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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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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본적 있어? 아주 가끔, 돌아갈 시간을 놓치고 깜깜한 밤바다에서 길을 잃은 뱃사람들 앞에 나타나 길을 알려준다는 바다의 수호자.

누가 그러는데 그들은 아주 아름답대. 불로불사를 사는 종족이라서 그들의 비늘은 평생 썩지않고 보석처럼 반짝거린대. 그들의 비늘을 가지고있는 인간은 평생 병에 걸리지않고 건강하게 살수있대.

미지의 존재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리들은 쟈니대륙 전체에 퍼졌고, 탐욕과 허영에 물든 인간들은 소문을 듣고는 끝이 아주 날카로운 쇠붙이들과 총들과 그물을 들고 평화로운 바다를 침범했어.

평화로웠던 바다에는 인어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탐욕에 젖은 웃음소리가 가득했지. 서쪽바다의 어린 수호자였던 슌스케 역시, 그날 밤의 악몽을 피할수 없었지. 가족들은 하나같이 막내인 슌스케를 지키다가 모두 죽음을 맞이했고, 그 모습을 눈앞에서 모두 봐야했던 슌스케는 미쳐버렸어.

그때부터였어. 인간을, 육지를 사랑했던 미치에다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기 시작한건.
그래, 너희들이 그토록 욕망했던 내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줄게, 내 아름다운 목소리도 마음껏 들려줄테니 그대로 나를 따라와. 저 깊고 어두운 죽음 속으로.

원래는 심해를 부유하던 요괴들과 맹수들로부터 인간들을 지키기 위한 인어의 최면술을 사용하는 슌스케에게 홀린 인간들은 그대로 모든 정신을 그 아름다운 얼굴과 달콤한 목소리에 잠식당해 기꺼이 스스로 심해 속으로 목숨을 내던졌어.

사람을 잡아먹는 아름다운 괴물. 인간들은 슌스케를 그렇게 불렀어. 정말 우스운 일이지. 그저 바다를 사랑하는 인어들을 신기하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한건 인간들이였는데. 슌스케는 저를 둘러싼 소문이 커지고 커질수록, 점점 더 많은 인간들을 제 바다 속에 가두었어. 인간들을 아무리 죽음속으로 밀어넣고 밀어넣어도 고독했지.

"인어를 잡았다!!! 우리가 인어를 손에 넣었다고!!크하하-"

줄곧 저를 호시탐탐 노리던 해적단의 그물에는 인어의 마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주술이 걸려있었어.

"반짝거리는 비늘을 통째로 벗겨버려서 팔아버리자!"

"저 보석같은 눈동자를 박제해서 팔면 더 비싸게 팔릴거야!"

"차라리 산채로 노예시장에 팔면 인생역전할수있지않을까?"

해적들이 잔뜩 신나서 떠들어대는 끔찍한 소리들을 들으며 슌스케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어. 결국은 저도 인간들의 손에 죽게되는구나. 저들의 손에 죽으면, 이 고독속에서 저는 해방될까. 이 바다도 해결해주지 못한 갈증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그때였어.

"으악!!"
"뭐야!!!!"

슌스케를 가두었던 그물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찢겨나갔고, 해적들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지. 슌스케 역시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어. 거대한 해적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은 돛단배에 서있는 이는 어린 인간 소년이였어.

"그애를 괴롭히지마!!!!!!"

인간 소년은 다시 활의 시위를 겨누었고, 해적들은 가소로운 웃음을 터뜨렸어.

"어이 꼬맹이. 용기가 가상해서 살려줄테니, 꺼져."
"그 애부터 놔줘!!"
"싫다면?"

빙글빙글 웃으며 제 목 끝에 칼을 겨누며 어린 인간 소년과 저를 동시에 농락하는 해적에 슌스케는 체념어린 한숨을 내쉬었지. 그냥 빨리 죽여주면 좋을텐데. 그런 슌스케를 바라보던 인간 소년은 맹렬한 기세로 해적들에게 덤벼들었어.
거대한 해적선에 검들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들이 울려펴졌어. 해적들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어린 인간 소년의 검술에 적잖이 당황했어.

"내가 꼭 구해줄게. 조금만 더 견뎌줘."

참 이상하지. 해적들의 공격들을 막아내고 있느라 얼굴에서 피가 나고 온몸이 흙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슌스케가 아니라, 어린 인간인데. 700살인 슌스케에 비하면 저 어린 인간은 그 반의 반의 반도 살지않았을텐데 말이지.

어린 인간 소년은 악명높은 해적들을 상대로 꽤 긴 접점을 이어가며 선방했지만, 역시 혼자서 그들을 전부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찾아온듯 했어. 인간 소년의 두배는 되어보이는 덩치의 해적을 상대하던 인간 소년은

"위험해!!!"

슌스케를 끌어안고 갑판을 굴렀어. 슌스케는 저 대신 검을 맞고 낮은 신음을 흘릴때마다 붉은피가 울컥하고 터지는 바람에 괴로워하면서도

"괜..찮아?다친곳은 없어..?"

슌스케부터 걱정하는 인간 소년에 고운 아미를 찡그렸어. 이봐 어린 인간, 내가 고작 너처럼 나약한줄 알아?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거야. 건방지게.

"....인간들따위"

작게 중얼거린 슌스케는 조용히 손을 들어올렸어. 슌스케의 손짓을 따라 거대한 파도와 거센 바람이 일었어. 해적들은 세차게 불어닥치는 바람에 눈도 뜨지 못했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인간들을 집어삼키자마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던 슌스케는 젠장...작게 욕설을 중얼거리고는 바다 깊은곳으로 빠르게 헤엄쳐내려갔어. 의식을 잃고 푸른 심해 속으로 가라앉고있는 소년의 몸을 낚아챈 슌스케는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인간의 입술 사이로 숨을 불어넣었어.

인간들보다 오래 살긴했지만 인어로서는 아직 성체가 되기에는 한참 남은 슌스케인지라 신장도, 덩치도 저보다 훨씬 큰 소년을 혼자 끌고나오는것은 꽤 힘든 일이였어. 그러나 소년의 숨결이 점점 미약해지는것이 느껴지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바다 밖으로 소년을 끌고나오는데 성공했지.

백사장 위로 소년을 조심스럽게 뉘인 슌스케는 소년의 입술쪽으로 손을 가져갔어. 약하긴 하지만 규칙적으로 내어지는 숨결이 슌스케의 손가락을 간지럽혔지. 조금 있으면 눈을 뜰수있겠어. ...다행이다. 슌스케가 살짝 미소 지었어.

곧이어 쿨럭...콜록....거친 기침과 함께 바닷물을 토해낸 인간 소년은 힘겹게 눈을 떴어. ...이제 됐겠지. 슌스케는 그런 인간 소년을 흘끗 쳐다보고는 바다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

"잠깐만...!"

슌스케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

"내 이름은 렌이야. 메구로 렌."

렌...소년의 이름을 들은 슌스케는 살짝 웃었어. 연꽃이라...용감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너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너는...이름이 뭐야?"

슌스케는 대답없이 싱긋 웃었어. 이름이라, 그게 나에게 무슨 소용일까, 내 이름은 잃어버린지 오래인데. 나는 그저 '괴물'일뿐인데. 하지만...나는 네 이름은 절대 잊지 않을게, 렌.

"안녕."

그리고는 "자...잠깐만!" 렌이 잡기도 전에 바다에 몸을 던졌지. 오늘따라 바다속이 유독 더 차갑고 어둡게 느껴졌어. 참으로 쓸데없는 감상이지.

그리고 서쪽 바다를 떠난 렌은 더이상 서쪽 바다를 찾아오지않았어. 뭘 기대한거야. 알고있었잖아. 인간들에게 나는 끔찍한 괴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렌도 마찬가지야. ...그도 결국은 인간이니까. 자조적인 웃음을 지은 슌스케는 다시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지.

그렇게, 6년이 흘렀어.

"너는...."

렌...?슌스케는 제 품에 안긴 희생양의 목에 선명한 자상에 눈동자를 크게 떴어. 더이상 그립지않은 줄 알았어. 눈에 들어온 익숙한 상처 하나에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들이 비바람 앞의 파도처럼 머리속에 거세게 쏟아졌어. 잔혹과 폐허,체념만이 차있던 눈동자가 당혹스러움으로 흔들렸어. 렌.........어째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거야...?

난 너를 두번이나 죽음속으로 몰아넣을뻔했구나.

"잊어, 렌. 전부."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같은 존재도,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도 전부 잊어.

"이름!"
"...."
"이름이 뭐야?"

넌 참...변한게 없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않은 친구를 만난 기념으로 이름을 알려줄게.

"미치에다."

렌, 너...왜 또 자꾸만 이 바다를 찾아오는거야? 왜 자꾸 나를 보고 웃는거야? 나는 인간들이 끔찍한데. 인간따위 전부 바다에 던져 죽여버리고싶은데 네가 자꾸 그러면...내가 너를 기다리게 되잖아.

"넌 괴물이 아니야."

...내가 인간따위를 사랑하게 되어버리게 된단말이야.

여러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바다속을 유영하는 핑크빛 꼬리가 물결을 갈라냈다. 가라앉은 돛단배까지 헤엄쳐온 슌스케가 돛단배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죽은듯 잠들어있는 렌의 얼굴을 가만가만 쓸어내렸다.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고싶어."

너는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이곳까지 데려왔지만 렌. 나는 알고 있어. 너는 역시 생명력이 흘러넘칠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렌."

나는 네가 있던 곳으로. 네가 있어야할 곳으로 데려갈거야.

슌스케는 입에 물고 온 진주를 눈을 감고있는 렌의 입술을 벌려 집어넣었다. 하얀빛이 렌의 몸을 감싸는 모습을 바라보던 슌스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왕자님."

우린 꼭 다시 만날수있을거야.

.

.

.

"....슌, 슌?"

미치에다는 그제야 저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마주보았다. 잘생긴 얼굴에 섭섭함이 가득했다.

"바다가 그렇게 좋아? 나보다?"

미치에다는 작게 웃었다. 그럴리가요.

"보고싶었어요."

렌도. 렌을 처음 만난 이 바다도.

"정말?"
"그럼요, 많이 기다렸어요."
"드라마 촬영때문에 이틀 못 본건데, 내가 그렇게 보고싶었어?"

언제나요. 메구로의 손을 잡는 미치에다의 목덜미에 분홍빛 비늘이 반짝거렸다.

"그런데요, 렌."
"응?"
"렌...그때 나랑 두번째로 다시 만났을때...내가 렌에게 입맞추면서 최면술을 걸었는데, 어떻게 최면에 걸리지않은거에요?"

메구로는 싱긋 웃었다.

"있지, 슌. 인어는 누구든 홀릴수있지만 한번 홀린 사람을 다시 홀리지 못해."

난 너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네게 홀려있었으니까, 몇번을 입맞춰도 난 널 죽어도 잊지못할걸? 뺨을 감싸고 천천히 다가오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눈을 감았다.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