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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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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같으면 주자서를 업고 사냥을 하는 것 쯤 온객행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나른하고 양다리가 무겁다. 그를 업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온객행은 움직이면서도 나이든 노인처럼 중간중간 쉬어야 했다.
옆에서 주자서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런 온객행을 쳐다봤다.
"...괜찮아. 좀 피곤해서 그래."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온객행의 이마를 닦아줬다.
이렇게 땀을 흘리다니...지금까지 없던 일이었다. 온객행은 그 손길에 잠시 몸을 맡기고는 눈을 감았다.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바로 침상에 몸을 뉘였다. 잡은 건 겨우 토끼 한마리 뿐이었다. 누워도 걱정뿐이었다. 토끼를 미리 손질을 해놔야 있다가 밥을 먹일 수 있을텐데... 지금 누운 사이 그가 혼자 밖으로 나간다면? 지난 번 일로 결계를 더욱 강하게 쳐 사람들은 오지 못할테지만 그가 스스로 내려간다면 말이 달라진다.
걱정이 많은 온객행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아슈...이리 와..."
주자서는 후다닥 달려와 온객행의 목에 매달렸다.
그의 몸이 열이 오른 자신보다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그를 꼭 껴안으며 온객행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자고...같이 저녁을 먹자, 응? "
품 안에서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안심을 한 온객행은 자는 동안 그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두 팔로 단단히 그를 안고 누워 잠에 빠졌다.
온객행은 온 몸을 감싼 열기에 더이상 잠을 이룰 수 없어 눈을 떴다. 창 밖을 보니 어두컴컴했다.
옆을 보니 제 허리 근처에 주자서가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큰일이다. 잠에 빠져 지금 일어나고 말았다. 식사를 거른채 잠든 그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온객행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우선은 물을 들이켰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옷이 축축했다.
"아슈...일어나 봐."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자 주자서가 눈을 떴다.
무거운 눈을 비비며 늘 그랬듯이 온객행의 몸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몸이 자랐다지만 아직도 온객행보다 훨씬 작았고 가벼웠다.
"지금 호수에 갈거야, 같이 가자."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할 때 주자서는 언제나 그의 목에 매달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며 뭔가 재밌는 것이 없는가 살폈다. 꽃도 좋아했지만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호수 가운데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었다. 그곳에 주자서를 올려놓고 온객행은 바위 주위를 헤엄쳤다.
태어난 곳에서 여러 곳을 옮기며 이 곳에 정착한 이유는 이 호수 때문이었다. 작은 배를 띄울 정도로 큰 이 호수는 영험한 효능을 지닌 약수였다.
당시 부상을 입었던 온객행은 호수 덕분에 치료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 때문에 자주 놀랬던 주자서도 이 곳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뱀으로 변한 온객행이 호수 밑바닥을 향했다. 깊고 깜깜한 물 속에서는 뱀인지 용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거짓말처럼 몸 안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온객행은 아무것도 구속받지 않고 한참을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슈....?"
너럭바위에서 온객행이 잡아준 반딧불을 구경하고 있던 주자서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온객행은 사방을 살피며 그를 찾았다.
"아슈!"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듯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 때 작은 거품이 일더니 물 속에서 사람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주자서였다. 그가 얼굴의 물기를 털어내더니 온객행이 있는 곳으로 헤엄을 치며 다가왔다.
"너...언제부터 헤엄을 칠 수 있게 된거야?"
주자서는 웃으면서 온객행 주변을 돌았다. 그의 손엔 작은 물고기가 들렸는데 그걸 온객행에게 내밀며 먹으라고 건넸다. 받으려는 순간 물고기가 파드득 움직이더니 물 속으로 도망갔다. 다시 새로운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그를 온객행이 붙잡았다.
주자서는 자신이 헤엄을 칠 수 있게 된다면 그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혼자 서툴게 옷을 입거나 종이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려 온객행에게 갖다주면 그는 주자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줬다. 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은 전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왜 그래.'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주자서는 두 손으로 온객행의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몇 번이고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아슈..."
응?
"아슈."
응.
"나는...."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온객행은 그의 성장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눈높이로 자라는 것. 그렇게나 바라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두렵다.
"아주...잘했어. 이제 같이 물고기도 잡을 수 있게 됐잖아. 그치?"
주자서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혼자 멀리 가거나 깊은 곳에는 가지마, 알았지?"
온객행은 억지로 웃으며 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 달갑지 않은 감정이 목을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
탈피를 마친 주자서의 몸이 날이 지날수록 윤기를 더해갔다. 칠흙같이 긴 머리카락은 엉덩이를 덮었고 얼굴은 티끌 하나 없는 백옥처럼 빛이 났다. 키가 자란 것은 알고있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요염미가 더해져 예전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그에게 음식을 먹일 때 온객행의 손가락을 무는 붉은 입술이나 음식이 묻은 손가락을 핥는 혀의 놀림에 요즘들어 고민이 많은 온객행이었다.
곤란했다. 그것도 매우.
무엇이?
이 의문의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대답을 찾은 건 마을에 내려갔을 때였다.
몇 달 내내 만들어둔 말린 약초와 향감 등을 가지고 마을로 내려갔다. 물론 주자서와 함께였다. 지금까지는 혼자 다녀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그를 혼자두지 않았다.
사실 생활면에서 돈은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주자서에게 옷과 간식등을 사주려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했다. 다행인 것은 온객행이 가져오는 약초와 향감은 꽤 비싼 값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다 팔고나서는 구연완에게 서찰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쌀쌀해질테니 주자서의 겨울옷도 미리 몇 벌 샀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하게 토끼털을 옷감 안에 덧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살까?"
장난감이 늘어져있는 매대 앞에서 주자서는 풍쟁을 만지작거렸다. 마을 입구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 넋이 빠져있어 온객행이 그의 손을 잡고 가게로 온 것이었다. 용모양, 가오리모양, 나비 모양등으로 만들어진 풍쟁들에는 섬세하게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주자서의 눈을 끌었다.
나비 풍쟁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소년과 소녀가 손을 잡고 눈을 보고 있었다.
주자서가 손으로 함박눈을 가리키며 온객행을 쳐다봤다.
"그건 눈이야."
'눈?'
"추울 때 하늘에서 떨어져. 우리가 예전에 관곡지에서 살 때 눈이 내렸었어. 기억 안 나?"
하늘?
떨어져?
주자서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풍쟁을 쳐다봤다. 그는 과거의 기억 곳곳이 안개가 낀 것처럼 선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에 그려진 눈이라는 것이 마치 예전에 온객행이 잡아줬던 새의 깃털처럼 보였다. 손 안에 쏘옥 들어왔던 작고 보드라웠던 새. 한참을 갖은 정성을 들여 정을 주며 키웠다.
그 새는 온객행이 대나무살로 만들어 준 새장에서 꺼내자마자 힘껏 날개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우는 동안 온객행이 새를 다시 잡아왔지만 주자서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 새는 같은 새가 아니었으니까.
"아슈, 그게 맘에 들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값을 지불할 동안 주자서는 풍쟁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눈. 눈. 눈.
가게를 나온 후 온객행과 주자서는 다루에 들러 요기를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좋아?"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 먹고나면 집에 돌아가서 날려보자."
자리에 앉아 차림표를 보고는 주문을 했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데 온객행은 그 날 이후로 자꾸만 목이 타고 땀이 났다. 온객행은 냉차를 주문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간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주자서는 풍쟁을 보고 있었다. 온객행은 그를 위해 과일이 들어간 탕수이를 시켰다. 풍쟁에 정신이 빠진 그의 입에 온객행은 탕수이를 넣어주며 간간히 수건으로 입을 닦아줬다. 작은 입이 오물오물 삼키는 모습이 귀여웠다.
반쯤 먹었을 때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기운은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와 기를 느끼는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즉, 일부러 기를 풀어낸 것이었다. 버릇처럼 온객행은 주자서를 자신의 등 뒤로 보내고는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첫 인사가 무례했기때문에 좋은 눈빛으로 볼 수 없었다.
분주한 다루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공을 들여 만든 자수가 놓여진 옥빛 장포를 걸친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접부채를 흔들며 마음대로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부채에 매달린 홍옥이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새빨갰다.
주자서는 온객행 뒤에 숨어서 옷자락을 움켜쥐고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혼비백산해 다시 온객행 등 뒤로 숨었다.
"나는 연목치라고 하네."
칼날같은 눈빛을 한 우아한 남자는, 외모와 달리 여인의 목소리를 내었다. 숨어있는 주자서조차 저 남자 뒤에 또 다른 여인이 있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연목치는 온객행과 주자서가 주고 받는 눈빛을 보면서 눈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게 경계하지 말고. 나도 자네와 똑같으니까."
연목치는 접부채를 활짝 펴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더니 입을 벌려 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객행자서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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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주자서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런 온객행을 쳐다봤다.
"...괜찮아. 좀 피곤해서 그래."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온객행의 이마를 닦아줬다.
이렇게 땀을 흘리다니...지금까지 없던 일이었다. 온객행은 그 손길에 잠시 몸을 맡기고는 눈을 감았다.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바로 침상에 몸을 뉘였다. 잡은 건 겨우 토끼 한마리 뿐이었다. 누워도 걱정뿐이었다. 토끼를 미리 손질을 해놔야 있다가 밥을 먹일 수 있을텐데... 지금 누운 사이 그가 혼자 밖으로 나간다면? 지난 번 일로 결계를 더욱 강하게 쳐 사람들은 오지 못할테지만 그가 스스로 내려간다면 말이 달라진다.
걱정이 많은 온객행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아슈...이리 와..."
주자서는 후다닥 달려와 온객행의 목에 매달렸다.
그의 몸이 열이 오른 자신보다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그를 꼭 껴안으며 온객행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자고...같이 저녁을 먹자, 응? "
품 안에서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안심을 한 온객행은 자는 동안 그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두 팔로 단단히 그를 안고 누워 잠에 빠졌다.
온객행은 온 몸을 감싼 열기에 더이상 잠을 이룰 수 없어 눈을 떴다. 창 밖을 보니 어두컴컴했다.
옆을 보니 제 허리 근처에 주자서가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큰일이다. 잠에 빠져 지금 일어나고 말았다. 식사를 거른채 잠든 그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온객행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우선은 물을 들이켰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옷이 축축했다.
"아슈...일어나 봐."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자 주자서가 눈을 떴다.
무거운 눈을 비비며 늘 그랬듯이 온객행의 몸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몸이 자랐다지만 아직도 온객행보다 훨씬 작았고 가벼웠다.
"지금 호수에 갈거야, 같이 가자."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할 때 주자서는 언제나 그의 목에 매달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며 뭔가 재밌는 것이 없는가 살폈다. 꽃도 좋아했지만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호수 가운데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었다. 그곳에 주자서를 올려놓고 온객행은 바위 주위를 헤엄쳤다.
태어난 곳에서 여러 곳을 옮기며 이 곳에 정착한 이유는 이 호수 때문이었다. 작은 배를 띄울 정도로 큰 이 호수는 영험한 효능을 지닌 약수였다.
당시 부상을 입었던 온객행은 호수 덕분에 치료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 때문에 자주 놀랬던 주자서도 이 곳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뱀으로 변한 온객행이 호수 밑바닥을 향했다. 깊고 깜깜한 물 속에서는 뱀인지 용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거짓말처럼 몸 안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온객행은 아무것도 구속받지 않고 한참을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슈....?"
너럭바위에서 온객행이 잡아준 반딧불을 구경하고 있던 주자서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온객행은 사방을 살피며 그를 찾았다.
"아슈!"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듯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 때 작은 거품이 일더니 물 속에서 사람의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주자서였다. 그가 얼굴의 물기를 털어내더니 온객행이 있는 곳으로 헤엄을 치며 다가왔다.
"너...언제부터 헤엄을 칠 수 있게 된거야?"
주자서는 웃으면서 온객행 주변을 돌았다. 그의 손엔 작은 물고기가 들렸는데 그걸 온객행에게 내밀며 먹으라고 건넸다. 받으려는 순간 물고기가 파드득 움직이더니 물 속으로 도망갔다. 다시 새로운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그를 온객행이 붙잡았다.
주자서는 자신이 헤엄을 칠 수 있게 된다면 그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혼자 서툴게 옷을 입거나 종이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려 온객행에게 갖다주면 그는 주자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줬다. 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은 전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왜 그래.'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주자서는 두 손으로 온객행의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몇 번이고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아슈..."
응?
"아슈."
응.
"나는...."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온객행은 그의 성장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눈높이로 자라는 것. 그렇게나 바라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두렵다.
"아주...잘했어. 이제 같이 물고기도 잡을 수 있게 됐잖아. 그치?"
주자서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혼자 멀리 가거나 깊은 곳에는 가지마, 알았지?"
온객행은 억지로 웃으며 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 달갑지 않은 감정이 목을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
탈피를 마친 주자서의 몸이 날이 지날수록 윤기를 더해갔다. 칠흙같이 긴 머리카락은 엉덩이를 덮었고 얼굴은 티끌 하나 없는 백옥처럼 빛이 났다. 키가 자란 것은 알고있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요염미가 더해져 예전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그에게 음식을 먹일 때 온객행의 손가락을 무는 붉은 입술이나 음식이 묻은 손가락을 핥는 혀의 놀림에 요즘들어 고민이 많은 온객행이었다.
곤란했다. 그것도 매우.
무엇이?
이 의문의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대답을 찾은 건 마을에 내려갔을 때였다.
몇 달 내내 만들어둔 말린 약초와 향감 등을 가지고 마을로 내려갔다. 물론 주자서와 함께였다. 지금까지는 혼자 다녀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그를 혼자두지 않았다.
사실 생활면에서 돈은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주자서에게 옷과 간식등을 사주려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했다. 다행인 것은 온객행이 가져오는 약초와 향감은 꽤 비싼 값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다 팔고나서는 구연완에게 서찰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쌀쌀해질테니 주자서의 겨울옷도 미리 몇 벌 샀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하게 토끼털을 옷감 안에 덧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살까?"
장난감이 늘어져있는 매대 앞에서 주자서는 풍쟁을 만지작거렸다. 마을 입구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 넋이 빠져있어 온객행이 그의 손을 잡고 가게로 온 것이었다. 용모양, 가오리모양, 나비 모양등으로 만들어진 풍쟁들에는 섬세하게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주자서의 눈을 끌었다.
나비 풍쟁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소년과 소녀가 손을 잡고 눈을 보고 있었다.
주자서가 손으로 함박눈을 가리키며 온객행을 쳐다봤다.
"그건 눈이야."
'눈?'
"추울 때 하늘에서 떨어져. 우리가 예전에 관곡지에서 살 때 눈이 내렸었어. 기억 안 나?"
하늘?
떨어져?
주자서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풍쟁을 쳐다봤다. 그는 과거의 기억 곳곳이 안개가 낀 것처럼 선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에 그려진 눈이라는 것이 마치 예전에 온객행이 잡아줬던 새의 깃털처럼 보였다. 손 안에 쏘옥 들어왔던 작고 보드라웠던 새. 한참을 갖은 정성을 들여 정을 주며 키웠다.
그 새는 온객행이 대나무살로 만들어 준 새장에서 꺼내자마자 힘껏 날개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우는 동안 온객행이 새를 다시 잡아왔지만 주자서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 새는 같은 새가 아니었으니까.
"아슈, 그게 맘에 들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값을 지불할 동안 주자서는 풍쟁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눈. 눈. 눈.
가게를 나온 후 온객행과 주자서는 다루에 들러 요기를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좋아?"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 먹고나면 집에 돌아가서 날려보자."
자리에 앉아 차림표를 보고는 주문을 했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데 온객행은 그 날 이후로 자꾸만 목이 타고 땀이 났다. 온객행은 냉차를 주문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간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주자서는 풍쟁을 보고 있었다. 온객행은 그를 위해 과일이 들어간 탕수이를 시켰다. 풍쟁에 정신이 빠진 그의 입에 온객행은 탕수이를 넣어주며 간간히 수건으로 입을 닦아줬다. 작은 입이 오물오물 삼키는 모습이 귀여웠다.
반쯤 먹었을 때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기운은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와 기를 느끼는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즉, 일부러 기를 풀어낸 것이었다. 버릇처럼 온객행은 주자서를 자신의 등 뒤로 보내고는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첫 인사가 무례했기때문에 좋은 눈빛으로 볼 수 없었다.
분주한 다루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공을 들여 만든 자수가 놓여진 옥빛 장포를 걸친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접부채를 흔들며 마음대로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부채에 매달린 홍옥이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새빨갰다.
주자서는 온객행 뒤에 숨어서 옷자락을 움켜쥐고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혼비백산해 다시 온객행 등 뒤로 숨었다.
"나는 연목치라고 하네."
칼날같은 눈빛을 한 우아한 남자는, 외모와 달리 여인의 목소리를 내었다. 숨어있는 주자서조차 저 남자 뒤에 또 다른 여인이 있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연목치는 온객행과 주자서가 주고 받는 눈빛을 보면서 눈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게 경계하지 말고. 나도 자네와 똑같으니까."
연목치는 접부채를 활짝 펴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더니 입을 벌려 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객행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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