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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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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로 슌스케와 미치에다 슌스케의 운명이 바뀌었다.

"어떻게...그럴수가...말도 안돼요. 그게 가능한거에요..?"

"황후마마도, 당신도 결국은 '미치에다 슌스케'라는 하나의 영혼이니까요."
"네? 하지만 쿄헤이...알잖아요. 전 아예 다른 세계에 살고있었다구요."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구로 슌스케 황후마마와 당신은 서로 다른 세계의 존재인데, 어째서 서로의 모래시계에 영향을 끼치는건지.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온 곳이 평행세계라면, 이곳과는 시간의 결계가 아예 다르니, 모래시계에는 영향이 없어야 맞거든요."

쿄헤이의 눈동자가 미치에다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이 있던 세계에서 명이 다하기 직전, 이곳으로 넘어올수 있었던 이유. 아직 운명이 더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메구로 슌스케 황후 대신 이곳에서 황후마마의 삶을 이어나갈수 있는 이유를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그걸 알고있으면 제가 지금 여기 있겠어요?? 미치에다는 왈칵 차오르는 짜증을 애써 눌러참으며 쿄헤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메구로 슌스케 황후마마가 당신의 전생이기 때문입니다."

전생....전생이라...평행세계가 아니였어...내가 메구로 슌스케 황후고 메구로 슌스케가 나였다니....그럼...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어떻게 된거지?죽은건가?아니야. 아직 모래시계는 남아있다고 ㅎ....

"황후마마! 위험합니다!"

아...미치에다는 제 허리를 감싸안고 강하게 끌어당겨오는 힘과 다급한 목소리에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나올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보이는것은 나무 기둥이였다. 그대로 부딪혔으면 최소 코피는 면할수없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고마워요, 스미다 공자."
"천만에요. 다치신곳은 없으십니까?"
"덕분에요."
"조심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미치에다는 목례와 함께 제 옆을 지나가는 스미다공자를 불렀다. 공자!

"오늘 저녁이라고 하셨죠? 공자께서 제국을 떠나는 날이."
"...기억해주고 계셨네요."
"그...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스미다 공자는 조금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황후마마도 몸조심하세요. 황후마마께서 다치시면...슬퍼할 사람이 많습니다."

스미다 공자 참 착하고 다정한 사람같아. 유학 가기전에 친해지고 싶었는데 아쉽다. 내 전생...그러니까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이 넓고 차가운 황궁에서 친구 하나 없이 너무 외로웠을테니까...스미다 공자였으면 좋은 친구가 됐을것같은데. 멀어져가는 스미다공자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하던 미치에다는

"스미다 공자님 정말 너무너무 멋지지 않니?"
"역시 형제라서 그런가 얼굴은 폐하랑 닮았는데 분위기는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일수가 있지?"

하며 꺄르륵거리는 시녀들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형제라니...그게 무슨 소리야. 메구로 황제...여동생밖에 없는거 아니였어?? 그리고 황녀전하 이름은 메구로 유리인데, 스미다 공자는 성이 아예 다른데?! 미치에다를 혼란의 늪에서 꺼내준것은 나츠코였다.

"아아...스미다 공자님이요? 스미다 이루카 대공비전하께서는 선황폐하의 애첩이셨거든요."
"애첩?후궁이 아니라?"
"황후보다는 아니여도 후궁도 간택절차가 많이 까다로워요. 아무리 왕권이 강력했던 선황폐하라고 해도 평민도 아니고 귀족가의 하녀 출신이셨던 스미다 대공비전하를 후궁으로 데려오시기엔 무리셨겠죠. 그러니, 당신의 애첩을 대공가로 보내신거죠.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곁에 두려고요. 뭐...황족 간에서 왕왕 있는 일이긴 해요."

헤엑...선황폐하 그렇게 안보였는데 엄청난 사랑꾼이셨구나. 그치만...그 스미다 대공비...지금은 하세가와 백작이랑....귀족세계란 대체 뭘까....동물의 왕국..?미치에다는 심란해졌다.

하긴 서왕국의 미치에다 황제도 후궁이 몇이였냐.그렇게 보면 메구로 렌 황제는 생긴건 세상옴므파탈처럼 생겨놓고 엄청 순정파네.메구로 슌스케 황후 이전에는 첫사랑 하세가와 리코 떠났다고 오랫동안 괴로워한것만 봐도...아이씨 또다 또! 또 자연스럽게 황제놈 생각해버렸네.


'너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려고 찾아왔어.'

'너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될거야. ...내가 그랬던것처럼.'

꿈 속에서 메구로 황후는 그렇게 말했다. 메구로 렌을 사랑하게 될꺼라고. 내가 정말로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미래의 환생이라면,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일찍 죽게 될 운명이였던 이유도, 어쩌면 메구로 렌이였던거 아니야???헐 그럴수도 있겠네?? 허어어?내가 그렇게 되게 둘거같아??!웃기지마!!!내가 저 인간을 사랑하나봐라! 전생의 미치에다 슌스케면 몰라 난 저어어얼대 안넘어갈꺼니까!!!

"...폐하. 혹시 황후마마께 잘못한거 있으십니까?"
"글쎄...모르겠는데..."

설마 타카하시랑 못 놀게 했다고 삐진건 아니겠지. 서운한건 나인데.

메구로를 태워버릴듯이 노려보던 미치에다는 보좌관을 내보내고 제게 다가오는 메구로에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미치에다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메구로가 말없이 빤히 쳐다보자 되려 당황스러워지는건 미치에다였다.뭐...뭐야 지금 나랑 눈싸움이라도 하겠다는거야?! 나 이런거 잘한다ㄱ...

쪽-

?!?!

허리를 숙여 입맞추고 떨어지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지금...지금...저한테 무,무,무슨짓을...뭐하시는거에요?!!!

"....뽀뽀해달라고 쳐다본거 아니였어?"
"그럴리가 있어요?!!!노려본거거든요?!!!"
"그래? 아님말고."

미친....진짜 강적이다.

"저 갈거에요!!!"
"어딜?"
"묻지마세요!!!"

빠르게 도망치는 미치에다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닫힌 황제궁의 문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메구로에

"...안 쫓아가셔도 되겠습니까 폐하?"

의문을 표하는 황제궁의 서기관에 메구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쫓아가면 더 도망갈테니까.

"황후마마! 황후마마!!! 한참 찾았습니다!"

다급하게 황제궁을 벗어나 도망가는 저보다 더 다급한 목소리로 쫓아 달려온것은 황실 수석 기록관이였다.

"무슨 일 있나요?"
"황후마마셨습니까?!!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을 통틀어서도 학계에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천재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역대 제국 내 강수량과 홍수 발생 주기 자료말입니다! 그거 정말로 황후마마께서 만드신겁니까?!!"

아 그거...미치에다는 20페이지가 훨씬 넘는 가독성따위 개나 줘버린 자료들을 보여 기절할뻔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대체 어떻게 하신겁니까?! 저는 80년을 기록관으로 살면서 그렇게 간단하고 깔끔하게 모든 내용을 설명할수있는 자료는 처음 봤습니다!!!"

그야...학생이라는 죄로 대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조별발표라는 벌을 받는 21세기 대학생들에게 그래프와 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요....

"황후마마 덕분에 다른 자료들도 정리하기가 수월해졌습니다!그동안은 이걸 어떻게 정리하나 막막했는데..."
"정리해야할 자료들이 많나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황실 무도회 예산안부터 시작해서 최근 남부 제도 댐의 보수공사 계획안까지...사관들이 남아나질않습니다."

호오...?미치에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말이죠...

"정리해야할 자료들을 전부 황후궁으로 가져와주시겠어요?"

미치에다의 말에 기록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부...요?"
"네, 전.부.다."

그래! 일에만 집중하면 황제랑 더 마주칠 일도 없겠지! 밤새 일한다고 하면 황제궁에 갈일도 없고! 시험기간이라고 생각하는거야!

"...황후가 황후궁에 들어가서 나오질않는다?"
"네..! 갑자기 황후궁어서 황궁 내정을 직접 살피신다하시고는 지금까지 나오시지않습니다! 식사도 안하시고...저러다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나츠코의 보고를 들은 메구로는 흐음...낮은 소리를 내었다가 이내 살짝 웃었다. 그렇단 말이지.

".....폐하가 왜 여기 계세요?"
"황제가 황후궁에 오면 안되는 법안은 통과시킨 기억이 없는데."

지아비된 도리로서 황후와 함께 정사를 돌보지않으면 안되는 일 아닌가. 안경을 고쳐쓰며 싱긋 웃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가 스스로 뺨을 내려쳤다. 이 답도 없는 얼빠같으니, 정신줄 꽉 잡아라 내자신.

"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전 일에만 집중할테니까!!!"

...우왓.....뭐야..! 나 언제 잠들었....어라..?

미치에다는 제 옆자리에서 엎드려 잠들어있는 수려한 얼굴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이 인간은 언제부터 여기서 이렇게 잠들어있던거야...불편하지도 않나? 나야 시험기간과 과제에 찌들면 책상이 침대였던 21세기 대학생이였으니 그렇다쳐도...

"...슌."

뭐...뭐야. 언제 깬ㄱ...

"눈뜨자마자 네가 있으니까...꿈같다."

싱긋 웃는 얼굴에 미치에다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안돼,안돼 이런 기분은!절대 안된다고!

"....진짜 위험해애애..."

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했다.

"뭐가 그렇게 위험한데?"
"황녀전하아아...."

미치에다는 메구로 황녀가 내준 차를 한모금 마시고서야 진정을 되찾았다.

"있지, 나 조카는 언제쯤 볼수있어?"

풉- 메구로 렌을 피해 도망쳤더니 더한 폭탄을 내던지는 메구로 유리에 미치에다는 그대로 홍차를 뿜었다.

"아 드러워 진짜! 서왕국에선 티타임 예절도 안가르쳐줬냐?!"
"콜록..가,갑자ㄱ...켁...그런말을 하시니까 그렇죠!"
"그게 뭐가? 오라버니랑 혼인한지도 꽤 됐잖아. 요즘 사이도 좋아보이던데."

말도 안되는 소리! 저는 하루빨리 진실을 되찾아야해요!그리고! 그리고!


"슌스케..?"

또 그를 사랑하면, 다음 생의 나 역시 위험해질거에요. 그러기전에, 내가 먼저 이 마음을 그만둬야해요.

...그러기 위해선...반드시 이혼해야해요. 진짜로 좋아지기 전에.


쨍그랑-

황녀궁을 나와 정처없이 황궁 복도를 배회하던 미치에다는 날카로운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으앗, 죄,죄송합니다..!손이 미끄러워서...!"
"에리카!!! 그 와인은 연회에 쓸 귀한 와인이니까 조심하라고 했잖니!! 구하기 힘든거라고!!"

미치에다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의 어린 시녀의 옆으로 다가서자 호통을 치던 이가 금방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췄다.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내게 인사를 올리기전에, 그리고 이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기전에 다친곳이 없는지 묻는게 먼저 아닐까싶은데."
"소...송구합니다."
"이 와인이 얼마나 귀한건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앞으로는 와인보다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렴."
"네, 명심하겠습니다, 황후마마."

서...성은이 망극합니다 황후마마..! 울먹거리던 어린 시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제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반드시, 연회 전, 하세가와 양조장의 와인을 다시 구해오도록 하겠습니다..!"
"뭐..?"
"물론 하세가와 백작가의 양조장에서는 1년에 한정 수량의 와인밖에 제조하지않으니 구하기 어려운것은 알지만 그,그래도 제가 꼭 힘내서 다시 구해올테니까..!"

산산조각 난 와인잔의 잔해들과 발밑을 진득하게 적셔가는 붉은 액체. 코끝을 홀리는, 이상하게 익숙하도록 달콤한 포도향. 그리고...


'어떻게 된거야!!! 제대로 전달된거 맞아?!!!!'

'분명 연회 테이블에 제대로 들어간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와인이 확실해?!!'

'카루이'를 통해 받았으니 틀림없습니다!!'

.....달콤한 향기에 무심코 흘러들어온 기억. 카루이.

카루이...카루이...! 미치에다는 달렸다.

"황후마마..!황후마마..?!!"

카루이.

KARUI

스펠링의 순서를 뒤집으면 IRUKA.

하세가와 양조장의 주인은 하세가와 백작.

그의 연인은...

스미다 이루카 대공비.

[12, 3, KARUI]

12, 3

이 역시 순서를 뒤집으면 3, 21

메구로 슌스케 황후가 목숨을 끊은 날.

아니

목숨을 잃은 날.


...3월 21일.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