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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6 04:34

연반ㅈㅇ 알오ㅈㅇ



노부가 현신한 몸의 원래 주인을 다시 황후와 황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었을 때, 노부가 현신한 몸의 나이는 이미 16살이었고 노부는 모친인 황후가 동생을 회임하고 있을 때 어떤 일들을 겪는지도 봤었다. 당시 황후는 태자비가 아니라 이미 황후였고 태자는 이미 노부로 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태자보다 16살이나 어릴 황자의 탄생에는 다들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아서 황후는 비교적 마음 편한 회임 기간을 보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세상에 태어나야 하는 아이의 화풀이였는지 똑같은 일을 두 번 겪는 혼의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몸의 고단함은 낮은 수준이 아니었던 터라 황후는 입덧에 시달리느라 굶고 토하고 쓰러지고 체해가며 힘든 열 달을 보냈었다. 

노부는 그때 모친의 모습을 떠올리며 4황자를 궁 앞에서 거절했다. 

"태자비가 입덧 때문에 고생이 많은 터라 사람들을 만나길 꺼립니다. 형님께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비는 2년 전에 사망했지만 그 정비와의 혼인 기간이 15년에 달했고 측비들도 넷이나 두었는데도 4황자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풍국의 선황제처럼 4황자 본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을까 노부는 의심하고 있었지만, 당연히 티는 내지 않았고, 4황자 본인도 불쾌하겠지만 티를 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태자비가 고생이 많다니 안타깝습니다. 제가 입덧에 좋은 약재라도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4황자가 어떤 약재를 가지고 와도 받을 생각이 없는 노부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약재를 내려주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달여먹고 있으니 차차 나아지겠지요."

황후가 둘째를 회임했을 때 너무 고생했던 터라 황제와 황후가 태의를 보내 체질을 알아보게 하고 약재를 내려준 것은 사실이었다. 태자비는 입덧이 없기 때문에 약을 달여먹지는 않았지만. 4황자는 명백한 거절에도 불쾌해하지 않고 웃었다. 

"그럼 태자비 전하께서 건강해지시면 그때 뵙겠습니다. 팔찌는 이렇게 됐으나... 감사 인사는 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4황자는 부인의 유품이기도 하고, 자신이 태자비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팔찌임에도 깨진 팔찌 조각들을 수습하지 않고 휘휘 떠나 버렸고 팔찌를 깨서 호통을 듣던 시종은 눈치를 보더니 제 주인을 따라가 버렸다. 노부는 푸른 빛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청보석 조각들을 보다가 조각들을 수습하는 궁인들을 불렀다. 

"내가 수습할 테니 두어라."

궁인들은 태자가 직접 깨진 청보석 조각들을 수습한다고 하자 놀랐지만 태자궁의 총관태감이 눈치를 주자 그대로 물러갔고 노부는 깨진 조각들을 빠짐없이 수습해서 청룡의 제단으로 가지고 갔다. 물건 복원은 치유 전문인 주작이나 정화에 타고난 백호가 더 뛰어나지만 노부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노부가 빠르게 깨진 청보석들을 모아 팔찌를 복원하자, 팔찌는 깨진 적 없다는 듯 예쁘고 화려한 팔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팔찌에 힘을 불어넣어도 저주나 독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주 중에는 저주의 매개채가 되는 물건이 손상되면 저주의 효력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이 팔찌에 그런 저주가 걸려 있었다면 4황자의 시종이 팔찌를 떨어뜨렸을 떄 저주가 흩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저주가 사라져 버린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정말로 저주의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데.시종이 결계에 닿았을 때 결계의 반응에 놀라서 떨어뜨린 건지 시종의 반응으로 결계를 알아챈 4황자가 일부러 던져서 깨뜨린 건지도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노부는 복원한 팔찌를 함에 넣고 봉인했다. 정화의 힘을 지닌 만큼 물건의 이력도 잘 짚어내는 백호가 돌아왔을 때 다시 확인해 달라고 할 셈이었다. 

노부가 청룡의 제단 안에 있는 밀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소리를 차단하는 결계를 치자, 천장에 숨어 있던 이가 노부의 앞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눈만 내놓고 얼굴까지 가리는 검은 복면을 쓴 남자는 노부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4황자비가 사망하고 난 후, 4황자가 급히 4황자비가 섭취했던 음식과 약재들을 처리했으나 4황자비의 시녀가 빼돌린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지?"
"앓아 눕기 전에 먹은 차와 떡 그리고 치료하는 동안 사용한 약재입니다."

복면을 쓴 남자는 마른 약재들로 보이는 작은 꾸러미와 이미 우려냈었던 찻잎이나 약재인 듯 색이 변한 약재들 꾸러미를 내놨다. 

"4황자비가 복통을 일으킨 후 시녀가 직접 의원에게 가서 받은 처방으로 지은 약인데, 원래 처방에 없었던 투구꽃과 설연화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찻잎에도 원래 4황자비가 사용하던 찻잎이 아닌 잎이 들어 있어 확인해 보니 설연화였다고 합니다."
"누가 넣었는지는 모르나?"
"시녀의 말에 의하면 2년 전에 4황자비가 배앓이를 하며 쓰러지기 전, 연국의 장신구를 판매한다는 상인을 하나 왕부에 불러 들였었다고 합니다."
"연국의 장신구?"
"4황자비가 태자비께 선물을 하고 싶다고 상인을 왕부로 들여서 청보석으로 만든 팔찌 하나와 백옥으로 만든 팔찌 두 개가 한 묶음인 팔찌 묶음을 하나 샀답니다."
"... 그 팔찌로군."

노부가 함에 담겨 있는 청보석 팔찌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자, 복면을 하고 있는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상인은 팔찌만 팔고 돌아갔으나, 시녀가 그 후 상인이 4황자와 따로 만나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시녀는 4황자를 의심하고 있으나 누가 찻잎을 넣었는지에 관한 증거는 없답니다."

복면을 쓴 남자가 시녀에게 받아온 그 상인의 초상화를 본 노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낯이 익은 자로군."
"누구인지 아십니까?"
"확인해봐야겠지만, 짐작가는 자가 있다. 이 시녀는 왜 4황자를 고발하지 않았나? 증거가 없어서?"
"시녀는 4황자비를 많이 따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찻잎이나 약재도 챙기고 계속 조사해 보려고 했는데, 4황자가 4황자비의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가는 길에 강도를 위장해 습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쫓기다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속 숨어 있었다?"

복면을 쓰고 부복해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노부를 바라보자, 노부는 초상화 속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그림을 접어 넣었다. 

"수고했다. 다시 복귀하도록."
"네, 전하."

원래는 노부의 비밀 호위로 현재는 태자비의 비밀 호위도 겸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인 남자는 말없이 다시 천장 속으로 스며들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노부는 팔찌를 봉인한 함을 제단 뒤쪽의 밀실 바닥에 숨긴 뒤, 청룡상을 올려서 자신의 힘으로 눌러놓고서야 제단 밖으로 나왔다. 

팔찌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데. 정말 4황자비가 태자비에게 선물로 주려고 샀던 것을 전달하려다 깨져 버린 것뿐인가. 

아니면 정말로 수윤제국의 4황자가 뭔가 꾸미고 있나. 뭘까. 황위 쟁탈? 그걸 위해서 노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태자비를 공격하려 한다고? 어째서? 노부는 검술과 궁술, 체술에도 뛰어나지만 노부가 청룡이라는 사실은 수윤제국에서는 노부의 반려밖에 모른다. 청룡궁의 총관태감은 노부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한 궁의 총관태감까지 올라갈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궁에서 보낸 세월이 긴 내관들은 입이 무겁다. 게다가 인간의 것이 아닌 힘을 보았다면 더더욱 노부에게 등을 돌릴 리가 없지. 4황자 편으로 돌아설 리가 없었다. 그러니 4황자는 노부의 진짜 정체를 모를 텐데 왜 노부를 해치려 들지 않고 노부의 반려를, 마치다 케이타를 해치려는 거지. 태자 자리를 노린다면 태자인 노부를 제거하려고 해야 하지 않나. 

게다가...

"아마미야를 연국으로 보내지 말 걸 그랬나."

4황자가 연국과 접촉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졌으니 연국으로 사람을 보냈어야 하는 건 맞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수 있는 자가 없다보니 아쉬워진 노부는 혀를 찼다. 노부는 초상화를 꺼내서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소라가 이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텐데. 태자비의 관례를 치르기 전 연국 8왕자를 따라온 사신단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던 시종의 얼굴인 것 같긴 한데 확신이 들지 않았다. 노부는 시종의 얼굴까지 제대로 살피지 않았어서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소라는 8왕자 일행을 만났으니, 더 잘 알 텐데. 노부가 초상화를 그대로 넣고 서둘러 은방울꽃궁으로 돌아가자, 이제나저제나 태자를 기다리며 들썩거리고 있던 태자비가 쪼르르 다가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아... 

노부는 4황자비가 생전에 태자비에게 선물해 주려다 못 준 팔찌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기대와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는 태자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등을 토닥였다. 

"팔찌... 를 넷째 형님의 시종이 깨뜨려 버렸소."
"... 음."
"청보석의 일체형 팔찌였소."
"아..."

일단은 저주가 없는 걸로 나왔지만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노부가 팔찌를 복원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 테니 노부는 울적해진 반려를 무릎 위에 올려앉히고 등을 토닥이며 반려를 달랬다. 그러자 노부의 반려는 노부의 걱정스러운 낯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윤제국은 팔찌도 가죽이나 실로 만든 것을 선호하지만 연국은 따뜻한 지방에 있기 때문에 덥고 땀이 차기 쉬운 가죽보다는 옥이나 보석류의 장신구를 즐기는 편입니다. 저는 어려서 연국을 떠났기 때문에 그런 팔찌가 없었지만 어머니나 형, 누님들, 왕후 전하나 후궁마마들은 그런 팔찌를 종종 갖고 계셨습니다."
"연국식의 팔찌군."
"연국식인지는 모르겠으나, 4황자비가 남부식 팔찌라는 걸 알고 제게 주려고 하셨던 게 아닌지... 다정하셨던 분인지라..."

짐작하고 있었지만 다시 확인하니까 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로 연국 사신단에 따라왔던 8왕자의 시종이 수윤제국의 4황자와 접촉했다? 그리고 4황자비를 꼬셔서 태자비에게 팔찌를 선물하려 했다.... 아마도 저주나 독을 발라서... 그런데 왜 팔찌를 주기 전에 4황자비를 죽였지? 태자비에게 저주나 독을 건 팔찌를 주려던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연국 8왕자와 수윤제국 4황자의 의견이 맞지 않았나? 둘 중 하나가 상대의 계획을 모르고 4황자비를 먼저 죽여서 계획이 흐트러진 것인가. 정말로 저주를 걸거나 독을 바른 건 맞나...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이 노부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의심일 뿐인가...

노부는 침울한 얼굴을 한 반려를 침상 위에 앉히고 조금 부은 것 같은 발과 다리를 조물조물 주물러주었다. 아직 배도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 다리나 발이 계속 부어서 노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반려를 앉혀놓고 발과 다리를 주물주물해 주고 있었다. 

"팔찌는 내가 사 주겠소. 아니면 만들어달라고 장인에게 주문할 수도 있고."
"괜찮습니다. 장신구는 지금도 많습니다."

태자비가 새 팔찌가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4황자비가 아끼는 마음에 준비했었던 팔찌를 보고 싶었던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달래려 하자, 태자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사실 활을 쏠 때나 검을 수련할 때 장신구가 많으면 불편하고 소란스럽기만 하니, 전하가 주신 청룡과 은방울꽃 머리꽂이, 둘째 형님이 주고 가신 향낭, 아마미야 공자가 주고 간 현무의 팔찌 정도가 딱 좋다고 웃으며 노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황후가 태자비를 황후궁에 초대했기 때문에 산책도 할 겸 노부와 노부의 반려가 나란히 황후궁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노부가 뭔가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낀 순간, 태자비가 휙 고개를 돌리더니 새된 소리를 질렀다. 

"불입니다!"

노부도 반려가 고개를 돌린 곳을 바라보자, 노부가 반려를 지키기 위해서 현신한 몸의 원래 주인, 지금은 노부보다 16살 어린 동생으로 다시 태어난 그 황자, 올해 겨우 12살인 어린 동생의 궁에서 검은 연기와 붉은 불길이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궁의 화재 진압을 담당하는 관리들과 내관들이 서둘러 그 황자의 궁 쪽으로 달려나가는 걸 보며 태자비를 끌어안자, 노부의 반려는 노부를 붙잡고 바로 코 앞에 있는 황후궁 입구까지 가더니 노부를 바라봤다. 

"같이 들어가시겠습니까?"

황후궁에서는 누구도 태자비를 해칠 수 없었다. 황제의 침궁은 알려져 있진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는데, 이 황제의 침궁과 황후궁은 건국 초기에 청룡이 직접 결계로 감싸둔 곳이고 두 궁 모두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황후궁에 들어가면 태자비는 안전했다. 그래서 노부는 반려를 황후궁 입구까지 데려다준 후, 반려를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속삭였다. 

"금방 녀석만 확인하고 오겠소. 먼저 들어가 모후와 함께 계시오, 나의 비."
"네, 무사히 다녀오셔야 합니다."
"알겠소."

청룡이라 화재로 다칠 리도 없는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반려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해 주고 하나뿐인 동복동생의 궁을 향해 달려갈 때였다.

등 뒤에서 들려선 안 되는 비명소리가, 노부의 반려가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눈을 돌리자, 반려의 팔목에 감긴 현무의 팔찌 위로 백옥 팔찌, 청보석 팔찌, 백옥 팔찌까지 총 세 개의 팔찌를 끼워넣은 채 태자비의 손목을 붙잡고 서 있는 4황자와 정말 시신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바닥으로 쓰러지는 태자비가 보였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