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3939656
view 3575
2023.07.17 04:41

재생다운로드7f3572ee7e5c7e9c54ea6a6dc7aef914.gif
재생다운로드20221128_210009.gif



눈을 뜨자 창 밖이 뿌옇게 밝아지고 있었지만, 케이는 여전히 류세이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고, 류세이는 잠옷이 위로 올라가서 귀엽게 볼록 튀어 나온 배를 드러낸 채 푹 잠들어 있었다. 케이는 아침이 이른 사람이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면서 푸는 성격이기도 하고, 지난 밤에 많이 놀란 류세이가 악몽을 꿀까 봐 내내 지켜보고 있느라 늦게 잠든 탓에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부는 말려올라간 류세이의 잠옷을 끌어내려주고 류세이의 뺨과 케이의 뺨에 차례로 입을 맞춘 후, 두 사람에게 이불을 폭 덮어준 뒤에 방을 나섰다. 

케이는 아침을 가벼운 일식으로 먹는 걸 좋아했는데 류세이는 어떨지 몰라서 일단 밥을 앉히고 반찬할 걸 찾느라 냉장고를 열어보고 있을 때였다. 따뜻하고 포근한 체온이 다리에 와 닿아서 내려다보자, 류세이가 눈도 다 못 뜨고 노부의 다리에 매달려서 헤헤 웃고 있었다. 

"잘 잤어, 류세이? 일찍 일어났네."
"웅. 잘 잤어요. 아저씨도 잘 잤어요?"

어제는 놀란 마음에 아빠란 말이 튀어나왔던 것뿐인지, 호칭이 다시 아저씨로 돌아와서 서운했지만, 류세이가 이렇게 자라는 동안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서 노부는 포슬포슬 헤집어져 있는 류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류세이 아침 뭐 해줄까?"
"아저씨가 해 줄 거예요?"
"응. 엄마 아직 안 일어났으니까 내가 해 줄게. 뭐 먹고 싶어?"

류세이는 조그만 머리를 냉장고 안으로 넣을 듯 냉장고 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비엔나소시지가 든 밀폐용기를 가리켰다. 

"소세지!"

냉장고에 과일도 많고, 채소도 많은데, 류세이가 채소를 많이 안 먹어서 걱정이라더니 정말로 안 먹는 모양이었다. 

"소세지 넣고 오무라이스 해 줄까?"
"좋아요!"

류세이가 양치질과 세수를 하러 간 사이에 재빨리 채소를 잘게 썰어서 팬에 넣고 비엔나 소시지를 자르고 있자, 류세이가 뽀얀 얼굴을 하고 나왔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아이인 탓에 뺨 가장자리에 비누거품이 남아 있어서 류세이를 데리고 다시 욕실로 가서 얼굴을 제대로 닦아주고 로션까지 발라주고 나자, 류세이는 제 방에 들어가더니 노부의 회사에서 개발한 학습용 기기를 들고 나왔다. 류세이가 사무실에 놀러왔던 날 선물한 것이었다. 류세이는 조그만 손가락을 움직이며 고토에게 야무지게 배운 대로 버튼을 꾹꾹 눌렀고, 잠시 후에 동화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잭과 콩나무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대책없는 게으름뱅이 잭이 소와 콩을 바꿔와서 어머니한테 혼나고 콩이 콩나무가 돼서 잭이 거인의 성에 올라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훔쳐 나오는 부분까지 흘러나왔을 때, 케이의 침실문이 열렸다. 

케이는 발을 동당거리며 동화책을 듣고 있다가 팔을 번쩍 들며 엄마를 반기는 류세이에게 가서 뺨에 입을 맞췄다. 

"잘 잤어, 류세이?"
"네. 엄마는 잘 잤어요?"
"응. 우리 아들 안고 자서 너무 잘 잤어."

그리고 케이는 노부에게 다가와서 노부가 만드는 오무라이스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잘 잤어? 침대가 좁진 않았어?"
"잘 잤어요. 케이는 좀 잤어요?"
"응. 많이 잤지. 너한테 아침까지 시켰네. 미안하게."
"미안은 무슨. 케이는 아침 어떻게 해 줄까요? 생선 있던데. 구워줄까요?"
"응. 그럼 고맙지. 류세이는 오무라이스 먹는다고 했어?"
"네, 소세지 많이 넣어주려고요."

노부가 류세이 들으라는 듯 그렇게 말하자 케이는 잘게 자른 채소가 가득한 볶음밥을 보고 픽 웃더니 노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노부가 지난 6년 내내 그리워했던 아침이었다. 





그 후로 며칠동안 류세이도 바쁘고 케이와 노부도 바빴다. 케이와 노부는 유치원에 가서 교사들과 유치원버스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선물을 전달했고, 경찰서에 가서 정식으로 고소도 했다. 유치원에서는 위험한 일이 있었기도 해서 경찰서에 견학을 요청했고, 경찰서에서 흔쾌히 응한 덕분에 류세이는 유치원 아이들과 다함께 경찰서에 가서 교통안전 교육도 받고, 낯선 어른이 다가오거나 위협할 때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았다. 대처 방법이래봐야 소리를 지르거나 주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한다 정도였지만 경계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류세이는 다행히 악몽을 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케이가 워낙 걱정했기 때문에 노부도 일주일 동안 케이의 집에서 셋이 함께 잤었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는 날 케이가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노부도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류세이가 노부의 손을 쥐고 잡아끌었다. 

"엄마, 나 집 구경시켜 줄게요!"
"응. 그래."

류세이의 방은 이틀째 이미 구경했는데 더 보여줄 게 있나 싶어서 따라가자, 류세이는 제 방 대신 케이가 작업실이라고 한 방의 문을 열었다. 들어가도 되나 싶었지만, 가게에 있는 작업실에도 이미 여러 번 가 봤고, 류세이가 집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허락도 받았기 때문에 별 말 없이 따라들어갔다. 커다란 모니터가 있는 컴퓨터와 색색의 천이나 재봉틀 등이 있는 건 매장의 작업실과 같았다. 다른 점은 작업실 벽을 따라서 커다란 벽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작업실 겸 옷방인가. 

"이거는 류세이 옷이에요."

류세이가 낑낑거리며 옷장 가운데의 문을 열자, 조그만 옷들이 잔뜩 걸려 있고, 서랍 위에 있는 바구니에는 작은 양말이나 속옷, 내복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열어본 서랍 안에도 류세이의 옷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고. 마지막으로 류세이가 제일 밑에 있는 서랍을 열자, 정말로 너무 조그만 옷들이 곱게 보관돼 있었다. 

"이건 아기 때 옷."
"류세이가 아기 때 입었던 옷이야?"
"엄마가 그랬는데... 음."

류세이는 조그맣고 매끈한 미간을 찌푸렸다. 

"왜?"
"너무 쪼그매요. 이걸 어떻게 입지?"

자기가 이 옷을 입을 수 있었을 정도로 작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폭 찌푸려진 미간을 콕콕 눌러주며 오똑한 콧날에 입을 맞춰주자, 생글생글 웃으며 노부의 품 안에 안긴 채로 잠시 애교를 부리던 류세이는 자기 옷장을 닫고 오른쪽에 있는 옷장 문을 열었다. 

"이건 엄마 옷이에요."

아주 세련된 스타일도 있고,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단정하고 깔끔해 보이는 디자인도 있었다. 색도 너무 튀거나 칙칙한 느낌이 없이 모두 산뜻하고 세련된 느낌이었고. 

"엄마가 만든 옷이야?"
"응. 엄마는 옷을 잘 만드니까."
"그러네. 옷이 다 예쁘네."

엄마를 칭찬하자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조그만 어깨를 으쓱으쓱한 류세이는 케이의 옷장은 더 보여줄 생각이 없는지 옷장 문을 닫았다. 노부는 더 보고 싶었기 때문에 좀 아쉬웠지만, 류세이가 옷장 왼쪽으로 총총 가길래 따라가 봤다. 그리고 류세이는 옷장 문을 열더니 고개를 한껏 젖혀서 노부를 올려다봤다. 

"응?"

아무말없이 생글생글 웃고만 있어서 옷장 안을 들여다보자, 조금 전 케이의 옷장에서 본 옷과 비슷한 옷들도 보였고, 케이의 옷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옷들도 보였다. 전부 다 케이의 옷보다 미묘하게 살짝 더 큰. 몸에 직접 대 보지 않아도 노부의 몸에 아주 잘 맞을 사이즈라는 걸 알 수 있는, 세련된 옷들을 한참 바라보던 노부가 고개를 숙이자, 류세이가 노부의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어서 노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이건 노부 옷이야' 이랬어요."

가슴에서 뜨거운 뭔가가 차올라서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노부는 케이가 류세이 앞에서 절대로 안 울려고 노력하던 것을 떠올리며 뜨겁게 차오르는 울음을 삼켰다. 조금 더 열심히 찾아볼걸. 케이와 너는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꼼꼼하게, 정말 조금만 더 열심히 찾아볼걸. 





류세이는 일주일이 지난 다음부터는 자기 방에서 자게 됐지만, 노부의 사무실에 놀러올 때나 노부가 케이의 작업실에 놀러갈 때마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졸랐기 때문에 외식을 하든, 케이의 집에서 밥을 먹든 노부도 종종 케이의 집에서 늦게까지 머물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케이가 먼저 청하지 않는데 케이의 침대에 멋대로 올라갈 수는 없어서 케이의 집에서 잠드는 일은 없었지만. 

그러다 어느 날, 류세이가 노부와 목욕하고 싶다고 해서 류세이를 씻겨주고 노부도 함께 목욕을 한 날이었다. 두 사람이 목욕을 하는 동안 케이가 류세이에게 입힐 잠옷이 담긴 바구니를 욕실 앞에 두고 갔고, 그 바구니 안에는 노부의 몸에 맞는 잠옷과 새 속옷도 들어 있었다. 속옷이야 샀겠지만, 잠옷은 아마도 케이가 노부를 떠나와 있을 때 노부를 생각하며 만들었을 잠옷이겠지. 설레면서도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으로 잠옷을 입은 노부는 낮에 사무실에 와서 타카노와 열심히 놀았던 탓인지 눈을 비비고 있는 류세이를 방에 데려가서 재워줬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케이가 과일과 치즈, 차가운 맥주를 차려놓고 있었다.

"목욕도 했는데 한잔하고 여기서 자고 가, 오늘은."
"네."

이혼하기 전에도 살림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어도 두 사람은 밤에 가끔씩 맥주를 한잔씩 함께 하곤 했었다. 돈을 모으느라고 자주 마시진 않았지만 피클이나 간단한 스낵을 놓고 맥주 한 캔씩만 마셔도 그저 모든 게 기쁘고 아름답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케이와 맥주잔을 부딪쳤다. 두 사람 다 이젠 가난했던 그 시절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넉넉해졌기 때문에 케이가 내놓은 안주는 그때와는 달라졌지만, 케이는 그때처럼 아름다웠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즐기는 맥주는 그때처럼 맛있었다. 그렇게 맥주 서너 병을 비웠을 때였다. 케이가 틀어놓은 음악이 지나치게 감미로웠기 때문인지, 요즘 저녁마다 류세이와 시간을 보내느라고 술을 입에 대지 않아서 너무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인지, 아니면 케이가 그때처럼 옆에 앉아 함께 술잔을 나누는 게 너무나 꿈같기 때문이었는지. 마음이 붕붕 떠 있던 노부는 볼이 발그레해진 케이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다시 만난 이후 이마나 뺨에는 종종 입을 맞췄지만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는 건 정말로 6년만이라. 

너무 달콤한 키스에 한참 빠져 있던 중이었다. 

"히힛."

아이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고, 방문을 닫는 소리가 그보다 더 조심스럽고 작게 들렸다. 

들켰네...





#노부마치  #이혼한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