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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ygall.com/51278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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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0 21:04
향밀안봤음 노잼 캐붕 오타 띄어쓰기 맞춤법 소설체 퇴고안함 급전개 모두 ㅈㅇ
전편 https://hygall.com/512553145
“... 욱봉?”
전학생의 눈이 욱봉과 마찬가지로 동그래졌다. 느닷없이 마주친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기도 잠시, 전학생의 손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 담배를 발견한 욱봉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담배 꺼.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말투가 매서웠다. 전학생은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아무런 반항 없이 지시를 따랐다. 담배를 밟아서 끄고, 꽁초를 주워, 들고 있던 봉지에 담았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욱봉은 냄새를 빼기 위해 옷을 펄럭거리는 전학생을 보며 확신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 대체 몇 살 때부터 핀 거야? 욱봉이 어색하게 웃는 전학생을 향해 쏘아붙였다.
“여기서 담배 피지 마. 슈퍼 아저씨가 미성년자가 담배 피는 거 엄청 싫어해.”
전학생이 무어라 웅얼거렸다. 작은 소리를 놓친 욱봉이 뭐? 하고 묻자 전학생이 반복했다.
“나 미성년자 아니라고. 성인이야, 나.”
욱봉은 전학생을 비웃으려 했다. 슈퍼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본인이 성인이라고 주장하는 미성년자를 수없이 본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욱봉은 비웃지 못했다. 전학생이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짜야. 봐봐. 전학생이 주민등록증을 건네기 위해 거리를 좁혀왔다. 이에 전학생의 몸에 밴 담배냄새가 훅 끼쳤다. 아까보다는 낫지만 변함없이 독한 향이었다.
“좀 떨어져. 담배냄새 나.”
머쓱한지 전학생이 얼굴을 긁적이며 조금 멀어졌다. 욱봉은 제 손에 들어온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았다. 이름, 강징. 주민번호, ...... 욱봉이 주민등록증의 표면을 긁었다. 안 되네. 주민등록증에 박힌 마크를 문질렀다. 이것도 안 되네.
슈퍼 아저씨가 알려준 위조신분증 판별 방법을 다 썼음에도 주민등록증은 여전했다. 욱봉은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전학생을 느리게 훑어 내렸다. 사복을 입으니 교복을 입을 때보다는 성숙해보이지만... 욱봉은 제 주변의 성인을 떠올렸다. 부모의 농사일을 거드는 동네 누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량으로 사는 동네 형, 시내에 취직한 슈퍼 아저씨네 딸, 슈퍼 아저씨, 담임. 욱봉은 다시 전학생을 보았다. 뽀얀 게, 아무리 잘 쳐줘도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나보다 한 살이 많을 수 있지?
“그래도 여기서는 피지 마. 슈퍼까지 냄새나.”
“응.”
전학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욱봉은 전학생에게 주민등록증을 돌려주고는 별 말 없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슈퍼 앞에는 담배 연기를 발견하고 내팽개친 목장갑이 널브러져 있었다. 욱봉은 다시 정자에 드러누웠다. 밤하늘을 구경하려는 욱봉의 곁으로 전학생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넌 여기서 알바 하는 거야?”
“......”
“매일 저녁마다?”
“......”
“대단하다...”
정자의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전학생이 낮은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답이 없었음에도 기가 죽거나 상처 받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 주위에 담배를 파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밤하늘과 호수가 아름답다, 어쩌고저쩌고. 욱봉은 전학생을 끝까지 무시하려 했다. 이어진 질문만 아니면 그랬을 것이다.
“나 내일도 와도 돼?”
“안 돼.”
전학생이 입을 쭉 내밀었다. 올라가기만 할 것 같았던 입꼬리가 아래로 죽 내려왔다.
“왜?”
“귀찮아.”
“귀찮게 안 할게.”
지금 이러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뭘 귀찮게 안 한다는 건지. 급격히 피곤해진 욱봉은 몸을 일으켜 슈퍼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전학생은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진짜로 귀찮게 안 할게, 응? 욱봉은 네 존재 자체가 귀찮다며 대꾸하는 대신, 전학생의 코앞에서 문을 탁 닫았다. 전학생이 문을 두드렸다. 야-. 욱봉-. 질질 늘어지는 제 이름을 들으며, 욱봉은 슈퍼 아저씨가 가져다놓은 라디오를 켰다. 모르는 노래 사이사이로 전학생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나 내일도 온다, 알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욱봉은 계산대 아래 두었던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집중할 시간이었다.
야. 야, 욱봉.
“야!”
욱봉은 귓가에 직방으로 꽂힌 외침에 정신을 부여잡았다. 고상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반 애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몰려있었다. 욱봉은 턱을 괴고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시선이 흩어지고, 다시 반이 시끄러워졌다.
“나 귀 안 막혔거든.”
“지랄. 내가 몇 번을 부른 줄 알아? 대체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 했어.”
대답과 어울리지 않게 욱봉은 동공을 굴렸다. 방금까지 주시하고 있었던 길쭉한 인영이 금세 잡혔다. 저 멀리 사람 무리의 가운데 선 전학생은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는지 활짝 웃고 있었다. 반달형으로 접힌 눈과 볼록 올라온 볼, 호선을 그린 입. 누가 봐도 학생 같은 앳된 얼굴로 말이다. 욱봉은 어젯밤을 떠올렸다. 위조가 아닌 주민등록증과,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증명사진이 스쳐가고, 마지막은 골목 안에서 자신이 전학생을 부르기 전 본 얼굴이다. 얇은 담배를 물고 있던 전학생은 지금과 달리 웃음기가 없었다. 눈매는 냉철하고, 입매는 굳은 채였다. 그러고 보면, 그 얼굴은 본인 나이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넋을 놓고 있던 욱봉은 전학생이 고개를 돌릴 낌새가 보이자 얼른 엎드렸다. 오늘 진짜 이상하네, 하며 고상이 담임처럼 혀를 끌끌 찼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터덜터덜 슈퍼로 향하던 욱봉은 인상을 썼다. 하루 종일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던 전학생이 어제 예고한대로 정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 와? 묻는 목소리가 쓸데없이 다정했다. 욱봉은 나풀나풀 흔들리는 손바닥을 보다가, 전학생을 지나쳐 슈퍼에 들어갔다. 욱봉이 왔냐? 슈퍼 아저씨의 걸쭉한 음성이 들렸다.
“쟤 네 친구라면서?”
“친구 아니에요.”
“아니야?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데.”
두 사람의 대화에 전학생이 끼어들었다.
“친구 맞아요. 학교에서 같은 반이거든요.”
“왜 둘이 말이 달라?”
전학생이 속도 없는지 씩 웃었다. 슈퍼 아저씨가 둘을 번갈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욱봉은 얼른 들어가시라며 슈퍼 아저씨의 등을 떠밀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슈퍼 아저씨는 호기심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욱봉을 쳐다보고는 퇴근했다. 문이 탁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슈퍼에 정적이 일었다.
“항상 이 시간에 출근해?”
전학생은 두 사람이 남겨지자마자 수다에 시동을 걸었다. 욱봉은 어제처럼 전학생을 밖에 내버린 후에 문을 닫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저 끈질긴 놈은 그렇게 되면 슈퍼가 마칠 때까지 문을 두드릴 거다. 아, 골이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욱봉이 전학생을 불렀다. 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 치고는 매우 단촐했다.
“응.”
“너 분명 귀찮게 안 한다고 했지.”
“응. 진짜로 귀찮게 안 할게.”
“그럼 지금부터 입 닫고 있어. 여는 순간 쫓아낼 거야.”
“뭐? 그건-”
“시작.”
전학생이 입술을 냉큼 붙였다. 분명 소리를 내지 않는데 투덜거림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땡 아닌가. 그렇게 전학생의 의도치 않은 묵언수행이 시작되었다.
말을 못해서 심심한지 전학생은 슈퍼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사실 시내 편의점에 비하면 슈퍼는 보잘 것 없다. 그런데도 전학생은 손짓발짓을 동원하며 이거 신기하다는 둥, 이 제품 좋아한다는 둥 감정표현을 해댔다. 사람이 어떻게 저리 가만히 못 있는지. 연밥과자를 구경하고 있는 강징을 보며 고개를 저은 욱봉이 문제집을 꺼냈다.
욱봉은 연필을 돌려가며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에 끙끙댔다. 수학은 정말... 아무리 풀어도 어렵다. 수학 없이 살 수는 없나.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여백에 의미 없는 그림을 끄적거리는데, 불쑥 손가락이 나타났다. 욱봉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뭐해?”
전학생은 손가락을 보라는 듯 반대쪽 손으로 문제집을 가리켰다. 욱봉이 미심쩍은 눈으로 눈을 돌리자 손가락이 천천히 문제를 스쳤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콕콕 찍었다. 욱봉은 그곳을 유심히 보다가 뇌리를 스친 공식에 탄식을 터뜨렸다. 빠르게 공식을 적어 문제를 풀자 전학생이 짝짝, 손뼉을 쳤다. 욱봉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생전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긴 처음이다.
“야.”
전학생이 자신의 입을 손짓하더니 팔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말해도 돼.”
욱봉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학생이 푸하, 하고 숨을 터뜨리듯 소리를 내었다. 방금 전 문제를 가르쳐 준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진지하지 못한 태도였다. 욱봉은 전학생을 한 번, 문제집을 한 번 보았다. 방금 풀어낸 문제 옆에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너 이거 공식 어떻게 알았어?"
“문제 보면 나오잖아.”
안 나오니까 내가 못 풀고 있었던 거겠지. 욱봉은 순간 전학생이 무척이나 재수 없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아래 문제를 가리켰다. 그 문제 옆에는 ‘매우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이것도 풀 수 있어?”
연필을 건네받은 전학생은 잠시 고민하더니 공식을 써내려갔다. 욱봉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정답을 확인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 했다. 욱봉은 싱글거리는 전학생을 보며 생각했다. 얘 뭐지?
“너 공부 잘해?”
“그냥 대충.”
“전 학교에서 몇 등 정도 했는데?”
“음... 5에서 10등?”
“반에서?”
“아니. 전교에서.”
욱봉은 어제, 전학생이 다른 애들과 대화하던 내용을 끄집어냈다.
‘전 학교는 컸어?’
‘보통이었어. 한 학년에 500명쯤.'
500명 중에 10등이면 진짜 잘하는 거 아닌가. 전학생은 문제가 있냐는 듯 욱봉을 내려다봤다. 일부러 짓는 게 아니라, 정말로 본인이 공부를 잘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얘는 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나 수능 공부 좀 도와줘.”
“내가?”
“너 말고 누가 있어?”
“나 공부 가르칠 정도는 안 되는데.”
“괜찮아.”
전학생은 우물쭈물 대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 안 쫓아낼 거야?”
“쫓아내도 안 나갈 거잖아.”
“어쨌든. 안 쫓아낼 거야?”
욱봉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좋아."
전학생이 싱글거렸다. 이득을 본 건 자신인데, 왜 전학생이 기뻐하는지 당최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욱봉도 티 나지 않게 웃었다.
청게가 보고 싶었는데... 개노잼이 되었다...
욱봉강징
전편 https://hygall.com/512553145
“... 욱봉?”
전학생의 눈이 욱봉과 마찬가지로 동그래졌다. 느닷없이 마주친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기도 잠시, 전학생의 손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 담배를 발견한 욱봉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담배 꺼.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말투가 매서웠다. 전학생은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아무런 반항 없이 지시를 따랐다. 담배를 밟아서 끄고, 꽁초를 주워, 들고 있던 봉지에 담았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욱봉은 냄새를 빼기 위해 옷을 펄럭거리는 전학생을 보며 확신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 대체 몇 살 때부터 핀 거야? 욱봉이 어색하게 웃는 전학생을 향해 쏘아붙였다.
“여기서 담배 피지 마. 슈퍼 아저씨가 미성년자가 담배 피는 거 엄청 싫어해.”
전학생이 무어라 웅얼거렸다. 작은 소리를 놓친 욱봉이 뭐? 하고 묻자 전학생이 반복했다.
“나 미성년자 아니라고. 성인이야, 나.”
욱봉은 전학생을 비웃으려 했다. 슈퍼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본인이 성인이라고 주장하는 미성년자를 수없이 본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욱봉은 비웃지 못했다. 전학생이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짜야. 봐봐. 전학생이 주민등록증을 건네기 위해 거리를 좁혀왔다. 이에 전학생의 몸에 밴 담배냄새가 훅 끼쳤다. 아까보다는 낫지만 변함없이 독한 향이었다.
“좀 떨어져. 담배냄새 나.”
머쓱한지 전학생이 얼굴을 긁적이며 조금 멀어졌다. 욱봉은 제 손에 들어온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았다. 이름, 강징. 주민번호, ...... 욱봉이 주민등록증의 표면을 긁었다. 안 되네. 주민등록증에 박힌 마크를 문질렀다. 이것도 안 되네.
슈퍼 아저씨가 알려준 위조신분증 판별 방법을 다 썼음에도 주민등록증은 여전했다. 욱봉은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전학생을 느리게 훑어 내렸다. 사복을 입으니 교복을 입을 때보다는 성숙해보이지만... 욱봉은 제 주변의 성인을 떠올렸다. 부모의 농사일을 거드는 동네 누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량으로 사는 동네 형, 시내에 취직한 슈퍼 아저씨네 딸, 슈퍼 아저씨, 담임. 욱봉은 다시 전학생을 보았다. 뽀얀 게, 아무리 잘 쳐줘도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나보다 한 살이 많을 수 있지?
“그래도 여기서는 피지 마. 슈퍼까지 냄새나.”
“응.”
전학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욱봉은 전학생에게 주민등록증을 돌려주고는 별 말 없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슈퍼 앞에는 담배 연기를 발견하고 내팽개친 목장갑이 널브러져 있었다. 욱봉은 다시 정자에 드러누웠다. 밤하늘을 구경하려는 욱봉의 곁으로 전학생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넌 여기서 알바 하는 거야?”
“......”
“매일 저녁마다?”
“......”
“대단하다...”
정자의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전학생이 낮은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답이 없었음에도 기가 죽거나 상처 받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 주위에 담배를 파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밤하늘과 호수가 아름답다, 어쩌고저쩌고. 욱봉은 전학생을 끝까지 무시하려 했다. 이어진 질문만 아니면 그랬을 것이다.
“나 내일도 와도 돼?”
“안 돼.”
전학생이 입을 쭉 내밀었다. 올라가기만 할 것 같았던 입꼬리가 아래로 죽 내려왔다.
“왜?”
“귀찮아.”
“귀찮게 안 할게.”
지금 이러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뭘 귀찮게 안 한다는 건지. 급격히 피곤해진 욱봉은 몸을 일으켜 슈퍼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전학생은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진짜로 귀찮게 안 할게, 응? 욱봉은 네 존재 자체가 귀찮다며 대꾸하는 대신, 전학생의 코앞에서 문을 탁 닫았다. 전학생이 문을 두드렸다. 야-. 욱봉-. 질질 늘어지는 제 이름을 들으며, 욱봉은 슈퍼 아저씨가 가져다놓은 라디오를 켰다. 모르는 노래 사이사이로 전학생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나 내일도 온다, 알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욱봉은 계산대 아래 두었던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집중할 시간이었다.
야. 야, 욱봉.
“야!”
욱봉은 귓가에 직방으로 꽂힌 외침에 정신을 부여잡았다. 고상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반 애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몰려있었다. 욱봉은 턱을 괴고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시선이 흩어지고, 다시 반이 시끄러워졌다.
“나 귀 안 막혔거든.”
“지랄. 내가 몇 번을 부른 줄 알아? 대체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 했어.”
대답과 어울리지 않게 욱봉은 동공을 굴렸다. 방금까지 주시하고 있었던 길쭉한 인영이 금세 잡혔다. 저 멀리 사람 무리의 가운데 선 전학생은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는지 활짝 웃고 있었다. 반달형으로 접힌 눈과 볼록 올라온 볼, 호선을 그린 입. 누가 봐도 학생 같은 앳된 얼굴로 말이다. 욱봉은 어젯밤을 떠올렸다. 위조가 아닌 주민등록증과,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증명사진이 스쳐가고, 마지막은 골목 안에서 자신이 전학생을 부르기 전 본 얼굴이다. 얇은 담배를 물고 있던 전학생은 지금과 달리 웃음기가 없었다. 눈매는 냉철하고, 입매는 굳은 채였다. 그러고 보면, 그 얼굴은 본인 나이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넋을 놓고 있던 욱봉은 전학생이 고개를 돌릴 낌새가 보이자 얼른 엎드렸다. 오늘 진짜 이상하네, 하며 고상이 담임처럼 혀를 끌끌 찼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터덜터덜 슈퍼로 향하던 욱봉은 인상을 썼다. 하루 종일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던 전학생이 어제 예고한대로 정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 와? 묻는 목소리가 쓸데없이 다정했다. 욱봉은 나풀나풀 흔들리는 손바닥을 보다가, 전학생을 지나쳐 슈퍼에 들어갔다. 욱봉이 왔냐? 슈퍼 아저씨의 걸쭉한 음성이 들렸다.
“쟤 네 친구라면서?”
“친구 아니에요.”
“아니야?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데.”
두 사람의 대화에 전학생이 끼어들었다.
“친구 맞아요. 학교에서 같은 반이거든요.”
“왜 둘이 말이 달라?”
전학생이 속도 없는지 씩 웃었다. 슈퍼 아저씨가 둘을 번갈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욱봉은 얼른 들어가시라며 슈퍼 아저씨의 등을 떠밀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슈퍼 아저씨는 호기심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욱봉을 쳐다보고는 퇴근했다. 문이 탁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슈퍼에 정적이 일었다.
“항상 이 시간에 출근해?”
전학생은 두 사람이 남겨지자마자 수다에 시동을 걸었다. 욱봉은 어제처럼 전학생을 밖에 내버린 후에 문을 닫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저 끈질긴 놈은 그렇게 되면 슈퍼가 마칠 때까지 문을 두드릴 거다. 아, 골이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욱봉이 전학생을 불렀다. 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 치고는 매우 단촐했다.
“응.”
“너 분명 귀찮게 안 한다고 했지.”
“응. 진짜로 귀찮게 안 할게.”
“그럼 지금부터 입 닫고 있어. 여는 순간 쫓아낼 거야.”
“뭐? 그건-”
“시작.”
전학생이 입술을 냉큼 붙였다. 분명 소리를 내지 않는데 투덜거림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땡 아닌가. 그렇게 전학생의 의도치 않은 묵언수행이 시작되었다.
말을 못해서 심심한지 전학생은 슈퍼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사실 시내 편의점에 비하면 슈퍼는 보잘 것 없다. 그런데도 전학생은 손짓발짓을 동원하며 이거 신기하다는 둥, 이 제품 좋아한다는 둥 감정표현을 해댔다. 사람이 어떻게 저리 가만히 못 있는지. 연밥과자를 구경하고 있는 강징을 보며 고개를 저은 욱봉이 문제집을 꺼냈다.
욱봉은 연필을 돌려가며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에 끙끙댔다. 수학은 정말... 아무리 풀어도 어렵다. 수학 없이 살 수는 없나.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여백에 의미 없는 그림을 끄적거리는데, 불쑥 손가락이 나타났다. 욱봉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뭐해?”
전학생은 손가락을 보라는 듯 반대쪽 손으로 문제집을 가리켰다. 욱봉이 미심쩍은 눈으로 눈을 돌리자 손가락이 천천히 문제를 스쳤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콕콕 찍었다. 욱봉은 그곳을 유심히 보다가 뇌리를 스친 공식에 탄식을 터뜨렸다. 빠르게 공식을 적어 문제를 풀자 전학생이 짝짝, 손뼉을 쳤다. 욱봉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생전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긴 처음이다.
“야.”
전학생이 자신의 입을 손짓하더니 팔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말해도 돼.”
욱봉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학생이 푸하, 하고 숨을 터뜨리듯 소리를 내었다. 방금 전 문제를 가르쳐 준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진지하지 못한 태도였다. 욱봉은 전학생을 한 번, 문제집을 한 번 보았다. 방금 풀어낸 문제 옆에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너 이거 공식 어떻게 알았어?"
“문제 보면 나오잖아.”
안 나오니까 내가 못 풀고 있었던 거겠지. 욱봉은 순간 전학생이 무척이나 재수 없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아래 문제를 가리켰다. 그 문제 옆에는 ‘매우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이것도 풀 수 있어?”
연필을 건네받은 전학생은 잠시 고민하더니 공식을 써내려갔다. 욱봉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정답을 확인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 했다. 욱봉은 싱글거리는 전학생을 보며 생각했다. 얘 뭐지?
“너 공부 잘해?”
“그냥 대충.”
“전 학교에서 몇 등 정도 했는데?”
“음... 5에서 10등?”
“반에서?”
“아니. 전교에서.”
욱봉은 어제, 전학생이 다른 애들과 대화하던 내용을 끄집어냈다.
‘전 학교는 컸어?’
‘보통이었어. 한 학년에 500명쯤.'
500명 중에 10등이면 진짜 잘하는 거 아닌가. 전학생은 문제가 있냐는 듯 욱봉을 내려다봤다. 일부러 짓는 게 아니라, 정말로 본인이 공부를 잘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얘는 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나 수능 공부 좀 도와줘.”
“내가?”
“너 말고 누가 있어?”
“나 공부 가르칠 정도는 안 되는데.”
“괜찮아.”
전학생은 우물쭈물 대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 안 쫓아낼 거야?”
“쫓아내도 안 나갈 거잖아.”
“어쨌든. 안 쫓아낼 거야?”
욱봉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좋아."
전학생이 싱글거렸다. 이득을 본 건 자신인데, 왜 전학생이 기뻐하는지 당최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욱봉도 티 나지 않게 웃었다.
청게가 보고 싶었는데... 개노잼이 되었다...
욱봉강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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