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5607245
view 3182
2023.05.30 04:51


연반ㅈㅇ 알오ㅈㅇ



"그럴 리가 있겠느냐, 꼬맹아."

태자비는 류세이의 등 뒤에 있다가 앞으로 나온 그의 둘째 형 소라의 목소리에 눈동자가 스르륵 돌아갔지만 여전히 류세이의 목에 대고 있는 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몬이 정말 제대로 잘 가르치긴 한 모양이었다. 소라는 검을 건드려 분노한 이복동생의 화를 돋구는 대신 류세이를 잡아당겨서 뒤로 빼 낸 후 품에서 자고 있던 이치로를 류세이의 품에 안겨 주었다. 

"이 자가 나이값 못하고 철이 없는 것일 뿐, 풍국의 예에 이유없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은 없단다."

소라는 그제야 검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검집에 넣은 태자비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끌어안았다. 

"많이 컸구나, 꼬맹아. 아주 조그마한 꼬맹이였는데 이렇게 크다니."
"형님."

두 사람의 키는 비슷했고 둘 다 친탁을 한 것인지 연국 왕의 취향이 한결같아서 왕후와 마치다 케이타 친모인 윤비 얼굴이 닮은 것인지 두 사람은 얼굴도 꽤 닮았는데 태자비의 아직 앳된 얼굴에 비해서 소라의 얼굴은 확연히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잠시 반가움을 나눈 뒤, 풍국의 황자비는 류세이가 안고 있던 아이를 다시 받아안고 태자비에게 아기 얼굴을 보여 주었다. 류세이와 소라가 입을 모아서 류세이를 닮았다고 하더니 이치로는 정말로 작은 류세이 같았다. 노부는 아기가 너무 류세이를 닮아서 떨떠름했는데 노부의 반려는 그래도 좋아하는 형의 아이라 예쁘기만 한지 잠든 아이를 찬찬히 뜯어보며 귀엽다고 웃었다. 소라가 류세이를 두고 철이 없네 뭐네 해도 자기 반려인데 동생한테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는 건 보기 싫었는지 아기로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게 보였지만 모른 척해 주었다. 둘 다 서로 치고 박고 해도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서로를 죽일 수 없는 노부와 류세이의 관계와 달리 노부의 반려는 아직 평범한 인간인 만큼 주작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은 게 없으니 좋게 해결하는 게 좋았다. 풍국의 황자비는 태자비가 잠든 아기를 안고 귀엽다고 좋아하는 걸 보더니 실실 웃고 있는 자기 반려를 꼬집... 아니, 살점을 뜯어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쥐어뜯었다. 신수라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라서 류세이의 표정이 확 일그러지는 걸 보니 어지간히 아픈 모양이었다. 그리고 풍국의 황자비는 노부의 반려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이치로가 자고 있느라 아무것도 못 봤으니 이 정도로 봐 줍니다. 이치로가 보고 있는데 그런 철없는 장난이나 치는 꼴을 보였으면 안 죽는 몸인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두들겨 팼을 겁니다."

주작은 어차피 장난이나 치려는 철없는 생각이었고 노부의 반려가 노부를 지키려고 검을 드는 것이 귀여웠다는 말은 진심이었을 테니 노부의 반려에게 앙심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부의 반려는 예의없는 풍국의 황자에게 제대로 마음이 상한 듯 눈도 마주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이치로가 잠에서 깨어나더니 태자비의 무릎을 차지하고 앉아서 방긋방긋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주고 아무래도 옆구리에 멍이 든 정도가 아니라 옆구리 살점이 뜯겨 나간 것 같은 류세이가 눈치껏 분위기를 맞춰줬기 때문에 10년만에 상봉한 형제들의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풍국 황자비를 제대로 본 건 처음인 노부가 보기에도 냉정해 보이는 그 황자비가 어린 동생을 많이 예뻐하고 아끼는 게 눈에 보이기도 했고. 그러나 봐 줄 수 있는 건 주작의 반려이지, 주작이 아니었다. 

그날 은방울꽃궁에서 석반까지 들고 난 후 류세이 가족이 축하 사절단에 배정된 궁으로 돌아가기 전, 노부는 태자비가 형, 조카와 인사를 하는 동안 류세이에게 다가갔다. 

"한 번만 더 내 반려를 놀라게 하면 네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괴로워지게 만들 것이다."

주작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주작이 아직 어리고 마음이 여린 노부의 반려를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니 주작을 용서해 줄 생각은 없었다. 





관례 준비는 순조로웠다. 문제가 생긴 건 관례 전날이었다. 태자비를 아껴줬다던 연국 2왕자를 초대하기 위해서 부른 풍국의 축하 사절단은 태자와 태자비가 혼례를 치렀을 때 풍국에서 항의를 위한 사신단을 보냈던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오는 것으로 하고 초대했지만, 정말로 초대도 안 한 불청객이 등장한 것이었다. 태자는 연국에서 사절단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태자비의 관례 준비 마무리로 바쁜 와중에도 대전에 나가 사절단의 대표를 향해 물었다. 

"연국의 8왕자라고?"
"네, 태자 전하."
"연국의 8왕자는 혹시 불청객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오."

수윤제국의 황제와 대신들도 미리 연락도 없이 막무가내로 찾아온 연국의 사절단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태자의 무례한 말에 대전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당연히 연국 8왕자의 낯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사절단의 대표로 왔다는 이가 관복도 예복도 아닌 호화로운 복장에 화려한 장식까지 하고 있는 것부터 불쾌했다. 아우의 관례를 축하해주려는 마음보다 태자의 마음을 사려는 의도가 더 명확하게 읽혀서 기분이 몹시 상했기 때문에 예를 차리고 싶지가 않았다. 

"수윤제국이 왕자에게 무작정 쳐들어와도 좋을 정도로 편하게 느껴진다니 놀랍군."
"... 케이타는 저의 아우인 만큼 축하하고자 방문한 것입니다."
"사전 상의도 없이?"
"... 케이타를 본 지 오래 되어 은비도 케이타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 하시고."
"은비가 누구인가?"
"케이타의 모친입니다."
"아니오."
"네?"
"나의 비를 낳고 길러주신 분은 은비가 아니라 윤비요."
"... 제가 잠깐 착각을..."
"작호도 모를 정도로 왕래가 없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이 먼 길을 왔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여겼소?"

연국 8왕자는 저러다 얼굴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시뻘개졌지만 애초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면서 환대받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테니 뻔뻔하기는 뻔뻔할 인사라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케이타는 제가 아끼던 아우라."
"그대가 아끼는 케이타의 탄일이 언제인지는 아시오."
"일곱 번째 달 여섯 번째 날 아닙니까?"
"일곱 번째 달 네 번째 날이오. 왕자는 그리 아끼는 아우에 대해 아는 것이 있기는 하오?"

당연히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관심도 없었을 테니까. 태자가 혼례를 치렀을 때 풍국에서 왔던 사신단처럼 항의를 위해 오는 것도 아닌데 타국에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무작정 쳐들어오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온 이유도 뻔했다. 그가 '아끼는' 아우의 생일도 모르고 있다가 관례를 한다는 소식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오느라고 그런 것이겠지. 8왕자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시뻘건 얼굴을 하고 입술을 짓이기고 있었지만, 태자에게 반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럴 수 없겠지. 8왕자는 연국 귀비의 둘째 아들이었다. 몇 년 전 노부의 반려에게 궁인을 딸려서 보냈던 그 귀비의 둘째. 그 귀비가 수윤제국 태자의 정비로 만들고자 했던 그 왕자. 궁인을 잡아낸 뒤에 연국에 사신단을 보내며 확실히 경고를 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알면서도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거나. 

"내가 나의 비를 아끼니 나의 비가 나고 자란 모국이라고 무작정 봐 줄 거라고 생각했소? 연국에서 이렇게 무례하게 나와도 그저 좋게 넘어가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오?"
"... 그것이 아니라."
"관례에 참석할 이들은 이미 모두 확정됐고, 사전 상의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불청객을 무리하게 관례에 참석하게 해 줄 의사는 없소. 그러니 연국의 사절단은 당장 돌아가고 이후 수윤제국에서 연국에 정식으로 요구할 사과를 준비하시오."
"태자 전하."
"아직도 할 말이 있소? 왕자의 욕심으로 모국을 쑥대밭으로 만들 지경이 됐는데 할 말이 더 남았소?"

그래도 혹시나 하긴 했다. 노부의 반려는 8왕자에 대해서 기억하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서로 왕래가 없고 서로 관심도 없었다고 했지만 혹시나 8왕자가 노부의 반려를 정말로 아꼈는데 티를 안 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기대했었는데. 관례를 축하하러 왔다면서 생일도 모르고 있다는데 아끼긴 뭘 아껴. 화려한 의상이나 치장이 저만 돋보이려 하는 의도가 이렇게 선명한데.

결론만 말하자면 연국의 8왕자는 바로 돌아가진 못했다. 분노와 수치에 씩씩거리며 돌아나가다가 주작에게도 기죽지 않고 주작을 휘어잡고 사는 연국의 2왕자, 풍국 황자비에게 걸린 것이었다. 풍국의 황자비는 모국을 망신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가서 이복동생을 나무랐다고 하나, 황자비를 혼자 보내지 않고 따라갔던 류세이는 노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반려를 아주 많이 사랑하지만, 저 사람이랑 싸우면 정말 눈물나. 말을 너무 무섭게 해..."

연국의 8왕자가 류세이처럼 울면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돌아갔고, 관례는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됐다. 




관례가 끝나고 혼례를 치렀던 그날처럼 첫 합방을 위해 신방처럼 꾸민 침방에 들어가자, 노부의 반려는 그날처럼 홀로 앉아 있었다. 어릴 때처럼 주안상에 올라온 안주들을, 주로 고기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때와 같았다. 6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혼례를 치렀던 그날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반려를 바라보던 태자는 그날 밤처럼 반려에게 다가가서 오도카니 앉아 있던 반려를 무릎에 올려 앉았다. 이제는 저도 다 컸다고 무릎 위에 올려놓자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반려의 예쁜 입에 육전부터 넣어 준 태자는 태자비의 배를 부지런히 채워준 후에 그날처럼 달콤한 음료를 나눠마시며 입을 열었다. 

"합방에 앞서 그대에게 말해둘 것이 있소."
"네, 전하."

반짝거리는 예쁜 눈동자를 바라보며 태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가 끝나도 이 예쁜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리며 자신을 바라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반려에게 계속 숨길 수는 없지 않은가. 아주 오래 이어질 시간을 이 사랑스러운 반려와 함께할 수 있게 될지, 아니면 끝없이 윤회하는 반려가 돌아오기만을 계속 기다리며 살아야 할지 알 수는 없어도, 진실을 알려야 했다. 

"그때  나는 내 벗의 혼례가 있어서 참석차 가는 길이었소."

그때가 언제를 말하는 건지 고민하는 건지 예쁜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가는 게 보였다. 

"좋은 벗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벗이기에 안 갈 수 없어서 가고 있다가 잠시 쉬는데, 작고 예쁜 아이가 다가오는 게 보였소."
"네."
"그 아이는 먼지가 쌓인 제단을 꼼꼼하게 닦고, 제단을 정리하고 있었소."
"...네."

다정하고 영리한 빛을 띤 눈동자가 다시 도르륵 굴렀다. 익숙한 이야기인 것 같은 모양이었다. 

"제단을 정리한 아이는 품에서 양갱을 하나 꺼내서 비단 천 위에 올려놓고 자그마한 몸으로 곱다랗게 절을 올리며 말했소.'행복하세요. 청룡님.'"

앳된 반려의 매끈한 미간이 찌푸려지며 고운 미간에 귀여운 주름이 팼다. 

"그 아이가 제단 앞을 떠나 일행과 합류하는 걸 보고 제단으로 다가가서 양갱을 들었소. 아이의 작고 앙증맞은 손에 들려 있을 때는 참 컸던 양갱이었는데 내 손에 들어보니 꽤나 작았소. 하지만 맹세컨대, 내 긴긴 삶에서 가장 맛있고 귀한 양갱이었소."
"... 양갱 말입니까?"
"그렇소, 양갱 말이오."

이제 막 성년이 됐으니 여전히 어리지만 현명하고 영리한 청룡의 반려는 고운 미간에 사랑스러운 주름을 만든 채로 노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류세이 황자와 벗이셨습니까?"
"그렇소. 오랜 벗이지."
"형님과 류세이 황자의 혼례에 참석하셨습니까?"
"참석했었소."
"어..."

미간이 조금 더 구겨지고 예쁜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룡의 반려는 엄한 얼굴로 태자를 바라봤다. 

"청룡의 제단에 바친 것인데... 제물을 드셨습니까?"
"그대는 청룡의 제단에, 그러니까 청룡에게 양갱을 올렸지."
"네."
"그러니 나에게 올린 것이니, 내가 받은 것이오."
"네?"

반려의 매끈한 미간이 너무 깊게 패서 노부는 손을 들어서 반려의 고운 미간에 생긴 주름을 조심스럽게 문질러 펴 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문질러 줘도 그 귀여운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