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41748474
view 2920
2023.05.08 14:30
https://hygall.com/537899554
너는 왜 나를 잊지 않았지?
장철한은 등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공준에게 물었다.
"... 모르겠어. 나한테는 너 밖에 없어서일지도."
그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장철한은 알고 있었다. 그가 묻고 싶은 말을.
너는... 왜 나를 잊었어?
하지만 그 질문의 대한 대답은 해 줄 수 없다. 그건 장철한 스스로도 알고 싶었다.
장철한은 젖은 이마를 이불에 비비며 말했다.
"밤이잖아. 사람들은 보통 밤에 잠을 자."
"응."
공준의 입술이 장철한의 벗은 등에 닿았다. 그의 입술은 그의 체온만큼 뜨거워 마치 낙인을 새기듯 온 몸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너는 왜 안 자?"
"...네가 사라질까 봐."
장철한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지 않아. 너와 사흘을 있겠다고 약속했지."
장철한이 펼친 세개의 손가락을, 공준이 부드럽게 잡아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줘."
왜 사흘이어야 해? 함께 더 있을 수는 없어?"
"그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야. 내가 바꿀 수는 없어."
장철한은 몸을 돌려 공준을 쳐다봤다. 짙은 눈빛에 서린 슬픔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잠시간 쳐다보던 장철한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자 그 아픔에 공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무엇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오랜 그리움으로 기다렸다 만난 이었기에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실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
무엇을?
다시 태어나면 너의 연인이 되겠다고 했지만 사실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날 지는 나도 몰라.
무엇이 되어도 좋아. 기다릴테니까. 꼭 와야 해. 그것이면 돼...
장철한은 웃음으로 대답을 했다. 다정한 사람.
그리고는 두 손으로 공준의 얼굴을 잡고 당겨 입을 맞췄다.
그 날이 오기까지 둘은 지극히 평범하게 지냈다.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커다란 눈이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담는 모습을 공준은 옆에서 지켜봤다. 간간히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고 추울까 옷 단추를 여며주며 그가 자신을 쳐다봐줄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을 봤고 그가 식사를 만들 동안 장철한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공준은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는 꼭 한 접시에만 담았다. 양으로 봤을 때는 성인 한 사람분이었다.
그리고는 직접 장철한에게 음식을 먹여줬다. 사실 장철한은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을 알아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맛있어?
응.
입 안에 든 고기를 씹으며 장철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공준도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다음 음식을 들고는 그가 음식을 삼키기를 기다렸다.
장철한은 음식을 오래 씹었다. 낯선 느낌을 억누르며 그가 해 준 친절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 장철한을 공준은 재촉하지 않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켜봤다.
삼키느라 목울대가 움직이면 물컵을 내밀었다. 그가 물을 마시면 또 다시 입가로 음식을 가져왔다.
내가 다 먹길 기다릴 필요없어. 너 먹어.
그렇게 말을 해도 공준은 듣지 않고 장철한이 음식을 먹는 걸 지켜봤다. 두 사람은 한입씩 번갈아 먹으며 시간을 들여 음식을 비웠다.
그의 행동은 마치 소중한 아기새에게 모이를 먹이는 어미같았다. 장철한은 그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내버려두기로 했다.
긴 식사가 끝나고 공준은 커피와 차를 내려 장철한의 앞에 내려놨다.
장철한이 차를 고르자 커피는 자연스럽게 공준에게로 갔다.
두 사람은 별 말이 없었다. 입은 조용했지만 감정의 교류는 멈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서로를 얽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차를 한모금 마신 장철한이 눈썹을 올리며 향이 좋다고 말하자 공준이 테이블에 놓인 그의 손을 덮었다.
커다란 손은 상대적으로 작은 장철한의 손을 가렸다. 그 모습을 장철한은 눈에 담았다.
겹쳐진 두사람의 손을 보다가, 그의 얇고 긴 손가락을 감상하고는 다시 정돈이 잘 된 그의 손톱을 보게 되고, 또 따뜻한 손의 온도를 느끼게 된다.
자신의 손을 관찰하는 그를 공준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손가락으로 그의 손마디를 천천히 쓸었다.
하루종일 함께 있지만 부족할 만큼 행복했다. 잠을 자는 것도 아까울 정도였다.
이 공간에 그가 있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처음부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장철한은 음식을 조금 밖에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그의 맑은 눈동자는 뭔가를 보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이 말을 하는 모습이 어색했던 걸까. 몇 번이고 자신의 성대를 느끼듯 목을 만졌다. 듣기 좋은 목소리지만 많이 들려주지는 않았다. 공준은 그를 안을 때 나오는 신음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그의 하얀 목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장철한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옷 사이로 흐리게 남은 그 흔적이 보였다. 지난 밤의 열기는 아직도 몸에 남아있다. 공준은 커피잔을 세게 쥐고는 숨을 고르게 쉬려고 애썼다.
그의 변화를, 장철한은 예민하게 알아챘다.
왜 그래?
공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커피가 뜨거워서.
장철한은 커피를 한번 쳐다보고는 공준을 봤다.
한참 지난 커피가 아직까지 뜨거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장철한은 남은 차를 들이켰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공준은 잠시도 그의 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확인을 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시계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심장을 조여오는 불안감에 결국 집 안의 시계들을 전부 감추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 모습도 장철한은 조용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장철한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따르리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빚이 그렇게 시켰다.
그가 입맞춤을 해 왔을때도 받아들였다. 그가 자신을 안았을 때도 거부하지 않았다. 고통과 쾌감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때도 자신이 떠나고 나서 다칠 그의 마음을 생각했다. 혼자 견뎌온 긴 외로움을 위로하고 싶었다.
필요없는 식사도, 잠도 그가 해주는대로 지냈다.
그렇게하면 그가 기뻐할 것 같아서.
그렇게하면 그를 두고가는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랬는데.
"왜...우는거야?"
공준이 말할때까지도 장철한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놀란 건 장철한 쪽이었다.
얼굴을 더듬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만져졌다.
"왜 울어?"
그러게. 왜 울까.
"여기가 자꾸 아파."
장철한은 가슴 쪽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자 공준이 의자에서 일어나 장철한의 손을 잡고는 그를 당겨 소파에 앉았다. 공준은 장철한의 등 뒤에 앉아 두 팔로 그를 감싸고는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정情이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순수한 감정이라고...완전하고 안락한 느낌이 따라온다고 알고 있었어. 그리고 누구에게도 고통이나 아픔을 초래하지 않고...그 대신에 기쁨을 가져다 준다고."
지금 이 감정은 온전한 기쁨만은 없다. 오히려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장철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아. 이 곳이 계속 아파. 고통스러워. 그럼 이건 사랑이 아니라는 건가?"
이 질문은 공준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아니 그 보다도 더 위에 있을 존재에게 물었다.
나는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준 적이 없는데.
없어졌어. 사라져버렸어. 비어버렸어...
그래서 아파. 빈 자리가 아파.
"....난 정말 모르겠어."
장철한은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너의 부드러운 눈빛을 이제 못 볼까봐?
결국 외로웠던 건 나였다는 걸 깨달아서?
아니면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두 사람의 이별이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인가.
그런 생각도 안할만큼, 마음 속 깊게 묻어놓았는데.
답을 낼 수 없는 질문들이 회오리처럼 바람을 만들어 머리 속을 울린다.
공준이 몸을 돌려 장철한의 눈물을 훔치고는 그를 안았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좋은 향이 났다. 같이 씻고 같이 잠드는 사이 두 사람에게는 같은 향이 났다. 분명 그리워하게 될 향.
"나도 같아. 너를 사랑하는만큼 아파."
하지만 나는 이 고통도 행복해. 너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넘기는 그의 손가락이 다정하다. 장철한은 생각을 없애듯 그의 목에 이마를 비비며 말했다.
"목욕을 하고 싶어."
마지막으로, 란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물을 받고 올게. 조그만 기다려."
"응"
"로온."
"응?
네가 주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야?
너의 마음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와. 이 가슴 속이 너로 가득해. 따뜻하고 포근해...
너는 어떻게 이런 걸 할 수 있지?
"나만 그런게 아냐. 너도 나에게 주고 있어."
공준은 고개를 숙여 장철한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펼쳐진 그의 손바닥에 사랑愛이란 글자를 썼다.
"사랑해."
공준의 다정한 말에 장철한은 눈을 감았다.
나는 사랑을 몰라.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이 사랑이라면, 이 원인은 너야. 너를 떠올리면 따뜻함과 동시에 고통도 같이 오지.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아픈걸까. 너는 이걸 천년동안 홀로 견디고 있었을까.
그럼 그 모든 걸 나는 어떻게 갚아야하지...
공준은 셔츠를 걷고, 이미 깨끗한 욕조를 다시 씻고는 물을 틀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한 목욕제를 풀었다.
어떤 것도 그를 위한 것에 손을 놓지 않고 정성을 들였다. 혹시라도 이런 것이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미련을 만들어 자신의 곁에 남아주지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때문이었다. 그를 붙들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자신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장철한은 자신과 다르게 천년을 살아온 신이었고 그가 보고 느끼는 세상은 자신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사흘이란 약속이 어떤 구속을 가지는지도 몰랐다. 그가 말했지만....약속을 깰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신神이니까. 깨고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 것이기를.
그래. 그는 신神이니까 할 수 있을거라고, 공준은 속으로 빌었다. 아주 간절하게.
목욕준비를 마치고 마른 타월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나갔을 때-
소파에 앉아있던 장철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귀에 이명이 울렸다. 불안한 예감이 온 몸을 감쌌다
공준은 방을, 베란다를, 집 안 곳곳을 뛰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떠난거야? 인사도 없이?
다리에 힘이 풀린 공준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바람에 거친 숨을 내뱉었다. 뜯겨지듯 아파오는 가슴에 눈물이 차 올랐다. 차라리 시간을 확인할 걸.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것이라면 헤어지는 시간을 재고 있을 걸.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컵만이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걸 증명했다. 북받치는 감정에 공준은 몸을 숙이고 토하듯 울다가 심한 기침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를 품에서 놓지 말걸 그랬어.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걸.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이 남았다. 그가 떠난 자리는 텅 비었다. 꿈이길 바라며 그가 다시 돌아오길 공준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장철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은 또 다시 이별을 했다.
일년 후 공준은 장철한을 만났던 그 곳을 다시 찾았다. 사실 그와 헤어지고 몸을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아파 누워있던 날을 빼놓고, 공준은 한동안 매일같이 그곳을 찾았다. 때로는 몇 시간, 때로는 하루종일.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 스치는 바람도, 자신의 머리 위를 나는 새들도. 혹시나 그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무엇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기다림은 병을 만들었다. 긴 입원생활이 지나고 날짜를 세어보니 그와 헤어진지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른 몸을 끌고 산 위로 올라갔다. 산 길은 정비가 잘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옷을 여미고는, 끝자락에 가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는 이 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이 곳에 서서 천년의 세상을 보고 있었을까. 세상을 품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공준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었다.
기한이 없는 기다림이라 하더라도, 그가 약속을 했으니 지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꿈 꿀 것이다.
그 때, 뒤에서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머리 속을 생생하게 파고 들었다.
몸을 돌리자 한 부부가 아이를 달래며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니까."
아이를 달래는 엄마가 말을 해도 아이는 울면서 자꾸 한 쪽을 가리켰다. 결국 부부는 공준이 서 있던 쪽으로 오며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쪽으로는 더 못 가. 낭떠러지야."
그러자 칭얼대던 아이의 울음이 멈췄다.
"겨우 그쳤네. 여기에 오고 싶어서 그렇게나 울었어?"
엄마가 웃으면서 손수건을 꺼내는 동안 아빠가 대신 아이를 안았다. 그러면서 공준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이가 어깨 너머로 작은 손을 뻗더니 갑자기 공준의 옷을 붙잡았다. 눈물로 얼룩덜룩한 아이의 커다란 눈이 공준을 쳐다봤다. 당황한 공준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아이의 부모는 깜짝 놀라며 공준에게서 아이의 손을 뗐다. 그러자 아이는 더 크게 울며 바둥거렸다. 부모가 공준에게 사과를 하고는 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몸부림을 쳤다.
"대체 왜 이러지? 왜 하루종일 우는지 모르겠네...."
아이 엄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아이의 손은 계속 공준 쪽을 향해 있었다. 부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준은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이는 그의 손을 꽉 붙잡고는 눈물을 멈췄다. 작은 손은 믿기지 않는 힘으로 그를 놓지 않았다.
심장의 고동이 귀에 울렸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세상에 자신과 아이만이 남은 것 같았다.
공준이 두 손을 천천히 벌리자 아이가 부모 품에서 벗어나 공준의 목에 매달렸다. 공준은 당황한 부모를 두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 그러자 아이가 공준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 아이가 눈물로 더러워진 얼굴로 그의 옷을 더럽히니 부모는 경악했지만 공준은 그런 걸 신경쓸 여유따윈 없었다.
아이의 몸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공준은 떨리는 감정을 숨겼다. 숨을 고르게 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를 불러봤다.
".....아슈?"
목을 잡고 있는 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는 작은 손을 들어 굳어있는 공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공준은 놀란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맑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는 푸른 점이 있었는데 그건 언뜻 보면- 믿을 수 없겠지만- 사랑愛이라는 글자로 보였다.
숨이 벅차올라 가슴이 뻐근했다.
이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공준은 평생을 살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너였어.
나를 잊지 않았구나. 약속을 지켜줬어.
뜨거운 눈물이 맺히면서 공준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아이도 같이 웃었다.
장철한은 그가 없다면 성불하지 못하고 컴컴한 중유를 외롭게 떠돌아다니는 고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난다는 것은 고통의 시작이다. 장철한은 그것을 끊고 도피안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에 남아있는 그의 존재는 장철한에게 윤회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다시 유(有)하려는 욕구, 생(生)하려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서로를 마음에 담고 손가락을 걸었던 영원의 맹세.
헤어짐은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이루고 싶은 그리움은 기적을 부르고 미소 짓는 결과를 가져왔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8천 겁의 인연.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한 조각 심장만으로 부둥켜안은 사랑.
생을 돌아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객행자서
준저
너는 왜 나를 잊지 않았지?
장철한은 등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공준에게 물었다.
"... 모르겠어. 나한테는 너 밖에 없어서일지도."
그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장철한은 알고 있었다. 그가 묻고 싶은 말을.
너는... 왜 나를 잊었어?
하지만 그 질문의 대한 대답은 해 줄 수 없다. 그건 장철한 스스로도 알고 싶었다.
장철한은 젖은 이마를 이불에 비비며 말했다.
"밤이잖아. 사람들은 보통 밤에 잠을 자."
"응."
공준의 입술이 장철한의 벗은 등에 닿았다. 그의 입술은 그의 체온만큼 뜨거워 마치 낙인을 새기듯 온 몸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너는 왜 안 자?"
"...네가 사라질까 봐."
장철한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지 않아. 너와 사흘을 있겠다고 약속했지."
장철한이 펼친 세개의 손가락을, 공준이 부드럽게 잡아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줘."
왜 사흘이어야 해? 함께 더 있을 수는 없어?"
"그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야. 내가 바꿀 수는 없어."
장철한은 몸을 돌려 공준을 쳐다봤다. 짙은 눈빛에 서린 슬픔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잠시간 쳐다보던 장철한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자 그 아픔에 공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무엇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오랜 그리움으로 기다렸다 만난 이었기에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실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
무엇을?
다시 태어나면 너의 연인이 되겠다고 했지만 사실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날 지는 나도 몰라.
무엇이 되어도 좋아. 기다릴테니까. 꼭 와야 해. 그것이면 돼...
장철한은 웃음으로 대답을 했다. 다정한 사람.
그리고는 두 손으로 공준의 얼굴을 잡고 당겨 입을 맞췄다.
그 날이 오기까지 둘은 지극히 평범하게 지냈다.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커다란 눈이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담는 모습을 공준은 옆에서 지켜봤다. 간간히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고 추울까 옷 단추를 여며주며 그가 자신을 쳐다봐줄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을 봤고 그가 식사를 만들 동안 장철한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공준은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는 꼭 한 접시에만 담았다. 양으로 봤을 때는 성인 한 사람분이었다.
그리고는 직접 장철한에게 음식을 먹여줬다. 사실 장철한은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을 알아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맛있어?
응.
입 안에 든 고기를 씹으며 장철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공준도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다음 음식을 들고는 그가 음식을 삼키기를 기다렸다.
장철한은 음식을 오래 씹었다. 낯선 느낌을 억누르며 그가 해 준 친절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 장철한을 공준은 재촉하지 않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켜봤다.
삼키느라 목울대가 움직이면 물컵을 내밀었다. 그가 물을 마시면 또 다시 입가로 음식을 가져왔다.
내가 다 먹길 기다릴 필요없어. 너 먹어.
그렇게 말을 해도 공준은 듣지 않고 장철한이 음식을 먹는 걸 지켜봤다. 두 사람은 한입씩 번갈아 먹으며 시간을 들여 음식을 비웠다.
그의 행동은 마치 소중한 아기새에게 모이를 먹이는 어미같았다. 장철한은 그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내버려두기로 했다.
긴 식사가 끝나고 공준은 커피와 차를 내려 장철한의 앞에 내려놨다.
장철한이 차를 고르자 커피는 자연스럽게 공준에게로 갔다.
두 사람은 별 말이 없었다. 입은 조용했지만 감정의 교류는 멈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서로를 얽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차를 한모금 마신 장철한이 눈썹을 올리며 향이 좋다고 말하자 공준이 테이블에 놓인 그의 손을 덮었다.
커다란 손은 상대적으로 작은 장철한의 손을 가렸다. 그 모습을 장철한은 눈에 담았다.
겹쳐진 두사람의 손을 보다가, 그의 얇고 긴 손가락을 감상하고는 다시 정돈이 잘 된 그의 손톱을 보게 되고, 또 따뜻한 손의 온도를 느끼게 된다.
자신의 손을 관찰하는 그를 공준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손가락으로 그의 손마디를 천천히 쓸었다.
하루종일 함께 있지만 부족할 만큼 행복했다. 잠을 자는 것도 아까울 정도였다.
이 공간에 그가 있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처음부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장철한은 음식을 조금 밖에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그의 맑은 눈동자는 뭔가를 보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이 말을 하는 모습이 어색했던 걸까. 몇 번이고 자신의 성대를 느끼듯 목을 만졌다. 듣기 좋은 목소리지만 많이 들려주지는 않았다. 공준은 그를 안을 때 나오는 신음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그의 하얀 목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장철한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옷 사이로 흐리게 남은 그 흔적이 보였다. 지난 밤의 열기는 아직도 몸에 남아있다. 공준은 커피잔을 세게 쥐고는 숨을 고르게 쉬려고 애썼다.
그의 변화를, 장철한은 예민하게 알아챘다.
왜 그래?
공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커피가 뜨거워서.
장철한은 커피를 한번 쳐다보고는 공준을 봤다.
한참 지난 커피가 아직까지 뜨거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장철한은 남은 차를 들이켰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공준은 잠시도 그의 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확인을 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시계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심장을 조여오는 불안감에 결국 집 안의 시계들을 전부 감추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 모습도 장철한은 조용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장철한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따르리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빚이 그렇게 시켰다.
그가 입맞춤을 해 왔을때도 받아들였다. 그가 자신을 안았을 때도 거부하지 않았다. 고통과 쾌감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때도 자신이 떠나고 나서 다칠 그의 마음을 생각했다. 혼자 견뎌온 긴 외로움을 위로하고 싶었다.
필요없는 식사도, 잠도 그가 해주는대로 지냈다.
그렇게하면 그가 기뻐할 것 같아서.
그렇게하면 그를 두고가는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랬는데.
"왜...우는거야?"
공준이 말할때까지도 장철한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놀란 건 장철한 쪽이었다.
얼굴을 더듬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만져졌다.
"왜 울어?"
그러게. 왜 울까.
"여기가 자꾸 아파."
장철한은 가슴 쪽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자 공준이 의자에서 일어나 장철한의 손을 잡고는 그를 당겨 소파에 앉았다. 공준은 장철한의 등 뒤에 앉아 두 팔로 그를 감싸고는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정情이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순수한 감정이라고...완전하고 안락한 느낌이 따라온다고 알고 있었어. 그리고 누구에게도 고통이나 아픔을 초래하지 않고...그 대신에 기쁨을 가져다 준다고."
지금 이 감정은 온전한 기쁨만은 없다. 오히려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장철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아. 이 곳이 계속 아파. 고통스러워. 그럼 이건 사랑이 아니라는 건가?"
이 질문은 공준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아니 그 보다도 더 위에 있을 존재에게 물었다.
나는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준 적이 없는데.
없어졌어. 사라져버렸어. 비어버렸어...
그래서 아파. 빈 자리가 아파.
"....난 정말 모르겠어."
장철한은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너의 부드러운 눈빛을 이제 못 볼까봐?
결국 외로웠던 건 나였다는 걸 깨달아서?
아니면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두 사람의 이별이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인가.
그런 생각도 안할만큼, 마음 속 깊게 묻어놓았는데.
답을 낼 수 없는 질문들이 회오리처럼 바람을 만들어 머리 속을 울린다.
공준이 몸을 돌려 장철한의 눈물을 훔치고는 그를 안았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좋은 향이 났다. 같이 씻고 같이 잠드는 사이 두 사람에게는 같은 향이 났다. 분명 그리워하게 될 향.
"나도 같아. 너를 사랑하는만큼 아파."
하지만 나는 이 고통도 행복해. 너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넘기는 그의 손가락이 다정하다. 장철한은 생각을 없애듯 그의 목에 이마를 비비며 말했다.
"목욕을 하고 싶어."
마지막으로, 란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물을 받고 올게. 조그만 기다려."
"응"
"로온."
"응?
네가 주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야?
너의 마음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와. 이 가슴 속이 너로 가득해. 따뜻하고 포근해...
너는 어떻게 이런 걸 할 수 있지?
"나만 그런게 아냐. 너도 나에게 주고 있어."
공준은 고개를 숙여 장철한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펼쳐진 그의 손바닥에 사랑愛이란 글자를 썼다.
"사랑해."
공준의 다정한 말에 장철한은 눈을 감았다.
나는 사랑을 몰라.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이 사랑이라면, 이 원인은 너야. 너를 떠올리면 따뜻함과 동시에 고통도 같이 오지.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아픈걸까. 너는 이걸 천년동안 홀로 견디고 있었을까.
그럼 그 모든 걸 나는 어떻게 갚아야하지...
공준은 셔츠를 걷고, 이미 깨끗한 욕조를 다시 씻고는 물을 틀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한 목욕제를 풀었다.
어떤 것도 그를 위한 것에 손을 놓지 않고 정성을 들였다. 혹시라도 이런 것이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미련을 만들어 자신의 곁에 남아주지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때문이었다. 그를 붙들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자신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장철한은 자신과 다르게 천년을 살아온 신이었고 그가 보고 느끼는 세상은 자신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사흘이란 약속이 어떤 구속을 가지는지도 몰랐다. 그가 말했지만....약속을 깰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신神이니까. 깨고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 것이기를.
그래. 그는 신神이니까 할 수 있을거라고, 공준은 속으로 빌었다. 아주 간절하게.
목욕준비를 마치고 마른 타월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나갔을 때-
소파에 앉아있던 장철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귀에 이명이 울렸다. 불안한 예감이 온 몸을 감쌌다
공준은 방을, 베란다를, 집 안 곳곳을 뛰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떠난거야? 인사도 없이?
다리에 힘이 풀린 공준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바람에 거친 숨을 내뱉었다. 뜯겨지듯 아파오는 가슴에 눈물이 차 올랐다. 차라리 시간을 확인할 걸.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것이라면 헤어지는 시간을 재고 있을 걸.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컵만이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걸 증명했다. 북받치는 감정에 공준은 몸을 숙이고 토하듯 울다가 심한 기침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를 품에서 놓지 말걸 그랬어.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걸.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이 남았다. 그가 떠난 자리는 텅 비었다. 꿈이길 바라며 그가 다시 돌아오길 공준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장철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은 또 다시 이별을 했다.
일년 후 공준은 장철한을 만났던 그 곳을 다시 찾았다. 사실 그와 헤어지고 몸을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아파 누워있던 날을 빼놓고, 공준은 한동안 매일같이 그곳을 찾았다. 때로는 몇 시간, 때로는 하루종일.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 스치는 바람도, 자신의 머리 위를 나는 새들도. 혹시나 그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무엇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기다림은 병을 만들었다. 긴 입원생활이 지나고 날짜를 세어보니 그와 헤어진지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른 몸을 끌고 산 위로 올라갔다. 산 길은 정비가 잘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옷을 여미고는, 끝자락에 가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는 이 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이 곳에 서서 천년의 세상을 보고 있었을까. 세상을 품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공준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었다.
기한이 없는 기다림이라 하더라도, 그가 약속을 했으니 지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꿈 꿀 것이다.
그 때, 뒤에서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머리 속을 생생하게 파고 들었다.
몸을 돌리자 한 부부가 아이를 달래며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니까."
아이를 달래는 엄마가 말을 해도 아이는 울면서 자꾸 한 쪽을 가리켰다. 결국 부부는 공준이 서 있던 쪽으로 오며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쪽으로는 더 못 가. 낭떠러지야."
그러자 칭얼대던 아이의 울음이 멈췄다.
"겨우 그쳤네. 여기에 오고 싶어서 그렇게나 울었어?"
엄마가 웃으면서 손수건을 꺼내는 동안 아빠가 대신 아이를 안았다. 그러면서 공준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이가 어깨 너머로 작은 손을 뻗더니 갑자기 공준의 옷을 붙잡았다. 눈물로 얼룩덜룩한 아이의 커다란 눈이 공준을 쳐다봤다. 당황한 공준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아이의 부모는 깜짝 놀라며 공준에게서 아이의 손을 뗐다. 그러자 아이는 더 크게 울며 바둥거렸다. 부모가 공준에게 사과를 하고는 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몸부림을 쳤다.
"대체 왜 이러지? 왜 하루종일 우는지 모르겠네...."
아이 엄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아이의 손은 계속 공준 쪽을 향해 있었다. 부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준은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이는 그의 손을 꽉 붙잡고는 눈물을 멈췄다. 작은 손은 믿기지 않는 힘으로 그를 놓지 않았다.
심장의 고동이 귀에 울렸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세상에 자신과 아이만이 남은 것 같았다.
공준이 두 손을 천천히 벌리자 아이가 부모 품에서 벗어나 공준의 목에 매달렸다. 공준은 당황한 부모를 두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 그러자 아이가 공준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 아이가 눈물로 더러워진 얼굴로 그의 옷을 더럽히니 부모는 경악했지만 공준은 그런 걸 신경쓸 여유따윈 없었다.
아이의 몸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공준은 떨리는 감정을 숨겼다. 숨을 고르게 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를 불러봤다.
".....아슈?"
목을 잡고 있는 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는 작은 손을 들어 굳어있는 공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공준은 놀란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맑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는 푸른 점이 있었는데 그건 언뜻 보면- 믿을 수 없겠지만- 사랑愛이라는 글자로 보였다.
숨이 벅차올라 가슴이 뻐근했다.
이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공준은 평생을 살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너였어.
나를 잊지 않았구나. 약속을 지켜줬어.
뜨거운 눈물이 맺히면서 공준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아이도 같이 웃었다.
장철한은 그가 없다면 성불하지 못하고 컴컴한 중유를 외롭게 떠돌아다니는 고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난다는 것은 고통의 시작이다. 장철한은 그것을 끊고 도피안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에 남아있는 그의 존재는 장철한에게 윤회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다시 유(有)하려는 욕구, 생(生)하려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서로를 마음에 담고 손가락을 걸었던 영원의 맹세.
헤어짐은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이루고 싶은 그리움은 기적을 부르고 미소 짓는 결과를 가져왔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8천 겁의 인연.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한 조각 심장만으로 부둥켜안은 사랑.
생을 돌아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객행자서
준저
https://hygall.com/541748474
[Code: 64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