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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05:21


연반ㅈㅇ 알오ㅈㅇ



노부는 한 손에 올리기엔 조금 넘치지만 두 손으로는 충분히 안아올릴 수 있는 작은 청룡을 품에 안고 꿈 속의 작은 호숫가에 데리고 갔다. 노부의 반려가 보여준 태교일기에 아기청룡이 물 속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호수에 조심스럽게 퐁당 담그자 아기청룡은 발과 꼬리를 허우적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예쁘게 올라간 게 정말 즐거운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작은 날개도 파닥파닥거리고 있는데 노부의 반려가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대로 아직 크기가 작아서 날기에는 많이 무리일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명색이 청룡인데 물속에서만 지내게 할 수는 없지. 

그래서 노부는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꿈 속 공간이라서 누군가 보거나 지나치게 큰 본체 때문에 공간이 파괴되거나 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원래의 크기로 돌아갔더니 인간의 몸에 현신해 있던 노부가 내려다봤을 때도 발치에서 꼼지락거리던 작은 아기청룡은 물론이고 꿈 속을 꽉 채우고 있던 넓은 숲까지 앙증맞아진 탓에 아기청룡이 보이질 않았다. 아득하게 멀리서 아기새처럼 우는 소리만 애처롭게 삑삑 들릴 뿐.

노부는 웃음을 참고 크기를 줄여서 원래 크기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적당히 작은 크기로 줄어든 다음 숲에 앉아서 울고 있던 작은 청룡을 들어올렸다. 노부의 발바닥도 다 못 채울 정도로 작은 아기청룡은 처음 보는 다른 청룡이 신기한지 큰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또 다른 청룡이자 자신의 부친을 바라봤다. 

"삐잇! 삑!"

청룡은 새가 아닌데 왜 이 아가청룡은 아기새처럼 우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가청룡은 아기새처럼 삑삑거리며 폴짝폴짝 노부에게 뛰어왔다. 그래 이것도 이상했다. 왜 기어오지 않고 새처럼 폴짝폴짝 뛰어오지. 아무튼 코 앞으로 다가오더니 아가청룡은 한 입에 삼켜도 티도 안 날 커다란 노부의 입에 제 얼굴을 마구 부벼대기 시작했다. 노부의 본신 크기에 비하면 아기청룡은 너무 작아서 노부의 입술도 채 다 가리지 못할 정도로 작은 머리통이 닿았을 뿐인데 그 조그만 머리통에서 느껴지는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예뻐서 노부는 한참이나 그 작은 머리통에 입을 대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손을 들어올렸다. 

"너는 아직 날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청룡인데 하늘을 나는 기분은 느껴봐야지 않겠느냐."
"삐! 삐잇!"
"그래, 너도 날아보고 싶지?"

꿈이니까 아기청룡이 떨어져서 다친다고 해도 실제로 다치는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기를 단단히 입에 물었던 노부는 그 상태면 노부가 말을 하거나 웃을 때 아가청룡이 떨어져 버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기껏 하늘을 나는데 아기청룡이 노부의 입에 물린 채로는 제대로 발 아래 땅이나 눈 앞의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노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부드러운 나무 줄기를 끊어 아기청룡의 몸을 노부 앞발에 묶었다. 아기청룡도 나는 기분은 내야 하니까 날개를 움직일 수 있도록 날개에 닿지 않게 잘 묶었다. 혹시라도 놓쳐도 떨어지지 않게 묶은 다음에야 아기청룡을 코 앞으로 가져와 눈을 마주친 노부는 날개를 천천히 퍼덕였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노부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가청룡에게 속삭였다. 

"내 꿈이니까 네가 떨어져도 다치지 않겠지만 내가 널 떨어뜨렸다는 걸 네 모친이 알게 되면 난 죽은 목숨이란다."

아기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신나서 날개를 퍼덕거리며 삐잇삐잇 울기 바빴다. 

노부의 말 따위 관심도 없는 게 어처구니없었지만 생전 아니,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 그냥 생애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게 얼마나 신날지 짐작이 안 되는 건 아니라서 더 높이 올라가자 작은 아기청룡은 신나서 들썩들썩거리며 삑삑 울어댔다. 

"몸만 들썩거리지 말고 날개를 움직여야지. 날개로 네 옆의 공간을 밑으로 민다는 생각으로 날개를 움직여 봐라."

처음에는 잘 안 되는지 낑낑거리던 아기청룡은 곧 요령을 알았는지 날개를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몸에 비해서 아직 날개가 너무 조그맣기 때문에 날지는 못하고 그저 요령만 익혔을 뿐이지만, 노부의 앞발에 단단히 묶인 채로 앞발 위에 동그마니 앉혀진 아기청룡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실컷 나는 기분을 냈다. 

사실 기분만 냈을 뿐이지만. 

노부가 작은 아기청룡을 자신의 꿈으로 초대한 것은 회임한 뒤로 늘 아기청룡의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밤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반려가 안쓰럽고 걱정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기청룡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900년 전 네가 사랑했고, 너를 사랑했던 존재를, 현무를 너는 아직도 기억하는지. 
현무와 너는, 지금 내가 나의 반려와, 류세이가 류세이의 반려와 그랬듯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나면 영원히 함께하자 약속도 했었을 텐데, 저주가 그 맹세에 영향을 줬는지 아니면 저주에 걸렷었어도 맹세는 그대로인지.
너는 그 긴 세월을 고난 속에 돌아와야 했는데도 여전히 그를 다시 반려로 맞을 생각이 있는지. 

노부는 노부의 아이로 태어날 이 청룡이 900년 전 현무가 잃었던 그 반려가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친의 앞발에 묶인 채 처음 하늘을 날아보는 게 너무 신나고 좋아서 삐잇 삐잇 소리를 질러대는 아기청룡을 보고 있으니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는 아직 이리 어린데. 반려니 뭐니 하는 것들을 이해하기엔 너는 너무 어리고 네게 이 세상은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일 뿐인데, 너는 아직 우리의 사랑만 받고 더 많이 커야 하는데. 

타케루의 900년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은 노부도 잘 알았다. 그러나 노부는 노부의 반려를 직접 돌보고 키우며 성장을 돕는 동안 반려의 성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결코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이 작고 어린 반려가 언제 다 자라려나 아득해지긴 했어도 세상을 알아가는 동안 어린 반려가 느끼는 기쁨이 노부의 기쁨이었고, 반려의 즐거움이 노부의 즐거움이었다. 노부가 그랬듯, 타케루도 그렇게 기쁘고 즐겁게 제 반려의 성장을 함께하며 기다려 줄 것이었다. 류세이나 타케루, 아마미야가 가끔 너무 철없이 굴어서 어이없을 때도 많았지만 긴 세월을 세상과 함께 존재해 온 신수들은 철없이 굴어도 될 때를 알듯이 인내하고 자비로워져야 할 때는 자중할 줄도 알았다. 노부가 아는 백호와 주작이 그랬고, 노부가 아는 현무가 그랬다. 

그래서 노부는 작정했던 질문을 모두 삼키고 튼튼하게 묶어둔 아기청룡을 발바닥 위에 올리고 노부의 꿈 속에 펼쳐진 모든 곳. 설산과 꽃나무가 가득한 벌판, 시원한 바람이 부는 커다란 호수와 끝없이 펼쳐진 바다 뒤까지 실컷 날아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날아다닌 뒤에야 노부는 다시 꿈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 재미있었느냐."
"삐잇!"

사람처럼 뽀얀 피부가 아니다보니 홍조가 보일 리도 없는데 잔뜩 신나서 들썩거리는 아가청룡은 왠지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방방 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아가청룡의 모친이 어릴 때 신나면 그랬던 것처럼. 

"그래, 그러면 다음에 또 부친의 꿈에도 놀러오려무나. 부친이랑 또 날면서 놀러다니자."
"삑! 삑!"
"그래."

다시 인간형으로 돌아온 노부에게로 돌진해오는 아기청룡을 안아서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 주변에 장막이 처지듯 스르륵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꿈은 이렇게 끝날 모양이었다. 





노부가 눈을 뜬 건 노부의 반려가 옆에서 노부를 힘차게 흔들어댔기 때문이었다.

"전하! 전하!"
"태자비, 무슨 일이오!"

너무 과하게 흔들어대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벌떡 일어나앉자 노부의 반려가 품으로 쏙 들어오더니 노부의 귀에 대고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항의했다.

"저는 청룡 자태를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 청..."

잠이 덜 깬 노부가 무심코 청룡이라고 말하려고 하자 노부의 반려는 다 자라도 여전히 노부보다 작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큰 손으로 노부의 입을 턱 막아버렸다. 그제야 잠도 좀 깨고 청룡 이야기를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노부는 제법 배가 불렀는데도 몸이 무겁지도 않은지 아니면 속상함과 서운함이 너무 커서 몸이 무거운 것도 못 느끼는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반려를 다리 위에 앉히고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무슨 말이오, 나의 비?"

그러자 노부의 반려는 노부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다다다 상황을 쏟아냈다. 지난 밤에는 아가청룡의 꿈을 꾸지 않고 푹 잤는데 잠에서 깨기 직전에야 느지막하게 아가청룡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잔뜩 신이 난 아기청룡이 마구 기어오길래 번쩍 안아들었더니 날개를 마구 퍼덕이고 앞다리를 쭉 뻗어서 아주 커다란 뭔가를 그리더라고. 

그제야 노부가 아기청룡에게 부친의 꿈에도 놀러오라고 했던 게 떠올라서 혹시 부친의 꿈에 놀러갔었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의 작은 몸을 가리키고 짧은 앞발로 몇 번이나 커다란 뭔가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했다. 짐작가는 바가 있어서 혹시 부친이 네게 청룡의 모습을 보여주셨느냐 묻자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를 퍼덕퍼덕. 설마해서 혹시 같이 날아다니기도 했냐고 물으니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며. 

노부의 반려는 아주 서운한 얼굴로 노부를 바라봤다. 

"저한테는 안 보여주시고."

노부의 반려가 오래 전에 노부가 진짜 청룡이란 걸 알게 된 후에, 청룡의 자태를 보여줄 수 있느냐 은근히 청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청룡의 본체는 너무 커서 사람들 몰래 노부의 반려에게만 보여주는 건 힘든 일인지라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보여주겠노라 약속했는데 저도 아직 못 본 걸 아기청룡만 봤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모양이었다. 

노부가 고민하다 손바닥을 펼치자 노부의 손바닥 위로 손을 딱 덮을 정도의 푸른색 반짝이는 조각이 나타났다.

"이게 뭡니까?"

노부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려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춰주고 푸른 조각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조각 위에 고대문자로 주문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조각의 끝에 작은 구멍을 내어 가는 은 사슬을 건 다음 반려의 목에 걸어 주었다. 

"내 비늘 조각이오."
"전하의 비...!"

노부의 반려는 입을 딱 틀어막았다가 노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청룡의 비늘입니까?"
"그렇소. 원래는 이보다 훨씬 크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으니 목걸이로 만들어봤소. 이 비늘 조각에 내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주문을 새겼으니 오늘 밤에 이 목걸이를 걸고 자면 내가 잠이 든 후 내 꿈으로 들어올 수 있소."

노부의 반려는 목에 걸린 비늘 조각을 만지작거리다가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따뜻합니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으며 폭 끌어안고는 노부의 뺨에 입술을 촉 맞췄다.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여기도."

노부가 입술을 톡톡 치자 또 뺨을 붉게 물들였던 노부의 반려는 촉 입술에 입을 맞춰줬다. 

"너무 기대됩니다."
"그렇소?"
"전하는 지금도 잘 생기셨지만... 청룡! 우리 아기청룡보다 훨씬 더 큰 어른청룡! 10배!"
"10배 이상인데..."
"100배!"
"음..."
"1000배?"
"글쎄, 직접 보시오."

언제나 반짝거리는 반려의 눈동자가 더욱 예쁘게 반짝거렸다. 





그리고 노부의 반려는 하루를 또 부지런히 살고 다시 밤을 맞았다. 밤이 어두워지자 평소처럼 노부의 품 안에 누운 태자비는 노부가 걸어준 청룡의 비늘 목걸이를 잠깐 만지작거리더니 노부의 입술에 촉 입을 맞춰준 뒤에 배시시 웃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전하."
"조금 후에 봅시다."

잠이 들자 전날처럼 다시 푸르고 맑은 하늘이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밝은 햇살을 느끼며 본체로 돌아가자, 잠시 후에 아주 작게 '헉!!!!'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이자 아주아주 작게 보이는 노부의 반려가 품 속에 파란 점처럼 보이는 아기청룡을 안고 청룡의 발치에서 한껏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부가 반려와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서서히 몸집을 줄여주자, 품 속에 아가청룡을 안고 있던 노부의 반려는 한 손을 조심스럽게 노부의 뺨에 올렸다. 

"... 전하?"
"그렇소. 나의 비."
"우와..."

몸집이 커졌으니 자연스레 눈도 커져서 노부의 반려를 눈에 쏙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청룡의 눈을 바라보던 청룡의 반려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날, 제가 관례를 치른 날, 청룡의 반려가 되기를 수락한 것은 제 삶에서 가장 잘 한 결정이었습니다."
"... 고맙소."
"이 세상에서 제 반려가 제일 멋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아름다운 인간이 청룡의 뺨에 따뜻한 입술을 대며 그렇게 말했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