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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8 23:20
앎그최종화_1.gif
별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실존하는 내가 아닌 사진 속의 내가 더 부러워 기분이 이상해져 한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히라 몰래 제단에 있던 조그마한 사진을 하나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쓰레기 통에 넣어 없애고 싶었지만, 그러면 히라가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아침부터 기도한다며 제단 문을 연 히라는 그걸 또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물었다.

"키요이 여기 있던 사진 못봤어?"

모르는 척 말했다.

"무슨 사진?"

"그,그니까 키요이가 광고하는 음료를 10개 모으면 랜덤으로 30종 중에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사진인데..."

"뭐라고 30종? 그보다 10개를 마셔야 한다고?"

"응, 모으느라 조금 힘들었는데 그래도 즐거웠어, 역시 팬이라는 건 그런 기쁨으로 사는거니까"

히라는 또 다시 팬의 모드로 돌아가고 있다. 그보다 앞의 '음료 10개' 라는 말이 더 거슬린다.

"...미친거 아니야? 그럼 내가 버린게 최소 음료 10개 가격이라는 거잖아"

"그,그럼 혹시.. 키,키요이가 버,버린거야...?"

실수로 말해버렸다. 영원히 비밀로 할 생각이었는데 팬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것도 돈을 엄청 쓴 팬을 자청한게 어이가 없어 입으로 흘러나와버렸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사실 말하기 싫었다). 그리고 히라는 괜찮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침부터 입이 바닥에 닿을 만큼 나와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먹으라며 아침을 해준다. 조금은 진심으로 미안해져 집에 있으며 달래줄 생각이었는데, 사무소에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와 급하게 나왔다.



사장님이 좋은 역할이 들어왔다며 대본을 주셨다. 이 역할을 잘 연기한다면, 그 다음은 늘 원했던 연극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를 알리고, 점심은 사무소에서 먹고 들어간다고 히라에게 문자하였다. 평소 히라는 메세지를 보내면 곧장 답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조금 늦은 2분 뒤쯤 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이모티콘 없이 말이다.

히라가 삐졌다.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했다. 집으로 돌아가 가상의 나를 버려서 미안하다고 납작 엎드려 사과라도 해야하는 것일까? 생각만해도 기분이 나빴다.



점심을 먹고 대본을 조금 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히라가 없었다. 평소라면 어딜 간다고 메세지라도 남겼는데... 진짜로 삐진게 분명하다. 근데 나도 조금 억울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키요이 소이다. 이것보다 더한 일도 겪으며 히라와 여기까지 왔다. 오늘도 잘 달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저녁준비가 모두 되어있다. 삐진 와중에 나의 밥을 준비한 기특한녀석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곧 누군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히라가 봉지 한 가득 무언가를 사서 들어왔다. 
 
"어디 갔다온거야?"

히라가 놀란표정을 짓는다.

"키,키요이?"

"..."

"지,집 앞 슈,슈퍼 다녀왔어"

그리고 히라가 말을 더듬는다. 뭔가 숨기는게 있다.

"뭐 사왔는데? 저녁은 다 준비해놨던데"

"아, 아 그게..."

히라가 든 봉지를 뺏어서 열어 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악!!!"

히라가 소리친다. 봉지에서 나온건 내가 버린 사진, 그러니까 그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음료 10개였다.

"야 이게 뭐야?"

"미,미안 키요이,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 이것만은 나를 이해해줘"

"하? 그럼 이거 사러 갔다온거야?"

"응? 응.. 또 무,무슨 문제있어?"

히라가 무릎을 꿇고 물어본다.

"너 내 문자에 왜 답 늦게한거야?"

"그건 단순히 문자를 조금 늦게 본 것 뿐이야, 미안 키요이"

"그럼 어디간다고 왜 말 안했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충전해놨어!"

"그것도 모르고 나는,"

"응?"

"됐어, 밥이나 먹자"

집으로 빨리 돌아와 히라를 달래주려한 내가 진 것이다. 나는 히라를 이길 수 없다.


앎그 히라키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