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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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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순식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젊은 시절. 간신히 요일이나 꿰고 있으면 다행일 정도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날들. 계절감이나 조금 느꼈을까?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를 정도로 바빠서. 후에 돌아다본 그 때의 기억은 온통 휘발되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경황없이 보냈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능숙하게 일정조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와 나이에 닿으니 제 인생에 결여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편은 아니라. 제 앞에 떨어진 부족한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처리했다. 이제 숨을 좀 돌리나 싶어 고갤 드니 제일 큰 덩어리가 앞을 떡하니 막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차가운 빈 공간에 인사를 했다. 나와 마주해줄 사람도, 다녀왔냐 인사해줄 사람도 없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수년째 하는 버릇. 그냥 의미없는 루틴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턱하니 숨이 막혔다. 이 넓은 공간에 홀로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발밑이 꺼지는 듯 아득했다. 피곤해서 그럴거야.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욕조에 앉아서도 몇 번이나 지근거리는 심장을 꾹 눌렀다. 내일이면 괜찮겠지, 모레면. 글피면 어떨까 싶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발을 들일 때마다 사무쳤다.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던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녀왔습니다. 공허한 공간에 한숨과 같이 울리는 제 목소리가 미친듯이 외로웠다. 고독같은 건 자기에겐 없는 정서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잠을 설치기 시작했고, 피로함은 얼굴에 조금씩 묻어났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고려할만큼 정신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손에 쥘수 있을 정도의 테이크아웃 커피. 그 정도면 생기를 불어넣던 음료의 양이었는데 요즘들어 카페인이 늘었다. 제법 커다란 컵을 들고 연습실에 들어서 먼저 온 이에게 안녕-인사를 했다. 

-피곤해보여요.
-어, 나오키. 일찍 왔네?

가방 때문에 커피를 든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을 걸자 조심-얼른 테이크아웃 잔을 받아들었다. 제 손에선 커다랗던 커피가 나오키의 손에서 작아지는 광경을 잠시 멍하니 구경했다. 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나오키와 저의 차이는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래서 가끔 신기할 정도였다. 

-일이 많아요? 요즘 유난히 지쳐보이네.
-그래보여?

조심해야겠네, 나오토는 가방을 대강 바닥에 내려두고 나오키가 잠시 맡아둔 커피를 도로 가져와 크게 한모금 삼켰다. 원체 지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두덩이가 한우물이나 쑥 꺼진게 걱정스러웠던 모양인지 나오키의 눈이 계속해서 나오토를 향했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겠지-하고 두고보기엔 여러날동안 이어지는. 초주검이 된 나오토에 연습이 끝날 무렵 살그머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으면 얘기 좀 해요.

시선을 올려 부딪치는 것조차 힘겨워 보며 자리에 앉으라 권했다.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어서야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로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느릿하게 눈을 끔벅이며 손등으로 연신 부비는 몸짓에 피곤이 묻어났다. 

-이상하지? 혼자서 산게 일이년도 아닌데. 요즘 들어 유난히 그런 기분이야. 실수로라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그럴 수록 더한 것 같아. 그래서 이젠 인정하려고. 무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모두 잠든 밤에 나 혼자 깨어있는 기분, 그거 알지?

나오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그 모든 감정의 이유가 외로움인것 같아. 아니, 같은게 아니라 나 외로워. 외롭나 봐.

나오키의 눈썹산이 잠시 올라갔다 제자릴 찾았다. 말을 보태야하는데 외롭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맞는건지 잠시 망설이는 순간 나오토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전히 혼자라고 느껴져서...동물을 키울까, 생각도 해봤어. 우리 사무소에도 여럿있잖아. 넷상도 그렇고...고양이 키워보고 싶으니까. 유기동물 보호센터 들어가서 한참 들여다보고. 이녀석 사연도 구구절절하고, 저녀석 사연도 구구절절.
-응, 그랬어요.
-응. 그랬는데. 나도 늘 혼자라고 느끼는데 얠 데려오면 내가 없는동안 그녀석도 혼자일거 아냐. 너무 무책임한것 같기도 하고...미안하기도 해서 마음접었지 뭐.
-지금은 좀 괜찮고?

뭐가 그렇게 잔뜩 들은 건지.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멘 나오토가 질문에 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망설인 것 치곤 솔직하게 대답이 돌아온다. 

-...뭐, 나아지겠지. 상담 고마워. 조심해서 들어가.
-나오토상도요.

걱정을 끼쳐 미안했던걸까.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 사람은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여전히 형편없어 보였다. 다크써클이 내려온 눈가를 팔뚝으로 숨긴 나오토가 걱정되어 다가선 나오키였다. 소리를 죽인다고 했는데도 눈치가 잰 사람이라. 

-...미안. 혼자 있고 싶어.
-나오토상.
-비가 와서 그런가. 빗소리가 시끄러워서. 그래서 그래. 그래서 잠을 못잔거니까, 괜찮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한발짝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선을 그어버리니 나오키도 별 수 없었다. 그저 연습이 빨리 끝날 수 있게 도울뿐. 그리고 나오키가 신경쓴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습이 끝나자마자 나오토는 부리나케 줄행랑을 쳐버렸다. 얼른 뒤를 따르는 나오토의 매니저를 붙든 나오키가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이지만 사람이 저렇게 아슬아슬해 보이는 건 처음이라 나오토가 떠난 자리를 오래도록 쳐다보는 나오키였다. 

-비 많이 온다. 운전 조심해.

어패럴쪽 일도 겹쳐진 상태라 사무실에 들러오느라 밤이 훌쩍 깊어졌다. 엊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그칠 생각도 없이 여전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다. 나오토는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 뒤꽁무니에 라이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섰다가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어?

나오토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은 밤. 게다가 날이나 좋아? 비까지 쏟아지는 동네에 사람이라곤 저 하나였다. 나오토는 비를 피하려 처마 아래로 발을 들이며 쪼그려 앉았다. 

-너 어디서 왔어? 비가 이렇게 오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잘 관리되어 보이는 게 잠시 길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 근처에 이렇게 커다란 고양이 키우는 이웃이 있었던가. 윤기가 반들거리는, 긴 털을 가진 고양이. 나오토는 단박에 정신을 빼앗겼다. 집이 어디야? 주인이 찾으면 어쩌려고. 여러번 말을 걸어봐야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고양이는 낯가리는 거 아니었어? 하긴 마메짱도 날 좋아했거든. 걱정이네, 비도 이렇게 오는데.

거짓말을 조금 보태 쪼그려 앉은 자기키만한 고양이 옆에서 중얼거리던 나오토가 읏차, 몸을 일으켜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흘끔 뒤를 돌아다보자 그림같이 앉은 고양이는 미동도 없었다. 걱정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릴 지키는게 주인을 찾는데 빠를 테니까. 안녕-손을 흔든 나오토가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여전 신경은 빗 속에 홀로 앉은 고양이에게 온통 쏠려있었지만 거기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다는 핑계로. 비가 한참 내리는 바깥에 쪼그리고 앉았던터라 온몸이 차가웠다. 뜨거운 물에 한동안 앉아있다가 수건으로 머릴 털며 나와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블라인드를 슬쩍 열어 본 바깥. 건너편 건물 아래 그 까맣고, 은색의 털이 섞여 회색빛이 감도는 고양이는 그대로였다. 

-역시 안되겠어서 다시 왔어, 냐옹아. 

우산을 받쳐든 나오토가 고양이 앞에 서서 말을 걸었다. 신비로워보이는 호박색의 눈동자. 우산을 어깨에 받친 나오토가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쳤다. 

-우리집에 잠시 가는 거 어때? 

하긴, 고양이가 네! 대답할 리 없잖아. 어쩐지 헛웃음이 나와서 나오토는 다시 한번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할퀴면 안돼. 비가 오니까 오늘만이야. 주인 찾아줄테니까 오늘밤은 우리집에 가자. 와-너 무겁구나.

생각보다 보드랍지 않아 억센 털. 커다랗지만 제 품안에 꼭 들어오는 고양이에 뺨을 부비며 나오토가 우산을 고쳐들었다. 덩치만큼이나 무끈한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썼다. 꼭 자기집인것 마냥 사뿐히 내려앉은 커다란 고양이의 커다란 앞발이 신기했다. 저렇게 큰데 사뿐사뿐 예뻐라. 나오토는 냐옹아, 이리와-부르고는 마른 수건을 하나 꺼내왔다. 오래도록 빗속에 앉아있던 젖은 털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정작 자기의 젖은 머리카락을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뽀송뽀송해졌네. 어, 너 목걸이 하고 있구나. 어디봐. 

은색 체인이 걸린 목걸이를 이리저리 둘러봐도 주소나 이름같은건 없어서. 꽤나 고가인것처럼 보이는 목걸이가 눈에 익은 것 같기도 했다. 

-모르겠다. 내일 다시 나가보면 되겠지. 너 졸려?

커다란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는 고양이를 보니 나오토 역시 졸음이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인것 같고, 빗물도 닦아서 깨끗해. 그러니까.

-기분이다. 특별히 침대에서 재워줄게. 가자.

고양이를 앞세워 침실의 문을 열자 그 커다란 몸으로 폴짝 침대위로 점프한다. 역시나 조용하고 우아한 몸짓에 나오토의 눈에 애정이 그득 담겼다. 슬리퍼를 대강 차 벗어두고 침대에 기어올라간 나오토가 베개에 머리를 댔다. 그리고는 바로 자기 옆 침대의 빈곳을 탁탁 두들기자 커다란 발을 가진 고양이가 다가왔다. 어디서 왔어, 예쁜아. 말도 잘 알아듣지.

-특별히 침대에서 재워준다는건 거짓말이야. 며칠째 나 혼자 잠드는게 무서웠거든. 그러니까 네가 날 좀 도와줘, 냐옹아.

옆에 누운 커다란 동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자, 마메타로를 만질때와 똑같이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금방이었다. 다른게 하나 있다면 그 조그맣던 고양이의 골골거리는 소리는 몹시 작았다는 거. 이 커다랗고 우아한 짐승은 크기만큼이나 커다랗게 그르릉거리는 소릴 낸다는 점이었다. 조용하던 침실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옆에 있다는 안정감에 마음이 편해졌다.

-안아도 돼?

허락인걸까. 나오토는 그 커다란 고양이를 품에 살그머니 끌어안았다. 다행히 제 품안에 꼭 맞는 고양이는 조금더 편안하게 자리를 잡으며 품에 안겨있길 마다하지 않았다. 귓가에 울리는 일정한 소음과 따뜻한 온기. 나오토는 눈꺼풀이 내려앉는걸 느꼈고, 조심스레 몸의 긴장을 놓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아침은 오랜만. 늘 쫓기든 잠이 드니까 알람이 울릴 때면 울상이었다. 낮게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펴고 옆자리를 더듬었다. 동그랗게 온기가 남아있던 자리가 비어서 몸을 일으키자 닫힌 문 앞에 커다란 고양이가 그림같이 앉아있었다. 

-배고파? 냐옹이가 먹을만한게 있나. 마메짱 간식이 남아있던가.

현관을 득득 긁는 커다란 고양이에 왜? 답답해? 별다른 생각이 없이 문을 열었고 나오토가 잡을 틈도 없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부리나케 사라진 고양이를 맨발로 따라갔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다. 한참이나 동네를 둘러보고 냐옹아-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헛수고. 곧 일정이 있는 시간이라 애가 탔다. 산책하는 고양이들 있다던데, 그런걸까? 태산같은 걱정은 접어두고 옷을 챙겨입었다. 저녁에 돌아와 다시한번 동네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주인도 애가 탈테고 하룻밤 재워준 저도 애가 탔다. 게다가 고양이 덕에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느낌이라 고마움을 표하고 싶기도 했다. 피곤이 가셔서 그런진 몰라도, 불안하던 마음의 찌꺼기도 해소된 것 같았다. 더더욱 고양이를 찾아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늘은 좀 좋아보이네요.

웃는 낯의 나오키를 보고 멈칫, 잠시 걸음이 멈추었다. 왜요? 나 오늘 이상한가. 차림을 더듬는 나오키를 가만히 쳐다보던 나오토는 으응, 아니야. 좋아 멋져.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만히 나오키의 어딘가를 응시했다. 

-왜그래요?
-지금은 말고. 이따가. 일정 끝나고 잠시만 면담 좀 해.
-불안하게 왜 그럴까. 
-그런거 아니라니까. 

나오토는 여전 한군데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였다. 연속에 연속으로 이어지는 미그리도 끝이 났고, 멤버들과 눈을 맞추어가며 인사를 해주고 남은 건 나오키와 나오토였다. 미그리 장소의 한 구석.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오도카니 서있는 나오토가 나오키의 소리에 뒤를 돌았다. 

-어딘지 눈에 익은 거 같긴 했어. 내가 미친게 아니라면 말이야.
-나오토상.
-한동안 너무 외로워서, 잠을 못자서 돌아버린 게 아니라고 해줄래?

나오토는 가만히 서있는 나오키에게 다가가 까치발을 섰다. 그리고는 나오키의 목에 걸린 은색 체인을 잡아당겼다. 미친게 아니라, 분명 같은 거잖아. 어쩐지 눈에 익다 싶었어. 나오토가 눈을 끔벅이며 나오키를 올려다봤다. 가뜩이나 장신구를 잘 하지 않던 나오키라 기억이 선명했다. 고양이가 하고 있던 것과 같잖아. 

-수인이야?
-응, 맞아요.
-어제 그 커다란 냐옹이가 너였다고? 고양이 수인?

여전 목걸이를 붙들고 있는 나오토의 손가락을 거기서 빼내 제대로 서게한 나오키가 웃으며 물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고양이 아니었어요?
-어?

그러고보니 눈에 익은 건 목걸이뿐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엔 정신이 나가서 몰랐지. 내내 들여다보던 유기센터에서 보던 고양이였다. 너무 커다래서 파양당했다고 적혀있는 걸 보고 너무하네-중얼거렸으니까. 그래, 분명 커다란 녀석. 그 아이였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얼떨떨해보이는 얼굴로 다시 올려다보는 나오토의 의문을 풀어줄 차례였다. 

-유니콘이라고 알아요?
-....날개달린?

음, 낮게 신음한 나오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페가수스.
-유니콘?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나오토는 알로록다로록하고 조그마한. 유니마루나, 손을 끼워넣고 크럼핑을 했던 파페유니를 떠올렸다. 

-그 알록달록, 꼬리가 화려하고 그거?
-뭐, 그게 대부분 사람들의 환상이니까요. 말그대로 뿔이 하나 있ㄴ..

나오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자리서 폴짝 뛴 나오토의 조그마한 손이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없는데...? 중얼거리는 바람에 갑자기 봉변을 당한 나오키도 놀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당연히 없죠, 사람인데요.
-내가 미친게 맞는 거 같아. 점점 미스터리해지잖아.
-환상종이라 그래요. 보통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 발현되는 편이라. 
-...어?
-나오토상한테 제일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게 그 고양이였나봐요. 물어보지도 않고 선을 넘은 건 미안해요. 우리 한참이나 알고 지낸 사이지만 나오토상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나오토는 얼떨떨한 얼굴로 나오키를 올려다보았다. 다정다감한 얼굴. 진지한 눈동자. 농담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수인이 있다는 이야기야 왕왕 들어오긴 했지만, 유니콘? 환상종? 자기가 들은 이야기가 진짜인가 싶어서.

-그래서 나오토상이 상상하는 유니콘은 어떤 형상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상상하면...그래서 나오키가 유니콘이 되면 뭐가 바뀌어?
-당장 나오토상 코앞에 닥친 힘든 일에 도움이 되죠.
-그럼 너는?
-네?

주변 가까운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서슴없이 나서곤 했지만, 늘 그런건 아니었다. 소문이라도 무성해지면 곤란해지는 것도 이쪽이라. 보통 그 사람의 머릿속에 상상하는 환상종으로 발현되고 그러고나면 그들의 어려움이 해소되곤 했다. 

-넌 괜찮은거냐고.
-뭐 조금 피로해지는 것 뿐이에요. 말했잖아요. 남을 돕는게 환수의 속성이라고. 그러니까 괜찮아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그리고 꿈을 꾸듯 유니콘을 만난 일은 점차 잊혀진다는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없어던 일이 되는 거니까. 한참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에 나오키가 음? 물음표를 띄운 얼굴로 나오토와 시선을 부딪쳤다. 상상력 풍부한 사람이라 더 어려운걸까? 

-안아도 돼?

나오키의 눈이 커졌다. 분명 고양이에게 말을 걸때와 똑같이 묻고 있는 나오토라 당황하고 말았다. 다시 한번 자기를 훑은 나오키는 아직도 상상의 무언가가 아닌 제 모습 그대로인걸 확인했다. 환수임을 밝히고 도움을 주겠다는 이야기에 한번도 인간태를 유지했던 적은 없었던지라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어...네.

대답을 기다렸던 나오토가 나오키의 허리를 답싹 끌어안았다. 품 안에 꼭 맞았던 고양이와는 다르게 이제 자기가 나오키의 품안에 꼭 안기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어떠랴. 좋은 냄새가 나는 너른 품안에서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동화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걱정해주는 동료가 제 곁에 있다. 피로감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데 굳이 상상 속 유니콘이 되어 피곤해질 필요가 뭐 있어. 그 마음이면 이미 충분한걸.

-도와주려고 한건 고마운데, 난 나오키면 돼.

나오키는 뻣뻣하게 굳어진 몸짓으로 품에 안긴 작은 사람을 간신히 마주안았다. 저도 그렇지만, 사람이라는게 자기 손가락 밑 가시가 더 아픈 법이라 본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있어 저어하질 않으니까. 환수라는 걸 밝히고 나면 여지없었다. 그 사람이 상상하는 유니콘의 형태로 발현하고, 그리고는 자기가 환수라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곤 했다. 그랬는데.

-그치만 나오토상.
-좀 초조하고 불안했던 모양이야. 어제 냐옹이, 아니 실은 나오키 너였구나. 아무튼 꼭 끌어안고 자고 났더니 한결 편안해졌거든. 그래서 캔이라도 꼭 따주고 싶었는데. 그거 알고 도망간거 아냐, 너?

작게 웃은 품안의 나오토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온다. 이 사람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가. 나오키는 품에 안긴 나오토의 얼굴이 새삼스러워 찬찬히 눈에 담았다. 가족을 제외하곤 자기가 수인인걸, 그것도 유니콘인걸 아는 단 하나의 사람이 될 터였다. 그건 굉장히 말랑말랑한 기분이 들게 했다. 

-정말 괜찮아요, 도와주지 않아도?
-어제 도와줬잖아.
-그건 나오토상의 의지가 아니라, 내...
-그거면 충분해. 정말이야, 고마워. 나오키. 

어색할법도한데. 여전 우리 두 사람은 안고, 안긴 채였다. 

-캔도 못따줬으니까 다른걸 대접해야지. 조금만 가면 유명한 빙수집이 있어.
-빙수 정도로 되겠어요?
-못됐어, 정말. 아침에 캔이나 따줄걸.

나오토가 품안에서 크게 웃더니 가슴팍을 살짝 밀어내며 그제야 멋쩍은 얼굴을 했다. 

-가자. 기분이야, 근사한 저녁에 빙수까지 살테니까. 

뭐해, 얼른 와. 조그마한 손으로 까닥까닥 손짓을 한 나오토의 귀끝이 붉었다. 나오키는 오래도록 이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료로써 많이 좋아했던 이를 다른 감정으로 보게 될 거라는 마음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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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나오토
가족제외하고 나오토가 처음이면 그렇게 가족이 되는거지 뭐 ( ͡° ͜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