응해 나갔다. 원래도 6년 동안 케이를 다시 찾는 것과 회사를 세우고 키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즐기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그저 잠만 자는 용도였던 작은 아파트의 짐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옷과 노트북, 업무와 관련된 서적이 전부. 케이가 짐을 싸는 걸 도와주겠다고 해서 짐도 얼마 없다고 거절했지만, 케이는 '너 어떻게 살았는지 볼래'하고 냉큼 노부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노부의 아파트까지 따라 들어와서 휑하기만 한 작은 집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케이는 말없이 노부를 끌어안았다. 노부도 가만히 케이를 끌어안고 있자, 케이는 한참 후에 고개를 들어서 눈을 맞춰왔다. 

"우리 이제 셋이 행복하게 살자. 우리 류세이 잘 키우고. 너랑 나랑 류세이랑 행복하게."
"그래요. 셋이 행복하게 살아요."
"예쁘고 포근하고 좋은 것들로만 우리 삶을 가득 채우면서 살자."
"그래요. 케이."

노부가 이사를 들어온 날은 다 같이 식탁에 모여앉아 타코야키 파티를 했다. 문어도 손질하고, 류세이가 좋아하는 소세지도 넣고, 치즈도 넣고 새우와 오징어도 넣어보고 이것저것. 재료를 넣는 건 류세이도 함께하게 했지만, 류세이가 자기도 타코야키를 돌려보고 싶다고 했을 때 케이는 안 된다고 했다. 노부는 류세이가 자기에게 슬쩍 조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류세이는 입술을 조금 내밀긴 했어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패스트푸드나 스위트를 너무 많이 못 먹게 하는 거나, 방을 온통 만화 캐릭터로 도배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건 노부를 졸라서 원하는 대로 하려 하더니. 

"위험하니까 안 돼. 다음에 더 크면 하자."

그 말에 류세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바로 포기하는 거라는 걸 알아챈 노부는 류세이의 손에 나무꼬지를 쥐어주고 류세이의 조그만 손을 꼭 잡았다. 

"위험하니까 아빠랑 같이 할까, 류세이?"
"아빠랑 같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 마음 먼저 생각하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노부는 눈을 반짝거리는 류세이에게 웃어주고 케이를 바라봤다. 케이는 팔이 짧은 류세이가 앉은 채로 타코야키를 뒤집을 수 있게 딱 안전한 거리까지만 타코야키 기계를 밀어주었다.

"엄마나 아빠가 잡아줄 때만 해야 돼. 알았지?"

케이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류세이는 노부의 다리에 올라앉아서 나무꼬지를 꼭 쥐고 노부를 올려다봤다. 

"얼른 해 주세요."
"그래."

노부가 류세이의 손을 쥐고 안전한 거리까지 팔을 옮기자 류세이는 타코야키 반죽을 콕 찌르더니 살살 돌리기 시작했다. 아직 어설퍼서 반죽이 줄줄 흐르긴 했지만, 우리끼리 먹을 건데 뭐 어때. 몇 번 해 보고 나니까 능숙해져서 예쁘게 모양을 잡게 되기도 했고. 류세이는 자기가 만든 것 중에 예쁘게 된 것들을 콕 찍어서 케이와 노부의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류세이가 만들어서 더 맛있어요?"

물론 타코야키 반죽을 하고 재료를 손질했던 노부와 케이는 류세이가 직접 돌려줘서 더 맛있다고 해 주었다. 사실이었다.





함께 살면서 노부는 류세이가 조를 때 받아줘도 될 때와, 안 될 때도 구분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면서 착하기만 한 아이로 자라는 건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노부는 류세이가 뭔가를 먹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다음에는 꼭 영양이 균형잡힌 식사를 하게 했고, 단 걸 사 달라고 하면 양치를 제대로 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류세이도 노부가 류세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대신 류세이가 류세이의 몸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이해해가고 있는 것 같았고. 아닌가? 그냥 맛있는 걸 사주는 게 좋으니까 열심히 양치하고, 채소를 많이 넣은 국이나 채소절임도 얌전히 먹어주는 건가?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노부는 케이의 문자를 받았다. 

- 아빠 몰래, 엄마랑 류세이랑 드라이브하는 중!

이게 뭔가하고 보니까 류세이가 안전벨트를 야무지게 매고 예쁜 표정으로 찍힌 사진이 있었고, 첨부된 사진들을 더 넘겨보자 국화축제를 하는지 다양한 국화들을 예쁘게 배치해놓은 꽃밭에서 꽃향기를 맡는 류세이나 포토스팟에 앉아 있는 류세이의 사진 등이 있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국화가 가득한 꽃밭 한가운데 놓인 노천카페에서 코코아를 한 잔씩 놓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찍은 케이와 류세이의 사진도 있었다. 

'아빠 몰래' 왔다니까 전화는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다시 케이의 문자가 왔다. 

- 료짱이랑 화해 잘했다고 해서 어제 속상했던 거 달래줄 겸 화해한 거 칭찬해 줄 겸 데리고 나왔어. '아빠 몰래' 놀러왔으니까 아빠는 모른척해 주세요~

전날 류세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랑 싸워서 울적한 얼굴로 집에 왔었다. 교사가 일단 화해는 시킨 모양인데 석연찮은 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라 노부는 류세이를 품에 안고 친구와 왜 싸우게 됐는지, 뭐가 속상했는지, 지금은 싸운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었고, 류세이는 서운하고 화나고 속상했던 것을 털어놓고 나서, 친구한테 미안하단 이야기도 했었다. 그래서 히라가나뿐이지만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사과편지를 쓰는 것도 봐 줬었다. 노부는 너무 예쁜 류세이의 사진을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 저녁 먹기 전에는 아빠를 만나 줄 건가요?
- 아빠 몰래 왔는데 당연히 밥 먹기 전에 돌아가야지!
- 알았어요. '아빠 몰래' 재미있게 놀고 와요. 

그날 밤에 케이는 노부에게 노부도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류세이랑 '엄마 몰래' 재미있는 데 갔다오라고 권했다. 아빠와 단둘만의 비밀 추억을 만들면 더 사랑받는 기분이 들 거라고. 전에 케이가 공장에 갔던 날처럼 엄마의 허락 아래 둘이 놀러가도 좋지만, 엄마 몰래 하는 일이라 더 두근두근하고 더 즐거울 수 있다고. 그래서 한 달쯤 뒤 노부는 하원한 류세이와 케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케이에게는 류세이를 회사에 데리고 가서 돌봐주겠다고 한 다음 차에 태웠다. 그리고 노부는 회사로 향하는 대신 번화가로 향하며 류세이를 돌아봤다. 

"류세이, 엄마 몰래 아빠랑 놀러 갈까?"
"놀러요? 엄마 몰래?"
"응. 아빠 오늘 일하러 가기 싫은데 류세이가 아빠랑 놀아줄래?"

류세이는 두 팔을 번쩍 들며 크게 외쳤다. 

"좋아요!"

그래서 노부는 류세이를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키즈카페에도 데리고 갔다. 활동적인 아이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키즈카페를 좋아하기도 해서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영상도 잔뜩 찍었다. 그리고 그 영상과 사진들을 케이에게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볼풀장에 푹 파묻힌 채로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허우적거리는 영상도 보내고, 방방이에서 말 그대로 방방 뛰는 영상도 보냈다. 

- 오늘 류세이는 '엄마 몰래' 아빠랑 키즈카페에 왔어요. 
- 어쩐지 점심을 유난히 든든하게 먹인다 했더니 금방 배꺼질 줄 알고 그랬구나. 재미있게 놀고 와요, 류세이 아빠!

그렇게 노부와 케이는 류세이와 예쁜 추억을 만들어가며, 류세이를 예쁘게 키워가고 있었지만, 류세이가 잠들고 나면 두 사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전히 케이가 노부의 품 안에 있는 게 꿈같을 때가 있지만, 지금의 이 행복이 현실이라는 것도 이제는 느낄 수 있어서, 예전의 버릇이 다시 조금씩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에 그랬듯 노부는 한창 케이를 안고 있을 때는 자기가 얼마나 거칠게 구는지 그다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던 어느 날 밤에 또 달콤하고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케이를 씻기기 위해 욕실로 데리고 갔던 노부는 케이의 허벅지 위쪽과 가슴에 퍼렇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멍을 보며 경악했다. 

"어떡하죠. 내가 또..."

케이는 물 아래서 어른거리는 맨가슴과 허벅지를 내려다보고 피식 웃더니 노부를 끌어당겨 안았다.

"괜찮아. 가슴이나 허벅지는 방심하고 있다고 보이는 데도 아니잖아."
"미안해요. 아프죠?"
"아니, 아프진 않아. 전에 말했잖아. 네가 이렇게 세게 안아주고 강하게 끌어안는 거 좋아한다고."

노부가 미안해서 가만히 입만 맞추자, 케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류세이 목욕은 네가 시켜야겠다."
"아... 그래야겠네요."

류세이를 목욕시키는 사람은 류세이와 함께 목욕하기 때문에 벗은 몸을 볼 수밖에 없으니. 

케이가 그렇게 쿨하게 넘어가 준 덕분에 류세이는 조금씩 더 방심하기 시작했고, 케이의 가슴이나 허리, 허벅지는 종종 멍이 남아 있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방심하지는 않아서 눈에 보이는 곳에는 남기지 않았지만. 케이는 괜찮다고, 좋다고 했지만 정말로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때는 있었기 때문에 케이가 어느 날 밤에 류세이를 재우고 난 뒤, 노부의 품에 기대 앉으며 말했을 때는 심장이 철렁했다. 

"내일 오전에 류세이 유치원 보내고 나 병원 갈 건데, 같이 갈래?"
"네?"

뭔가 잘못됐나 해서 황급히 케이와 눈을 마주치며 묻자, 케이는 작게 웃더니 노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예전에 류세이가 올 때도 이랬었거든. 어지럽고 속이 매스껍고. 자꾸 졸리고..."

노부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케이를 바라만 보고 있자, 케이가 노부와 눈을 맞추며 속삭였다. 

"류세이는 왔으니까, 이제 다이키치가 올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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