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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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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 더워 죽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공준은 내 무릎을 베고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는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거 맛있어?"

"응?"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자 깊고 진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니가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

공준이 내가 먹고 있던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먹어볼래?"

"응."

공준은 거절하지 않고 커다란 손으로 내 손목을 감싸더니 입으로 가져가 아이스크림을 베어먹었다. 입을 대지 않은 쪽이 아닌, 내가 먹었던 곳을.
나는 얼른 눈을 돌려 앞의 나무들을 바라봤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공준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맛있다."

"너 다 먹어."

"그럼 미안하니까 같이 먹어. 그리고 있다가 집에 갈 때 다시 사줄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 그러자고 했다.
나는 공준이 먹었던 부분이 아닌 곳을 새로운 곳을 베어물었다. 내 영역은 이쪽이라고 표시하듯. 내가 먹자마자 다시 공준은 내 손목을 잡고 끌어내려 내가 먹었던 곳을 베어물었다.
여기서 왜 자꾸 같은 곳을 먹어? 라고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난 결벽증 따윈 없다. 친구들과 같은 숟가락을 써도 같은 스트로를 써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건 어쩔 수 없을 때나 하지, 일부러 같은 곳을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친구라면.




공준이 다 먹은 나무막대기를 핥고는 숲 속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나는 나무막대기가 떨어진 곳을 한번 보고는 팔짱을 끼고 등을 더 깊숙히 나무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그늘은 선선했고 바람까지 불어 딱 좋은 느낌이었다.

귓가에 낯선 간질거림을 느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철한아."

"음."

"머리 많이 길었네."

"음."

"여자애같아."

"....."

작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눈을 뜨지 않았다. 내 허벅지에 올려진 공준의 머리가 위치를 바꾸느라 움직였다.

"이대로 기를거야?"

"아니."

"너 약간 곱슬끼가 있네. 알고 있었어?"

"아니."

공준이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며 살짝 잡아당겼다. 아프지 않았지만 목에 닿는 그의 손가락이 신경쓰인건 사실이었다.

".....예쁘다."

나는 눈을 뜨고 공준을 내려다봤다. 공준도 한참 지분거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췄다.

"이상한 말 하지마."

나는 그의 손가락을 치우며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뭐가 이상해."

"그런건 네 여자친구한테나 가서 말해."

"나 헤어졌어."

"뭐? 언제?"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어보자 공준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아까 내가 축구하면서 넘어져 흙이 묻은 곳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대답했다.

"저번 주."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킥킥대고 웃었다. 사귄다는 소리도 뜬금없었는데 이렇게 금방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하긴...학교에서도 제일 예쁘기로 소문난 ㅇㅇ는 공준에게 과분했을지도 모른다.

"왜 헤어졌어? 아니다. 차였지? 너 하는 거 보면 차이고도 남지."

"척하면 딱이군요."

공준은 흙을 다 털고는 다시 몸을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척하면 척이겠지."

"그게 그거지 뭐."

나는 그의 눈동자를 길게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그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속을 다 들킬 것 같은 불안감.

꺼낼 용기가 없다면 영원히 감추고 살아야한다. 맞서지 못하고 등을 돌려 도망가버리는, 나는 그런 약해빠진 성격이었다.

나는 흘러내린 머리를 넘기며 다시 나무에 머리를 기댔다.

"철한아."

"음."

"오늘은 나랑 같이 가자. ㅇㅇ들이랑 가지 말고."

"음."

"내일도 같이 가자."

"......"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가."

나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얇게 뜬 눈으로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봤다.

바람이 불어 시원한데 공준이 누워있는 다리 쪽은 뜨거웠다.

그래. 지금 입에서 나와버린 이 작은 한숨은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고 치자. 가슴 속에 작은 요정이 들어가 북을 치 듯 쉴새없이 콩닥거리는 것도...그런 이유라고 치자.


변한 것은 없고 변할 것도 없다.


그저 우리 앞에 놓여진 계절만이 달라질 뿐이었다.






준저
지음비
공준장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