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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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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과 같은 종족을 몇 번 만난적이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우호적으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경계를 했다. 하지만 첫만남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려온 이는 처음이었다.

온객행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를 쳐다봤다.

"혹시 교미 상대를 찾고 있어? "

"....교미?"

생소한 말이었다. 그 말을 입안에 굴려 작게 따라 내뱉고나서야 얼굴이 확 붉어졌다.
온객행의 반응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목치는 말을 이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가 마침 발정을 했거든. 상대를 찾고 있던 참인데 딱 너를 만났네. 어때? "

"어떻냐니.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랑 색사를 하지 않겠냐는 말이야."

연목치는 온객행이 답답했다. 시간을 끌지 않고 빨리 이야기를 결론을 짓고 싶었다. 얼굴 한쪽면에 연하게 올라온 비늘을 긁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목치의 말투는 마침 맛있는 과일이 있는데 한번 먹어보겠냐는 듯 너무도 가벼웠다.

그 때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쿡쿡 찔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색사'라는 말이 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온객행은 입을 꾸욱 다문채 고개를 젓고는 다시 연목치를 쳐다봤다. 연목치의 시선이 주자서로 옮겨가기 전에 소매를 펼쳐 주자서를 가리면서 차를 들었다.

"사양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뒤에 그 아이는...동생인가? 아주 예쁘게 생겼네."

온객행은 그의 입에 주자서가 오르는게 싫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차를 홀짝였다. 적당히 무시를 하면 그가 떠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목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온객행의 마음을 잡기위해 구미가 당길만한 것들을 나열했다.

"내가 아주 아끼는 아이거든. 걔도 정말 예뻐. 너도 마음에 들거야. 교미가 끝나면 그래, 뭐가 필요하지? 돈, 보석? 원하는 것은 다 줄게."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거듭 사양을 해도 그는 도무지 자리를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 먼저 떠날 채비를 했다. 주자서에게는 이걸 나중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온객행은 이 사람이 도가 지나치고 말이 통하질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건 연목치도 같은 생각이었다.

몇 번이고 부드럽게 달래보았지만 벽에게 떠드는 기분이었다. 화가 났지만 지금 아쉬운 쪽은 자신이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떠드는 중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발정향을 뿜어대는 걸 보면 너도 괴로울텐데 왜 거절하는거야?"

"발정향?"

계속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던 온객행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 봤다. 소매를 들어 냄새까진 맡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코를 킁킁 거렸다.

의외라는 듯 연목치의 눈이 살짝 커지며 물었다.

"아....혹시 발정이 처음이야? 사방에서 네가 풀어놓은 냄새가 나. 그래서 내가 너를 찾았고."

몸이 힘들었을텐데, 몰랐나보네.

이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연목치는 웃으면서 접부채를 탁자 위에 놓여진 온객행의 손등에 댔다. 부드러웠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 난 사람을 꽤 잘 보거든. 내 아이는 너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아. 이것 봐. 열이 이렇게나 올라 있으면서... 아랫도리가 뻐근하지 않아? 참지 않아도 된다고. 신방은 바로 이 다루 위에 차려놨어."

온객행은 손등에 올려진 접부채를 내려다봤다. 가볍게 놓인 듯한 부채는 온객행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누르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몸이 굳었다는걸 주자서가 눈치를 챘는지 얼굴을 등에 대고 비볐다.

온객행은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끼는 사람이라면...본인이 상대를 하는게 낫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진작에 내가 품었지. 유감스럽게도, 난 여인의 몸이야."

연목치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내의 몸을 한 여인이라면, 그럼 쌍성인가. 하늘을 거스르는 부정을 저지르면 그렇게 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저 온화한 표정 아래로 그는 대체 어떤 중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온객행은 그가 지닌 힘에 대항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가까이해선 안되었다. 적으로 돌리게 되면 자신은 물론 주자서까지 위험했다.

"이만 갈 길이 바빠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연목치가 내는 한숨을 무시하고 온객행은 부채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슈, 일어나. 가자."

그 때였다.

연목치가 접부채를 펴 흔들었고 바람이 주자서 쪽으로 날아왔다.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고 뒤를 따르던 주자서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연목치를 쳐다봤다.
아주 신기한 걸 본 눈빛이었다. 풍쟁에 그려진 눈을 봤을 때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연목치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부채를 부치며 주자서를 쳐다봤다.
주자서가 연목치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여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그의 얼굴을 핥았다. 당황한 건 온객행과 연목치였다.

연목치는 앉은 자리에서 팔짝 뛰었고,
온객행은 주자서를 두 손으로 감싸며 끌어당겨 제 몸에 바짝 붙였다.

"뭐...뭐야?! 너! 미친거야?"

연목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냈다.

"....."

정작 돌발적인 행동을 한 주자서는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며 온객행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제멋대로 얼굴을 핥고는 한번도 아니고 네 다섯번이나 게워낼 듯 헛구역질을 하는 주자서를 보며 연목치는 기분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너나 쟤나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상당하구나."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듯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연목치는 화를 냈다. 외모와 달리 여인의 목소리로 날카롭게 화를 내는 그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동생은... 몸과 달리 정신이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구역질을 하는 주자서를 보고 연목치도 토사물이 묻을까 걱정하며 더 이상 온객행을 잡지 않았다.
온객행은 정신을 차리지못하는 주자서를 품에 안고 한참을 달려 사람들이 없는 뒷골목에 몸을 숨겼다.

얼마 후 주자서는 토기가 가라앉고 다시 건강해졌다. 온객행이 땀에 젖은 이마를 닦고 차가운 물을 먹이자 제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전에 없이 초조한 기분이었다.
온객행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를 쳐다봤다.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어?"

이 말을 꺼내는 마음이 옹졸하다. 유치하고 우스웠다.

주자서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 그런 짓을 한거야."

아까 일을 다시 떠올리자니 다시 속이 끓었다. 온객행의 싸늘한 표정을 본 주자서는 코를 두드렸다.

'향.'

"냄새?"

끄덕끄덕.

다루를 가리키며 코를 두드리는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을 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온객행은 알 수 없었다.


----


산 입구에서부터 주자서의 손을 놓고 온객행은 앞서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좀처럼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이전에 겪었던 일을 잊은 것처럼 주자서는 아무에게나 다가가선 안됐다.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르는 척했다. 주자서는 발이 빠른 온객행을 따라잡기어려워했다. 슬쩍 돌아보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화가 났다. 주자서가 연목치의 얼굴을 핥던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억누르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른다. 목 주위를 조여오는 옷이 답답했다. 온객행은 생각을 떨쳐내듯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서 돌아온 이후 온객행의 태도는 꽤 쌀쌀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평소처럼 무릎에 올라타려다가 싸늘한 시선을 받은 후 주자서는 그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무서웠다.

더이상 식사도 먹여주지 않았고 목욕도 함께 하지 않았다. 잠을 잘 때조차 그는 다른 곳에서 잤다. 허전함에 자다가 몸을 일으켜보면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온객행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확인하지 않아도 그가 깨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을 해도 서로의 시야에 있는데, 그럼에도 그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서러움이 쌓여만 갔지만 그의 화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주자서는 몰랐다.

하루종일 온객행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풍쟁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와 떨어진 거리에서 풍쟁을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와 젖으면 찢어진다고 했으니 하늘이 맑은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펼쳤다.

이어진 줄을 적당히 풀고 팔짝팔짝 뛰며 한참을 풍쟁을 던지다가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


주자서는 안절부절 풍쟁을 쳐다봤다. 이대로 내려와주면 좋을텐데, 풍쟁은 떨어질 듯 말 듯하며 계속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주자서는 등을 돌린 채 약초를 캐는 온객행을 한번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풍쟁을 따라갔다.

그의 도움없이 어떻게든 제 힘으로 잡고 싶다. 잃고 싶지 않았다. 그 하얀 새처럼 놓쳐버리게 되면 다시 볼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

멀리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었지만 주자서는 마음이 바빴다. 발을 멈출 여유따위는 없었다.



----



풀들이 밟히는 소리에 뒤돌아본 온객행은 깜짝 놀라 멀어지는 주자서를 불렀다. 그가 달리는 방향으로 풍쟁이 꼬리를 흔들며 날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눈에 보였다.
온객행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슈! 기다려!"

그가 다칠까봐 걱정이 됐다.
작은 다람쥐처럼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피해 달리는 뒷모습을 보며 몇 번이나 마음을 졸였다.
지나간 자리에 조금씩 피가 떨어져있었다. 또 맨발로 뛰었으니 분명 상처가 생긴 것이리라. 얼른 그를 붙잡아 진정시켜야했다.


평소대로라면 그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멀어지는지 모르겠다. 연목치가 말한 발정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놈의 열이 하루종일 올랐다 내렸다하며 체력을 빼앗아버리니 맥아리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쫓아도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다. 온객행은 이를 악물고 쫓기 시작했다. 이마의 땀방울이 흩어진다. 조금만 더. 눈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하늘거리는 그의 옷에 곧 손이 닿을 것 같았다.


그 때였다.
주자서가 지면을 밟으며 가볍게 발을 튕기자 몸이 허공에 떴다. 주자서는 스스로가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 계속 달리듯이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옷이 내려가며 쫓던 온객행의 시야를 가렸다.

이대로라면 그를 놓치고 만다.

온객행은 가까운 바위를 딛고 뛰어올라 주자서의 가느다란 발목을 잡았다.

떨어지면서 그가 다치지 않도록 머리를 감싸고 몸을 돌려 아래로 향했다. 쿵-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바닥에 떨어졌다.

조용한 숲 속에 거친 숨소리만이 울렸다. 그를 잡았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 듯 했다. 온객행은 한쪽 팔을 이마에 얹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가 하늘을 날았다....마치 천녀가 하늘로 되돌아가 듯이.

온객행의 가슴 위에 엎드린채 가만히 있던 주자서가 몸을 일으켜 그를 내려다봤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응시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

날다.

주자서의 손짓이 말했다. 아름다운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방금 있던 일을 바쁘게 손으로 표현했다.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온객행은 눈물을 꾹 참고 주자서의 코 끝을 긁으며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객행자서
메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