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4301000
view 3296
2023.05.23 04:50

연반ㅈㅇ 알오ㅈㅇ



태자는 혼례를 치른 다음 날 태자비의 작은 머리에 머리꽂이를 하나 꽂아 주었다. 백옥과 진주, 백금을 이용해서 은방울꽃을 섬세하게 세공하고 청보석과 청옥을 사용하여 청룡이 은방울꽃을 감싸도록 만들게 한 머리꽂이는 무척 화려하면서도 우아했다. 다행히 태자비도 마음에 들었는지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뺨을 붉혔다.

"너무 곱습니다."
"나의 비가 꽂고 있으니 머리꽂이도 나의 비 덕분에 더욱 고와 보이는 것 같소."

태자비는 발그레한 뺨을 하고 면경에 비친 제 모습을 한참 보다가 태자를 올려다봤다. 

"이건 청룡입니까?"
"그렇소. 수윤제국이 청룡의 수호를 받는 나라라는 말을 들어보았소, 나의 비?"
"네, 은방울꽃궁의 장서관에 있던 책에서 봤습니다."
"혼례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책도 읽고, 나의 비는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도 하오."

칭찬이 기쁘면서도 민망한지 귓볼이 빨개진 태자비는 고개를 저어 겸양했다. 

"태자궁의 이름이 청룡궁이라는 것을 아시오?"
"황궁 내 여러 궁의 위치를 익힐 때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청룡의 수호를 받는 나라라 황제 폐하의 궁이 청룡궁일 줄 알았는데 태자 전하의 궁이 청룡궁이라 하여..."
"아무래도 황제 폐하는 암살 등의 위험이 있어 침궁의 이름과 위치를 공개하지 않소. 그래서 내가 청룡궁이란 이름을 차지해서 내 궁에 붙였지."

크고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보며 기뻐하기에 그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었나 했더니 태자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이 머리꽂이는 그... 태자 전하랑 저입니까? 제가 전하의 은방울꽃이니까..."

꼼지락거리는 태자비의 앙증맞은 손가락이 너무 귀여워서 그 작은 손을 잡아주며 웃었다. 

"그렇소. 내가 그대의 청룡이고 그대가 나의 은방울꽃이니 이 머리꽂이는 우리가 함께 해로하기를 기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영원히 함께하자는 약속이기도 하지."
"감사합니다."

작은 비는 고개를 꾸닥꾸닥하더니 태자가 태자의 궁에 놀러가보지 않겠냐고 하자 또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그... 그럼 혹시 청룡의 제단이 궁 내에 있습니까?"
"청룡의 제단?"
"4년 전에 한 번 지나가다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가진 것이 당과 하나뿐이라 그것밖에 올릴 수가 없어서 나중에 또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연국의 궁에는 제단이 없고, 저는 외출을 할 수가 없어서 못 가 봤습니다. 그래서..."
"황궁 안에도 청룡의 제단이 있소. 청룡궁 옆에 있지."
"제가 가 봐도 됩니까?"
"물론이오. 궁은 위험한 곳이긴 하지만 나와 함께 가면 어디든 그대가 못 갈 곳은 없소, 나의 비."
"그... 그럼!"

태자비는 궁인들에게 오늘 오후 다과 시간에 낼 예정이었던 다과를 좋은 함에 담아달라고 하고 당과가 든 함을 야무지게 든 뒤, 태자를 올려다봤다. 

"저는 준비가 다 됐습니다!"

태자비가 너무 설레는 것 같아서 청룡궁에 가기 전에 바라던 대로 청룡의 제단으로 데리고 가 주자, 어린 태자비가 잘 먹고 쑥쑥 잘 크길 바라며 영양과 맛을 충분히 고려하여 만들어낸 당과들을 제단에 올리고 향에 불을 피운 뒤 작은 몸을 곱다랗게 숙였다. 

너는 또 청룡의 행복을 빌고 있을까. 나는 네 덕분에 이미 행복한데, 나의 아이야. 





작은 태자비는 태자가 선물한 머리꽂이나 태자가 직접 조그만 머리 위에 이 머리꽂이를 꽂아줬던 것이 몹시 좋았는지 매일 아침 궁인들이 옷을 입혀주고 단장을 해 주고 나면 은방울꽃 머리꽂이가 든 함을 들고 태자에게 쪼르르 다가와서 꽂아달라 청하게 됐다. 뭘 하든 귀엽고 아리따운 이지만 머리꽂이를 내놓으며 꽂아달라 청하는 모습은 매일 태자의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일 중 하나였다. 그저 작은 아이일 뿐인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워낙 귀엽고 예쁘다 보니, 일하다가도 수시로 어린 태자비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어느 날 황제가 넘긴 여러 가지 장계를 보고 있던 태자는 또 뜬금없이 어린 비가 생각나서 총관태감을 돌아봤다. 

"나의 비는 무엇을 하고 있지?"

틈날 때마다 물어서 지겨울 만도 한데 태자궁의 총관태감은 싫은 내색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은방울꽃궁 연무장에서 검 수련을 하고 계십니다."
"검? 혹여 누가 강요라도 했나?"
"그렇진 않고, 태자비 전하께서 산책을 하시다가 검을 배워 보고 싶다고 태자비 전하의 호위대장에게 청해서 호위대장이 일단 기초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무장은 괜히 만들어 두었나."
"소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태자비 전하가 며칠 전부터 호기심을 보이셨다고 하니, 억지로 내몰리신 건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러한가. 스승이 호위대장이라... 그 이는 검을 쓰는 실력은 좋으나 누구를 가르쳐 본 이는 아니지 않나. 그래서야 되나. 스승이 제대로 있어야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태자는 어린 태자비가 너무 괴로워질 정도로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도록 기초를 잘 알려줄 사람이 누가 있을지 생각하며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나의 비에게 검을 배울 의지는 확실히 있는 것 같나?"
"네. 검 수련도 먼저 청한 뒤에 계속 적극적으로 하고 계시고, 금을 배우는 것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금을 혼자서?"
"은방울꽃궁의 장서관에서 금 교본을 찾으시고 그걸로 기초적인 부분을 익히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 교본을 뒀었지... 아몬은 최근 뭘 하고 있지?"
"아몬 공은 혼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현재는 휴가 중입니다."
"오... 그랬었지...."

태자의 입가가 만족스럽게 호선을 그리자 태자궁의 총관태감이 식은 눈으로 태자를 바라봤다. 오직 검밖에 모르고 마음에 품은 게 충심밖에 없어서 일생을 심심하게 살던 아몬이 늦게야 혼례를 치르고 어린 부인에게 푹 빠져서 생전 처음으로 일을 쉬고 있는데 굳이 불러내 일을 시키고 싶냐는 비난이 가득 담긴 시선을 알아챘지만 태자는 웃기만 했다. 뭐 하루에 두 시진 정도만 가르치면 되는데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와서 잠깐 가르치면 되지. 

"음..."

태자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가 은방울꽃을 조각한 백금제 머리꽂이를 꺼냈다.

태자는 태자비에게 머리꽂이를 선물할 때, 태자비의 머리꽂이 외에도 여러 개의 은방울꽃 머리꽂이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백옥과 진주, 백금을 사용한 이 은방울꽃 머리꽂이에는 청룡이 없었고 오직 은방울꽃만 조각돼 있었다. 청보석과 청옥으로 된 청룡 장식이 함께 있지 않다 보니 태자비의 머리꽂이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태자의 마음에도 들었다. 태자비의 궁이 은방울꽃궁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으니 (현재는 휴직 중이지만) 수윤제국 금군 통령을 맡은 바 있던 아몬의 부인에게 은방울꽃 머리꽂이를 선물해서 타국에서 온 탓에 세력이 없는 어린 태자비의 세력을 만들어줄 수도 있고. 

"이걸 귀한 함에 담아서 가루베 다이키치에게 하사하고, 아몬 공에게 태자궁에 들라 하여라."

아몬이 어린 부인에게 푹 빠졌다는 소문을 생각하면 아몬 본인보다 그 부인인 가루베에게 선물하는 게 아몬의 마음을 사기에는 더 좋으리라. 총관태감도 같은 생각인지 능글맞은 웃음을 띠고 머리꽂이를 받았다. 그리고 태자는 시간이 났을 때 바로 은방울꽃궁으로 향했다. 마침 어린 태자비는 검 수련이 끝났는지 다리 위에 금을 올리고 앉아서 한 음 한 음 성실하게 잡아보고 있었다. 

"금을 익히고 있었소, 나의 비?"
"전하."

밥 때가 되면 아직 어린 태자비가 외롭게 밥상을 받지 않도록 항상 태자가 직접 찾아와서 함께 밥을 먹고, 밤이 되면 또 태자가 품에 안고 토닥이며 재웠더니 어린 태자비는 태자에게 정이 담뿍 들었는지 태자를 볼 때마다 눈을 반짝였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어서 무릎 위에 올리고 있던 금을 내려놓은 어린 태자비는 쪼르르 태자에게 다가와서 폭 안겼다. 

"아직 석반 때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오셨습니까?"

아직 키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고개를 꺾어야 태자와 눈을 맞출 수 있는 어린 태자비를 배려해서 태자가 자리에 앉자 태자비는 태자의 무릎 위가 당연한 제자리라는 듯 다리 위에 올라앉으며 방글방글 웃었다. 

"나의 비가 금을 익히고 있다고 해서 부족한 솜씨지만 도움이 될까 해서 와 봤소."
"아직 음만 짚어보는 수준입니다."
"은방울꽃궁에 있는 교본은 아주 초급 교본이라 음의 위치를 익히는 법만 나와있지만, 이 교본에는..."

태자는 곡이 짧고 음의 변화가 많지 않은 곡들만 있는 초급용 연주 교본을 내밀었다. 

"비교적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있소. 내가 어릴 때 금을 익힐 때 사용했던 교본인데, 이걸 보겠소?"

어린 태자비는 조막만한 손으로 교본을 펼치더니 입을 앙다물고 집중하며 곡을 하나하나 살폈다. 태자는 그런 태자비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태자비가 곡을 살펴보는 동안 해당하는 곡을 낮게 콧노래로 불러 주었다. 태자가 딱히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일은 없어서 노래 실력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태자비는 태자가 부르는 콧노래가 마음에 드는지 눈을 반짝거리고 입을 반쯤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태자는 초급 교본에 있는 곡을 하나하나 다 들려준 다음에 태자비에게 물었다. 

"무슨 노래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린 태자비가 태자를 폭 끌어안아서 말이 끊기고 말았다. 태자가 오늘도 청룡이 함께 장식된 은방울꽃 머리꽂이를 꽂고 있는 태자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 품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렇소?"
"귀가 막... 간질간질합니다. 노래소리가 너무 예뻐서 마음이 녹는 것 같고, 가슴이 콩닥콩닥합니다."
"나의 비가 내 노래를 좋아해줄 줄 알았다면 자주 불러볼 걸 그랬소. 오늘부터라도 자장가를 불러줄까? 어떻소?"

반색할 줄 알았는데 어린 비는 눈썹을 귀엽게 모으고 한참 낑낑 고민하다가 고개를 반짝 들고 태자를 올려다봤다. 

"전하께서 이렇게 멋진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시면 너무 설레서 잠을 못 잘 것 같습니다."
"나의 비가 못 잔다면 노래를 부르면 안 되겠군."

그랬더니 어린 태자비는 충격을 받은 건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자를 바라봤다. 

"잘 때가 아니면 괜찮습니다."

다시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까 봐 놀랐는지 예쁜 눈동자가 흔들흔들거리고 있었다. 

"알았소. 그대가 잠들어야 할 때가 아니면 자주 불러주겠소."

그럼 지금 노래를 더 듣고 싶다고 눈을 반짝거리는 어린 비가 너무 귀여워서 태자는 금을 가르치는 대신 어린 비를 앉혀 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성장 중인 아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노랫말이 예쁘고 노래 내용도 서정적이고 밝은 곡들로 골라서 불러주자 태자비는 태자의 무릎에 앉아서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태자가 금을 뜯으며 노래를 불러주자 금에게 태자의 무릎 위를 양보한 태자비는 입까지 반쯤 벌리고 몽롱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태자의 연주를 눈 앞에서 보고 한껏 감동한 태자비가 자기도 금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이틀에 한 번씩 태자가 직접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타국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검 수련하려 금 익히랴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하기는 싫어서 검과 금을 하루씩 번갈아 수련하자고 약속했다. 태자의 예상대로 부인에게 태자가 직접 머리꽂이를 하사하자 아몬은 바로 태자궁을 방문했고, 흔쾌히 어린 태자비의 검 수련을 맡겠다고 해 준 덕분에 태자비는 하루는 금을 타며 손가락을 혹사하고, 하루는 검을 잡으며 손을 혹사했다. 그러나 태자가 밤마다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인 작은 손과 손가락에 약을 발라줄 때마다 검을 배우고 금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재잘재잘하는 것을 보면 차마 쉬엄쉬엄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잘하는 것이 많은 아이에게 뭔가를 배워 볼 기회도 주지 않고 방치했던 연국의 왕에게 분노가 치밀고, 이 착하고 재주많은 아이를 자기 침상을 데울 애동으로만 살게 하려 했던 풍국의 노망난 늙은이에게 살심이 치솟았지만, 본인이 이미 그런 미래는 바꾸었으니 문제가 없으리라고, 태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제 욕심이 불러올 불러올 화를 생각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이는 언제나 있는 법이라. 

태자비가 검을 수련하는 날이라서 아몬이 도착한 걸 보고 태자궁으로 돌아와서 장계를 읽고 있을 때였다. 태자궁의 총관태감이 굳은 얼굴로 찾아왔다. 

"풍국에서 사신단을 보냈습니다."
"풍국에서? 무슨 일로?"
"풍국 황제 숙부의 정혼자를 뺴돌려 태자 전하께서 비로 맞으신 것에 대해 항의를 표하러 왔답니다."

태자에게서 순식간에 살기가 뿜어져 매섭게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총관태감은 숨통을 틀어막는 듯한 강력한 살기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