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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20:44
진정령, 난백 ㅅㅍ
독잇콩이지만 본투비 도련님인 건 어쩔 수 없는 섭회상 보고싶어서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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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욱신거리는 왼쪽 어깨를 움켜쥔 채 걸었다. 목검이나 검등으로 치는 건 이해하겠는데, 위에서 내려찍어? 그것도 손잡이로? 이건 뼈에 금이 간 게 분명했다. 아직 부정세 온지 보름도 안 됐는데 몸이 이렇게 걸레짝이 돼 놓은 게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서로 공정하게 실력을 겨루다가 이렇게 된 거면 억울할 것도 없지만, 검법도 다 못 익힌 나를 데려다가 이 지랄을 해대고 있으니 이건 내가 몇 생에 걸쳐 부정세와 원수 졌대도 그러려니 해야 할 수준이었다. 개새끼들. 부정세 수사들은 다 개새끼다. 그거 관리 하나 못 하는 총령도 개새끼고, 그 총령 위의 종주는...... 종주는 예외다.

-개좆같다 그냥......

-뭐 같다고?

내가 그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면 아마 육성으로 새로운 욕을 내뱉었을 것이다. 연무장에서 부정세 안쪽으로 향하는 계단에 앉아 순진하게 눈을 깜박이는 섭회상이 그 순간 나는 그 어떤 요마귀괴보다도 무서웠다. 슬슬 노을 지는 하늘의 빛깔이 새하얀 얼굴에 서려 있어 더욱 그랬다.

-무슨...... 왜 여기 계십니까?

-여기는 부정세 안이고 내가 부정세 주인인데, 그렇게 놀란 얼굴로 물을 일이야?

-종주님은 연무장과는 담 쌓으셨으니까요.

-너 정말 너무하다. 하지만 사실이라 할 말이 없네.

섭회상이 부채를 접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그렇고, 방금 무슨 말을 한 거냐니까?

-그게...... 욕이요.

이럴 때는 괜히 둘러대는 것보다 빠르게 인정하는 게 상책이었다. 섭회상이 실망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자 조금 놀라울 정도로 가슴께가 지끈거렸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밀아. 수행자란 검만 수련한다고 다가 아니야. 마음을 바르게 닦으려면 쓰는 말부터 고와야 하지 않겠니?

-예. 그럼요.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는데, 섭회상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뒤를 돌았다.

-이리 따라와 봐.

어디 대단한 데라도 데려가나 했더니 늘 가는 종주실이었다. 종주실 문을 닫은 섭회상이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주위를 살피는 게 혹시 심각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해서 긴장했는데, 가까이 다가온 섭회상이 비밀스레 속삭이지 뭔가.

-나도 가르쳐주면 안 돼?

-뭘요?

일 초 동안, 나는 섭회상이 뒤늦게라도 수련에 관심을 가지려는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바로 다음 순간 산산조각 났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아, 그래. 험한 말?

-네?

그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이 상황에서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설명을 요구하듯 바라보자, 섭회상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담배처럼. 네가 아까 그 말을 할 때 굉장히 후련해보였거든.

-그냥 담배를 피우세요.

-건강에 안 좋다며?

-욕은 마음 수련에 안 좋지 않습니까.

골이 난 듯 입을 꾹 다무는 섭회상을 나는 좀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서른 다섯이 돼서 자기한테 욕 가르쳐달라는 건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모지리였다. 와중에 욕을 배우고 싶다면서 욕을 욕이라 부르지도 못하는 게 곱게 태어나 곱게 자란 사람은 정말 저렇구나 싶어 어쩐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차라리 검을 가르쳐달라고 하시면 가르쳐드릴 수 있겠습니다.

-나는 종주인데 나한테 검을 가르쳐준다니, 밀아.

-욕은 가르쳐드려도 되고요?

-너......

솔직히 내가 한 말 하나도 틀린 게 없지만, 이 이상 긁어봐야 더 즐거울 게 없었고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섭회상이 탁상 앞에 가서 앉기를 기다렸다가 그 옆에 섰다. 그러자 섭회상은 앉으라는 듯 맞은편을 손짓하더니 턱을 괴었다. 그는 반쯤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고, 나를 이렇게 빤히 바라보는 걸 보면 그 생각이 어쩐지 나와 관련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너는 저 멀리 산골 출신이었다지?

갑자기? 좀 뜬금없긴 했지만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러면 선문세가에 적응하기 꽤 어려웠겠구나?

-뭐, 그렇죠.

-글은 어찌 배웠고?

-수사 훈련 받으면서 배웠습니다. 죽어라 했거든요.

그 때 이야기를 더 하기 싫어서 나는 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욕을 가르쳐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네가 아까 한 그런 말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거든. 네가 무척 속시원해 보이기도 했고.

서른 해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누가 좆같다는 말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대체 어떤 세상에 살아온 건가, 눈 앞의 이 사람은? 섭명결 대체 남동생을 얼마나 공주처럼 기른 거야? 내 생각을 읽은 듯 섭회상이 미소를 지었다. 진한 갈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알려주면 안 돼?

-안 될 것 같은데......

섭명결이 나 죽이러 올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짚이는 게 있어 물었다.

-혹시 요즘 거슬리는 사람이라도 있으십니까?

-응?

-붙잡고 욕이라도 하시게요?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선문세가 종주님들끼리는 서로 우아하게 쳐야지, 대놓고 욕 박으면 큰 문제가 될 텐데요?

금광요 하는 거 보라고. 가끔 눈치 없이 금광요에게 까부는 작자가 나타나면 그렇게 고상하게 입으로 줘 팰 수가 없다. 금광요 그건 섭회상한테 그런 기술이나 가르쳐주지. 조금 애잔한 마음이 되어 섭회상을 바라보는데, 우리 순진한 섭종주님은 얼탄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정말 정말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하려던 건 아니고...... 속으로만 썩히다보니 꼭 마음에 병이 생길 것 같아서. 나 혼자라도 좀 속시원하게 험담을 해 보려고.

그렇다면야......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종주한테 욕을 가르쳐도 되는 건가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섭회상이 종주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왜 망설여? 내가 너를 벌 줄까봐 그래? 내가 가르쳐달라고 한 건데 너를 왜 벌 주겠어.

-그런 게 아니라, 종주님 고운 입을 더럽히는 건 좀 범죄에 가깝지 않나 싶어서.

그렇잖아. 서른 살 넘게 욕 한 번 안 해본 사람을 이런 식으로 타락......시킨다는 건 썩 즐거운 일이 못 되었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섭회상을 바라보았고, 맹하니 두 눈을 깜박이던 섭회상은 눈 몇 번 깜박이는 사이 두 뺨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황급히 부채질을 하는 것을 보며 이젠 내가 눈을 깜박일 차례였다.

-너는 가끔씩 정말......

-네?

-아무튼, 좀 알려줘 봐. 안 그러면 난 속에 어혈이 막혀서 쓰러질 지도 몰라.

자기 죽는다고 땡깡을 부리는 섭회상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걸 어째야 하나. 내 신분에 충정을 고민하는 것도 웃기지만, 고민 안 할 수도 없잖아. 이렇게 우아하고 고결한 사람에게 어디 시정잡배나 쓸 법한 욕을 알려주는 건 너무 양심에 찔렸고, 높으신 분들이 웃으며 혀로 칼 날리는 건 섭회상이 나보다 더 잘 알 거고.

-왜? 너는 내가 그런 말 하는 거 생각하면 싫어?

-아뇨? 귀.

여울 것 같은데.

-귀...... 누가 제 욕하는지 귀가 간지러워서.

내 말에 섭회상이 빙긋 웃었다. 그 얼굴을 보다 보니까 이것도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닌 듯했다. 함부로 욕 못 하겠다는 걸 보면 상대가 다른 종주일 확률이 높고, 그것도 꽤 거물일 텐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종주들 사이에서 얼마나 눈칫밥 먹었겠어. 이걸로 섭회상 속이 시원해진다면야.

-일단 종주님께서 하실 수 있는 제일 심한 욕이 뭔지를 보죠.

-응?

-저를 종주님이 싫어하시는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한 번 욕해보세요.

그 말에, 섭회상의 눈동자가 갑자기 흔들렸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못 하겠어.

-네?

-너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네.

나는 멍하니 섭회상을 바라보다가, 말뜻을 이해하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종주님. 이렇게 마음이 약하셔서 어떡해요. 제가 뭐 그런 걸로 상처받을 얼굴입니까?

-그래?

섭회상의 입꼬리가 묘한 각도로 올라갔다.

-그럼 너는? 너도 나 보면서 해 봐. 아까 네가 욕했던 사람들 생각하면서.

-싫...... 못 하겠는데요?

-뭐야. 그럼 너도 나와 같네.

그러면서 섭회상이 웃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종주님은 제 윗사람이고 저는 아랫사람인데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처럼 당연한 말이었지만 섭회상의 입가가 묘하게 냉해지는 것으로 보아 별로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닌 듯 했다. 그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내가 명령이니까 나한테 욕해보라고 하면 할 거니?

-아뇨? 싫은데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섭회상이 곧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재미있다, 정말.

-저한테 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우시면, 종주님께서 알고 계시는 욕 중 가장 심한 거 아무거나 말해보세요.

섭회상이 나를 잠시동안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시선을 돌리며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개자식?

나에게서 대답이 없자 섭회상이 나를 다시 바라보았고, 나는 그가 진심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그의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서른 다섯 해를 사시면서 들은 욕 중에 제일 심한 게 개자식, 이라고요?

-음...... 그럼...... 찢어죽일 놈?

진심? 내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빤히 자기를 바라보자, 섭회상은 자리를 고쳐앉았다. 그리곤 비장의 한 수를 던지기라도 하듯 목을 가다듬더니 내뱉었다.

-내가 네 할아버지다.

나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나는 더듬더듬 말문을 뗐다.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당연하지!

아. 그래. 그런 거구나. 모욕감을 느끼는 역치가 낮은 거구나. 근데 낮아도 너무 낮은 거 아닌가? 나는 새삼 밀려오는 애잔함으로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냥 이런 밝고 깨끗한 세상에 계속 살게 두는 게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지를 찢어죽이겠다? 너를 갈아마시겠다?

-그건 징그러운 말이지 그게 어떻게 욕입니까. 그 말을 듣고 모욕감을 느낄 건덕지가 없잖아요.

-그럼 네가 아는 욕에는 어떤 게 있는데?

-많죠. 많지만...... 그냥 하나만 기억하세요, 종주님. 욕은 상대방 기분 잡치게 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래야 욕을 한 사람도 통쾌하지 않겠어요?

-어? 어...... 맞아. 그러니까 밀이 네가 좀 알려줘. 그 사람은 어떤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할까?

-남자예요?

섭회상이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상대가 사내일 때와 여인일 때 하는 말이 달라져?

-그럼요. 제가 사내들한테 구 할의 확률로 먹히는 욕을 알죠.

내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섭회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뭔데, 그게?

-그게......

아무리 그래도 이걸 섭회상에게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되게 상스러운 말이거든요.

-상관 없어!

호기심과 묘한 장난기로 두 눈을 빛내고 있는 저 얼굴을 보자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치미 떼기도 뭐 했고, 내가 못 배워먹은 거 섭회상도 잘 알고 있을 거고, 나도 솔직히 지금 좀 재미있기도 하고 그러니.

-정말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응. 제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섭회상의 시선을 피했다.

-사내들은 높은 확률로 이거 건드리는 걸 못 견뎌하더라고요.

-부모님?

-보다도, 자기 양물요.

섭회상의 손에 들려있던 부채가 툭 떨어졌다. 나 좆된 건가? 좆된 거 맞겠지? 아니 근데 자기가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나. 슬쩍 섭회상의 얼굴을 확인하자 멍하니 눈만 깜박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침착하게 말했다.

-사내들의 그런...... 습성은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데?

-그건 이제 알아서 창의력을 발휘해야죠. 욕은 직관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뭘 어떻게......

-그냥, 뭐...... 너 바지 내리면 어린애라고 하거나...... 아니면 그냥 직설적으로 네 거 요만하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대부분 얼굴 붉히면서 화를 낼 걸요. 화를 안 내고 오히려 여유롭게 웃으면......

-웃으면?

-그럼 어쩔 수 없죠. 그쪽이 승리자니까.

섭회상은 어디 한 대 맞아 얼얼하다는 듯 계속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충격일 만하지. 누가 섭명결 동생 앞에서 저런 말을 했겠어. 근데 저 정도로 충격받은 거 보면 혹시......

-아니야.

-네?

-네 생각이 틀렸어.

제가 무슨 생각 했는데요? 그렇게 물어볼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아서 나는 헛기침만 했다. 근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거면...... 섭회상은 내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딴청을 피웠지만, 자존심이 상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겸연쩍어 보이는 것 같은......

오?

-너 정말 그만 생각해. 나를...... 나를 계속 이런 식으로 희롱하고 싶었던 게지?

-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자기가 돌려서 자랑한 거면서? 차마 그 말만은 못 하고 억울한 얼굴만 하는 나에게 섭회상이 물었다.

-다른 건 없어? 좀 더 정상적인 것 말야. 난 그 사람을 그런 식으로 욕하고 싶진 않다고.

-종주님. 정상적인 욕이 어디 있습니까? 더 나은 욕 같은 건 없어요. 욕은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다들 싸움 한 번 나면 서로의 모친부터 언급하는 게 아닙니까.

욕 전문가라도 된 듯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쩐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머니 욕...... 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하나여서,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뒤 땄다는 쪽이 차라리 더 신선할 텐데.

-따...... 땄다고?

섭회상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곧 그 뜻을 용케 스스로 깨닫곤 경악했다.

-밀아!

-이건 대물인 사내들도 화나게 할 수 있겠네요.

섭회상이 경악한 얼굴로 이마를 짚는 걸 보자 이쪽은 그저 쓴웃음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입이 상스러워서. 그랬잖아요. 안 들으시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섭회상은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몇 번 고개를 젓더니, 곧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게 아니라, 꼭 새로운 세계를 하나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 그런 말들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있다는 거겠지.

네. 당신 눈 앞에 있죠? 그렇게 내뱉는 대신 나는 충격받은 듯한 그를 달랬다.

-꼭 이런 저질스러운 욕 안 하셔도 돼요. 상대 약점 하나 잡고, 아까 제가 가르쳐드린 걸 그대로 응용하시면 되죠.

-네가 가르쳐줬다는 게 정확히 뭔데?

-무작정 조롱하기죠, 뭐. 욕에 논리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

나는 잠시 더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차피 그 자에게 말할 것도 아니라고 하셨으니, 그냥 종주님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주먹으로 벽이라도 존...... 엄청 치세요. 그러면 속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지시지 않을까요?

차마 죽이라고 할 수 없으니 나는 그렇게 조언했다. 근데 섭회상이 욕하는 거 생각해보면 존나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사람들 다 모인 데서 네 좆 작다는 소리 들으면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세가 종주들 특성상 주화입마 와도 이상하지 않잖아. 뭐가 됐든 수진계 사람들 시선이 한동안 그 인간 다리 사이로 가는 걸 막을 순 없을거다.

금광선 살아있을 때 섭회상이 어리숙한 척 비슷하게 한 방 날렸으면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솔직히 금광요도 못 참고 웃었을걸. 금광선이 길길이 날뛰어도 만약 그때 섭명결 살아있었다면, 뭐. 섭회상은 섭명결 뒤로 숨으면 되고, 금광선 그 인간이 쇠도 씹어먹었다는 섭명결한테 뭐 어쩔 것인가. 내가 말도 안 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너 내가 그 사람...... 아니, 누구한테라도, 아까 네가 가르쳐준 그 욕을 정말 하면 어떻게 할 거니?

-응원하겠습니다.

그 정도 기백이면 솔직히 자랑스러울 듯. 섭명결도 그런 용기라면 인정할 거다. 섭회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다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냥...... 이 정도로 하자. 너는 항상 놀라워.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고.

-죄송합니다.

말뜻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럴 땐 대가리 박는 게 최고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았다. 그러나 섭회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왜 사과하는 거야? 내가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야......

-새삼 내가 참 좁은 세상에서 살았구나 생각했어. 너는 동영도 가보고 여기 저기 많이 가봤댔지? 그래서 이런 실용적인 지식이 깊나 봐.

이거 엿먹이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섭회상의 눈빛은 진심 같았다. 그런 눈빛 있잖은가. 정말 티없이 자란 귀족 아가씨들이 우매한 하인들을 자상하게 보는 그런 눈빛. 섭회상의 지금 눈빛이 그것과 조금 비슷했다. 뭐 나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면 그저 감사할 일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던 차, 섭회상이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사내와 여인에게 하는 말이 서로 다르다고 했잖아. 여인에게는 주로 어떤 식의 험담을 하는데?

-그게, 사내들이랑은 다르게 여인들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조금 복잡해서요. 물론 제가 사내면 여인들 화나게 하기 쉬운데, 제가 여인이다보니......

-내 성별도 생각해야 하는구나.

이제 와서 더 내외할 것도 없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인들한테 용모가 박색이니 못생겼니 하는 것도 타격감이 나쁜 욕은 아닌데 솔직히 너무 진부하고요. 저라면......

-너라면?

그러게. 여자한테 욕박을 일은 많이 없었어서 어떤 욕이 효과적일지 생각하는데 팍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했고,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는 내 나쁜 버릇이 다시 한 번 발동했다.

-네 남편 금광......

짧은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섭회상과 눈이 마주쳤고,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이제 와서 말끝 흐려봤자 다 늦었다는 소리다.

-선. 이라고. 말하겠죠. 죄송합니다. 수사복 벗을까요?

아까 금광선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는데.

섭회상은 정확히 삼 초 뒤에 박장대소했다. 그가 그러는 동안 나는 내가 정말 부정세 수사복을 벗게 될 지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 수사가 다른 세가, 그것도 사대세가 전 종주를 자기 종주 앞에서 흉봤으니 옷 벗을 만 하지 싶다가도 아니 금광선 그거 쓰레기인 거 다 아는데 내가 그 새끼 욕했다고 옷 벗어야 되는가 싶어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너 정말 어떻게 아직까지 선문세가에 발 붙이고 있는 거니?

섭회상은 다행히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안심한 머리로 네 애비 금광선은 누구에게나 욕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금광요도 이건 인정할걸. 아무튼.

-제가 자주 이렇게 말실수하는 건 아닙니다.

-응.

-종주님 앞이어서 그래요.

섭회상이 잠시 멈칫하더니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왜? 뭐?

그 얼굴이 너무 고와서 좀 곤란했다. 나는 늘 그렇듯 가슴팍을 뒤져 담뱃대를 찾으려다가, 금이 간 어깨뼈가 욱신거려서 인상을 쓰며 팔을 내렸다. 섭회상의 눈썹이 순식간에 강아지마냥 축 쳐졌다.

-왜 그래, 또 팔을 다쳤니?

-네.

-어쩌다가...... 어디 봐.

나는 가까이 다가오는 섭회상을 반대 팔로 막았다. 내 어깨에는 누가 봐도 검 손잡이에 찍힌 자국이 있을 거고, 섭회상이 그걸 알 정도의 수련 경지가 못 된다고 해도...... 혹시 골치 아파질 수도 있으니까. 자기 수사들이 사실은 개새끼라는 걸 알면 얼마나 마음 아파 하겠어. 심약한 사람이니까, 자기가 나를 옆에 끼고 살아서 다른 수사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걸 알게 되면 무척이나 속상해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지만, 섭회상이 이것 때문에 나를 부르지 않는다면 그게 또 싫을 것 같았다. 물론 눈 앞의 흰 얼굴은 정말 귀찮고, 그가 자꾸 나를 부른다는 사실 하나로 내 몸에 새겨진 멍이 벌써 여러 개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있다면 그 모든 게 기꺼운 지 벌써 꽤 되었다. 그 사실에 새삼 죄책감을 느끼며 나는 애써 미소지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어제 침대에 눕다가 모서리에 잘못 박아서 그래요.

섭회상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제 노을이 슬슬 본격적으로 질 때라 그런지 그의 얼굴에도 어느새 짙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불을 켜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또 그런 식으로 다쳤다고?

-네.

-아프지 않아?

그 질문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섭회상은 잠시 동안 대답이 없더니 중얼거렸다.

-왜 하필 너일까?

-예?

나는 저절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글쎄요. 하필 제가 왜 자꾸 여기저기 부딪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답하려고 했다. 그러나 섭회상의 차가운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은 채, 생각에 잠긴 채 나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을 마주보았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나는 중얼거렸다.

-전 진짜 괜찮은데......

섭회상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뭔진 몰라도 아주 어려운 고민을 한 모양인지, 그가 그새 생기 없어진 얼굴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알겠어. 그래도 걱정되니, 오늘은 이만 쉬는 걸로 해, 밀아.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생각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종주님, 상대가 누군데 그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세요?

어혈이 쌓일 정도면 마음이 정말 불편하다는 건데, 누가 이 사람을 그 정도로 괴롭히는 걸까? 죽여버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섭회상을 보는데, 그가 고개를 돌렸다.

-비밀이야. 부끄러우니까.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섭회상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꽃밭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나름대로의 고초가 있는 법이지. 섭회상이라고 모르겠는가, 사람들이 자기 깔보는 걸. 알면서도 참는 거지.

어쩌면 연약한 동물일수록 위장술이 발달한 것처럼, 바보 행세 하는 게 섭회상의 처세술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일문삼부지를 자기 위협이라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섭회상이 진짜 바보가 아닌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날 종주의 명령을 따라 푹 쉬었다.

그러다가 밤이 다 되었을 때쯤이었다. 내 방을 청소해주는 시비들 중 하나가 종주께서 보내신 것이라며 탕약을 가져왔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섭회상이 내가 다친 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가 준 연고도 아직 남아있는데, 뭐 이런 걸 다. 아무튼 난 섭회상이 보낸 약을 그대로 벌컥 들이마셨다.

뼈가 사흘 만에 붙은 건 그가 그 뒤로도 계속 약을 보내준 덕일 터였다. 꾸벅 감사 인사를 올리는 나에게 섭회상은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딘가 답답해보이는 그에게 나는 욕이라도 한 번 시원하게 해보라고 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말았다. 역시, 저 고운 입술을 더럽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