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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2 07:21

 

근데 이제 들키면 큰일 나는 비밀을 가진 게 강징 뿐만 아니라 남망기, 남희신, 위무선 등등....

 

 

고통의 생지옥, 지극한 행복인 극락도 내 마음이 만들어내듯, 평온한 마음이 극락이며, 어지러운 마음이 지옥이다.

 

 

 

고소의 것이 아닌 다른 속세 상단의 장부를 엿본다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었지만, 고소의 종주로서 고소에 미칠 화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계 장로의 자식 중, 능구 수련에 힘을 쏟기보다는 향락에 빠져 수사로서의 이치를 잊어 속세로 쫓겨난 자가 있었다. 수진계에 손을 떼고 장로의 지원이 끊기자 그는 갑자기 자신만의 상단을 만들어 수진계와 속세 사이에서 자잘한 물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상단으로 사익을 취하는 것 까지는 남희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기에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딱히 손을 쓰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수사들이 쓰는 법기를 흉내낸 장난감이나 효염이 거의 없는 부적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서부터 상단의 몸집이 커지더니 속세의 여러 가문들이 상단에 바치는 패물의 수준이 도를 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부유했던 한 가문은 전재산을 탕진하여 딸을 첩으로 넘기고, 소가주였던 아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에 노비로 팔려 가 가주가 자살하는 꼴까지 일어났다. 어찌 된 일인가 알아보니 다름이 아니라 상단주가 고소의 이름을 가지고 독점하여 속세에 약초를 팔고 있었다. 통용되는 약초는 운심부지처 뒷산의 정기를 받고 자라난 약초여서 민간의 약초들보다 효능이 좋고, 그만큼 악용하면 중독되기도 쉬운 약초들이었다. 사실을 안 남희신은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고소는 약초를 가지고 사익을 추구하는 더러운 집단이 아니었기에 수진계의 다른 세가들에게조차 필요 이상으로 약초를 팔지 않았다. 그런데 운심부지처의 누군가, 혹은 그 외의 수진계 사람이 상단주와 결탁하여 남희신도 모르게 고소의 이름에 먹칠하면서 약초를 팔고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당장이라도 상단주를 잡아와 계편으로 벌을 주고, 잘못을 대질해야 마땅했지만, 그랬다가는 고소의 잘못을 낮낮히 알리는 꼴이었다. 아직 수진계의 다른 세가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때 조용히 처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직접 나설 수는 없고, 누군가에게 쉽게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희신은 문밖에 명을 기다리고 있는 수사에게 말하였다.

 

망기를 불러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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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는 추격과 쏟아지는 비를 피하여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한적하다 못해 곳곳에 거미줄이 처져 있는 낡은 절이었다. 게 아무도 없는 정적에서 오는 고요함이 편안했다. 촛불 하나 없이 적막하고 어두웠지만, 직전까지 화마 속에서 쏟아지는 검과 화살을 피하고, 사람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는 괴성을 피해 달려왔기에 곳곳에서 섬광이 보이고 탄내가 느껴졌다.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더딘 걸음을 이끌고 깊숙이 언덕을 올라 절의 안쪽에 명부전(冥府殿)이라는 현판이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깊숙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뭔가가 보여 걸음을 주츰거리자 때마침 와지끈 벽력 소리와 함께 벼락이 내리쳤다. 벼락에 지붕이 뚫렸고 가려졌던 불상의 얼굴이 드러났다. 언뜻 보이는 커다란 불상에 위압에 짓눌려 들고 있던 검을 떨구고 주저앉았다. 지장보살이라.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이었다. 공덕없이 삼독만을 쌓아온 저는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갈 게 분명했다. 허니, 의도치 않게 지장보살 앞에 선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헛웃음이 저절로 났다. 뚫린 지붕 위에서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기니 지독했던 탄내와 피가 씻기는 것 같았다. 곳곳에 베이고 찔린 자상에서 흐르는 피와 달리 화살이 박힌 어깻죽지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보아하니 독에 중독된 게 분명했다. 독이 더 퍼지기 전에 어깻죽지에 박힌 독화살을 뽑아내자 줄줄 흐르던 피는 울컥울컥 쏟아졌다. 막힌 독이 뚫린 듯 쏟아 내리는 피에 아무리 비에 씻겨도 비릿한 피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 떨군 검을 가지고 와 바닥에 꽂고 불상 밑에 기대어 앉았다. 더는 도망칠 힘이 없었다.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눈은 침침했다. 쓸데없었지만, 예전서부터 답을 알고자 한 의문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고, 평생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었다. 지옥을 관장한다는 지장보살조차도 확답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내려다보는 지장보살상과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이 생보다 더한 지옥이 존재하긴 합니까?”

 

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전보다 거세진 것 같았다. 고통과 번뇌뿐인 지옥같은 삶에 의미가 있을까. 정녕 쉼 없이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고 지옥에 남겠다는 지장보살조차도 악독하고 정을 버린 비열한 삶을 사는 저를 외면할 것이었다. 차가운 빗줄기에 차갑게 식어가는 몸이 벌벌 떨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지만, 녹슬고 지친 육신은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자꾸만 고꾸라지는데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식이라도 잃지 않으려 주먹을 꽉 쥐는 게 최선이었다.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최악이었기에 부디 아무도 절 안에 들어오지 않길 바랐으나, 되려 이를 농락하듯 굳게 닫힌 문은 이내 열리고 누군가 절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 쓰러져 중조차도 버리고 간 절에 기도를 드리러 온 불자일 리 없었다. 야속하게도 흘린 핏줄기를 따라 쫓아온 추적대일 것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검의 손잡이를 잡으니 날이 시퍼렇게 선 검에 무언가가 반짝하고 비춰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다. 근처에서 밝고, 노란 두 눈동자가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눈동자만 밝힌 채 멀리서 성큼 다가오는 존재는 그러나, 추적대가 아니었고, 사람도 아니었다. 온몸이 새하얀 털로 뒤덮인 거대한 짐승이었다. 피 냄새를 맡고 먹잇감을 찾으러 온 굶주린 짐승인가 싶었지만, 짐승은 가만히 서서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않고 빤히 바라만 보는 게 이상했다.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요수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산짐승도 아닌 게 절을 지키는 영험한 영물 같았다. 예상치 못한 낯선 존재의 등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처했다. 딱히 겨우 검을 들어 올린다 한들 죽일 수 없었고,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눈을 마주하고 대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빨렸다. 더는 검을 들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마지막 발악으로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날을 피해 물러설 줄 알았는데 짐승은 한치의 움직임이 없었고, 이내 바닥에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깊지는 않지만, 옆구리가 베이자 짐승은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릉거리며 가까이 다가와 검을 물어 멀리 던져 버렸다. 검을 뺏긴 충격에 몸이 크게 휘청거려 바닥에 엎어졌고 어깻죽지에서 피가 또다시 울컥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코앞에 화가 나 이빨을 드러낸 짐승이 있었음에도 눈이 점점 감기는 게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룬 것도, 지킨 것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후회막심한 삶이었다. 미물에게 물어뜯기는 최후라니. 퍼석한 자조를 흘리고 부디 미물이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흔적조차 남지 않게 싹싹 저를 먹어 치워주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차갑게 식어가던 몸은 온기가 가득한 털뭉치에 휩싸여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연유를 모르겠지만, 미물은 제가 해를 가했음에도 저를 잡아먹지 않고, 품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반항할 힘조차 없었기에 그저 털뭉치에 차갑고 떨리는 몸을 파묻었다.

 

 

한참을 사경을 헤매면서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흐릿한 오래된 추억을 엿보았다. 연꽃 내음이 가득한 호수 한 가운데서 유유히 떠 있는 나룻배에 몸을 기울이고 앉아 있는 저. 바로 앞에는 피리를 연주하는 사내와 연방을 서리하는 여인. 참으로도 그립고 그리웠던 이들의 화목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풍경이었으나,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시큰거렸다. 이것이 꿈임을 알기에 분명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 차마 부르지도, 손을 뻗지도 못하였다. 다가가지 못하고 찰나를 지켜보는 것만이 허락된 추억이었다. 그런데 멈추지 않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헛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따뜻했고 생생한 촉감이었다. 순간 폐부가 찢기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쿨럭거리며 내뱉는 숨에 붉은 덩어리들이 튀어나왔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피는 심지어 역류하여 눈과 코에서까지 흘러내리니 도저히 앞은 보이지 않고 불안했다. 뿌옇고 따가운 눈이 고통스러워 손으로 눈을 비비려 하였으나 누군가 손을 붙잡아 이를 막았다.

 

상처가 덧납니다.”

 

낮은 저음이 공간에 울렸다. 시야가 뿌옇고 흐릿했지만, 노란 눈이 더 밝게 빛났다. 누구냐고 물을 새도 없이 차가운 물수건이 눈을 감쌌다. 눈에서 흐르는 피를 닦고, 코와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는 손길이 섬세했다. 여전히 쿨럭거리며 숨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제 등을 쓰다듬으며 두들겨 주는 손길 또한 다정했다. 흰 털이 아닌, 절 내음과 같은 숲 향이 느껴지는 흰 장포가 어깨를 감싸고, 털이 아닌 살이 맞닿는 걸 느끼면서 감싸 안는 팔을 꽉 부여잡았다. 힘을 줄수록 빠져나가는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인가. 기이하지만, 밝게 빛나던 두 노란 눈은 도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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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가 넘었음에도 작게 불이 켜진 한실 안으로 남망기가 들어섰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남희신이 몸을 돌려 남망기와 마주했다. 날이 저물어 어둠이 짙은 밤이었지만, 형제의 두 눈은 노랗고 밝게 빛났다. 한 쌍의 밝은 눈이 고이 초승달처럼 접히더니 먼저 말을 꺼내었다.

 

망기, 고생 많았다. 일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인데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자리에 앉는 남희신에게서 한실과는 다른 향이 느껴졌다. 남희신이 태우는 백단향보다는 좀 더 무겁고 오래된 절향 같았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냄새로 남망기를 속일 수는 없었고, 남희신 또한 이를 모르리 없었다. 남망기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남희신을 바라보았다.

 

형장, 출타하셨다 돌아오신 겁니까?”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좀 전에 돌아왔단다.”

절에 다녀오신 겁니까?”

 

놀란 기색 없이 남희신은 순순히 빙긋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는 망기 너 또한 절에 다녀온 것 같구나.”

 

남망기는 눈을 내리깔고 붙잡은 피진에 힘을 주었다.

 

그저, 비를 피해 잠시 머물렀을 뿐입니다.”

 

남희신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묻지 않았다. 분명 남망기에게서는 절향 말고도 다른 향이 느껴졌음에도 말이다. 굳이 제 동생이 말하지 않는 것을 들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 또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쉬이 말할 수 있지 않았다. 뭣보다 남망기를 은밀히 보내어 처리했던 일에 대한 보고를 듣는 게 시급했다.

 

상단이 불타고, 상단주가 죽었다고 들었다. 망기 네가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보렴.

저 말고도 상단에 침입한 다른 이가 한 것이나, 신원이 불분명했습니다.”

“흠, 내심 그자의 정체를 모른다는 게 찝찝하구나. 그자가 고소에 화를 끼칠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남희신은 남망기에게 그 자가 정녕 누군지 가늠이 안 가냐고 다시 물었고 남망기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다소 확신을 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고소에는 해를 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걸 망기 네가 어떻게 확신하지?”

상단주외에는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이유라고 보기에는 어렵구나. 아무래도 몰래 수색대를 보내어 그자를 찾아야 할 것 같구나.”

 

남망기가 내리깐 눈을 들어 올렸다. 어둠에서도 밝게 빛나는 눈동자가 때마침 방 안으로 들어온 달빛에 빛나 더 밝게 빛났다.

 

제가 하겠습니다.”

 

남희신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망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망기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는 게 오랜만이었다. 내심 제가 그 자가 누군지 알지 못하도록 정체를 숨기는 것 같았다. 남희신이 허락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자, 남망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장께서는 방계의 장로쪽을 조사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지?”

 

운심부지처가 전소되었을 때 사라졌던 법기인 호쇄옥(濩灑玉)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초는 애초에 운심부지처에서 밀수되어왔던 게 아니라 상단에서 자라고 있었으며 이는 법기의 영기 덕분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법기는 회수하였느냐.”

“....못했습니다.”

 

꽉 부여잡고 있던 피진에 더 힘이 들어가 남망기의 손 위로 핏줄이 도드라지는 게 보였다. 남희신은 지금 제 동생이 뭔가 크게 숨기는 게 있다는 걸 확신하였다.

 

그럼 법기는 아직 상단에 남아 있는 것이냐?”

상단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법기 또한 제가 회수해오겠습니다.”

 

남희신이 핏줄이 도드라진 남망기의 손등 위로 손을 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망기야, 내가 네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구나.”

“.....아닙니다.”

“나는 네게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란다. 허나, 네 마음이 불편하게 둘 수는 없지.”

“..........”

무리하지 말고, 네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단다.”

, 형장,”

그리고 때가 되면 내게 말해줄 수 있길 바란다.”

 

남희신의 표정과 말은 부드러웠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남망기도 남희신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형제였다. 남망기가 남을 속이고 사익을 취하지 않는 자임을 누구보다도 남희신이 가장 잘 알았기에 넘어가 준 것이었다. 하지만, 남망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희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는 않은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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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따사한 볕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풍경을 보아하니 여전히 절 안이었다. 직전에 짐승을 보았고, 곁에 누군가가 계속 있었던 것 같은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손에 걸린 정체를 알 수 없는 패옥이 누군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누구길래 왜 저를 도와줬을까. 여전히 저를 내려다보기만 하는 지장보살상과 눈을 마주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거나 알아볼 여유도 없었고, 한시가 빨리 돌아가야 했다. 저 멀리 떨어진 검을 줍고 절 밖으로 빠르게 절 밖으로 나오니 밤새 내내 폭우가 쏟아졌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날이 밝았다. 절 밖의 산기슭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지만, 작은 민가조차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정신이 없어 이렇게나 험준한 곳인줄 몰랐는데 곳곳에 나무뿌리와 바위가 가득해 걸음을 딛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여전히 몸이 찌뿌둥하고 어지러워 걸음걸이는 비틀거리고 몸은 휘청거렸다. 힘겹게 나무뿌리를 피하고 돌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소저,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고개를 홱 돌리니 삿갓으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사내가 말을 끌고 있었다. 왠지 모를 기시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됐다고 답하였다. 완곡히 거절하였는데 사내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 경계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름 없는 떠돌이 의원입니다.”

“....도움이 필요 없다 하지 않았소.”

병자를 두고 지나치는 건 의원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지요.”

 

괜한 고집을 부릴 만큼 몸 상태가 여간 좋지 않긴 했다. 게다가 저는 검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는 보따리 짐만을 메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였다. 여차하면 검을 쓰면 됐기에 일단은 알겠다며 마을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긴장을 놓지 않고 여차하면 검을 뽑으려 하였지만, 사내는 딱히 말을 걸지도 귀찮게 굴지도 않았다. 게다가 한참을 걸릴 줄 알았던 길은 그러나 이곳 지리가 익숙한 듯한 사내가 완만한 길로 말을 이끌어 금세 작은 민가까지 도착하였다. 사내가 먼저 말에서 내리고 손을 내밀었으나 여인은 이를 잡지 않고 홀로 말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어깻죽지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짧게 신음을 냈다. 어깨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린 여인에게 사내는 작은 단약을 건넸다.

 

임시방편입니다. 독이 더는 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인은 놀란 눈으로 검에 힘을 주고 사내에게 말했다.

 

자네 어떻게 내가 독에 중독된 줄 아는 거지?”

어깻죽지에 푸른 혈관들이 크게 부풀러 올라 도드라져있습니다. 상태가 위급하니 치료를 할 수 있게 해주시지요.”

무엇을 믿고 자네에게 내 몸을 맡겨야 하지?”

 

사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섰다. 여인은 지푸린 인상을 더 크게 찌푸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지금 그 몸으로는 운몽까지 갈 수 없습니다.”

?”

 

흠칫 놀란 여인은 검을 들어 올려 사내의 목에 가져다 댔다. 날이 잔뜩 선 검에서는 살기가 가득 느껴졌다. 하지만, 사내는 이를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를 믿어주세요. 종주님께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검을 휘두르니 단단히 묵인 삿갓의 끈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평범하다 못해 아무런 특색이 없는 정말로 난생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 중 제 비밀을 아는 자는 극히 적었고, 이 낯선 자가 제 정체를 아는 건 여간일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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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ts로 강징이 여자인 걸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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