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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15:03
나오나오로 보고싶으면 잡혀갈거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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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같은 놈과 바람같은 놈의 조합이긴 했지. 그래서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았던거고. 위압감을 주는 커다란 풍채와는 다르게 기척없이 다니는 겐지가 드나드는 곳이 어딘지, 뒤축을 꺾어신은 스니커를 직직 끌고 다니며 나 여기있소-표시내는 제시가 드나들지 않는 곳은 없어서. 오래도록 살을 부대낀 관계면서도 깊이감 없는 사이. 

겐지가 제시의 집에 들어가는 걸 본건 우연이었지. 작게 분탕질을 치는 무리 중 하나였음. 워낙 조무래기들이라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은 그들에게 꼬리가 잡힐 줄은 몰랐던거. 급습이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한참이나 지나 제시의 집에서 나오는 겐지는 들어갈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지. 차림이나 흐트러짐이 하나 없는 몸가짐은 같았지만 정사의 냄새가 짙어서.

숨을 죽인 무리가 한동안이나 둘 주변을 맴돌았지만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둘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아 고작 하룻밤이었나, 하고 포기할 무렵. 이제는 제시가 겐지의 집으로 들어가는걸 확인했음. 그리고 겐지의 집에서 나오는 제시는 그날의 겐지와는 달랐지. 벗어젖힌 모피와 목덜미가 다 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울긋불긋한 정사의 흔적. 말리지 못한 금발은 색이 짙었고,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티셔츠에 얼룩처럼 남았음.

월척이다. 
천하의 제시가 쿠로사키회 이인자인 쿠키 겐지의 정부?

세력을 확장하기엔 더 없는 먹잇감이라고 생각됐겠지. 무리는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음. 하지만 제시의 위력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 괜한 이목을 집중시켰다간 마이티무리가 엮이게 돼. 조용하고 침착하게 진척시켜야지. 밤이 몹시도 길던 어느날. 여느때처럼 술에 취한 제시가 스니커를 바로 신을 틈조차 없었음. 숫자 앞에는 장사가 없어서 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무리에게 끌려갔지. 물론 제시를 붙잡는 덴 클로로폼도 한몫했을 테고.

발가벗겨지는 것도, 윤간을 당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얻어 맞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어. 다만 제시의 화를 돋운 건 다름아닌 자기와 그 목석같은 놈을 연결시켰다는 거. 처음엔 헛웃음이,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미칠 것 같아. 이 내가, 천하의 제시가 쿠키 겐지의 정부다? 하하-시발. 지나가던 개새끼가 웃겠군.

자길 먹잇감으로 그자를 불러들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 같은데. 만에 하나라도 이 자리에 그 귀신같은 놈이 온다면 혀를 물고 자살할 생각이었지. 감히? 누가 누구를 구해? 그가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자기는 정말로 그의 정부가 되는 꼴이잖아. 그것만은 두눈 뜨고 볼 수 없지. 그러면서도 당연히 그가 오지 않을 것을 알았으니까 마음이 편안했을 지도 몰라. 그자와 자기가 나눈 거라곤 몸 뿐이라.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을 걸. 그 얼굴을 상상하니까 웃음이 터졌지. 곧 발길질이 날아왔지만.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중 하나였지. 늘 이겨내긴 했지만. 추위도 잊을 만큼 몇 번이고 자기를 겁탈하는 남자들의 눈을 똑똑히 바라보는 제시였을 거임. 그 눈빛이 께름해 주먹을 올리고 거꾸로 엎드리게 해 처박기도 했으니까. 기별을 넣은게 벌써 언젠데. 자기 정부가 더럽게 돌려져서 죽는 꼴이라도 보고 싶은 건가. 쿠키 겐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

그 시간이 길어질동안 제시역시 지쳐가고 있었음. 혀를 물고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이젠 치욕스럽기까지해. 늘 자기주도하에 원하는 관계를 맺었지, 이런 건 자기 사전에 없어. 게다가 이 모든 게 그 자 때문이다? 한 놈의 혀를 잘라놓을듯 깨물어 입엔 단단히 재갈이 물렸고. 그 덕에 이젠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어. 끔찍한 일은 계속이었고, 오지 않는 겐지가 원망스러울 지경에 이르르자 제시 있는 힘 없는 힘을 끌어모아 콘크리트 바닥에 대가릴 처박았음. 고작 목숨을 구걸하고자 떠오른 게 그자라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속눈썹조차도 꿈틀거릴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제시를 두고 무리는 떠나갔지. 제시는 퉁퉁부어 감기지도 않는 눈동자에 그들을 담았어. 하나, 둘, 셋...모두 일곱. 내 숨통을 끊어놓지 않고 간걸 후회하게 해주지. 모든 감각이 무뎌졌지만 고통은 여전해서 누군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을 거야. 닫히지 않은 시선, 흐릿한 시야 끝에 닿은 발이 보이자 움칠, 몸이 떨려. 다시 돌아온건가. 하지만 곧 상처투성이의 맨살에 닿은 옷감의 감촉에 제시 코웃음을 쳤음. 

겐지는 한번도 이 남자가 작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지. 단단하고 날랜 몸이라 여겼고, 그건 자기와 살을 섞을 때도 마찬가지였음. 하지만 온갖 오물과 쓰레기더미 사이에 알몸으로 웅크린 상처투성이의 제시는 너무 작아서 가슴 깊은 곳에서 끓는 신음을 참기 어려웠겠다. 무릎을 꿇어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겨내고, 하오리를 벗어 문신보다 상처가 가득한 몸을 덮었음. 그리고 쿠키 겐지에게 어울리지 않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제시를 안아올렸지. 닿는 곳마다 고통이라 단단히 묶어 상처투성이가 된 입술 사이로 앓는 소리가 흘렀음. 비릿한 짐승들의 냄새가 미간을 찌푸리게 했지. 쇄골근처에 닿은 끊어질 것 같지만 희미한 숨결로 그가 살아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안도하는 겐지였지.

안도, 안도라. 

하지만 곧 목덜미에 닿는 따끔한 동통에 걸음을 멈추었음. 주먹질도, 그렇다고 발길질도 할 수 없는 제시가 내지르는 최대한의 감정표현이 고작 이정도라 겐지의 마음이 이상했을 거임. 누구 하나 피투성이로 만들며 숨통을 끊어놓을 수도 있을 만큼 뾰족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알아. 그렇지만 기껏 통각을 느끼게 하는 입질이 다라니. 게다가 그건 이제서야 걸음을 한 자기 탓을 하는 것 같았겠지. 제시가 정신을 놓으며 금발. 자그마한 머리통의 무게가 느껴졌고, 겐지는 천천히 멈추었던 걸음을 옮겼어. 

-네 정부를 데리고 있다.

겐지의 눈썹이 꿈틀거렸지. 정부? 나한테 그런게 있었던가. 더 들을 이유도, 필요도 없어 칼을 꺼내려 했지. 귀찮은 건 베어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앞에 선 자가 던진 옷을 보고서야 아아-엄지로 밀어올렸던 칼을 내리는 겐지였어. 여기서 죽어버리면 뒤를 밟는데 시간이 소요되니까.

-잘못 짚었군.

한마디 말로 돌아서는 겐지였지. 그리곤 입이 무거운 심복하나를 붙여 뒤를 밟긴 했어. 구하러 간다? 그자가 듣는다면 코웃음칠게 분명해. 다만 상황이 돌아가는 건 알아야하니까. 하지만 겐지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판에 생각이 깊어졌지. 보고받은 사진 속의 제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짓밟히고 있는 중이라. 그자의 자존심에 발길을 하면 안될 것도 알지. 게다가 자기 정부 취급을 당한 마당에.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보기엔 꼴이 말이 아니라 결단을 내려야했음.

마이티에서 제시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리기로 했지.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라 몇날며칠 보이지 않는대도 찾질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을 물리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 그리고 일러두었지. 제시를 죽이려는 낌새가 보이거든 살려두지 말라고. 

성한 곳이 없어 닦고, 씻기는 중에도 어디에 손을 대야할지 모를 지경이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제시를 깨끗하게 닦아 두툼한 요 위에 눕히고서야 겐지의 느릿한 한숨이 새어나왔음. 불덩이처럼 끓는 나체. 그 위에 아로새겨진 상처와 흉터들. 와중에도 고통을 삼키느라 끊어질 것 같은 숨소리로 앓기만 하는 제시의 터진 입술에 그제야 인정하고 마는 겐지였지. 이 자의 손에 죽는 한이 있었대도 구하러 감이 맞았다고. 구한다고? 과연 누가 누구를.

끄으-탁성을 뱉으며 눈을 떴을 때 아프지 않은 곳을 찾은 게 빨랐을 거야. 제시는 가슴까지 덮어진 이불을 끌어내리며 몸을 일으켰지. 앓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걸 참느라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어야 했음. 깨끗하고 하얀 이불이며, 아래에 깔린 요는 상처에서 나온 진물이며 피로 얼룩덜룩. 그제야 여기가 겐지의 집임을 알아차렸지.

객을 눕혀놓고 주인은 어딜 간거야. 상처가 심한 곳엔 붕대가 요령있게 감겨있었음. 제시는 기듯이 겐지의 옷장 앞으로 가서 하오리 하나를 끌어내렸어. 자기는 옷이랄 것을 입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 집 주인의 옷이라도 빌려야지. 펄펄 열이 끓는 몸을 일으켜 소매를 끼우고 비틀거리며 일어선 제시의 모습은 산송장 같았겠다. 간신히 출입문 앞까지 걸어온 제시는 요란하게 나동그라졌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음.

집으로 가서 장전을 해야지. 일곱이었으니까 총알을 더 챙겨야겠어. 포를 뜨고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지만 살려두기엔 인내심이 짧아서. 당장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야했지. 제시는 몸부림치느라 발톱이 빠져버린 발을 내려다 보았음. 여긴 내 신발도 없지. 하지만 고민은 짧지 않았음. 맨발로 바닥을 딛고 걸음을 떼려는 순간 문이 열려.

사람보다 지독한 피냄새가 먼저. 그리고 피를 뒤집어 쓴 야차같은 겐지를 보고 입꼬리를 비트는 제시였어. 이자의 칼을 알아. 망설임이 없고 말끔하지. 헌데 이 꼴을 좀 봐. 늘 반듯하게 빗어넘긴 머리도 핏물을 뒤집어써 이마 위로 쏟아져 있었고, 새하얗던 깃은 제 빛을 잃고 붉은 색인지 오래인 것 같았지. 기다란 옷 끝으로도 아직 마르지 못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음. 눈치가 잰 편이었지, 제시는. 으득, 이를 깨문 제시가 겐지를 노려보았음. 감히 네깟 놈이 먼저 선수를 쳐? 

-무슨 짓을 한거야.

겐지라고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천치는 아니었지. 도륙이나 다름없었을 거임. 한번에 베어내면 단숨에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손을 가졌으면서도 그러지 않았지. 

-잘못을, 바로 잡았다. 
-...하! 

시키지도 않은 짓을. 순간 제시의 몸이 휘청였고, 겐지가 날랜 손으로 제실 붙들었지. 제시는 탁, 소리가 거세도록 자기 몸뚱일 붙든 겐지의 손을 쳐냈어. 끈적한 피가 손등에 옮겨붙었고 미간이 좁아졌지. 이제 피라면 지긋지긋해.

-씻기나 해. 피냄새 역겨우니까. 

하오리 끝을 여민 제시가 등을 돌렸고, 도로 자기가 누웠던 방을 향해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음. 비록 곧이라도 쓰러질듯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였지만 오만했지. 겐지는 피가 잔뜩 묻은 손을 접으며 조소를 숨기지 못했어. 어쩜 자신은 저 발 밑에 납작 엎드릴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잘못짚었군.
자기에게 찾아온 자에게 뱉었던 말이 떠올랐어.

쿠키 겐지의 정부는 제시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제시의 정부는 쿠키 겐지 저였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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