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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2 23:52
1.
몽롱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지나다니는 동네 살롱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어린 아이에게 그가 건넨 첫 번째 문장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돌보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고, 잘 하는 것이라곤 무식하게 힘을 쓰는 일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힘겹게 돈을 벌어들이던 막 12세가 된 아이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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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X년 9월 2X일
그날 밤 살롱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어지러웠다. 오늘 해가 질 무렵 술에 취해 애꿎은 사람을 쏜 한 무법자의 그 친구들과 그것을 소문으로 들은 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똑같이 술을 마시며 그 이야기를 이어가더랬다. 물론 누군가가 총에 맞아 다치거나 죽는 일은 이 마을에서 시도때도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그들이 매일 질리지도 않고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건 항상 매일을 다르게 살아가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조셉은 그 이야기에 더더욱 낄 수 없었다.
오늘도 매번 완벽한 옷을 차려입고 단정한 수염을 한 남자와 그와 같이 단정하고 멋진 배지를 단 또 다른 남자가 들어오고 조셉은 여느 때와 같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하던 테이블 청소를 이어했다.
그 20대의 신사들은 항상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보통 마을 내에서 들려오는 소문 위주의 것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이를 뽑기 위해 준비까지 다 해놨건만 겁에 질려 몰래 치과를 빠져나갔다는 한 겉멋만 잔뜩 든 귀족의 이야기와, 양계장에서 닭을 훔치다 지나가던 말에게 걷어차여 거름통에 빠졌다는 한 한심한 좀도둑의 이야기. 조셉은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격주로 오는 이 이름모를 이야기꾼들의 방문을 항상 말없이 소망했다. 그날도 조셉은 그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끝날 틈이 보이지 않는 살롱 허드렛일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얼마 안되어 불청객은 찾아온다. 더러운 행색을 한 지저분한 수염의 아저씨들.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살롱의 온갖 물건을 어지럽힌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기다란 담배같이 생긴 물건에 중독되서 저렇게 이리저리 소란을 피우며 돌아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조셉은 그건 그냥 소문일 뿐이고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좋지 못한 성격과 심성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술과 시가를 주문하고,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아 이야기꾼들 앞에 자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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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술과 도박을 하고 그것을 치우는 것은 일개 아이의 몫이다. 조셉은 지저분한 그들의 테이블을 닦고 담뱃재를 치우며 이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쨍그랑--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일을 할 때라도 실수는 항상 조셉을 따라왔다. 술병은 그들의 다리 위에서 여러 조각이 되어 떨어졌고 그것은 한 신사의 상대로 근 10연패에 다다르고 있던 이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한 지저분한 남자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세상 물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예외로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비속어들과 과격한 몸짓을 조셉은 잘 알고 있었고 또 익숙했다. 그는 조셉에게 그러한 욕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조셉은 그 정도만 꾸중을 들은 것에 대해 안도하며 계속하여 청소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두번의 실수까지 넘어가 줄 아량 따위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조셉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이 약간 남은 술잔을 치우고 있을 때 지저분한 이들은 단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어갔고, 그 발걸음에 떠밀려 중심을 잃고 만 어린 아이는 들고 있던 술잔에 담긴 레드 와인을 약간 흘렸다. 그리고 그 레드 와인은 방금 술병 파편을 맞은 지저분한 남자의 손등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조셉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더니 손을 뻗어 조셉을 그 지저분한 테이블로 밀쳤다. 그가 씩씩거리며 또 한번 조셉에게 다가오자 조셉은 차라리 눈을 감기로 했다. 죽이지는 않겠지, 잠시 쉬었다 일어나는 셈 치자, 생각하면서.
하지만 귀에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와는 다르게 몸 어디에도 구타의 신호는 없었다. 그 신사들, 달리 말해 그 이야기꾼들은 사람들 사이에 들려오는 영웅의 일화처럼 지저분한 이들을 처치하고 한 아이를 이 위기에서 구해냈다. 최소한 조셉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감사합니다."
어느 날 허름한 골목에서 만난 친구가 조셉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자신은 카우보이가 되겠다고. 총을 들고 말을 타며 이 세상이 모두 자신의 것인 것처럼 온 마을을 돌아다니겠다고. 그리고 자신이 카우보이가 되면 아주 멋진 표식을 몸에 달고 다니면서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 보도록 하겠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그래서 조셉은 글조차 배우지 않은 깨끗한 뇌에서 나온 결론으로 그들이 카우보이라고 단정지었다. 총을 들고 있고, 가슴팍에 멋진 모양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조셉은 그들을 우러러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은 한 마디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개 영웅담처럼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일하리라. 조셉은 그것이 지금 같은 상황보다는 훨씬 낫겠다 생각했다.
"저도 카우보이가 되고 싶어요."
"죽고 싶다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하는군."
"..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는 술을 다 마시고 손에 들고 있던 컵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고 그를 쳐다보는 한 친구를 쳐다봤다.
"닥. 그럴 것 까진 없잖아."
가슴팍에 멋진 모양을 한 그는 '닥' 에게 웃으며 얘기했다.
"참 모범적이군. 와이엇. 직업병인가?"
와이엇. 이 이름은 살롱의 손님들이 마을에서 굉장히 유명한 보안관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 말로 그들은 확실히 카우보이가 아니었다. 조셉은 어서 일을 하라는 고용주의 부름에 더 이상 그들과 이야기 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자주 오는 손님이기에 다시 또 한번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187X년 10월 0X일
꿈 같던 나날들은 지나갔다. 그 날 이후 와이엇은 다른 도시로 이동해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닥은 평소처럼 종종 살롱에 들어와 술과 카드를 자신의 말동무로 삼은 것 마냥 지냈다. 가끔씩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이따금씩 경직된 살롱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지저분한 사람들의 패배감이 닥에게 못된 말을 내뱉을 때면 그의 화려한 언변과 손놀림은 살롱의 손님들에게 눈요깃거리를 보여주곤 하였다. 조셉은 와이엇이 이 마을을 떠난 이후 더이상 그와 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음에 낙심하면서도 마을에 남은 한 신사의 활약담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음에 감사했고 그를 선망했다.
187X년 10월 1X일
예전처럼 그 지저분한 이들도 살롱에 들락날락 하였고 언제나 소란은 그들과 함께였다. 또한 닥은 왠지 모르게 살롱에 들락날락 하는 일이 잦아졌다. 조셉은 그가 살롱에 자주 방문해 주어 고된 노동 중에도 희열을 느꼈지만 때로는 가끔씩은 식사와 수면 또한 거르며 술과 카드와 살아가고 있는 닥의 모습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그 흔한 기침소리 또한 조셉에겐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내뱉는 탄식마냥 과장되게 들렸다.
처음 보았을 때 보다는 약간 야윈 그를 보며 조셉은 제발 아무나 와서 닥을 집으로 데려갔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데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햇볕이 쨍쨍한 시간, 살롱으로 흘러들어왔다 제 발로 스스로 걸어서 살롱 밖을 나설 뿐이었다.
조셉은 닥을 통해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사람을 보았다. 그 기시감에 알 수 없는 기분이 밀려들어왔다.
187X년 11월 0X일
닥은 매일같이 살롱에 왔고 그의 기침은 3주를 넘겼다. 그는 그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인지 태연했고 조셉은 닥이 올 때 마다 시선을 그를 향해 두고 있었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는 조명 빛에 물들여진 알 수 없는 빛이 났다. 쌀쌀한 날씨 비 한 모금 내리지 않는 싸늘한 날씨임에도 그의 얼굴에선 항상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투명한 것이 항상 맺혀있었다.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본 적은 없지만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을 만큼의 알리바이를 가졌다.
187X년 11월 2X일
이제 닥은 항상 작고, 하얗고 네모난 것을 가지고 다닌다. 또한 그의 기침소리는 나아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조셉과 닥이 처음으로 공통된 사건에 같은 편으로써 엮인 그 날 부터 조셉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 탓에 닥의 나날이 달라지는 상태는 조셉에겐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187X년 12월 0X일
닥에게 폐병쟁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닥은 항상 한결같이 위태로웠고, 조셉은 그런 닥의 모습으로 매번 다른 잡념에 빠져 두려워했다.
187X년 12월 2X일
조셉이 두려워하던 것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그날도 닥은 살롱의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수십시간 술을 마시며 카드만을 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이들은 또 어디서 소동을 벌이고 들어왔는지 누추한 차림으로 닥의 앞에 앉아서 마지막 게임을 끝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카드게임으로 닥을 이기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카드를 하면서도 닥은 연신 기침을 해대며 조셉의 여린 심기를 건드렸다. 조셉은 손님에게 술과 시가 따위를 전해주면서도 항상 닥이 앉아있는 테이블 쪽을 지나쳐갔고 가끔씩은 실수로 닥을 건드리는 척 하여 그가 자신 때문이라도 잠시 술과 도박을 멈추기를 바랬지만 이미 하루 넘겨 마신 술로 인해 취할대로 취해버린 닥은 조셉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오직 술을 마시고, 카드를 하는 데에만 집중하였다.
그렇게 다시 해가 새로이 떠오를 시각, 그의 카드게임은 끝이 났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작고 하얀 것에 물들어있던 빨간색의 액체와 함께.
그것은 결코 레드 와인 따위의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 이른 새벽에 테이블을 지키고 앉아있던 이는 닥 뿐이었다. 또한 이 자리에 그를 신경 쓸 지인과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닥은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이내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연신 기침을 해대던 그의 입에서는 빨간 자국이 돋보였다. 조셉은 놀라 하던 일도 마다하고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
"닥, 집에 좀 가요 제발."
조셉은 그토록 아끼고 아꼈던, 하지만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닥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비록 그 말을 닥은 듣지 못했지만.
조셉이 닥의 팔을 붙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때 그는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불살라버린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조셉은 그런 닥의 모습에 극도의 불안과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손을 그의 코 끝에 가져다대었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머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
그가 쓰러지고 반강제로 근처 호텔로 옮겨진 다음 날, 닥은 살롱에 오지 않았다. 지저분한 이들은 일개 귀족들이 말하기를 '천재의 병', '아름다운 병' 에 걸렸다는 한 도박사를 비꼬아가며 술을 진탕 부어 마셨다. 그가 병에 걸리고 살롱에 하루같이 방문하던 그 짧은 기간동안, 닥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박사, 총잡이, 혹은 폐병쟁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이전 그가 들려주던 온갖 사람의 이빨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그런 별명들이었다.
187X년 12월 3X일
닥은 아무 말 없이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셉은 한 가지를 깨닫고 말았다.
188X년 X월 X일
조셉은 싸움꾼이 되어 닥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와 짧은 대화 한번 나눈 것이 다이지만 조셉은 닥을 따라갔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그가 잘 살아는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조셉은 거대한 대륙 이곳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닥은 조셉의 첫 번째 이었다.
제목만 있는 식의 전편
할러데이조셉 할리데이조셉
아이스매브 닥조셉 킬머탐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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